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 공존과 평화를 노래하라

수업에세이-제주 4.3 평화 수업 실천담



1. 혁신학교의 동료성이 이끈 4.3 평화 수업

2. 생애사로 톺아보고 마음으로 나누는 제주 4.3 평화수업

3. 마치며 - 제주의 봄에서 4.3을 읽는 너희들이 희망이야!




1. 혁신학교의 동료성이 이끈 4.3 평화 수업


올해부터 혁신학교에서 근무하고 있다. 활자화 된 제도로서의 혁신학교가 아니라는 것을 하루하루 느끼는 중이다. 그런 점에서 나는 행복한 교사다. 배움에 대한 태도가 남다른 아이들, 민주적이고 서로를 돌보는 교사 문화, 교육 자체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는 시스템. 혁신학교라고 하면 흔히 꼽는 요소들인데, 이를 오롯이 체험할 수 있는 곳이 우리 학교다. 이런 식의 단정어린 표현이 경박하게(?)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소개팅에서 상대가 마음에 들어서 온갖 애정표현을 속없이 쏟아내고 온 사람 같이 보일 수 있음을 잘 안다. 나의 교직 생활의 주관적 체험과 그에 따라 상대적으로 든 감상(感傷)이라도 나는 우리 학교가 현실 학교로서 실천하고 노력할 수 있는 바를 다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적어도 나는 혁신학교를 만들고 가꾸려고 노력한 동료와 지역사회에 대한 신뢰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신뢰가 강해지게 된 것은 같은 학년부 소속 선생님들 덕이다. 새 학년을 시작하고 1달이 채 지나지 않았다. 도처에 사고 칠(?) 준비와 각오가 되어있는 선생님들이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교무실에서는 뜨문뜨문 내어놓는 ‘엄청난’ 말들에서 이런 분위기를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2학기에 탈핵 교과 통합 수업 어때요?”, ‘자기, 페미니즘 수업을 고민하고 있다고? 우리 둘이 아까 나누던 말이 그거였어!”와 같은 말을 하는 교사, 내 곁의 동료들이다. 마음 속 한편에 묵혀두고 끙끙댈 수 있는 교육적 시도들을 마음껏 제안하고 함께할 동료를 구할 수 있는 곳이 우리 2학년부 교무실이다.


장황하게 느껴질 수 있겠지만, 이런 사적인(?) 정황을 설명해야 할 이유가 있다.. 내가 ‘제주 4.3 평화 수업’을 짜보고, 나아가 교과 통합 수업으로 판을 키워 제주도 수학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이런 환경 덕이었기 때문이다. 올해로 제주 4.3 사건이 70주년이라는 것은 연초부터 알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끙끙 앓았지만 미처 실천으로 옮길 생각은 못했다. 올해 내가 맡은 과목 상 인연이 없을 것 같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올해 내가 맡은 수업은 2학년 2개 학급을 대상으로 한 세계사 수업과 3학년 2개 학급을 대상으로 한 동아시아사가 전부였으니까. 못할 것도 없었지만 솔직히 애매했다. 역사교사로서의 부채의식을 뒤로하고 ‘그냥 4.3 사건에 대한 느낌 있는 영상 하나 나누고, 잠깐 이야기 해주고 말아야 겠다’라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위안했다. ‘페북 타임라인’에 떠도는 넘치는 4.3 사건 관련 영상에 ‘좋아요’를 누르고 저장해두면서 마음 속 찜찜함은 계속되었던 거다.


