장콩 선생이 만난 팔도 역사교사 8 - 정연두(부산산업과학고)
>> 장용준(전 함평고 교장)
☞ 왜 여덟 번째 인터뷰이로 ‘정연두’를 선정했는가?
중‧고등학교 역사(한국사) 교과서가 올해 새로 나왔다. 각 출판사 교과서 집필진 구성을 보니 교사의 비중이 크게 높아졌다. 6차 교육과정 때 까지 교과서 집필은 ‘교수들만의 특권’이다시피 했다. 집필진 100%가 교수였다. 그런데 7차 교육과정 때부터 교사의 비중이 눈에 띨 정도로 늘더니, 올해부터 사용하는 2015교육과정용 교과서는 교사의 비중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랐다. 고등학교용 한국사만 보면, 9종 교과서에 80명의 필진이 참여했는데 이중 61명 76%가 교사들이다. 격세지감이다.
한데 올해부터 사용하는 교과서는 수명이 5년 미만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말 인즉슨, 내년부터라도 새 교과서 작업이 출판사별로 진행될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이야기다. 관심을 가지고 도전하면 길은 열린다. 교과서 집필에 참여하고 싶은 선생님도 계실 것 같아서 집필에 참여한 선생님들 중 지방에 계신 선생님 한 분을 섭외했다. 그니가 부산의 정연두 선생님이다. 처음 집필에 참여했고 지방에 근무하며 틈을 내서 서울까지 다니며 2년여를 고생했을 터, 하고픈 이야기가 많을 것 같았다. 대체나 그러했다. 다양한 이야기를 진솔하면서도 맛깔스럽게 잘도 들려주었다. 참으로 고맙다.
네. 반갑습니다. 저는 부산산업과학고에 근무하는 정연두라고 합니다. 2009년에 발령받았으니 이제 12년 차밖에 안 된 저경력 교사입니다^^. 현재 부산역사교사모임 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하필 올해 연구부장, 정확히는 연구‧정보‧인문‧과학‧예체능부장을 맡아 3, 4월은 정신이 좀 없었네요. 게다가 그 3, 4월에 제가 집필자로 참여한 교과서에서 저자별로 각 소단원 소개 영상을 만든다고 엄청 바빴습니다. 제가 쫌 완벽(?)하지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말하기인데, 자연스러우면서도 정확하게 전달을 해야 해서 저한테는 엄청 힘든 작업이었습니다. 그리고 4월부터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역사교육연구소에서 만든 ‘역사부정에 맞서는 역사교육 공부모임’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능력 밖의 일이라 이것도 진짜 고역의 연속입니다. 열심히 공부하시는 분들께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려고 하는데 쉽지 않네요.
교과서요? 작업하면서 느꼈던 단상들은 많은데, 제가 기억을 잘 못 하는 병이 있어서..... 잘 끄집어낼지는..... 최대한 말해 보겠지만, 개인적으로 궁금한 내용은 멜을 보내주시면 성심껏 답을 드리겠습니다.
dooandhee@daum.net
국정 교과서 사태를 겪으면서 멋진 한국사 교과서를 한번 만들어보고 싶은 소망을 가진 출판사가 있었습니다. 그 출판사가 먼저 역사 샘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샘들은 그렇다면 기존의 수도권 위주, 교수 중심의 집필진이 아니라 전국에서 활동하는 여러 역사 선생님들로만 구성할 수 있고, 교과서의 방향과 내용도 집필진이 자율적으로 정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거래(?)를 시도했습니다. 이렇게 해서 저한테까지 제안이 왔습니다. 제가 연락을 받게 된 건 제 능력과는 1도 상관없고, 오로지 그때 부산지역 회장을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선 한국사 교과서가 어떠하면 좋겠다는..... 교과서의 상(像) 같은 것에 대하여 제가 평소에 고민이 깊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전체 집필 방향이라 할까..... 이런 걸 잡는 것이 처음에는 어려웠습니다. 집필하고 나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저의 능력 부족으로 인한 어려운 점이 많았습니다. 첫 회의에서 집필 세목-계획서 같은 거-을 짜오라 하고, 다음 회의 때는 한 단원을 정해 샘플 원고를 써오라고 하니 난감했습니다. 해당 부분 전공자도 아니라서 일단 공부부터 시작해야 할 것 같은데, 요구되는 건 그건 기본으로 깔고 그 위에서 시작하는 거였죠.
