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역사교사모임 30주년 기념 대담회
1. “연대의 경험, 역사교사의 정체성을 세우다” … 2008년 금성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파동
양두영 : 1988년 7월 15일, 전국역사교사모임이 창립되었다. 그 전까지는 우리 사회에서 역사교사 하면 교수들에 비해 뭔가 전문성이 부족한 것 같은 인식이 있었다. 그러나 모임을 통해 선배 교사들이 꾸준한 연구와 실천을 이어갔고, 이것이 역사교사들의 위상을 높이는데 큰 공을 세웠다고 보인다. 역사 수업, 역사교육 문제, 역사 교육과정 등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 사회에서 공신력을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주체라는 의미이다. 최근 10여 년간 역사교과서 관련 소동이 일어났을 때도 사회 전반에서 우리 모임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했던 듯하다. 이는 이러한 문제가 역사교사들이 주체가 되어 해결해야 할 문제임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오늘 대담이 역사교사들의 그동안의 실천을 되짚어보고 앞으로를 전망할 수 있는 시간이었으면 한다. 그 첫 이야기로 2008년 금성출판사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파동(이하 금성교과서 파동)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여혜경(울산 함월고, 前 울산역사교사모임 회장)
여혜경 : 금성교과서 파동이 일어났을 때 산역사교사모임에서 성명서를 통한 역사교사들의 의사를 표현했다. 2008년 9월 24일이다. 이번 대담을 준비하면서 이에 관련한 자료를 찾고 정리하다 당시 이 성명서를 준비하며 있었던 모임 내 갈등과 그 과정에 힘들었던 선생님의 글을 우연히 읽으면서 울컥해지는 마음이 일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지역 단위 차원에서 성명서와 같은 방식의 대응은 모임 선생님들도 나도 처음 겪는 일이었다. 전국역사교사모임 성명서 발표와 함께 지역모임 차원에서도 역사교사의 목소리를 내는 것이 좋겠다는 판단 속에 갑자기 진행되었고, 성명서를 쓰신 분이 손성호 선생님이셨다. 그 과정에 모임 내 선생님들 중에는 성명서 진행 절차 과정과 그 자체에 대해서도 심적 부담을 가지신 분들의 문제 제기가 있었다. 어떤 사안에 직면했을 때 어떻게 싸울 것인가를 두고 모임 내 회원들 간의 온도차가 있었던 거다. 손성호 선생님도 성명서라는 것을 나서서 어렵고 힘들게 쓰셨는데 그런 비판에 힘든 마음을 토로한 글을 다시 읽으니 그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 역시 마음이 편하지 않았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 우리가 스트레스를 되게 많이 받았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면 그 전까지 역사교사는 그냥 수업하고 학교 고민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사회문제에 기자회견을 하고 성명서를 발표하고 그에 따른 부담도 각오해야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이다. ‘암묵적인 순서 상(?)’ 내가 지역 모임 회장을 맡아보아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었는데, ‘아 내가 회장되기 전에 다 해결되기를…’하고 빌었다.(일동 웃음) ‘인터뷰 하고 사람들 앞에 나서는 거 정말 싫은데’라는 생각으로 심란했던 것 같다. 하지만 상황은 점점 우리가 싸워야만 하는 국면으로 몰려가고 있었다. 교육청 차원에서 각 학교 교장들에게 압력을 넣어 강제로 교과서를 교체하라고 지시를 하고 했었기 때문이다.
양두영 : 여기서 전사(前史)를 말씀드려야 할 것 같다. 2002년에 새 교육과정(7차 교육과정)이 발표됨에 따라 ‘한국근현대사’라는 과목이 생겼고 교과서가 만들어졌다. 그 당시에도 국감 등에서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이 이 교과서에 대해 좌편향 시비를 벌이곤 했었다. 이후 이명박 정부 당시 뉴라이트 단체인 ‘교과서포럼’이 등장하면서 교과서에 대한 비판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그리하여 2008년, 당시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근현대사 교과서 일부는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해치고 있어서 수정해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이야기하는 일이 생겼다. 주된 대상은 금성교과서에 펴낸 한국근현대사 교과서 였다. 해당 교과서의 저자인 김한종 교수님, 이인석 선생님 등이 반발했지만 교과부는 강제 수정 지시를 하는 식으로 사태가 급박해져 갔다. 이에 모임에서도 당시 ‘뭔가 해야 하지 않은가’에 대해 이야기 했던 것 같다.
