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의 가려진 이야기들,
어떻게 가르칠까”

사는이야기 - 2020년 상반기 직무연수 후기

>>고동민(제주중앙여고)



들어가며


작년에 신규로 처음 발령을 받고 익숙하지 않은 업무에 치이고 하루살이처럼 하루하루 수업 준비에 매달리며 정신없는 일 년을 보냈다. 나름 아이들에게 의미 있는 역사교육을 하고 싶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교직에 들어왔지만 일 년간의 수업은 그저 지식전달에 머물렀을 뿐 학생들에게 울림을 줄 수 있는 수업은 단 한 번도 하지 못했다는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올해는 학생들에게 의미를 남겨줄 수 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막연한 생각을 하고 있던 차에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한국전쟁 연수를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올해는 한국전쟁 70주년이기도 하고 전쟁을 통한 평화교육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겼다. 또한, 평소 제주 4·3을 통한 평화교육 실현 방안을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번 연수가 평화교육 실현 방안에 힌트를 제공해 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신청하게 되었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아쉽게도 현장 연수는 진행하지 못하고 온라인 ‘줌(zoom)’을 활용해 연수를 진행했지만,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눈빛은 누구보다 빛났다. 연수 기간 진행된 좋은 선생님들의 강의, 그 후에 이어진 질문과 토론은 인식의 지평을 넓혀주고 생각의 깊이를 더해줄 수 있는 시간이었다.





2. 첫째 날(6월 5일) : 1강 – 한국전쟁과 평화: 어떻게 평화교육을 할 것인가?


첫날은 서울대학교 정근식 선생님이 한국전쟁과 평화교육의 큰 흐름에 대해 말씀해주었다. 한국전쟁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뿐만 아니라 평화교육에서 함께 고민해봐야 할 주제들을 짚어보는 시간이었다. 첫 번째 강의에서 인상 깊었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 번째는 우리가 평화교육을 왜 하는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질문이었다. 막연하게 그냥 평화교육을 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한반도가 평화를 위협받고 있으므로 평화교육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더욱 깊어진 분단체제 속에서 우리는 상시 군사적 긴장을 겪어야 했다. 얼마 전 대북 전단 살포로 인한 남북관계의 악화 역시 우리를 다시 적대와 혐오, 긴장 속으로 몰고 갔다. 이런 상황 속에서 우리가 한국전쟁을 배우는 근본적인 목적은 단순히 전쟁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아는 것을 넘어 학생들에게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게 하는 데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 번째는 이의 연장선에서 평화교육은 거대 담론이 아닌 미시적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그동안 한국전쟁 교육은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 전쟁은 어떻게 흘러갔는가에 집중했지만, 이제는 개인과 마을의 전쟁 경험을 포함해 다양한 주체들의 전쟁 경험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전쟁의 책임이 누구에게 있나를 묻는 것도 중요하지만 평화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학생들이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사람들이 전쟁에서 무엇을 경험했나를 같이 공유해보는 것도 좋은 시간이라는 생각을 했다. 4·3 교육 역시 배경-전개-결과로 이어지는 도식적인 사건 이해가 아니라 그 속에서 희생당한 사람들의 체험을 통해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줄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3. 둘째 날(6월 6일) : 2강–평화와 북한 역사(정치) 속의 한국전쟁 / 3강-민중의 전쟁 체험과 희생


둘째 날은 마침 현충일이었다. 한국전쟁과 평화를 이야기하기에 너무나 적절한 날이었다. 첫 강의는 민간인 학살과 북한 연구를 진행하고 계신 한성훈 선생님이 북한 역사와 한국전쟁을 주제로 평화에 대해 의미 있는 말씀을 해주었다. 가장 인상 깊었던 내용은 ‘북한 사회에 대한 이해’를 강조한 점이었다. ‘신천 학살’을 주제로 북한이 경험한 한국전쟁은 어떠한 것이었나를 생각해보면서 ‘평화’와 ‘통일’을 이야기하기 전에 타자에 대한 이해가 중요함을 느꼈다. 사실 나 역시도 북한의 역사와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평화를 위해 같이 가야 할 가장 가까운 ‘타자’에 대한 이해 없이 어떻게 평화를 이야기 할 수 있을까?” 연수를 듣고 나서 이런 질문이 마음속에 남아 고민을 하게 만들었다.

평소 존경하는 故 신영복 선생님은 『담론』에서 통일을 얘기하며 논어의 한 구절인 ‘군자화이부동(君子和而不同) 소인동이불화(小人同而不和)’를 강조하였다. 신영복 선생님의 해석에 따르면 “군자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지배하려고 하지 않으며, 소인은 지배하려고 하며 공존하지 못한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강의가 끝나고 이 말의 의미를 다시 곱씹어보면서 평화와 통일의 한 과정으로서 남북이 공존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잣대로 북한 사회를 지레짐작할 것이 아니라, 북한의 역사를 살펴보며 북한 사회와 사람들을 먼저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였다.

두 번째 강의는 교원대학교 이용기 선생님이 ‘민중의 전쟁 체험’을 주제로 연수를 진행하였다. ‘6·25’라고 하는 전쟁의 개전(開戰)과 책임 문제를 제기하는 기억 방식을 문제 삼으면서 ‘아래로부터의 기억’, ‘전쟁 당시 국가와 민중’ 간의 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말씀을 해주었다. 특히 한국전쟁 당시 역사학자 ‘김성칠’과 대학생 ‘강신항’의 일기를 통해 한국전쟁을 설명해주시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두 지식인의 일기를 천천히 읽어보며 전쟁 당시의 상황으로 금방 몰입할 수 있어서 수업 때 활용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연수가 끝난 후 교수님이 연수생들의 뜨거운 참여에 감동했다며 일기 자료와 사진 자료집을 깜짝 선물로 보내주어 좋은 연수와 함께 든든한 자료집도 얻을 수 있었다.

