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 하나로 교사 지평을 넓혀간 충청도 양반 전영갑

◈ 장콩 선생이 만난 팔도 역사교사 4 (장용준 정리)

>> 장용준(장콩선생)




☞ 왜 네 번째 인터뷰이로 ‘전영갑’을 선정했는가?

요즘 전국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 4분이 의기투합하여 ‘역사유랑단’을 결성, ‘팟빵’에 지역의 역사와 문화를 매주 소개하고 있다. 방송을 들어보면 선생님들은 열성을 다해 지역 소개를 하며 청취율 제고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 손님 수가 생각보다 적다. 들을 만 한데, 왜 그럴까? ‘역사유랑단’ 홍보와 함께 클릭 수 저조 이유를 진단해 보기 위해 유랑단원 한 분을 급히 섭외했다.
인터뷰를 진행해 보니 이 샘이 개그맨 빰 치는 개그교사다. 충청도 양반 전영갑! 한마디 한마디가 전부 아재 개그다. 장콩 선생이 만난 팔도 역사교사 네 번째 시간, 전영갑 선생을 통해서 팟빵 ‘역사유랑단’ 이야기와 함께 그의 포복절도할 교직 인생을 들춰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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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오랜만입니다. 대전 연수 이후로 처음 만나는데, 그동안 어떻게 사셨나요?


평일은 학교에서 열심히 학생들과 소통하고 주일은 승당(성당, 충청도 발음)에서 주로 봉사활동을 하면서 지냅니다. 아! 가끔은 한밭역사교사모임에 나가 지역 선생님들과 유익한 역사공부도 하고 있습니다. 참 그러고 보니, 요즘 내 삶은 학생들의 사랑과 주님의 은총 속에 살고 있네요. 여기에 대전 자주연수 이후에는 ‘방송인’이라는 타이틀을 하나 더 달고 있습니다.


2. 그렇지 않아도 그 질문을 드릴 생각이었습니다. 요즘 팟빵 ‘역사유랑단’에서 종횡무진 활동하시던데 ‘역사유랑단’은 어떻게 결성되었나요? 많은 선생님들이 궁금해 할 것 같은데, 우선 그 이야기부터 해주시죠.


알고 계셨군요? 내부자들끼리 다해먹고 있어서 홍보가 많이 안 된 줄 알고 있는데, 선생님이 아시는 걸 보니, 역사교사들 사이에서 ‘역사유랑단’ 인지도가 어느 정도는 되나보네요. 그런데 ‘역사유랑단’ 안에서의 제 역할을 잘못알고 계신 것 같습니다. 저는 종횡무진 활동하는 것이 아니고 무식을 담당하면서 아름다운 배경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가끔 역사는 필연과 우연들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며 예상치 못한 일들이 벌어지잖아요. ‘역사유랑단’이 바로 그런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필연은 ‘역사유랑단’에 참여하고 있는 사람들이 저를 제외하고는 모두 욕망덩어리입니다. 일명 ‘욕덩’들이죠. EBS 세계테마여행을 노리는 분부터 제2의 알쓸신잡을 목표로 하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또 하나의 필연은 낭중지추 같은 참여 선생님들의 ‘똘끼’와 전국역사교사를 대놓고 홍보해 보겠다고 대중사업 확장이라는 큰 그림 그린 현 회장님의 주도면밀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역사유랑단’ 방송을 시작한 계기는 대전 자주연수 중 둘째 날 점심으로 대전의 맛 집, 두부 두루치기 명가 ‘진로집’에서 반주로 걸친 막걸리가 뇌관이 되었습니다. 그때 서로 웃고 떠들며 팟빵 해도 되겠다는 말들이 오고갔고, 이후 가칭 ‘역사저널 그놈’ 티저 영상을 페이스북에 올리게 되며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전문용어로 ‘낮술 효과’ 때문에 방송이 만들어진 경우라 할 수 있겠지요.



