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사는이야기 - 초보교사연수 후기(1)
>>오지원(충북 보덕중)
공부는 늘 고통을 동반한다. 앎은 삶을 복잡하게 하고, 스스로 모순과 경솔함을 깨닫게 되는 과정이라 생각한다. 물론 이번 연수 ‘역사교사는 어떻게 단련되는가.’도 너무나 분명히 그러했다. 연수를 들으며 떠올린 교실 안 내 모습이 미워질 정도였다.
연수는 다양하고 현란한 방법론을 제시하지 않았고, 신규교사를 위해 전하는 꿀팁은 어디에도 없었다. 그 점이 참 좋았다. 신규교사가 아니라 역사교사로 이 공간에 모여 공부한다는 사실을 계속 느낄 수 있었다. 연수는 단지, 역사 수업 그 자체에 관한 이야기였다. 새롭고 화려한 수업 방법론에 대한 일방적 제시가 아니라 우리가 함께 나누어야 할 고민과 가야 할 방향에 대한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수업에 대해 품고 있었던 여러 의구심에 실마리를 찾기도 했고, 수준 높은 자료와 사례를 통해 현실적인 도움을 얻었다.
다시 떠올려보아도 연수의 구조와 내용이 더없이 훌륭했다. 첫 시간, 김민정 선생님의 수업을 들으며 숱한 감탄을 속으로 삼켰다. 그중 2017년도 모의 대선을 사회과 융합으로 시도하신 사례와 베트남과의 역사를 아이들과 풀어간 방식, 삼일운동 연극수업 사례를 들으며 역사교사가 우리 사회에 가지는 기능성과 가능성을 새삼 느꼈다. 또, 그림책 『오늘은 5월 18일』을 중심으로 한 5·18 민주화 운동 수업 사례가 기억에 남는다. 이전에 『갑신년의 세 친구』를 활용하여 수업을 진행한 적이 있어 특히 그 사례를 통해 많은 반성과 배움을 얻었다.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나의 지난 수업에 대해 뒤늦은 피드백을 하게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한 활동이 너무 모호하고 애매했던 점. 독서의 강점을 충분히 살리지 못했던 점. 독서 후 상상하고 고민할 만한 질문을 정교하게 제시하지 못한 점들을 반성했다. 김민정 선생님의 사례를 통해 책을 활용한 역사 수업이 가진 가능성과 실제로 그것을 어떻게 구조화할 수 있는지 아이디어를 얻었다. 김민정 선생님 강의 제목은 새내기에서 경력교사로 가는 길이었는데, 곧 가야 할 길이라는 점을 떠올리면 막막하기만 했다. 몇 년 뒤 나도 저 길에 있을 수 있을까? 어떻게 가능할까? 입 밖으로 내기엔 좀 부끄러운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다음으로 여혜경 선생님이 ‘지금 이 순간의 역사’를 고민하는 역사 수업하기를 주제로 강의해주셨다. 더 감탄할 힘도 남아 있지 않았는데, 이야기에 빠져들어 나도 선생님의 역사 수업을 듣고 싶어졌다. 선생님 수업은 ‘무엇을’과 ‘어떻게’ 중 ‘무엇을’에 대한 이야기였다. 무엇을? 왜? 이 두 물음이 선생님 이야기의 핵심이었다. 그리고 이 두 질문에 답하기 위해 선생님 말씀처럼 ‘배움으로 성장하고, 성실함으로 단련되는 교사’가 절실히 되고 싶어졌다. 답사지에서 아이들을 위해 촬영하신 영상편지는 나에게 너무나 강렬한 지적, 감성적 자극을 주었다. 그리고 또 하나, 선생님이 공유해 주신 프로젝트 수업 사례도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난 중간고사 이후 중3 한국 현대사를 프로젝트 수업으로 계획하고 있었는데 선생님의 사례를 들으면서 많은 영감과 도움을 받았다. 처음엔 프로젝트 수업방식에 대한 막연한 동경만을 가지고 시작하여 정말 답답했다. 이제 와 생각하니 ‘어떻게 하지?’라는 고민으로 수업을 풀어가려고 했기에 벽에 부딪히는 것은 당연했다. 교과서의 내용을 모두 다루어야 할까? 교사는 어디까지 준비하고 개입해야 하지? 정말 갈피를 잡지 못했다. 무엇보다 현대사의 어떤 주제가 우리에게 더 의미 있는지, 아이들에게 의미 있을지 고민하려 하지 않았다. ‘무엇을’의 부재였다. 여혜경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무엇을’의 부재가 곧 수업의 부재가 될 수 있음을 어렴풋이 이해했다. 선생님께서는 일단 그 프로젝트 수업을 위해 현대사의 주제를 몇 가지 뽑아 그것과 관련한 충분한 자료를 학생들에게 제시하였다. 주제와 관련된 영화, 영상물, 읽을 책과 자료를 풍부하고 구체적으로 준비하셨다. 정말 품격 있는 수업이라고 생각했다. 여혜경 선생님 수업에서는 ‘무엇을’과 ‘왜’에 방점을 두고 벅차지만 반가운 철학적 궁리의 기회를 얻었고, 더불어 평소 고민거리에 대하여 구체적인 힌트를 얻었다.