이렇게 얘기하다 보니 어려운 점이 많았네요. 적절한 사료를 만드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간단하게는 강화도 조약 사료도 학습지 만들 때야 교과서에 있는 사료 그대로 쓰면 됐지만, 새 교과서에 넣을 때는 쉬운 작업이 아니었습니다. ‘국편 우리역사넷’이나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에 대부분 번역되어 있는데, 그것 또한 저작물이라 함부로 쓰면 안 될 것 같았죠. 그리고 교과서 집필자가 조약문 원문을 안 보고, 그냥 남이 번역한 걸 본다는 것도 아닌 것 같아서 최대한 원문을 찾아 번역했습니다. 학생들한테 어려운 용어는 또 쉬운 표현으로 바꿨는데, 어느 정도까지 집필자가 자의적으로 표현을 바꿀 수 있는지도 의문이었습니다.
그리고 보통 교과서는 “학계에서 통용되는 학설을 따르고, 최근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도록 노력한다.”라고 ‘편찬 유의점’에 나오는데, 큰 부분에서는 학계의 통설을 파악하기가 쉽지만 사소한 부분에서는 무엇이 학계의 통설인지가 애매했습니다. 가령 두 주장이 있는데 제가 보기에 더 합당한 주장이 학계에서 40% 정도밖에 지지를 못 받으면 이걸 쓰면 안 되는지, 그렇다면 통설만 따른다면 ‘해석의 다양성은 어떻게 보장하는가?’ 이런 점도 집필 과정에서 궁금했습니다.
집필진 단톡방에 가끔 현장의 평이 올라옵니다. 너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하죠. 연예인들 수상소감 느낌이지만ㅎㅎ. 채택률에 약간은 실망했는데, 현장에서 좋은 평이 나오면 엄청 힘이 됩니다. ‘보면 볼수록 감칠맛 나게 잘 썼다’, ‘우리가 고민했던 주제, 방향들을 잘 짚어줘서 감동, 감탄한다’, ‘매시간 정리할 수 있는 게 있어서 딱 내 취향이다’, ‘출판사가 한국사 처음 만들어서 다행이다. 유명한 출판사였으면 국정 교과서 될 뻔했다. 채택률 100% 나와서’. 그리고 봄에 열린 학술대회서도 좋은 평을 받아서 집필진들의 그동안 노고가 보상받는 느낌입니다.
저희도 내부 토론이나 외부검토를 받고 몇 차례 엎어지기도 했습니다. 제 컴퓨터의 파일을 살펴보니 소단원별로 많게는 40개 정도의 수정 파일이 있데요. 그래도 배가 산으로는 안 간 것 같습니다. 사공들의 목적의식이 분명했고, 도와주시는 분들도 비슷한 의식을 공유하고 있었습니다.
제가 처음 집필진에 참여한 것이라 다른 팀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저희 팀은 엄청 자주 모였고 친목 시간도 아주 많이 가졌습니다. 지역에서 올라오다 보니 1박 2일, 2박 3일 일정으로 같이 숙박을 해야 할 때가 많았죠. 그러다 보니 그때마다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많이 나눴습니다. 진짜 같은 배를 탄 운명공동체 느낌이 들었고, 다시 대학 생활을 하는 착각까지도 들었습니다.
이번 교과서는 이전 교육과정 교과서들에 비해 집필 기간이 짧았습니다. 또 저희 출판사가 늦게 시작했기도 했고요. 2018년 1월경부터 시작해서 여름까지는 교과서의 틀을 잡는 시간이었습니다. 각자 집필 세목을 짜 와서 논의하고, 각자가 생각하는 샘플 원고를 만들어 와서 계속 토론하고 수정하고 하면서 여름쯤 전체적인 틀이 잡혔습니다. 물론 그 이후도 틀이 조금씩은 수정되긴 했습니다.