3. 방송 내용이 중구난방인 것 같으면서도 일정한 흐름을 가지고 진행되던데 ‘역사유랑단’에도 대본 작가를 비롯한 스텝들이 있나요? 또한 방송은 매 주 팟빵에 올리나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진행자들은 보잘 것 없어도 뒤에서 열성을 다해 도와주는 스텝들은 TV프로를 해도 될 정도로 빵빵합니다. 총괄은 일당백 전역모의 무게 중심 백옥진 회장이 맡고 있습니다. 덕분에 전역모의 물소심대(物은 조금, 心은 많이) 지원을 받고 있습니다. 엔지니어와 PD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남동현 선생님, 홍보와 아이디어, 기획회의를 주관하는 사진작가 이자 ‘서울 골목의 숨은 유적 찾기’저자이신 안민영 선생님, 우리의 영혼까지 위로하시는 살인 미소 박혜정 선생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능력자 우주 천재 김지연 선생님이 함께하고 계십니다. 함께하시는 분들이 아니었다면 시작도 못 했을 일입니다. 방송은 매주 목요일에 업로드 되고 있고요.


4. 그런데 제가 보기에 ‘역사 유랑단’이 대박 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던데 –나 만의 평가니 너무 상처받진 마시고요-, 내부에서는 어떤 평가를 내리고 있나요? 질문이 너무 직설적인가요? 방송을 열심히 듣고 있는 샘들을 위해서 드리는 질문입니다. 진단 한번 내려주시죠.


깊이 공감합니다. 성공할 가능성은 그리 커 보이지 않을 것 같습니다. 구독자수와 팟캐스트 순위로 만 보더라도 그럴 것 같고요. 그런데요, 저희들 방송은 ‘전국에 숨어 있는 역사와 문화를 역사교사의 눈으로 읽어주는 역사유랑단’이라는 메인 로그에서 보여 지듯이 지역답사를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만 할 수 있는 여타 여행 방송들과는 차별화된 컨셉입니다. 또한 전국역사교사모임 이름으로 하는 방송이니 역사 선생님들이 많이 응원해 주시고 홍보해 주시면 무척 좋겠습니다. ‘팟빵 회원가입 → 구독 → 좋아요 → 댓글’까지 4단 콤보로 깔끔하고 적극적인 후원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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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나온 김에^^ 팟빵 다운로드ㅎㅎㅎ
https://play.google.com/store/apps/details?id=com.makeshop.podbbang&hl=ko



최근 청취자를 분석해 보면 아프리카, 미주지역에서도 클릭을 할 정도로 글로벌 합니다. 연령층을 분석해 보면 학생들부터 일반 성인까지 다양해지고 있고요. 처음에는 전국역사교사를 대표한다는 생각에 큰 부담을 갖고 시작했는데 몇 번 방송을 내보내면서 생각을 바꾸기로 했습니다. ‘노력하는 사람은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는 말을 믿고 힘 빼고 즐겁게 하려고 합니다.



5. 이 지면을 보는 독자 선생님들도 ‘역사유랑단’ 애청자가 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가입 절차 좀 알려 주시죠. 또 혹시 압니까? 한 번 듣고 열렬한 애독자가 될 수도 있을 것이며, 청취자 수가 많아지면 전국모임에도 실질적인 혜택이 있을 테고요. 기회를 드릴 테니 맘껏 홍보해 보시죠.