백옥진 : 당시 고양파주 모임에서 선생님들과 굉장히 열심히 싸웠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싸움 이후 모임의 성격이 달라졌다고 할 정도다. 이전에는 단순 교과 모임 정도였다면 그 이후 지역 사회에서 역사교과서 문제와 역사교육의 이슈에 대해 문제제기 하는 성격으로 거듭났다는 생각이 든다. 역사교사들의 의사를 모으고 행동할 수 있는 지역모임의 성격으로 업그레이드되었다고 할까. 2008년 당시 경기 고양-파주지역에 굉장히 압력들이 많이 들어오면서 저희가 비상대책위원회까지 만들어 활동했었다. 그 때 회장이었는데 지역 모임 차원에서 성명서도 쓰고 보도 자료도 냈었다. 여기 계시는 조정아 선생님이 아마 그때 성명서를 썼었지 아마?
조정아 : 난생 처음 성명서를 써봤다(웃음). 이전에는 좋은 역사교사의 모습이나 좋은 수업에 대해 고민 하는 교과 모임 정도였다. 그러나 이 활동을 통해서 역사교사로서의 정체성을 세워나가는 좋은 집단적 경험을 했다고 생각된다.
이성호 : 당시에 교과서 교체를 강요하는 과정이 너무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자행되나 보니 많은 역사교사들이 이걸 막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참여하신 것 같다. 결과적으로 아쉬운 것은 2007 개정교육과정이 제대로 적용되지 못했다는 점이다. 만족스럽지는 않다고 하더라도 현실적인 수준에서 합리적인 안이 등장하여 개정교육과정이 확정되었는데, 정권이 바뀌면서 적용도 못하고 폐기된 교육과정이 나온 것이다. 멀쩡히 사용되고 있는 교과서에 대해서도 이걸 바꾸어야 한다고 억지를 부리니까 역사교사들이 목소리를 내게 된 것 같다.
조정아(경기 일산동고, 現 연대사업부장)
김태우 : 아마 많은 역사교사들이 당시에 체감 상 아주 큰 충격이었다고 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전에도 교과서를 가지고 이념공세를 하고 역사 교육과정을 마음대로 바꾸어버리고 했지만, ‘그거 어차피 만들어지더라도 우리가 알아서 수업을 하면 되지’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지 않나. 그런데 그 상황은 당장 우리가 수업을 해야 될 역사교과서의 선정 작업에 강압적으로 개입하는 것이었다. 서울의 경우 각 학교 단위로 압박 작업을 하는데, 부교육감이나 교육청의 관료들이 학교장에게 직접 압박을 가했다. 교과서 선정위원회를 다시 열어서 바꾸게끔 하는 식으로….
양두영 : 더 황당한 것은 역사교사들로 구성된 교과서 선정위원회 단계에서 압력이 먹히지 않으니 학교운영위원회에 개입하려 했던 부분이다. 검정교과서 선정의 최종 결정을 할 수 있는 게 ‘학운위’지 않나. 역사교사들이 순위를 매겨 올리면 1위가 아닌 2위나 3위를 그 사람들이 채택을 하게끔 압박했다. ‘어떤 교과서가 되든 간에 금성교과서가 아니면 돼’라는 입장에서 학부모위원이나 지역위원을 설득해서 결국에는 바뀌게 되는 식이다.
여혜경 : 멀리 있는 정치권력보다는 가까이 있는 교장이 더 부담스러운 법이다. 게다가 역사 선생님들마다 ‘심장의 크기(?)’가 다르기도 하다. 당시 나는 지역 모임에서 활동하지 않는 일반 학교 역사 선생님들이 많이 걱정되었다. 그분들 스스로 오롯이 압력을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국 모임에 연결해주거나 전교조 지회에 연결을 해주는 식으로 지역 모임의 역할을 하려고 했다.
