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촌에서 살펴본 독립운동가와 친일파의 삶

2.사는 이야기 – 2019 봄 하루답사 참가기

>>박강연(경기 이호중)




참가하게 된 동기


학기 초 내가 상상하던 방과 후의 성장은 없었다. 모든 것이 미숙한 신규교사에게 있어 학교의 하루는 너무 바삐 지나가기만 했다. 나를 돌아보고 자기계발을 위한 여력을 투자한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다가 전국역사교사모임의 초보교사 연수를 알게 되었고, 연수를 통해 오랜만에 배움으로 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곳에서 다음 행사로 하루 답사가 진행된다는 것, 그리고 하루 답사를 진행하시는 분이 바로 경기도 신규교사 연수에서 뵀던 안민영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신규 연수가 끝난 후 연수 동기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안민영 선생님의 강의를 인상 깊게 들었다는 말이 꼭 나왔다. 개인적으로도 연수 기간 동안 가장 인상 깊었던 강의를 뽑으라면 안민영 선생님의 강의(문화재 지도를 활용한 답사 수업)를 뽑겠다. 선생님은 본인이 하시는 공부에 흠뻑 빠져계신 모습이었다. 그 모습을 본받고 싶었다. 나도 교직 생활 중 새로운 배움의 끈을 놓지 말아야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3월은 정말 정신없는 달이었다. 정신없이 3월과 4월을 보내고 나니 5월 11일, 나에겐 휴식 같은 하루 답사 날이 찾아왔다.


수성동 계곡


경기도민으로서 서울은 정말 머나먼 곳이다. 그래도 항상 올 때마다 즐거운 마음으로 오게 된다. 아침 일찍 집을 나서 전철을 타고 시청역에 내렸다. 프레스 센터 앞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15분 내외로 가다 보니 마을버스의 종점이자 목적지인 수성동 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빌딩 숲을 지나 버스가 점점 골목골목을 돌고 힘겹게 오르막을 오르기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거의 도착했다는 증거가 된다. 사실 서울 도성 안은 자주 다니던 곳이다. 단짝 친구와 궁궐에 가거나 도성 길을 돌아보거나 가끔은 정동 거리를 돌아다닌 후 광장 시장 주변에서 저녁 식사를 한 뒤 돌아오곤 했던 것이 보통 우리의 모습이었다. 서촌이라고 불리는 지역은 이름을 방송에서만 자주 듣고 실제로 와보지는 않았다. 나는 서촌이 원래 다니던 도성 안 장소들과 별다를 게 없겠거니 생각했었다. 하지만 마을버스에서 내려다본 풍광은 내가 알던 서울과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 마침 날씨도 맑고 깨끗해 새로운 밝은 세상이 펼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버스에서 내리자 전역모 선생님들께서 정성껏 물과 빵을 나눠주고 계셨다. 정다운 마음으로 주시는 것을 챙기고 계곡 입구 근처 정자에서 안민영 선생님의 설명을 들었다. 모임에서 미리 준비해 주신 작은 클립보드와 붓펜으로 그림과 지도에 직접 표시하면서 설명을 들으니 더욱 답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서촌이라는 지명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탐정이 추리하는 것처럼 찾아가는 오늘 답사에서 가장 중요한 추리 요소 중 하나가 물길이었다. 옛 지명은 보통 물과 산으로 나누어진 장소에 붙게 된다고 설명하셨다. 우리가 많이 들어본 북촌과 남촌, 그리고 서촌은 청계천 물줄기에 따라 나누어져 이름 붙여진 장소라고 하셨다. 그런데 원래 우리가 알고 있는 서촌은 경복궁 서쪽이라는 뜻인데 원래 서촌은 우리가 흔히 정동이라고 부르는 경운궁 주변 지역이라고 하셨다. 오늘 답사의 시작점인 수성동 계곡 인근은 웃대 혹은 상촌이라고 불리던 지역으로 청계천의 여러 발원지 중 하나라고 하셨다. 클립보드에 직접 물길을 표시하고 지명을 찾아보니 그 유래가 바로 이해되었다.

