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사는 이야기 – 초보교사연수 후기(2)
>>김수정(제주 한림고)
2016년에 고등학교에 신규로 발령받아 4년 동안 역사 과목을 담당했다. 나는 그동안 촘촘하게 교과서 내용을 요약 정리하는 것에 힘을 쏟았다. 교과서 내용을 도식화하여 정리한 학습지를 배부하니 아이들에게 아주 좋은 반응을 얻을 수 있었다. 전역모 게시판에도 학습지를 공유했는데, 호응이 좋아 내가 정말 학습지를 잘 만들었구나라고 스스로 자아도취하기도 했다. 나는 학습지를 바탕으로 유명 인터넷 강사처럼 아이들에게 교과내용을 재미있는 설명과 콘텐츠를 덧붙여 전달했고, 아이들도 그러한 내 수업에 만족했다.
올해 4년차가 되어 고3을 맡게 되고, 새롭게 동아시아사를 맡게 되어 다시 학습지 제작에 몰두했다. 그러나 곧 고민에 부딪히게 되었다. 반복되는 수업방식이 내 스스로 너무 지루하고, 내가 하는 역사 수업이 과연 아이들에게 무엇을 남겨줄 수 있는지 의문이었다. 나의 수업에는 내용의 일목요연한 정리와 설명만 있을 뿐, 아이들과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거나 사고를 확장할 수 있는 지점이 없음을 깨달았다. 그 동안의 한국사 수업도 전근대 민의 성장, 독재에 저항한 민주화운동의 가치 등에 대해 내가 생각한 가치를 아이들에게 주입하는 형태였다. 그 가치를 아이들이 스스로 깨우친 것은 아니었다.
그러던 중 전국역사교사모임에서 발간한 '역사교실, 역사에서 배우고 삶으로 가르치는' 책을 읽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책 중에 역사 지식이 모두 잊혀져도 최소한의 무엇인가, 어떠한 가치에 대해 남겨주는 수업을 해야 한다는 구절이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역사 수업에 대한 철학과 고민의 깊이가 부족했음을 깨닫고, 책을 통해 만나본 선생님들이 이번 연수에서 강의하시는 것을 알게 되어 4년 만에 처음으로 바다 건너 초보교사연수에 참가하게 되었다.
모든 것을 다 담기에는 벅차지만, 내가 듣고 깨닫고 생각한 점을 중심으로 이틀간의 연수를 돌아본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수업이라는 선물 같은 시간에 최선을 다하는 선생님들의 모습과, 반짝반짝 빛나는 수업사례들을 듣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가르침을 주신 선생님들께서는 늘 자신의 삶과 수업을 성찰하고, 그 경험을 공유하며 성장하는 삶을 실천하고 계셨다.
김민정 선생님의 강연을 듣고 '저런 지치지 않는 열정과 에너지는 어디서 나오는 걸까?'라는 궁금증이 생겼다. 강연이 끝나갈 때쯤 어렴풋이 답을 찾을 수 있었다. 선생님께서는 아이들이 각자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자기의 몫을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사회에 도움을 주고 공동체에 기여할 수 있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고 하셨다. 아마 선생님 스스로도 그런 삶을 살기 위해 교사로서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열정과 에너지를 불태우는 것이 아닐까 추측해보았다.
여혜경 선생님의 강연에서 "교사는 배움으로써 성장하고, 성실함으로 단련된다." 라는 명언을 들었다. 사실 아이들에게 교과내용 이상의 사고력을 키워주기 힘들었던 것은 내 배움이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나의 수업은 우물 안에 갇혀있었다. 유명 강사와 기출문제의 패턴을 분석하는 것으로 나는 충분히 수업준비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 깊이 있는 공부와 독서를 통해 스스로 배움을 실천해야 아이들에게 더 많이 나눠줄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알을 깨고 나올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황보석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며 강의식 일변도로 학습지 정리에 몰입해온 나도 조금씩 수업에 변화를 줄 수 있겠다는 용기를 얻을 수 있었다. 창의적인 수업 사례를 공유해주시면서 역사적 사고력을 키울 수 있는 수업 방법에 대해 알려주셨다. 수업 내용 속 가치와 아이들의 사고력 증진 방안에 대해 고민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학생과 학교가 처한 현실과 여건에 맞게 교육과정을 재구성하고, 특성화고 아이들의 삶에 닿을 수 있는 내용으로 배움 책을 구안해낸 문순창 선생님의 노력과 열정은 감동 그 자체였다. 아이들의 상황과 여건을 외면하고 수업이 잘 안되면 아이들을 탓하기 바빴던 나의 교사 중심적 교육관을 반성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현 시대의 문제, 아이들의 삶의 문제를 끊임없이 수업과 연결시키는 것이 진정 유의미한 수업이고, 그것을 실현해내는 것이 교사의 책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더 나아가 어떤 가치와 철학을 토대로 이를 재구성할 것인가 하는 고민을 해보며, 나만의 교육과정 재구성이 가능하도록 끊임없는 독서와 사색, 배움을 통해 식견을 넓혀야겠다고 다짐하게 되었다. 교과 내용에 철학을 녹여내기엔 아직 내 배움의 단계가 부족하다는 것을 알았고, 꾸준한 자기계발을 통해 성장할 것을 스스로와 약속하였다.
열악한 여건 속에서 서로 협력하여 배움 책을 제작하신 우주연 선생님, 유안나 선생님의 강연을 들으며 동료의 힘, 협력의 힘에 대해 생각해보았고, 수업이라는 끈을 놓지 않기 위한 두 선생님의 노력을 보며 교사의 정체성과 자존감은 역시 수업 현장에서 실현되는 것이라고 느꼈다.
나에게 올 한 해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크다. 첫 발령 학교에서의 마지막 해이자, 1급 정교사 연수를 받는 해이고, 2년 동안 함께한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나보내는 해이다. 이 시점에서 공교육 교사로서 방향성에 대해 고민하며 아이들과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수업을 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고 신청했던 이번 연수는 나에게 값지고 귀한 메시지를 선물해주었다.
나 또한 배움을 주신 선생님들처럼 성장하고 나누며 내가 만나는 모든 아이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삶을 실천하겠다고 의지를 다져본다. 앞으로 역사 교과 내용을 통해 타인에 대한 공감 능력, 감수성, 따뜻한 마음, 삶에 대한 성찰을 할 수 있는 수업을 만들어가고 싶다. 역사 교과 지식 속 내 삶, 학생들의 삶에 주는 가치와 의미를 연구할 것이고, 스스로 사고하고 삶의 의미를 탐구할 수 있는 수업을 계속 고민할 것이다. 더 나아가 현재와 사회에 대한 관심을 수업과 유기적으로 연결하기 위해 스스로 주변을 돌아보고 늘 질문을 가지며 살고자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