조한경 : 당시 경기도의 경우 교장, 교감을 모아 놓고 승진과 예산을 빌미로 학교에 압박을 가했었다. 그 결과 대부분 학교에서 금성교과서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개인적인 실천을 하려고 애썼던 기억이 난다. 교내 메신저로 사안에 대해 설명을 붙여 안내하고 반대 설문지 서명을 받았다. 동료 선생님들이 이 사안이 부당하다는 것을 알았으면 하는 마음에서였다. 당장 주변부터 설득하지 못하면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 문제에 관심이 없는 분들의 힘을 모으고 설득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조한경(경기 중원고, 前 회장, 2014~2015년 재임)
이성호 : 아까 여혜경 선생님의 이야기가 참 중요한 장면인 것 같다. 이 문제를 거치면서 우리 모임이 아니신 분들과 우리 모임이 만나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이다. 학교현장에서 만나게 된 많은 평범한 교사들과 연결이 됐고,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기 때문이다. 같이 고민하고 이럴 수 있었던 경험은 굉장히 중요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모임의 저변도 좀 확대가 된 측면도 있고.
김태우 : 그 결과 이 사안 이후로 역사교육 이슈가 생기면 일종의 사회적 기대가 우리 모임에게 생긴 것 같다는 생각이다. ‘전국역사교사모임부터 움직여 주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목소리 말이다.
이성호 : 한편으로 당시 파동의 당사자인 필자들의 노고를 잊어선 안되는 것 같다. 금성교과서 문제를 끝까지 붙들고서 포기하지 않고 싸울 수 있도록 구심점 역할을 하셨기 때문이다. 김한종 교수님, 이인석 선생님 등은 수정명령에 대한 가처분 심판 등 여러 재판을 통해 끝까지 싸워주셨다. 당시 재판을 여러 번 따라가서 방청하고 그랬지만 아 이게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김한종 선생님이랑 2007 개정교육과정이 나오고 난 다음에 ‘교과서를 써보자’고 이야기가 오간 적이 있었는데 그 기회를 놓치게 되었다(일동 웃음). 이 사건을 거치면서 이후 김한종 교수님이 집필 거부를 하셨기 때문에…. 여담이다(웃음).
2. 이념공세라는 이름의 반지성 … 2013년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소동
양두영 : 그 이후에도 우리 모임은 다양한 수업 연구와 실천의 실적을 쌓아 갔다. ‘처음 읽는 세계사’ 시리즈, <백 년 전 한국사>, <외국인을 위한 한국사>와 같은 책들이 2010년 전후로 출간되었다. 그렇게 우리 모임은 꾸준히 연구역량을 축적하고 역사교육의 대안을 모색해 갔다. 그 와중에 2012년~2013년, 소위 ‘한국현대사학회’라는 뉴라이트 단체가 나타나 역사교과서를 이념문제로 몰고 갔고 이에 대안을 마련하는 명분으로 적극적인 움직임을 벌였다. 그게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 문제 였다. 당시 여당이었던 새누리당의 유력 정치인인 김무성 의원이 국회에서 ‘근현대사 역사교실’을 발족했던 것도 이와 같은 역사이념공세의 맥락이었다고 보인다. 교학사 교과서 문제 이야기를 해보자. 2013년 이야기를 해보자. 여혜경 선생님께서 당시 지역 상황을 전달해주시면 좋겠다.
여혜경 : 당시 회장이었다. 의외로 소심하고 부끄러움이 많아서 임기 중에 기자 회견에 내가 나서야하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선 안 되었다. 아버지 생각하면 더욱 안 되는 일이었고(웃음). 그만큼 지역 분위기가 그렇다. 하지만 교학사 교과서 소동이 일어났다. 당시 집행부의 선생님께서 ‘울산 관내에 위치한 자립형 사립고였던 모 고등학교에서 교학사 교과서를 채택했다’는 이야기를 전화로 말씀해주셨다. 좀 내부 상황을 알아보기 위해서 해당 학교와 같은 재단 소속 학교에 근무하시던 역사 선생님과 통화를 했는데 채택 사실을 확인하고 내부 분위기도 전해들을 수 있었다. 대상 학교가 사립학교다 보니 채택 거부 운동을 벌이는 문제에 대해 고민되는 지점이 많았던 것 같다. 하지만 전국 모임 집행부와 지역 모임이 유기적으로 연락을 취하며 대책을 논의하고 전교조 울산 지회에서도 협조를 해주었다. 무엇보다도 효과적이었던 것은 해당 학교 동문들의 압박이었는데, 채택을 철회하라는 글에 학교 홈페이지가 마비될 정도였다.