안민영 선생님께서 준비해주신 클립보드


수성동 계곡은 조선 시대 화가 겸재 정선의 <장동팔경첩>에 나오는 장소이다. 계곡의 모습을 처음 보니 정말 이곳이 서울에 있을 수 있는 곳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서울 속 보석 같은 이곳의 모습을 그림과 비교해보니 좌측의 기린교와 배경에 있는 인왕산이 눈에 확 들어왔다. 인왕산은 계곡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런 아름다운 풍경 때문인지 조선 시대에는 이곳에 당대의 권력가들이 살았다고 한다. 주로 왕족이나 외척 세력이 살았는데 직접 답사를 하고 보니 그럴만할 것 같았다.


이렇게 아름다운 장소에 2010년까지 아파트가 있었다는 사실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 1971년 근현대 난개발 시기, 이곳에 옥인 시범 아파트가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수성동 계곡의 아름다움이 점점 잊힐 무렵 노무현 정권 청와대 경호실에서 기린교를 발견하게 되면서 다시 옛 모습을 찾아 복원되었다. 2010년 옥인 시범 아파트는 철거되었지만 그 흔적은 계곡 근처에 보존되어 있다. 난개발의 상징이지만 그 또한 일부 남겨두는 것이 의미 있다는 안민영 선생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어떤 장소가 개발 혹은 옛 모습으로 복원될 때 이전의 모습을 어느 정도 보존해야 그곳이 지니는 역사성을 더 생생하게 파악할 수 있다고 본다.

서촌2.PNG 겸재 정선의 그림 속 수성동 계곡과 실재 수성동 계곡



서촌3.PNG 일부가 보존된 아파트의 흔적

안평대군 집터→겸재정선의<장동필경첩>→박정희정부의 도시화정책을 주제로 진행




벽수 산장


오늘 답사의 주제에 따라 친일파 윤덕영의 삶을 추적하기 위해 그의 대저택 벽수 산장의 흔적을 찾아 나섰다. 연립주택이 있는 좁은 길을 따라 걸었다. 위치감각이 떨어지는 나는 골목을 들어설 때마다 여기가 어딘지 파악이 되지 않았다. 길을 지나다 보니 현재 그 장소와 어울리지 않는 벽돌 담장과 돌기둥을 찾을 수 있었다. 이곳이 바로 벽수 산장과 윤덕영 한옥의 입구였다. 입구를 찾는 미션을 받자 답사에 참가한 선생님들이 금방 돌기둥들을 찾아내셨다. 골목을 꽤 많이 돌아온 것 같았는데 그 주변이 전부 윤덕영 저택에 속했다는 것을 생각하니 그 규모가 대충 짐작되었다. 저택 입구에서 조금 더 걸어 올라가 벽수 산장 돌다리의 흔적을 찾은 후 더 올라가니 윤덕영이 첩과 함께 생활했을 한옥이 나왔다. 지금은 많이 없어진 상태지만 그 주변의 집들이 모두 99칸 한옥에 속했을 것이다. 이렇게 큰 규모의 저택과 한옥을 소유할 정도였으면 엄청난 친일파였을 것이라 짐작된다. 하지만 그에 대해 잘 알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다. 답사 후 윤덕영의 행적을 찾아보니 윤덕영은 정말 한결같은 친일파였다. 친일파들이 강제병합을 강요하자 순종효황후는 자신의 치마 속에 옥새를 숨겼지만 백부인 윤덕영이 치마를 들치고 옥새를 꺼냈다는 일화는 윤덕영의 평생 삶을 요약해서 보여주는 것 같다.


윤덕영 한옥을 지나 최근에 산악모임에서 발견했다고 하는 옥류동 바위 글씨를 찾아갔다. 주택과 담장으로 막혀있어 찾아내기 어려운 장소에 있었다. 겨우 바위 글씨를 발견하고 새삼 이 서울 바닥에도 아직 발견되지 않은 것들이 많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바위 글씨를 지나 조금 내려와 가재우물을 찾아갔다. 어떤 건물 지하실에 있는 가재우물이 있었다. 잘 볼 수는 없었으나 1940년대 지도를 보고 윤덕영의 집터와 그 주변이 오래전 어떤 모습이었을지 상상하는 것은 흥미로운 과정이었다.