하지만, ‘그런데’였다. “이번에 수학여행을 제주도로 가는데, 4.3 관련된 곳을 한번 꼭 다녀와야 하지 않아요? ', ’그럴 거면 4.3 평화 수업도 미리 하고 가야죠‘와 같은 대화들을 귓등으로 듣게 된 것이다."역사교사로서 이런 말을 내 입에서 하지 못하고 내 귓등으로 먼저 듣게 될 줄이야…. " 부끄러웠다. 사실 수학여행 코스로 4.3 답사지를 먼저 제안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러지 못했다. 우리학교는 수학여행 세부 코스를 학급 단위로 학생들이 직접 기획하고 준비한다. 자칫 나의 4.3 답사코스에 대한 제안이 아이들에게 강요로 느껴질까 봐 걱정을 한 탓이다. 구체적인 맥락 없이 올바름을 강요하는 것처럼 느낄까봐 그런 것인데, 생각해보면 스스로를 위축 시키며, 괜히 게으름의 이유를 만든 셈이었다. 그런 부채감이 이번 수업을 하게 된 원동력이 되었다. 엄청난 대화들에 바로 끼어들어 4.3 수업을 함께하자고 제안했고, 역사교사인 내가 4.3 평화수업을 디자인하기로 하였다. 이후 여럿이 하는 ’작당‘이 되어 고무줄과 같이 늘어나서 교과 통합 수업의 단위로 커지게 되었다. 구성은 아래 표와 같다.

4.3 평화수업(교과 융합) 구성

가장 메인이 되었던 ‘제주 4.3 평화 수업’은 한 차시 분이었다. 일종의 특별 수업이었다. 수업 디자인은 역사교사인 내가 담당하였지만, 해당 수업은 2학년 전체 학생들에게 교사 별로 나누어서 진행되었다. <법과 정치>, <문학> 선생님들이 함께 수업을 해주셨다. 앞서 말했듯 2학년은 인문계열과 자연계열 학급이 나뉘어져 있었고, 인문계열 학급에서도 난 2개 학급(세계사 선택 학급) 밖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이에 어떤 선생님께서는 학급별로 1시간씩 수업을 다 나눌 수 있도록 시간표를 조정해주셨다, 어느새 출근해보니 모든 시간표가 완비되어 있던 것을 나는 확인했다. 다른 선생님께서는 당시 방영되었던 <차이나는 클라스> ‘현기영’ 편을 아이들과 함께 보았으면 한다며 제안을 해주셨고, 1차 지필평가 후 수업 중 2시간을 할당하여 전 2학년 학급이 감상할 수 있도록 추진해주셨다. 그냥 영상만 보면 허무할 것 같아 내용을 정리하는 활동지를 만들어서 제공해 드리는 것은 나의 몫이었다. 나중에 돌아보니 ‘4.3 평화 수업’이 한 차시 분이라 촘촘히 다룰 수 없었던 역사적 배경과 맥락을 이 영상 시청을 통해 보강할 수 있었다. 아이들도 본 차시로 관심을 가지게 된 이후에 보게 되어서 크게 도움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단지 계기수업을 한 번하는 것으로 그칠 수도 있었다. 이렇게 전면적으로 4.3 평화 수업이 진행된 것은 오롯이 ‘동료성’의 힘이었다. 마침 4.3 평화 수업이 예정된 전 주말에 학년부 별로 교사 워크숍이 있었는데, 서울 일대에서 진행이 되었다. 그런데 학년부 소속 어떤 선생님들께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하는 ‘4.3 70주년 특별전’을 둘러보았으면 좋겠다고 먼저 제안을 해주신 거다. 게다가 저녁에는 나에게 이번에 하는 4.3 평화 수업의 시연도 직접 부탁하셨다. 학급에 들어가 수업을 진행하실 선생님들께서는 생생하게 배우고 싶다는 이유를 말씀해주셨고, 이를 듣던 수업을 하지 않는 선생님들도 ‘4.3이 알고 싶어서’라는 꼭 해달라고 말씀해주셨다. 이런 아름다운 광경이라니! 당황스러움과 반가움을 함께 맛볼 수 있는 말씀들이었다.


그 덕에 선생님들과 함께 ‘대박’에서 4.3 특별전을 함께 둘러보고(이 자리에서 영어선생님들은 전시물에 설치된 영어 설명문을 읽어보시더니 수업에 텍스트로 삼고 싶다고 하시면서 도록을 얻어가셨다. 이후 멋진 4.3 사건을 주제로 한 멋진 영어 독해 수업이 하나 만들어졌다.), 저녁에는 숙소에서 4.3 평화 수업의 시연이 진행되었다. 선생님들은 ‘학생’을 자처하며 수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주셨고, 아픈 역사와 마주한 시민으로서 4.3 사건에 깊이 공감하시는 모습을 보여주셨다. 많은 선생님들이 눈물도 흘리셨고 가슴 아파하셨고 4.3 사건과 우리 아픈 현대사에 대해서 진지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었다. 교직 경험이 몇 년 되지 않았지만, 이런 교직원 워크숍은 처음이었다.