김태우 : 방금 말씀 하신 해당 학교 동문들의 반대 움직임 같이 교학사 교과서 채택 거부운동은 대중적 차원의 관심이 높은 상황에서 진행되었다. 시민사회에서도 ‘역사정의실천연대’라는 이름으로 모여 조직력을 더했다. 당시에 전국적으로 유명한 모 자립형 사립고가 채택을 했다가 동문과 시민단체의 반대로 무산이 되었었는데, 그게 하나의 의미 있는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부실 교과서를 아이들에게 가르치나’라는 소위 ‘부실교과서 프레임’이 크게 작용했던 거다.
이성호 : 부실교과서 프레임을 만드는데는 역사학계에서 검증노력을 해준 부분이 큰 역할을 했다. 금성교과서 문제를 거쳐 역사교과서 편향 시비가 몇 차례 있어오면서 한국역사연구회, 민족문제연구소 등 단체가 활동을 함께했다. 역사교과서 문제에 대해서 우리 모임 외에 다른 역사학 관련 단체들이 함께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교학사 교과서 소동이 터졌을 때 교과서 내 역사적인 사실관계 오류와 같은 문제들을 역사학 단체들에서 충분히 찾아내주고 공론으로 보조를 맞춰 주셨다. 그래서 채택 거부 운동이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이 든다.
김태우 : 재미있는 건 그 때도 한국사 교육 강화에 대한 논리가 나오기 시작했다는 거다.
이성호 :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역사교육의 혼이 어쩌고 이런 말을 했었다.(일동 웃음) “역사교육은 국민의 혼과 같은 것”이라는 말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면서 역사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당시에는 제가 회장일 때인데 그 때 3월 달에 그 부분 관련한 인터뷰를 굉장히 많이 했었다. 분위기가 묘하게 흐르면서 한국사 교육 강화가 약간 국수주의적인 움직임으로 나타나기도 했었다. 이런 것들을 계속 경계를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와 관련된 쪽으로 여론을 몰아가려는 그런 움직임들이 보였고 결국에는 그것이 ‘한국사 수능 필수’에 대한 문제로 넘어가게 되었다. 우리 모임 내에서도 굉장히 논란이 있었다. 우리 모임은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하는가. 그런데 당시 모임은 뚜렷한 입장을 내지 않았다. 사안이 많이 민감하기도 했고 적극 반대하기도 찬성하기도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김태우 : 그래서 당시 욕을 먹었었다(웃음)
이성호 : 각자 처한 입장에서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떤 분들은 ‘역사 교과의 위상을 높일 수 있고, 최선은 아닌 차선책으로 뵈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한국사’ 수능 필수가 일종의 족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양쪽 입장을 떠나 정치권에서 역사교육에 대해서 너무 지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것에 대해 좋은 징조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니나 다를까 나중에 역사 분쟁부터 해서 국정까지 가는 일련의 상황들이 거기서 시작되었던 것 같다.
김태우 : 이건 다른 이야기지만 교학사 사태 때 짚어야 했던 게 교과서 선택 절차와 관련하여 교사들의 문제의식이 높아졌다는 거다. 금성교과서 때와는 정반대라고 볼 수 있는데, 교사들이 채택을 하고 싶지 않은 교과서를 압박하고 강요하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대부분의 선생님들과 학교는 부담이 없었다. 부실교과서이고 논란이 많은 교과서이니까 3배수 안에 넣지 않으면 되었기 때문이다. 다만 비록 소수이지만 채택을 강요받은 학교의 역사교사들 입장에서는 참 비참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점은 한번 기억해주어야 할 듯하다. 또한 외부의 여론이 반대가 높은 것을 압박도구로 삼아 채택을 무산시켰다는 점은 그 자체로는 좋은 승리의 사례였지만, 반대의 상황일 경우 문제가 될 수 있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을 해본다. 이는 당시 집행부에서 논의한 바이기도 했다.
김태우 : 예전에 금성교과서 파동 때 싸워서 문제를 만든 것이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된다. 큰 파동과 이슈가 되니까 말이다.