가입방법은 크게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인터넷에서 팟빵 홈페이지에 접속하여 회원 가입하시고 ‘역사유랑단’을 검색하시어 청취하시면 됩니다. 다른 하나는 모바일 어플을 이용하시는 것입니다. 안드로이드 폰은 팟빵 어플을 깔고 이용하시면 되고, 아이폰은 팟캐스트를 깔고 접속하시면 됩니다. 둘 다 역사유랑단을 검색하셔야 청취가 가능합니다. 회원가입 과정이 조금 성의가 필요합니다. 가입하기가 끝나면 구독과 좋아요, 댓글 달기가 가능합니다. 소감이나 팩트 체크, 후원하기까지 자유롭게 참여하실 수 있습니다. 댓글 읽기와 후원 하신 분 소개를 통해 쌍방향 소통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전국역사교사와 함께한다는 사명감으로 함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말나온 김에! 구독꾹^^ 팟캐스트 '역사유랑단' - http://www.podbbang.com/ch/1770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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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어찌되었건 전국역사교사모임 문패를 걸고 하는 방송이니만치, 지금 하시는 ‘역사유랑단’이 스터디셀러로 정착되어 길게 방송되는 콘텐츠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자! 지금부터는 선생님 개인에 관한 질문입니다. 간혹 선생님을 뵐 때마다 느끼는 것이 조근 조근 할 말을 다 하면서도 곱씹어보면 참으로 ‘유머러스하다’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또한 느릿하면서도 위트가 있는 말들에서 ‘전 선생은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이구나’하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선생님 생각은 어떠세요?


저의 고향은 충남의 알프스 층양(‘청양’의 본토박이 발음)입니다. 전형적인 충청도 산골이다 보니 충청도 스타일이 몸에 배어 있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입니다. 충청도는 충청도만의 유머와 해학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충청도 시골길에 서울차가 와서 운전하는데, 여유 있게 앞에서 슬슬 운전하는 충청도 차가 답답했던지 뒤에서 빨리 가라고 서울차가 계속 경적을 울리고 쌍 라이트도 켜고 하며 닦달을 했습니다. 하지만, 앞에 가는 충청도 양반은 도무지 빨리 갈 생각이 없이 세월아 네월아 양반 운전을 했습니다. 마침 신호등 앞에 차가 멈추게 되었습니다. 충청도 양반이 차에서 내리더니 서울 차로 가서 한마디 했습니다. “그렇게 바뻐유! 그렇게 바쁘면 어제 오지 그랬유!” 그 뒤로 충청지방경찰청에서는 그 양반이 한 말을 그대로 플래카드로 만들어 안전 운행을 홍보 했다고 합니다. 충청도 사람들은 충청도 사람만의 유머 감각이 유전인자처럼 몸에 배어 있습니다.



7. 그렇게 자연스럽게 나오는 유머가 교단에서 수업할 때도 번뜩번뜩 촌철살인처럼 자주 나오나요? 그러면 매 수업시간마다 학생들이 뒤집어질 것 같은데. 혹시 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칠 때는 근엄 일변도로 일관하진 않나요? 아니면, 너무 아재 개그라 요즘 학생들과 코드가 맞지 않을 수도 있을 것 같고.


교원평가에서 아직은 ‘선생님 수업은 재미있다’라는 평가를 받긴 합니다. 하지만 선생님께서 상상하시는 것처럼 학생들이 매번 뒤집어 질 정도는 아닙니다. 횟수로 따지면 한~~ 월중 행사 정도. 저도 쉰내가 나기 시작한 나이라서 학생들과의 소통이 조금씩 어려워집니다. 웃음 코드가 안 맞을 때도 분명히 있고요.


하지만 예능프로를 통해 학생들의 트렌드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는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요즘 학생들이 쓰는 말 중에 ‘인싸’ ‘아싸’ 같은 말들이 있습니다. 혹시나 ‘이 말이 뭔 말여?’ 하시는 선생님들은 더 노력하셔야 합니다.


제가 고등학교에 있는데, 방과 후 수업까지 따지면 학생들은 9시간씩 강의식 수업을 받습니다. 유재석이 와도 9시간 동안 재미있는 수업을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교사의 유머는 음식의 MSG정도 이고 중요한 것은 학생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을 기획할 수 있느냐? 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제가 요즘 하고 있는 팁 하나를 소개하면 팀별 자음퀴즈입니다. 4~5명 정도를 한조로 해서 그 시간에 배운 내용을 자음으로만 표현하면 학생들이 협력해서 맞추는 겁니다. 예를 들면 ㄱㄱㅌㄷㅇ을 칠판에 쓰면 학생들이 광개토대왕을 맞추는 겁니다. 1학년 남자 반에 효과 만점입니다.