4.3 평화수업을 모의수업 형태로 나누고(좌) 대한민국역사박물관 4.3 특별전을 함께가고(우)


우리는 각 존재가 모두 연결되어 있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 연결고리와 상호성을 민감하게 느끼고 서로 버팀목이 되어 주는 자세가 아름다운 것이다. 오늘 이 수업 사례를 정리할 수 있었던 것도, 아이들과 4.3 사건을 의미 있게 나누고 풍성한 수학여행을 다녀올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다. “나도 이 분들의 반만큼이라도 좋으니 다른 이에게 좋은 동료가 되어 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했다.



2. 생애사로 톺아보고 마음으로 나누는 제주 4.3.


역사교육은 4.3 사건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 한때는 ‘4.3’을 입에 올리고 수업의 소재로 삼는 것 자체가 큰 용기의 발현이자 실천일 수 있었다. 실제로 많은 역사교사들이 계기 수업이나 현대사 부문의 수업 구상을 통해 ‘4.3 사건’을 학생들과 나누어 왔다. 오늘날 4.3 사건 금기의 역사에 머물지 않을 수 있게 된 것은 교육 현장의 분투와 더불어 문화계, 학계의 노력이 더해진 덕이다. ‘제주 4.3 사건 범국민위원회’가 출범되고 4.3 사건에 대한 추모 열기가 열정적으로 나타난 올해의 모습은 어떤 면에서는 좀 낯설기도 하다. 많이 늦었지만, 이제라도 다행이 아니던가. 하지만 “제주 4.3, 이젠 우리의 역사입니다”라는 슬로건은 그래서 반가웠다.


그렇다면 제주 4.3과 역사수업은 어떻게 만날 수 있을까. 수업을 설계하는 교사 입장에서 제주 4.3은 쉽지 않은 주제라 생각된다. ‘해방 전후사’의 구체적인 맥락 없이 이 사건을 아이들과 나누기 쉽지 않다. 그렇다고 해방 전후사의 구체적인 맥락과 함께 이 사건을 전면적으로 다루게 되었을 때 아이들이 느낄 고통(?)을 생각하면 쉽지 않다. 게다가 ‘4.3’은 제대로 정명(定名)되어 있지 않은 우리 사회의 숙제이지 않나. 그런 점에서 이 사건을 다루는 방식과 층위를 당야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측면도 있지만, 수업을 준비하는 역사교사의 입장에서는 이는 분명 난감한 일이다.


게다가 4.3 사건이 지닌 역사의 무게가 너무 무겁고 깊다는 점도 교사를 고민스럽게 하는 부분이다. 잔혹한 학살에 관해 아이들과 어떻게 교육적으로 소통할 수 있을지, 너무 지나친 엄숙함과 심각함을 강조하게 되어 아이들의 공감과 몰입을 방해하지 않을지 등에 대해서 고민스러울 수밖에 없다. 역사교사로서 가지는 책임감, 즉 “이 사건을 아이들과 어떤 식으로든 의미 있게 나누어야 해”라는 마음은 자칫 강박이 될지도 모른다. 이렇게 본다면 4.3 사건은 역사교사들에게 부담스러울 수 있는 주제일지 모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한국사’ 과목의 커리큘럼 속에서 이루어지는 수업이 아니라 1차시 분의 특별 수업이라 더욱 고민이 깊었다. 머리가 무거웠고 마음은 답답했다.‘역사과에서 수업을 짜겠노라’라고 큰 소리만 탕탕 쳤는데 어떻게 해야 할 지 막막했다. 하지만 이런 막막함에도 하늘은 어느 틈새로 빛줄기 한 가닥씩은 내려주기 마련인 것 같다. 나에겐 어떤 영화의 한 장면이 수업 설계의 실마리가 되어 주었다. 수업 자료를 정리하려고 네트워크 하드를 뒤지는 와중에 예전에 저장해둔 영화 <다음 침공은 어디?(Where to Invade Next, 2015)>를 무심코 눌러 보게 된 것이다.