김종민 : 교육 당국이나 학교에서도 역사교과서 문제로 이슈가 되는 것을 꺼리게 만든 것이니까 말이다.
양두영(경기 양주백석중, 현 부회장)
3. “권력은 역사교육을 이길 수 없다” … 2015~2017년 역사교과서 국정화 소동
양두영 : 어쨌든 교학사 교과서 소동은 결과적으로 채택 무산으로 끝나게 되었다. 당시 황우여 새누리당 대표가 ‘역사교과서 이제 이대로는 안 된다. 국정교과서로 바꿔야 된다’는 말로 국정화 추진을 시사 하기도 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소동이 시작되었던 것이다. 이 문제와 관련해서는 조한경 선생님이 산증인이 아닌가 한다. 교학사에서 국정화 국면으로 넘어가는 상황에 회장이셨고, 회장 임기가 마치신 이후에도 교과서TF팀장을 맡으셨으니까 말이다. 말씀 부탁드린다.
조한경 : 당시에 별로 느낌이 안 좋았다. 교학사 교과서 소동이 좌절된 이후에 박근혜 정부가 ‘뭔가 하겠다’라는 생각이 든 거다. ‘교과서 검정강화로 세게 치고 나오겠다’라는 생각이었다. 무식하게(?) 국정화까지는 갈 것이라는 걸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이후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한다는 소문이 스멀스멀 들려왔다. 그래서 당시 미리 선제적으로 치고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2014년 8월 강원 여름연수에서 국정화 반대 부분에 관해 의견을 모았고, ‘역사교사들은 유신 독재의 부활인 국정화 시도를 반대 한다’는 내용의 플래카드도 걸었다. 모임 차원에서 선제적으로 준비를 했었다.
김태우 : 사실 국정화가 시도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설마’하는 마음이었으니까(일동 웃음). 조한경 선생님 말씀대로 검정 강화 등의 방식으로 세게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예상했다. 국정화를 시도한다는 것은 누가 봐도 무리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국정화가 시도 되었을 때는 양가감정이 들었다. ‘이 정부는 진짜 나쁘구나’는 생각과 ‘진짜 멍청하다’는 생각이었다. ‘이 정부는 뭘 해도 이렇게 무모하고 무식하게 시도하는 구나’라는 느낌이었다.
김태우(前 회장, 2016~2017년 재임)
김종민 : 당시 국정 싸움을 하면서 좋았던 기억밖에 없다. 보수적인 지역에서 국정화 반대 피켓 시위를 하시는 다른 선생님들은 혼도 나고 봉변을 당하고 하셨다는데 (일동 웃음), 저는 반대였다. 근무학교가 천안 내에서 신도시에 있는 곳이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국정화 반대를 지지하는 분위기를 체감할 수 있었다. 처음에 보름 정도 넘게 피켓 시위를 했을 때 정말 단 한명도 무어라고 비난한 사람이 없었다. 농담처럼 이야기 했지만 그때 받은 음료수가 정말 1년 동안 먹어야 될 정도였다. 하도 많이 받아서 말이다. 심지어는 지나가던 아주머니가 차를 돌려서 인근 편의점에 들리더니 음료수를 딱 놓고 가시는 거였다. 나는 욕하러 오는 줄알고 긴장했었는데 말이다(웃음).
여혜경 : 그래도 힘이 들었던 것은 사실이었다. 우리 모임에서도 지속적으로 피켓시위를 진행했었는데 그때 든 생각이 이것이었다. ‘이 정부는 우리의 일상을 완전히 파괴하는 구나’라는 생각. 굉장히 피로도가 높았었다. 나는 정말 소심한 평범한 시민으로서 소소하게 살아가고 싶은데 왜 자꾸 이러나 싶었다. 하지만 상황이 악화되어 가는 만큼 뭔가 제스처를 취해야한다고 생각했다. 그게 우리 역사교사의 정체성을 지키는 것이었으니까.