8. 교직에 발을 디딘 것 자체가 유머러스하다고 하던데, 정말인가요? 이번 기회에 ‘전 선생의 교단 진출기’ 썰 좀 풀어주시죠? 길어도 좋습니다. 재미만 있다면 다 용서됩니다.


제가 2007년 임용고시에 37살, 최고령의 나이로 경기도에서 공통사회로 합격했습니다. 따라서 다른 선생님에 비하면 교단 진출 자체가 조금은 특별하다고 할 수 있지요. 여기에 더 가관인 것은 이듬해에 대전으로 다시 임용고사를 봐서 또 합격했으니, 이정도면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지요.


원래는 학원 강사와 지금은 유명인이 되신 한밭모임 남동현 선생님과 동업으로 ‘비온 뒤’라는 호프집을 겸하고 있었습니다. 호프집이 잘됐다면 현재의 남 선생과 저는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또한 설민석 선생과 같은 시기에 학원 강사를 시작했으니, 그때 그만 두지 않았다면 지금쯤 설 선생 정도의 위상은 확보하고 손에 돈 좀 만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학원 강사는 금전적으로는 남부럽지 않았지만, 평일 고3수업까지 하고 나면 1~2시에 끝나는 것이 다반사였고, 출출해서 해장국에 소주 한잔 먹다보면 날이 밝아 전날 저녁에 학원에서 가르친 학생들이 등교하는 것을 보며 집에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었습니다. 다들 잠들어 있는 새벽녘에 경향신문과 함께 귀가 하던 날, 문득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하는 강한 회의감에 휩싸였습니다. 섬뜩하더군요. 좋은 남편, 좋은 아빠로 살수 없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어 인생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 아내의 허락을 받아 임용 고시 공부에 재도전하게 되었는데, 그때 큰아이 나이가 3살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간덩이 부은 아주 무모한 도전이었지요.


임용시험이 맘처럼 쉽게 되진 않더라고요. 삼수 만에 2007년에 합격했는데, 발표 날짜를 지금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1월 6일입니다. 왜 지금껏 기억하냐면, 그날이 둘째 아들이 태어난 날이었습니다. 어때요. 영화의 한 장면 같죠.


여기에 내 임용시험 합격에는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간절한 비하인드 스토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밑에 여동생이 교회를 다니며 새벽기도를 했고, 어머님은 절에 가서 지극정성으로 빌었다합니다. 그런데 결과가 매번 좋지 않자 어머니가 교회로 개종을 하셨고 제 아내는 성당에서 저를 위해 절실히 기도를 했답니다. 이런 기도 빨들이 있었으니 늦은 나이에 행운이 잭팟 터지듯이 터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것도 두 번이나. 그런데 아이러니 한 것은 아직도 집안에서는 여동생 교회와 아내의 성당 중 어느 주님께서 저에게 행운을 가져다주었는지가 풀리지 않는 논쟁거리 입니다. 저는 두 분은 같은 분이라 여겨져 가톨릭신자가 되었습니다만.



9. 선생님처럼 살면 일상이 곧 코믹이자 인기가 초가지붕 위에 달린 박처럼 주렁주렁 따라다닐 것 같은데, 주변에서의 인기도는 상상을 초월하지요? 또한 그러다보면, 조금은 특출 난 별명이 붙여졌을 텐데, 혹시 제자들이 자주 부르는 별명은 없나요?

별명은 ‘전수근’입니다. 개그맨 이수근과 닮았다고 합니다. 새신을 신고 뛰어 봐도 160(요거 IQ), 동산위에 올라서도 160, 아담한 사이즈와 특히 목소리가 똑같아서 붙여진 별명입니다. 인기가 있다는 얘기를 제 입으로 하기는 민망하고 필요하다면 증빙자료를 제출하도록 하겠습니다.