<다음 침공은 어디?> 에 나오는 독일 역사수업(홀로코스트 교육)의 장면, 생애사를 통한 역사교육의 힘을 보여준다


재기발랄하면서도 날카로운 마이클 무어 감독의 이 영화의 한 장면에는 독일의 고등학교 교실이 등장한다. 독일의 홀로코스트 교육 사례를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영화 속 역사교사의 수업에서는 베를린을 떠나도록 강요받고 강제수용소로 떠나야만 했던 유대인 남자의 사례를 들려주며, ‘너희들이 이 남자의 상황이라면 가방에 어떤 물건을 담아서 가겠니’라고 물은 후 아이들과 함께 해당 물건을 고른 소감을 나눈다. 유대인 생존 증언을 함께 읽고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발표하기도 한다. 그 교실에서 교육의 도구로 삼은 것은 그 당시 그/녀의 증언과 생애, 그리고 그것을 마주하는 학생들과 교사의 생각들이었던 것이다. ‘왜 기억해야 하나’에 대해 진지한 눈망울로 답하며 역사의 책임을 논하는 학생들의 모습이 퍽 인상적이었다. 나도 그런 수업을 하고 싶었다. 소박해보이지만 가장 본질을 찾아가는 방법이라는 생각에서였다. 게다가 4.3 사건을 통해 평화를 상상하게 하고 말하게 하고 싶은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으니 더욱 그러했다.


그리하여 아래와 같은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4.3 평화 수업을 설계했다.


① 4.3 사건의 배경과 전개과정 등 세부 지식을 ‘가르치는’ 것에 매몰되지 않기

② 사람들의 말과 기억, 즉 생애사를 소재로 활용하여 아이들과 4.3을 마주보기

③ 처참한 비극을 소비하기 보다는 평화라는 희망도 상상할 수 있도록

④ 서로 나누고 대화하는 과정을 중심으로 수업을 설계하기

⑤ 교사는 충실한 연결자, 촉진자의 역할에 충실하자


4.3 사건에 대해 모든 것을 완벽하게 다루는 수업은 애초에 불가능했기에 가장 본질적으로 나누고 싶은 부분에 집중하기로 했다. 당시 피해자들의 생생한 증언과 생애사를 소재로 정면으로 다루고자 한 것이다. 4.3 사건에 대한 지식적 배경을 다루기엔 수업 속 서사가 너무 늘어지는 측면이 있었다. 그래서 과감히 뺐다. 아이들이 아픈 역사와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속에서 움직이는 감정들과 느낌들을 서로 나누는데 집중했다. 4.3 사건에 대한 세부적인 역사적 사실들에 대해서는 이 수업이 매개가 되어 관심을 가지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처참한 비극의 사례만 다루기보다는 당시에 평화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에 이야기도 다루고자 했다. 이어 오늘날 4.3 사건을 어떤 식으로 기억할 것인가에 대해서도.


수업은 크게 다음과 같은 단계로 진행이 되었다. 4.3 사건에 관해 깊이 들여다볼 수 있는 증언과 사연을 모둠 별로 배분하고 이야기해보게 한 후 전체 공유를 통해 각 생애사를 소개하고 4.3 사건을 나누는 방식이다. 역사적 사실에 관해 보충이 필요한 부분은 모둠 별 발표를 연결 짓기 하는 단계를 통해 해소하려고 하였다. 대략적인 ‘흐름도’는 아래와 같다.


모둠 별로 지정된 생애사 카드(증언, 에피소드)를 받고 모둠 내에서 서로 공유한 후 전체 공유를 통해 맡은 사연을 소개해준다


수업 곳곳에 쓰인 영상클립은 평화감수성과 관련한 감정과 느낌의 ‘서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70주년을 맞아 올해 좋은 자료들이 많이 쏟아져 나와 고르는 재미가 있었다. 다음 표에 담긴 영상들을 사용했다.