조한경 : 회장을 하면서 굉장히 고맙고 미안했던 것이 보수로 불리는 지역에서 근무하는 선생님들이 교과서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준 것이었다. 울산이나 부산, 대구, 경상도는 이런 실천이 쉽지 않은 곳이지 않나. 그 분들의 활동을 보면서 더 열심히 싸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김종민 : 우리 충남은 당시 진보 교육감이여어서 분위기가 좋았다. 우리 모임에서 교육청 대강당에 모여서 국정화 반대 성명서를 발표할 정도였다. 일종의 ‘관제시위’였다(웃음). 지역 단위에서도 열심히 알리려고 노력을 많이 했었다.
이성호 : 서울 같은 경우도 교육감의 지지가 국정화 반대 싸움에 큰 힘이 되었다. 조희연 교육감이 점심시간 마다 나와서 1인 시위를 같이 했었다. 광화문에서 말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당시에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하는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 했지만.. 우리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분명 힘이 되었었다. 또한 서울시교육청의 차원에서도 역사교육위원회를 만들어서 이 이슈에 대응하려고 했고 교육부와 갈등도 빚었다.
양두영 : 이러한 반대 움직임에도 정부에서는 일정대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했다. 현장 검토본 공개를 강행하는 등 밀어붙였다. 이에 우리 모임에서는 관련 세미나도 열고 당시 대구에서 개최된 자주연수를 진행하면서 해당 지역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무엇보다 떠올리게 되는 건 ‘8도 역사교사 세종(교육부) 진공작전’이다. 2017년 1월 18일에 정부세종청사 교육부 앞에서 열린 이 집회는 국정화 문제와 관련해서 역사교사가 주축이 된 전국 단위 집회였다. 당시 이 집회를 기획하고 적극적으로 추진하신 김종민 선생님이 말씀해주시면 좋겠다.
김종민 : 사실 처음에는 진지한 논의로 시작된 것이 아니었다. ‘대세충’ 모임이라고 해서 대전-세종-충남 등 충청권 지역모임 선생님들의 교류 모임이 있는데, 거기에서 뭐라도 해보자고 집회를 개최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다. 막상 실제로 추진할 때는 걱정이 좀 되었다. 인원이 적게 오면 많이 모양 빠질 것 같아서….
김태우 : 당시 회장이었다. 김종민 선생님에게 이 제안을 받았을 때 기쁨이 크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걱정이 컸다. 개최 시기가 ‘시즌’인 만큼(1월 중순) 선생님들의 참여가 적을까봐 걱정이 되었던 거다. 전국 모임의 집행부도 주저하고 있을 때 지역에서 주도해주셔서 너무 감사했다. 결과적으로 200여명이 넘는 역사교사가 참가했을 때는 굉장히 기뻤다. 소름이 돋을 정도로 좋았다.
김종민 : “야! 이거 열 명이면 뭐 어떻고, 스무 명이면 어떠냐. ‘쪽’ 팔리기는 하지만…. 오롯이 우리 역사교사들끼리 해보자. 당당하게 해보자.‘라는 생각이었다. 전국 모임 집행부에 이걸 제안하고 말기에는 집행부에 부담이 될 것 같아서 ’말 꺼낸 우리들이 먼저 해보자‘는 식이었다. 모임 페이스북 페이지에 제안문을 올렸다. 물론 약간의 ’동원(?)‘도 있었다. 제안 측에서 쓴 글에 제안한 사람들이 분위기 띄우기 위해 ’좋아요‘ 누르게 하고 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보면 완전 ’드루킹‘이었다(일동 웃음) 정말 감사했던 건, 이미 글이 올라오자마자 전국에 있는 역사 선생님들이 굉장히 격하게 호응을 해주셨던 거다. 그 이후 그야말로 소름 돋는 경험을 하게 된다. 서울에서는 전세 버스가 2대인가 왔었고 광주/전남에서 전세버스를 1대 올라왔다. 울산에서도 왔었고. 개최 시기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았지만, 탄력 받았을 때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바로 추진했다.
김종민(충남 온양중, 前 충남역사교사모임 회장)
김태우 : 그 벅찬 느낌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김종민 : 그 때 우리 김태우 회장님이 집회 마치고 뒷풀이 후에 가실 때 한 잔 하시고 ‘기분좋다’고 그랬던 기억도 난다(웃음). 행사 구성도 다채로웠다. 이민동 선생님이 기획했던 OX퀴즈, 이우종 선생님의 반어법적인 멘트는 발랄한 집회 분위기를 만들었다. 박래훈 선생님이랑 차경호 선생님이 집회 도중 진행한 토크쇼는 정말 ‘대박’ 이었다. 집회 내내 지루하지 않고 끝나는 게 아쉬울 정도였다(일동 웃음). 심지어는 집회에 나와있던 전경들도 웃을 정도였으니까. 국정교과서가 폐기되고 뭔가 기분 좋게 마무리 했으면 하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러지 못해 좀 아쉽긴 했지만, 정말 행복한 기억으로 남았던 사건이다.