10. 많은 선생님이 요즘 아이들에 대한 적응이 힘들어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데, 선생님은 어떠세요?


나태주 시인의 시처럼 모든 아이들이 가만히 본다고 오래 본다고 풀꽃처럼 예뻐 보이지 않죠~ 아무리 보아도 잡초 같은 친구들이 있습니다. 그러니 스트레스가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어요. 스트레스 받지 않고 상황을 이겨낼 수 있는 필살기를 연마 중입니다. 간단하기 때문에 선생님들과 공유해 보겠습니다. 마음이 불편한 사람이 문제를 갖고 있는 사람입니다. 예를 들면 수업시간에 떠들고 있은 학생을 보고 화가 치밀어 올랐다면 문제를 선생님이 갖고 있는 겁니다. 급식에 불만을 갖고 투덜거리는 학생이 있다면 학생에게 문제가 있는 겁니다. 나에게 문제가 있을 때는 비난하지 말고 나의 감정을 전달하기(나 메시지) 예를 들면, 네가 떠들고 있어서 선생님이 수업에 집중하기 힘들다. 문제가 상대방에게 있다면 그렇구나(무한도전에 한때 소개 되었던 걸로 알고 있음)로 시작하면 됩니다. 간단해 보이지만 문제가 발생될 때마다 편안히 매번 시도할 수만 있다면 효과 만점이고요, 물론 하루아침에 몸에 익혀 지는 기술은 아니기에 마음 다스림이 필요하긴 합니다만, 어쨌든 도전해 볼만한 기술인 것은 확실합니다.



11. 기왕에 하는 인터뷰, 선생님의 교직관 혹은 아이들 대하는 모습에 대해서도 잠깐 들려주시죠.


저는 아이들에게 ‘불광불급(不狂不及)’, ‘number one 보다는 only one’. 이런 말을 자주 합니다. 내가 잘 하고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서 미친 듯이 노력하다 보면 어느 순간 only one이 되어 있을 것이고 의도하지 않은 순간에 number one도 될 수 있다. 그래서 저자신도 아이들을 그 자체가 생명이며 고귀한 존재로 인식하려고 노력합니다. 조건 없이 아이들을 대하려고도 노력하고요. 또한 아이들이 잘 이해가 안 될 때는 동일한 기준으로 저를 되돌아봅니다. ‘착한아이라면 사랑해 줄게~’ 우리 맘속에 이런 기준으로 아이들을 대하고 있지 않는지 지금 이순간도 되묻고 싶습니다.



12. 학교생활은 재미있으세요?


재미있습니다. 직업 선택을 잘 한 것 같습니다. 교직이 천직인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역동적인 분위기와 같은 배를 타고 있는 느낌이 좋아서 학급 담임을 선호하는 편입니다. 저는 담임 10년을 목표로 교직생활을 시작했는데, 올해가 벌써 11년 째 입니다. 그래서 현재는 20년을 목표로 다시 시작해야 하나 고민 중입니다. 생기부가 힘들어져서 약간 고민스럽습니다만



13. 가정생활은요? 본인이 생각하기에 사모님께 좋은 남편인가요? 아이들에게는 어떤 아빠?

사실 교직에 나온 이유가 좋은 남편, 좋은 아빠가 되려고 시작을 했는데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하루는 아내가 저랑 태평양 한가운데 아무도 없는 무인도에 단둘이서만 여행을 가고 싶다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낭만적인 곳에 단둘이 있다는 것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그래서 ‘왜 거기 가고 싶냐?’고 되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당신은 핵폐기물 수준이라서 함부로 버리면 안 되고 외딴 섬에 버려야 할 물건이라서 그런답니다. 아내에게 저는 그런 존재입니다. 개신교에서 주관하는 ‘두란노’ 아버지 학교(36기)를 10년 전에 수료하고 신앙생활도 시작하고 많이 노력했는데 여전히 전 핵폐기물입니다. 아내에게 인정받는 것이 사법고시보다 더 어려운 것 같습니다.