이 중 영상 1 <효리네 민박2>의 영상클립은 도입부로 쓰였다. 이효리와 이상순의 민박집에 투숙했던 민박객 중 한 자매가 북촌마을 학살지지와 너븐숭이 4.3 기념관을 둘러보고 출연진들과 대화하는 장면이다. 이 장면에서 사람들은 역사를 모르는 것이 왜 죄가 될 수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특히 이효리는 ‘제주도를 관광의 섬으로만 알고 있는데 우리가 알아야할 아픈 역사도 있지’라는 말을 하며 여운을 맺는다. 제주도로 내려가 살고 있는 가수 루시드 폴은 특유의 감성과 멜로디로 4.3에 대한 추모곡을 썼다. 가사를 통해 그는 ‘우릴 미워했던 사람들도 / 누군가의 꽃이었을 거야’라고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는데, 영상 3은 그 맥락과 감정을 고스란히 나눌 수 있는 장면이다. 처음에 이 노래에 대한 설명을 해주지 않고 모둠활동을 할 때 일종의 배경음악으로 이 노래를 틀어놓는데(영상 2 : 올해 추념식 때 루시드 폴이 이 노래로 기념공연을 함), 아이들은 마지막 이 영상3에서 귀 익은 아까의 노래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모둠 별로 제시된 4.3 사건에 관련한 ‘생애사’ 일 것이다. 나는 이것을 ‘생애사 카드’라고 이름 붙였다. 피해자들의 증언과 사연을 중심으로 6가지를 뽑았고, 6개 모둠에 각각 서로 다른 1개의 생애사 카드를 주었다. 생애사 카드에는 각 사연과 해당 사연에 관해 중점적으로 이야기 나누었으면 하는 참고사항을 제시했다. 모둠원 별로 나누어 진행했으면 하는 역할도 명기해두었다(그러나 아이들이 알아서 모둠활동을 잘하는 아이들이라 자연스럽게 역할 분배를 해서 진행이 되었던 것 같다). 생애사 카드를 구성할 사연들을 고르는데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던 것 같다. 각 사연과 증언은 ‘제주 4.3 사건 진상조사보고서(2003년 발간)’과 도서 <제주 4.3을 묻는 너에게>(허영선 저)를 참고하였다. 구체적인 구성은 아래와 같다.



수업을 마무리 하면서 아이들에게 제주 4.3 기념 배지를 소개해준다. 동백꽃을 형상화한 배지이다. 다른 꽃과는 달리 꽃봉오리가 통째로 떨어지는 동백꽃은 4.3 희생자들을 상징한다. 아이들에게 이번 수학여행 때 이 배지를 하고 제주도 사람들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이야기 했다. ‘연대의 반가움과 아픈 역사를 함께 공감하려는 따뜻함을 주자’고 말이다. 그리고 미리 준비해둔 4.3 70주년 추념 배지를 꺼내서 아이들에게 나누어주었다. 어찌보면 이 수업에서 가장 클라이막스(?)가 이 순간일 수도 있겠다. 모든 아이들에게 주기 위해 범국민위원회에 사정사정해서 넣은 300여개의 배지였다(100개의 배지를 별로로 신청하여 학내 모든 교직원에게도 돌렸다.. 수업 내내 아이들과 유지해온 감정선, 평화에 대한 갈망이 배지에 담기는 느낌이었다. 이후 제주도 수학여행을 가서도, 심지어는 지금까지도 많은 아이들의 가슴팍에 동백꽃이 피어올랐다. 괜스레 뿌듯하면서 아이들이 대견스러웠다.