김태우 : 당시 대통령 탄핵 국면으로 넘어가는 분위기여서 국정화 소동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높았던 시기였다. 하지만 교육부는 계속 국정교과서를 강행할 의지를 내비쳤다. 국정교과서 연구학교 공모 절차도 발표하고 했던 시기였으니까 말이다. 이에 관해 국정교과서 문제에 일격을 가할 수 있는 싸움의 기회가 없을까 하는 생각을 하던 시기에 이런 제안을 해주어서 참 감사했었다.
양두영 : 어떻게 보면 이런 집회가 가능했던 것은 2015년도 서울 파이낸스 빌딩 앞에서 이루어졌었던 거리 특강과 촛불 집회의 경험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일종의 ‘종자돈’이 되었던 것이 아니었나? 그 당시의 이 행사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하다.
조한경 : 이 이야기를 하려면 학계와 시민사회에서 도움을 주신 바를 떠올려야 한다.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이하 저지넷)라는 ‘겁 없는 단체’가 있었다. 우리 역사 교사들의 겁 없음을 먼저 알아봐주고 결합해준 단체로 우리 모임도 저지넷 운영위원회의 한 축을 담당했다. 우리 모임이 간사단체인 ‘역사교육연대회의’는 주로 교과서 분석을 해주었다. 이런 연대의 움직임이 있었기에 가능한 행사였다. 거리특강은 저지넷과 여러 단체들이 기획한 행사 중 하나였고, 그 분들은 이런 이야기를 하셨다. ‘역사교과서 문제는 역사교사들만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했다. 많이 고마웠다.
이성호 : 그 거리특강 행사에 나와주었던 원로 학자들을 떠올려 보면 ‘이 분들이 진짜 어른이구나’ 싶다. 조광 선생님, 이만열 선생님, 이준식 선생님, 이이화 선생님 같은 분들이 찬 겨울에 나와서 특강 행사를 하시고 역사교사들을 격려해주시고 하는 모습이 말이다. 존경심이 드는 부분이 있다.
김 : 국정화 소동에 대해 정리하는 말을 해보고자 한다. 국정화 소동은 역사교사들이 역사교육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들을 자체적으로 고민하게 만든 계기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역사교육이란 무엇인가’, ‘역사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을 해보고 이를 극복하고 이겨 내야 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앞으로의 역사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에 대한 책임감을 되돌아 보게 한 소중한 기회였다고 본다.
4. 마치며 – 함께 만들 새로운 10년, 역사교육의 미래
양두영 : 결국 ‘국정화 소동’은 한낮 소동으로 마무리 되었다. 박근혜 정부가 탄핵되고 ‘장미 대선’이 이어졌고 문재인 정부가 들어섰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후 3일 만에 국정교과서 폐지를 지시하였다. 그 과정에서 국민들의 의지와 시민사회의 노력 그리고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역사교사들의 노고가 없었더라면 쉽지 않았을 일이다. 마지막 순서는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10년간의 역사교과서 소동과 싸움을 중심으로 지금까지 이야기했다면, 대담을 마무리하면서 앞으로의 역사교육을 전망하는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소회도 곁들이면 좋겠다.
여혜경 : 이 대담 준비를 하면서 그동의 활동에 관해 정리 작업을 했는데,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한 게 아니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위안이 되었다. 단지 아쉬웠던 건, ‘근현대사 교과서’를 잃어버렸다는 것이다. ‘한국근현대사’라는 과목은 분명 이전과 달리 심화된 근현대사 교육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혁신적이었다. 만약에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아니었다면 2007 개정 교육과정을 통해 좀 더 심화된 형태의 근현대사 교육을 했겠지만, 결과적으로는 그 당시보다는 근현대사 수업을 심도 있게 할 수는 없게 되었다. 그 영향은 지금도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이성호 : 역사교과서 싸움 10년 동안 역사 선생님들을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노력을 해서 그걸 막아냈다. 하지만 그 10년의 세월이 너무 아까운 거다. 역사과 교육과정이나 교과서가 더 업그레이드 될 수 있는 기회를 놓친 것은 물론, 오히려 퇴보하지 않도록 막는 데만 써버렸기 때문이다.