여름 방학 때부터 본격적으로 집필을 시작했고,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만나서 수정하고, 대단원별로 교차 검토하고 다시 수정하고, 또 지역별로 만나서도 작업하고, 그렇게 반년을 보내고 2019년 1월 초에 외부검토를 부탁드렸습니다. 2월까지는 외부검토 받은 의견을 반영하여 수정 작업을 했죠. 4월에 출원이라서 시간이 아주 부족했습니다. 서울에 계신 샘들은 3월 개학하고 매일 모일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겨우 시간에 맞춰 평가원에 제출할 수 있었습니다. 4월 이후부터는 지도서와 강의용 교과서, 자습서와 문제집 그리고 수업 자료 만드는 작업을 올해 2월까지 했습니다. 최소 2년은 그냥 올인 한 것 같습니다.
2년간은 항상 어디를 가더라도 가방에 노트북을 넣어 갔습니다. 나중에는 마우스랑 키보드도 함께 가지고 다녔습니다. 약속 시각이 조금 남으면 노트북을 꺼내서 한 문장이라도 만들었습니다. 운전하다가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음성 녹음을 하기도 했고요.
교과서 작업을 하면서 전역모에서 공부 쫌 하시는 분들이 어떻게 사시는지 조금이나마 체험을 한 것 같습니다. 시간이 부족하니 잠을 줄여야 하고 다른 사적인 것도 줄일 수밖에 없더군요. TV 드라마 보는 걸 참 좋아하는데 2년간 안보다 보니 이제는 완전 멀어졌습니다. 그 유명한 ‘부부의 세계’도 안 봤습니다ㅎㅎ. 교과서 쓰기 전에는 아이들 재울 때 같이 누워있었는데, 교과서 쓰고부터는 ‘아빠는 우리랑 같이 안자는 존재’가 되어버린 점도 있습니다.
처음 시작할 때는 내가 이런 걸 할 수 있을까?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싶었습니다. 인생에서 엄청나게 힘들었던 순간들을-군대 행군할 때, 농활 때 하루 12시간 동안 쉼 없이 배추 땄던 일, 지리산 등반 대회 갔을 때 등 – 떠올려 보면서, ‘이 또한 지나가리라’라고 주문을 외웠지만, 이번에는 그냥 안 지나갈 것 같은 불안감도 솔직히 들었습니다. 그런데 완성본이 나왔을 때는 의외의 감정도 들었습니다. 물론 감격스러웠지만, 제가 제 능력 이상으로 과대 포장되는 느낌..... 두려움 같은 것도 생겼습니다.
네. 5~7년 정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번 2015 교육과정은 한국사 적용이 다른 교과보다 2년 늦어서 아마 더 짧게 사용하고 끝나지 않을까 추측됩니다. 2022 교육과정이 2025년부터 고1에게 적용이라고 하니까요.
교과서 집필진 구성은 아직은 폐쇄적인 것 같습니다. 교과서들 맨 뒤편에 있는 집필진 소개를 훑어보시면 공통의 뭔가가 보입니다. 학연 등으로 뭉친 경우가 많죠. 저희 같은 경우는 그것을 깨려고 했습니다. 이번에 저희가 작업한 제작 방식이 다른 출판사에도 영향을 준다면 조금 더 공간이 열리겠죠.
준비라고 하면, 별거는 없고 그냥 지금 자기가 서 있는 곳에서 역사교육을 위해 열심히 고민하고 노력하는 게 가장 큰 준비가 아닌가 합니다. 저도 하는 거니 누구나 할 수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ㅎㅎ. 다만 자기 홍보는 좀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고민하고 참여 의사가 있다는 것을 교과서 작업을 주도하는 선생님들이 알아야 하니까요. 제일 좋은 방법은 전국역사교사모임이나 지역 모임을 열심히 참여하며 여러 선생님들께 본인을 알리는 것 아닐까요?
단기간 작업이 아니기 때문에 지방과 서울과의 거리는 거의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출판사에서 교통비와 숙박비뿐 아니라 집필에 필요한 일체의 비용을 전적으로 지원해줬기 때문에 비용적인 부담도 전혀 없었습니다. 모든 출판사가 그렇지는 않다고 들었는데, 위에서도 말씀드렸듯이 다음에는 이런 부분도 다른 출판사에 영향을 주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니 지방에서 근무하는 건 큰 장애물이 아닙니다.