수업 이후 200여명의 친구들을 대상으로 수업 설문도 받았다. 대체로 만족스럽다는 평가를 해주었다. 어떤 친구들은 따로 팀을 만들어서 프로젝트 형태로 조사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도 해서 나를 감동시켰다. 감동을 말한 것은 학생뿐만이 아니었다. 수업 기간에 마치 교육실습 기간이었는데, 당시에 교생 선생님들을 한 학급에서 이루어진 4,3 평화 수업에 초대했다. 교생 선생님들도 모둠에 들어가 학생들과 함께 학습자로서 참가하게 했다. 수업이 끝난 이후 가진 협의회에서 교생 선생님들께서 아픈 역사를 정면으로 마주하기가 무서울 만큼 소름이 돋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면서도 평화감수성을 함께 나눌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하다는 평가와 수업에 도움이 될 조언을 주셨다. 모두에게 특별한 시간이었던 듯싶다. 아이들도 교생 선생님도 그리고 나도 함께 평화를 꿈꾸어볼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아래는 수업 설문 결과의 일부이다.



3. 마치며 – 제주의 봄에서 4.3을 읽는 너희들이 희망이야


2018년 4월 25일부터 4월 27일, 운산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은 제주도로 현장체험학습을 떠났다. 약 3주간 각 학급 별로 코스를 협의하고 준비하면서 기대가 높아진 터였다. 4월의 봄날은 그야말로 ‘끝장나는’ 날씨였는데, 제주도의 봄날이니 오죽했을까. 하지만 우리 아이들은 즐거움과 설렘의 한편에 역사의 무게라는 공간을 비워놓을 줄 알았다. 4.3 평화 수업에서 분명 나름의 마음가짐과 느낌을 가지고 간 덕이라 생각한다. 모든 학급이 ‘제주 4.3 평화 공원(제주 제주시 봉개동 소재)’을 방문하였다. 추모 배지를 가슴팍에 하고서 말이다. ‘사랑하는 만큼 알게 되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도 있지만, 4.3 평화공원은 그 장소 자체로 울림과 느낌을 주었다.


평화는 상상력이다. 한 아이가 전시관을 둘러보고 나에게 물었다.


‘효리네 민박2 영상에 나왔던 너븐숭이에 희생자 아기를

추모하는 무언가를 해보고 왔으면 좋을 것 같아요’


왜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무릎을 친다. 이렇게 다음 인연의 실마리가 하나씩 놓이는 것일 테다. 폭력의 세기를 감내해온 어른들이 하지 못할 생각을 아이들은 한다. 다른 아이는 평화 공원 어귀에 떨어진 동백꽃 봉우리를 소중히 들고 와서 나에게 보여준다. ‘(희생자들이 스러진 것처럼 진다는 것이) 정말 그러네요’라며 말을 흐리는 아이에게서 아픔이 느껴졌다. 이 아픔에서부터 평화와 공존이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많은 교사들이 동감하듯,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아이들이 좋아지는 만큼일 것이다. ‘4.3’이 올바르게 정명되고 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하고 평화를 노래할 날도 아이들에게 달린 셈이다. 이럴 때 마다 역사교사로 살아간다는 것이 참 행복하다. 4.3 평화 공원을 뒤로 하고 여정을 마무리하기 위해 제주공항으로 달리는 버스 안에서 판문점 선언을 아이들과 함께 지켜보았다. 2018년 4월 27일이었다. 한반도 평화는 그렇게 4.3의 영령들을 위로하고 제주도를 껴안고 있었다. 아이들도 오늘을 남다르게 기억할 것이다. 왠지 모를 벅차오르는 마음과 함께 창밖을 보았다. 그야 말로 눈이 부신 제주의 봄날이었다.



길고 막연한 수업 실천기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직 일천하지만 수업을 시도하면서 좋은 수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수업이 좋은 수업이며 망하는 수업은 따로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원고와 관련된 4.3 평화수업 자료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4.3 평화수업 본 차시 활동지와 PPT 및 영상 자료, 그리고 융합 수업 과정에서 만들어진 타교과 활동지 등 4.3 수업 자료를 나누고 합니다. 아래의 주소를 입력하면 다운이 가능합니다. 선생님들의 빛나는 수업에 벽돌 한 장이 되었으면 합니다^^

링크 오픈 기한은 2019년 3월 1일까지로 하도록 하겠습니다.


자료 공유 링크 - http://gofile.me/3eaJz/xFwgjIU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