연수 이후 한국전쟁 연구의 관점 전환을 가져왔다며 이용기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김동춘 교수님의 『전쟁과 사회』를 읽어보았다. ‘우리에게 한국전쟁은 무엇이었나’라는 질문을 통해 전쟁의 발발 원인과 책임규명과 같은 거대 담론을 넘어 피난-점령-학살로 이어지는 일반인들의 전쟁 경험은 어떠한 것이었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첫 번째 강의에서 강조한 한국전쟁의 ‘미시적 접근’, 이용기 선생님이 설명해준 ‘아래로부터의 기억’으로 한국전쟁을 가르치는 데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연수를 들으며 한국전쟁 관련 좋은 책을 알게 된 것도 이번 연수의 수확 중 하나였다.



4. 마지막 날(6월 7일) : 4강 – 미군의 포로 심문보고서를 통해 본 한국전쟁 / 5강 – 한국전쟁과 젠더


마지막 날 첫 강의는 한국전쟁의 포로 문제를 연구하고 계신 윤성준 선생님의 강의로 시작하였다. 주요 내용은 한국전쟁의 명칭과 기원, 성격에 관한 논쟁, 휴전 협상과 전쟁 포로 문제 등을 주로 말씀해주었다. 한 선생님의 표현을 빌리자면 ‘한국전쟁의 A to Z’까지 알려주는 알찬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특히 교과서 속 한국전쟁 서술을 말씀해준 내용이 기억에 남았다. 교과서 속 한국전쟁 서술이 당시의 국제정세와 전황·전쟁의 결과에 대한 개략적인 정보전달 수준에 그칠 뿐 민간인, 포로, 여성, 피란민 등 당시 전쟁의 다양한 주체들은 빠져 있다는 것이었다. 교과서 지면의 한계로 다양한 서술이 어렵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교과서를 통해 가르치는 역사 교사가 이를 재구성하여 교과서 서술과정에서 배제된 한국전쟁의 다양한 주체들을 학생들에게 안내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 당시 포로심문보고서에 나타난 ‘노재길’이라는 인물의 삶을 통해 한국전쟁을 설명해주는 내용 역시 흥미로웠다. 내게 한국전쟁의 포로 문제는 “휴전 협상의 지연 요인 중 하나였다”, “이승만의 반공 포로 석방으로 인해 휴전 협상이 결렬될 위기에 처할 뻔했다”는 인식 정도만 있었다. 그런데 식민지 시기 일본군으로 입대할 때부터 전쟁포로가 되기까지 한 개인의 치열했던 삶의 과정을 보여주는 ‘노재길’의 포로심문보고서를 읽어보면서 “당시 남과 북 혹은 중립국이라는 선택의 문제에 직면했던 포로들에게 전쟁의 의미는 과연 무엇이었을까?”라는 고민을 남겨주었다.

마지막 강의는 ‘한국전쟁과 젠더’를 주제로 이임하 선생님이 연수를 진행해주었다. 그동안 남성의 경험으로 도배된 전쟁 기억에서 소외된 여성들의 전쟁 경험을 처음으로 알게 된 연수였다. 공식 문헌 자료 속에 동정의 대상으로 한결같이 묘사된 전쟁미망인의 경험이 사실 한결같지 않고 ‘개인의 생애사’에 따라 다양한 경험을 하고 있다는 내용이 특히 인상 깊었다. 전쟁 이후 한(恨) 많은 세월을 살아온 전쟁미망인의 구술 자료를 직접 음성으로 들으면서 이들도 전쟁을 ‘몸’으로 겪은 하나의 주체로서 우리 역사 속에 당당히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쟁미망인의 전쟁 경험이 국가 폭력의 문제를 제기하므로 그동안 그들의 존재가 가려져야만 했다는 이임하 선생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이들의 경험이야말로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일깨워 줄 수 있는 기억의 대상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보았다.



5. 마무리하며 -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해라”


3일간 연수를 들으며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의 역사교육을 향한 ‘열정’에 놀랐다. 연수가 끝나고도 남아 온라인상에서 토론을 주고받는 모습은 아직도 기억 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그저 평화교육이 무엇인지 ‘귀동냥’하는 마음으로 연수를 신청했지만 같은 주제로 함께 고민하는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어 든든하고 반가웠다. 연수 첫날 정근식 선생님이 한국에서 평화교육은 개념도 명확하게 규정되지 않았고, 체계적으로 시도해본 경험도 없어 연수에 참여한 선생님들이 평화교육의 ‘첫 세대’라는 말을 해주었다. 평화교육의 시작은 발령받고 처음 들어간 교실에서 했던 수업처럼 예상치 못한 시행착오가 많을 것이다. 그렇지만 여러 선생님의 고민과 실천이 모인다면 우리의 평화교육이 평화체제를 유지하는 데 작은 기여라도 할 수 있지 않을까? 최근 인상 깊게 읽었던 『현대사 몽타주』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평화를 원하면 평화를 준비하라” 평화를 준비하는 선생님들의 작은 노력들이 평화를 가져올 것이라 굳게 믿는다.

끝으로 좋은 연수를 준비해준 전국역사교사모임 집행부와 연수부 선생님들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강사 섭외와 자료집 편집부터 시작해서 연수당일 아침 일찍 나와 연수를 준비해준 선생님들 덕분에 좋은 연수를 들을 수 있었다. 하반기 연수는 더 흥미로운 주제와 강사 분들로 구성된다고 한다. 가을에는 코로나-19가 안정되어 현장에서 다양한 선생님들을 만날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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