아이들은 믿음 안에서 자유롭게 키우고 있어서 싫어하지는 않는 수준일 것 같아요. 아빠하면 착한사람 정도로 표현하는 걸 어디서 살짝 훔쳐 본 기억이 있습니다.



14. 선생님이 활동하는 모임이 한밭역사교사모임이지요? 어떻게 해서 한밭모임과 인연을 맺게 되었나요?


제가 경기 · 대전 두 지역에서 임용고시를 합격한 2관왕이라는 것은 앞에서 언급했지요. 합격한 기쁨도 잠시! 발령이 나지 않아서 기간제 자리를 구해야 했습니다. 임용고시 보다 더한 36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자리를 구한 곳이 버드내 중학교였습니다. 그곳 사회 선생님 중 한 분이 한밭역사교사모임 회장 장병원 선생님이셨습니다. 그 후 선생님의 권유로 자연스럽게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15. 지역모임들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새로 들어오는 신규 선생님들의 활동 미비로 모임 활동이 점차 위축되어 가는 면이 있는데, 한밭 모임은 어떠한가요? 아울러 한밭모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서도 진단 한 번 내려주시죠.


충청도 말 중에 ‘끄르름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불이 꺼질 것도 같고 안 꺼질 것도 같은 상황을 일컫는 말입니다. 저희 모임의 상황이 조금 과장하여 표현하면 그런 상황입니다. 등록 인원이 30명 남짓 되고 진성회원이 10여명 되니 다른 모임 보다는 상황이 좋다고 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대한민국 현실과 전혀 맞지 않는 남녀 교사 비율입니다. 한때는 여교사가 한 명도 없을 때가 많아서 교사모임인지 예비군 훈련장인지 구별되지 않을 때가 있었습니다. 지금은 여성 열성회원이 몇 분 계셔서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게다가 30대, 40대가 주축을 이루고 있는 상태에서 연령대가 비교적 고르게 분포되어 있기에 권력이양과 조직구성도 비교적 안정적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한밭모임의 미래는 밝다고 진단할 수 있습니다. 물론 저만의 생각일지 모르겠습니다만.


16. 예전부터 궁금해 하던 질문입니다. 모임 이름을 왜 ‘대전역사교사모임’이라 하지 않고 ‘한밭역사교사모임’이라 정했을까요? 대전의 순 우리말이 ‘한밭’이니 그럴 수도 있었겠지만,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은데요. 제가 너무 초보적인 질문을 했나요?


생각보다 이유는 간단합니다. 대전에는 역사교사모임이 두 개 있습니다. 하나는 대전역사교사모임, 다른 하나는 한밭역사교사모임입니다. 대전역사교사모임의 역사가 좀 더 오래 되었지만, 전국역사교사모임과는 별개로 지역에서 독자적인 활동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전국역사교사모임 활동을 하시고자 하던 선생님들 위주로 ‘한밭역사교사모임’을 뒤늦게 만들었고, 저는 자연스럽게 한밭역사교사모임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습니다.



17. 장시간 질문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현재 계획하고 계신 일이나 반드시 했으면 하는 소망이 있나요?


건강관리 잘 해서 체력 부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평교사로 정년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습니다. 하나 더 바란다면 학생들이 다양하게 참여할 수 있는 수업모형을 많이 개발해서 동료 교사들과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 친구 같은 선배 남동현이 본 ‘전영갑’

1. 그저 아무 고민 없이 술만 먹던 복학생이 비슷한 시기에 복학한 후배에게 꽂혔다. 술 잘 햐. 웃겨. 나도 먹는 욕인데, 저 늠 욕하는 인간은 한 번도 못 봤어. 다들 좋아해. 저런 인간도 있구나. 친하게 지내자. 인간관계 무임승차의 시작이었다. 모두가 좋아하는 전영갑이 제일 친하다고 보여 지는 남동현. ‘막막한 학교생활 이런 식으로도 풀리는 갑다.’했었지.