이성호(서울 배명중, 前 회장, 2012~2013년 재임)
여혜경 : 아! 빼앗긴 나의 30대. (일동 웃음)
이성호 : 2007 개정 교육과정을 적용시켜보지도 못했던 것은 역사과 교육과정이 심화-발전시킬 수 있던 계기를 만들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당시에 정상적으로 교육과정이 적용이 되었더라면 지금 우리 역사교육의 모습이 정말 많이 다를 수 있었을 거다. 그게 가로 막히고 막 이상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역사교육에 대해 싸워야 했다. 표현 그대로 ‘퇴행을 막기 위한 싸움’이었다. 그동안 학생들의 변화, 학교 환경의 변화, 수업 방식의 혁신 등 들을 담아서 그에 걸맞는 교육과정을 만드는 부분에서는 아무래도 공력을 더 들이기 어려웠던 측면이 있다. 어쨌든 역사교사로서의 정체성을 계속 유지하면서 학생들을 만나고 학교에서 가르치고 해야 되는데 과연 내가 의미 있는 수업, 의미 있는 이야기를 하고 있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통사 이후에 다른 뭔가는 없을까’, ‘아이들도 교사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수업을 계속 해야 하는가’ 등 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되지 않나. 그렇다고 해서 한방에 해결되는 묘안은 없겠지만 정말로 앞으로는 새로운 상상력, 새로운 아이디어와 발상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시도들이 나와 봐야 되는 거다. 주제 중심으로 재구성하거나 시대를 다양한 방식으로 나누거나 결합시키는 그런 시도들이 교육과정이든 교과서에서 이루어져야 되는 건데, 그런 것들을 해야 할 아주 소중한 시기에 우리는 ‘이런 일’을 했었던 거다.
조한경 : 다른 측면에서는 허탈한 부분도 있다. 우리가 지난 10년 동안 교과서 싸움을 하면서 얻은 교훈은 ‘정치권이 역사교육을 함부로 휘두르려고 하면 그 정권은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교과서 속 일 부분에 대한 이념 공방이 아직도 지속되고 있는 걸 보면 정말 화도 나고 성질도 난다. 최근 새 교육과정 집필기준의 현대사 부분에 관해 보수 야당이 다시 말도 안 되는 논리로 시비를 걸고 있는데, 교육부가 전혀 방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학술대회를 하든 토론을 하든 깔끔하게 마무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
김태우 : 그동안의 싸움의 과정에서 생각한 것은 정치권이나 학계가 진정으로 역사교육을 고민하는 사람들인가 하는 의문이었다. 즉 역사교육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역사교사들의 몫이라는 것이다. 교육과정이 어떻게 만들어지든 그것에 대해 실제적으로 수업을 통해 ‘책임’을 지는 것은 역사교사들의 역할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도 연찬이나 노력이 필요한 것이 역사교사들의 몫이다.
조정아 : 방금 말씀하셨던 것처럼 정치적으로 오용되지 않는 그런 역사교과서를 만들고 역사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역사교사가 무엇을 해야 되는가’는 것에 대해 고민해봐야 한다는 생각이다. ‘역사교육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내용 선정이나 수업 설계 등에 관해 전문적인 판단을 하는 사람은 우리다.’라는 것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실천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기 위해선 다양한 시도가 꼭 필요할 것이다.
양두영 : 오늘 3시간가량 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처음에는 ‘오늘 무슨 이야기를 어떻게 해야 되나’는 막연한 걱정이 들었다. 하지만 역시나 대담자 분들께서 워낙 실력자들이시고 말씀도 잘하셔서 잘 마무리 된 것 같다. 30주년 행사도 이렇게 성황리를 이루었으면 한다. 앞으로의 새로운 10년을 열어갈 수 있는 힘이 되길 기원해본다. 이상 대담을 마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