학교까지 설립했다고요? 어마어마하네요. 지금은 출판사는 많은데 학생 수는 줄었으니 많이 다를 겁니다. 지금 상황으로는 계약금 받은 돈을 토해내야 할지도..... 작업을 해보니 저자들에게 충분한 보상이 필요해 보이긴 했습니다. 작업 기간이 최소 1년 이상이고, 거기에 쏟아 붇는 시간과 정력이 상상이상입니다. 스트레스도 많고요. 단순 비교가 되기는 어렵지만 각종 시험 출제비용과 비교하면 채택률이 낮은 교과서의 저자들은 거의 봉사 수준입니다.
‘국편 우리역사넷’과 ‘한국사 데이터베이스’ 담당자랑 친해진 것 같습니다. 작업하면서 우리역사넷의 <신편 한국사>와 한국사 데이터베이스의 <조선왕조실록>을 많이 보다 보니 사소한 오타부터 번역의 오류까지 많은 걸 신고했습니다. 신고에 대한 답변이 처음에는 사무적인 답변이었는데, 계속 신고를 하니 저를 기억하신 듯, 답변에서 감사의 마음이 느꼈습니다. 저의 단순한 느낌일지 모르지만.....
네. 부산역사교사모임은 1980년대 중반 ‘이렇게 가알치가(번역: 가르치는 것이) 되겠나’하며 몇몇 선생님들께서 공부모임을 꾸린 게 태동이었습니다. 이 모임이 전역모 결성과도 연결이 됩니다. 정식으로 모임 발족을 선언한 건 1989년입니다. 다른 지역 샘들이 말씀하시기를 90년대, 2000년대 부역모는 ‘공부’ 이미지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 선배 샘들 덕분에 저 같은 사람이 회장을 해도 굴러갈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다고 생각합니다.
올해 부산역사교사모임은 작년에 이어 1년짜리 ‘평화교육 연수’ 시즌2를 진행합니다. 어벤저스급 강사들을 초청했죠^^. 그리고 코로나 때문에 갈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이동기 교수님과 함께하는 강원도 접경지역 답사를 9월에 계획하고 있습니다.
부산이 2022년 겨울에 자주연수인데, 지역에서도 본격적으로 고민하고 있습니다. 여러 좋은 아이디어들이 나오고 있고 2학기부터 준비 겸 공부 모임을 시작할 예정입니다. 조선 통신사 사행길 연수도 좋은 아이디어네요. 그런데 이번에도 해외 답사를 가게 되면 부산을 주제로 한 자주연수가 2006년이었으니, 다다음 부산 자주연수는 2030년..... 괜찮을라나요? ^^
굴곡이라고 하니 왠지 슬퍼 보입니다^^. 그리고 아직 젊은 시절을 살고 있다고 생각 합니다ㅋㅋ. 음..... 대학 1학년 3월부터 운동권에 빨려 들어갔습니다. 94년 한총련 대의원대회가 4월에 부산대에서 열렸는데 새내기의 느낌으로는 거의 88서울올림픽 치르는 줄 알았습니다. 그 이후 내리 4년을 쭈욱 달렸습니다. 한해 한해가 군대를 미루는 과정이었죠. 저 자신부터 설득해야 했고, 부모님을 설득하고..... -거의 통보였지만^^- 그러다가 5학년 결의까지 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 더 군대를 미루고 단과대 회장 후보 준비를 했는데 거기서 제 운명이 한번 갈렸습니다. 자격 문제로 후보 등록 막판에 저 대신 후배가 우리 쪽 후보로 나가게 되었고, 그 후배가 당선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때가 한총련 관련해서 엄청난 탄압을 하던 97년이었습니다. 한총련 탈퇴를 하지 않으면 단과대 회장이 되는 순간 자동 수배였죠. 그런데 당시 부산대는 한총련의 핵심학교라 탈퇴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후배는 학교에서 수배자 생활을 하다 잡혀갔습니다. 지금도 항상 그 후배한테 빚진 맘으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 과정 속에서 군대를 가게 됐고 갔다 와서도 학점을 메운다고 다시 2년을 더 다녀야 했습니다. 졸업하고는 해운회사에 취직했습니다. 그런데 반년 만에 때려치웠습니다. 그때 군대 고참이 한 말이 떠오르더군요. 저보고 교사하면 잘 어울리겠다는 말을 했었는데 그때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은 길이라 웃어넘겼습니다. 그 말이 왜 갑자기 떠올랐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그래서 다시 수능 공부를 했고, 서른한 살에 사범대를 다시 가서 교직으로 나오게 됐습니다. 대체나 그러고 보니 파란만장한 청춘이었네요.