윤덕영 한옥 → 벽수산장 → 가재우물 → 선희궁 세심대 → 청계천 본류 물줄기 신교를 중심으로 친일파의 삶을 추적해봄



백운동 계곡


열심히 돌아다녔기에 점심 먹기 전엔 지친 상태였다. 맛있는 점심으로 기운을 채우고 이번에는 독립운동가 김가진의 별장이 있던 백운동 계곡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백운동 계곡 또한 신비로운 느낌을 주는 장소였다. 여기에 이후 요릿집으로 사용되는 별장이 있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들었다. 곳곳에 남아 있는 집터의 흔적과 김가진 선생이 썼다고 알려진 백운동천 바위 글씨만이 이 장소의 역사성을 은은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줄 뿐이었다. 김가진이라는 이름도 사실 생소했다. 그 아들과 며느리인 김의한, 정정화 부부는 독립유공자로 서훈을 받았지만 동농 김가진 선생은 일제에게 받은 남작 지위를 반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독립유공자 서훈을 받지 못했다. 하지만 상하이로 망명하여 평생을 독립운동에 헌신한 그의 업적은 우리가 한 번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서촌4.PNG 벽수 산장 입구


자유롭게 계곡 주변을 돌아보다 선생님들의 관심이 일제 강점기 일본이 만들었을 벙커에 쏠렸다. 과연 저 어두컴컴한 벙커 안엔 무엇이 있을까? 혹시 여러 입구가 이어져있는 건 아닐까? 역사 교사다운 선생님들의 호기심이 발휘되었다. 나 또한 관심이 갔으나 나는 차마 저 어둡고 습한 공간에 들어갈 수 없었다. 용기 있는 우리 선생님 한 분이 먼저 들어가시고 여러 선생님들도 함께 들어가셨다. 그렇다 벙커는 이어져 있었다. 우리 선생님들의 호기심과 용기, 결단력으로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었다. 조금 위에는 취사 시설로 사용된 것으로 보이는 장소도 있었다. 내가 혼자 이곳을 방문했다면 과연 이런 것들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을지 의문이다. 이곳이 일정의 마지막 장소였다. 너무나도 즐거운 답사였기에 느껴졌을 아쉬움을 뒤로하고 근처 청운초등학교로 내려갔다.

서촌5.PNG 백운동천 바위글씨


종례 및 참가 소감


종례 장소인 청운 초등학교에도 근처에 있던 돌다리의 흔적이 남아 있어 마저 그것을 살피고 운동장에서 종례를 했다. 종례를 하며 답사에 참여한 선생님들이 한 분씩 소감을 밝혔다. 최연소 어린이 참가자님과 모든 선생님의 소감을 듣고 답사가 마무리되었다. 오늘 답사 과정은 흥미로움이 멈추어지지 않는 시간이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는 이렇게 여러 사람들이 모여 답사를 함께하는 기회를 가지기 힘들었다. 수험생 생활 중 삶의 활력이 떨어지면 가끔 혼자나 둘이 답사를 다니긴 했으나 둘이서 볼 수 있는 것엔 한계가 많았다. 답사지에 가서 그 장소와 문화재를 보기보단 그 문화재에 대한 설명을 스마트폰으로 찾아보기 바빴다. 하지만 오늘 답사에선 달랐다. 직접 발로 찾으면서 추리하는 재미가 있었다. 학교로 돌아가 우리 아이들과 답사할 기회가 있을 때, 오늘 배운 답사 방식의 10%만 따라가도 아이들에게 뜻 깊은 경험을 찾아줄 수 있을 것 같다. 답사만으로도 만족스러운 하루였는데 운 좋게 경기 남부 모임 선생님들까지 만나 새로운 인연을 만들 수 있었다. 여러모로 완벽한 하루를 보냈다.


답사를 다녀온 지 시간이 꽤 흘러 답사 과정이 정확히 기억나진 않지만 ‘좋았다’라는 느낌만큼은 마음속에 계속 머물렀다. 이제 초보 교사 연수와 하루 답사만 다녀온 후지만 앞으로 기회가 있다면 닿는 데로 전역모 행사에 참여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야만 바쁜 학교생활 중에서도 배움과 활력을 얻을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 안민영 선생님이 직접 제작하신 답사 관련 자료 및 워크북^^(홈페이지 탑재)

http://www.akht21.org/archive/post/34/31724



2. 혹시나 그때의 서촌 하루답사 코스가 궁금하시다면^^

안민영 선생님이 친히 만들어주신 카드뉴스형 코스안내 자료 다시 공개!!


https://www.facebook.com/groups/258626810935234/search/?query=%ED%95%98%EB%A3%A8%EB%8B%B5%EC%82%AC&epa=SEARCH_BO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