2. 졸업 후 하는 일마다 국밥이었다. 말아 먹었다. 말아 먹는 밥숟가락 위에 누군가 깍두기를 얹어 준다. “형이 하고 싶은 거 한 번 해 보자.” 없는 살림에 무작정 시작된 술집, 비온디(BonD, 雨後). 인테리어 비용 아낀다고 지하에서 페인트칠하다 신나에 취해서 헛소리 하던 그 새벽. 다들 안 된다고 하는 가게를 열어 투 잡 뛰며 열심히 손님 모시고 치열하게 술 먹다 턴테이블 위에 올린 음반에 맞춰 손님들과 빗자루 들고 헤드뱅잉, 생수통 들고 카메라맨까지. 수익을 12달 동안 한 번도 못 내면서 무려 1년을 버텼지. 다들 안 된다고 했었는데. 심지어 주류상사에서도 여긴(니넨) 안 된다고 했었는데.

나이 서른, 그 봄날, 가게에서 일어나 해장국 한 그릇 하고 걷다 눈에 들어 온 하얀 목련. 난 봄 맞을 준비도 안됐는데 어쩌자고 넌 벌써 흐드러지게 핀 게냐. 결국 가게는 말아 먹었지만 서로들 마더 테레사를 만나 같은 해에 결혼을 했지. 네가 내 아내에게 처음 한 말이 “전생에 무슨 큰 죄를 지었기에 이런 사람 만나서 그 어려운 길을 가려고 하세요. 살다보면 아실 거예요. 제가 겪어봐서 알아요. 그냥 天刑이라 생각하세요.” 난 유정 씨한테 드린 말씀이 “영갑이랑 살면 아내로서 많이 힘드실 거예요. 지금 저 인간 장점이 결혼 하면 힘드실 수도 있어요.” 내 아내는 너의 말을 듣지 않았음을 후회하고 있고, 유정씨는 내가 해준 말을 오히려 반대로 기억하고 있더라. 너 천생연분이더라.

3. 결혼 3년차이던가? 형 공부하자. 임고 보자. 에이 내가 무슨... 아무 생각도 없이 네가 잡아끌고 아내가 등 떠밀어 어~ 하며 시작했던 말도 안 되는 공부. 그때 생각했지. 이제 하다하다 공부까지 하는구나.

첫 시험 떨어지고 죙일 같은 방에서 1년을 함께 공부하며 네게 들은 말이 “동업하고도 안 깨진 우리 사이가 같은 방 쓰다 깨질 것 같네. 이렇게 까칠한지 미처 몰랐네.” 그려 까칠한 나를 여기까지 잘 데리고 댕긴 겨.

4. 결혼 후 천주교 신자로 거듭난 갑 샘. 교사하며 아버지 학교 가서 새로남이 되었지. 세상에나! 술, 담배를 끊고 내게 새로남을 권하는 너를 보며 오호 통재라! 내 너를 만나 술 먹은 언어의 유희와 마음의 풍류에서 나오는 온갖 신묘함을 알게 되었거늘. 니 어찌 그리 무심하게 전향을 권하는가. 세상을 잃어도 이와 같지 않고 사람을 보내도 이와 같지 않을 텐데. 다행히도 그 분께선 술을 먹은 너를 돌아보게 하시었지. 다시 돌아온 그대 위해, 아주아주바라아주. 너는 술을 떨치고 갔지만 술은 너를 잊지 않고 있으니 아직은 좋은 세상이오.

5. “안녕하세요 대전의 깝샘입니다.” 팟캐스트 방송을 진짜로 하더라고. 그런 팟캐에 내가 있을 곳은 아니어서 고심하다 첫 번째 팟캐 녹음하고 내려와서 얘기했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 자리는 내가 있을 곳이 아니다. 그랬더니 또 너는 다시 “같이 햐. 인연이 어디까지 인지 보고 싶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