어렵네요..... 저는 그냥 아이들이 험난한 사회에 나갔을 때 자신을 제대로 지킬 수 있는 판단력, 사고력을 키워주고 싶습니다. 그래서 현재 SNS상에서 핫한 글이나,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이야기들을 수업의 소재로 많이 이용하려고 합니다. 잡담의 소재로도 많이 쓰고요.
사랑(^^)합니다. 누구보다도 오래 잘 자신이 있습니다. 열 두서너 시간은 기본이죠. 대학 다닐 때도 아내가 우리 집에 전화해서 폰도 없던 시절이었는데 저희 어머니한테 아들 좀 깨워달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어쨌든 일주일에 한두 번은 잠을 많이 자니 피로가 안 쌓이고, 그래서 그런지 스트레스도 적게 받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맥주를 거의 매일 한두 캔을 먹습니다. 통풍이 좀 걱정되기는 합니다. 맥주와 함께 그날 있었던 모든 일을 잠시 다른 곳에 임시 저장해 둡니다.
아내와 푼다고 하니 이상한 생각을 하실 수도 있는데, 아내와 대화를 엄청 하는 편입니다. 거의 제가 일방적으로 하루 있었던 일을 재연하는 수준이지만..... 대학 때부터 하면 25년 정도 만났는데 아내와의 대화는 언제 해도 재밌습니다. 가끔은 엄청 대립하기도 하지만 그 또한 술맛을 나게 하죠.
올해 하는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면 좀 쉬고 싶습니다. 내년에는 대학원에 가서 공부를 좀 하고 싶기도 하고요. 이 정도고 뭐 딱히 거창한 계획은 세우고 있지 않습니다.
☞ 절친 교사 이융(부경고) 선생님이 본 ‘정연두’
“연두 형이라고 참 이상한 사람인데 되게 닮고 싶은 사람이 있어.”
아내에게 말했던 오랜 시간 연두 쌤과 함께한 나의 소감(?)이었다. 많은 일을 하면서도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 것 같고, 어려운 일들을 언제나 수월하게 하는 것 같고, 열심히 안 하는 것 같은데 결과가 열심히 한 이상 나오는 것은 이상한 점이었고, 따뜻함과 배려와 진정성을 갖춘 것은 닮고 싶은 점이었다.
이상한 점을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자신의 신념이 분명한데 타인의 의견을 진심으로 경청할 줄 아는 것(신념이 분명할수록 다른 말은 경청하기보다 공박하게 되곤 하는 것이 당연한데도), 자신이 앞장서면서도 그것을 평범하다고 말하며 뒷줄에 선 사람의 손을 잡는 것(앞장서게 되면 뒤에서 바라보기만 하는 사람들이 서운하기도 한데도), 가장 많은 헌신을 하면서도 자신을 성찰하는 것(헌신하게 되면 자신에게서 잘못을 샅샅이 찾지는 못할 수밖에 없는데도), 어쩌면 나는 행님의 그런 ‘이상한 점’을 ‘닮고’ 싶어 하는 거였던 것 같다. 왜냐하면, 그런 건 책에서는 몇 번 읽어 본 것 같은데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본적은 잘 없으니깐.
요리할 때 괜히 ‘연두’ 하는 게 아니다. 요리 에센스 연두, 교사 에센스 정연두ㅎㅎ 한번 맛보면 누구나 안다. 왜 다들 그렇게 연두, 연두 하는지. ‘연두 해요~♪ 연두 해요~♫ 좋은 교사 할 때 연두 해요~♬’
소개 글을 써달라고 해서 이런 것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사실 참 오랫동안 그런 생각을 해 와서 이걸 쓰는 게 너무 쉬웠다. 연두 쌤은 이상한 점을 너무 닮고 싶은 그런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