다음으로 황보석 선생님께서 역사과 배움 중심 수업의 실제를 주제로 수업을 해 주셨다. 이미 전역모 사이트에서 선생님의 활동지를 참고하고 있던 터라 무척 반갑고 또한 고마웠다. 이런 고민 속에서 만드신 거였구나, 수업을 듣는 내내 흥미롭고 재미있었다.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활동들과 그 활동에 대해 학생들이 보이는 반응들을 진솔하게 나누어주셨다. 특히, 교사 각자의 개성을 살려야 한다는 말씀이 가장 마음에 남는다.
첫날 연수 공간은 ‘남영동 대공분실’이었다. ‘민주인권기념관 예정지’, 우리 신규교사들은 두 팀으로 나뉘어 공간을 돌아보고, 박종철 기념사업회 김학규 이사님의 수업을 들었다. 처음 오층으로 이동하기 위해 오른 회전식 계단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난 나중에 아이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나의 걸음을 동영상으로 촬영했다. 무섭기는 했지만 한 손으로 휴대폰을 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중심이 되는 기둥을 꽉 누르며 아주 천천히 올라갔다. 올라가는 내내 다리가 후들거리고 무서웠다. 언젠가 꼭 아이들과 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첫날 연수에서의 배움은 그야말로 배움이었다. 배워야 하고 공부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공부를 쉬지 말자. 아니 혹여 쉰다 해도 결코, 멈추지 말자. 이 정도가 첫날 마지막 일정을 마칠 때 나의 감상이었다.
둘째 날 오전에 박물관 활용에 대해 박찬희 큐레이터께서 수업해주셨다. 주먹도끼를 제작하는 영상과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의 영인본을 보여주셔서 문화사 수업에 대해 가지고 있던 부담과 숙제를 조금 덜어낼 수 있었다. 가장 가까운 박물관을 찾아보라는 제안이 새로웠다. 가까운 마을에서 지역에서 박물관을 찾아 함께 공부하는 것이 박물관을 활용한 역사 교육의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 같다.
다음으로 이어진 문순창 선생님의 ‘세계사 시민교육 어떻게 할까?’는 교육과정 재구성에 대한 선생님의 고민과 그것을 바탕으로 실제 재구성한 사례들을 나누어주시며 진행되었다. 특히나 시간이 빨리 지나가 무척 아쉬웠다. 강의를 들으면서 지금까지 교육과정 재구성은 나에게 그냥 박제된 단어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깨달았다. 교육과정 재구성이 왜 중요하고 그게 무엇인지 그리고 교육과정 재구성을 통해 어떤 수업을 할 수 있는지 구체적인 예시를 보여주셨다. 평화, 인권, 다문화, 민주주의 등의 가치를 중심으로 재구성한 역사 수업 사례를 보면서 역사교사라는 무게가 버겁게 느껴지기도 했지만 참 설렜다. 역사를 통해서 우리 사회를 바라보는 교사의 고민을 이야기하고 학생에게 함께 고민해보자고 제안할 수 있다니. 정말 멋지고 감동적이지만 동시에 벅차기도 했다. 역사교사는 공부와 고민 그리고 실천을 게을리 할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이 참 무겁게 다가왔다. 또, 특성화 고등학교에서의 경험과 페미니즘 수업 사례를 들으면서 정말 놀랐다. 배움과 성실함에 더하여 문순창 선생님의 엄청난 에너지와 용기 그리고 실천력을 따라 하고 싶고 배우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영등포 고등학교의 유안나, 우주연 선생님 두 분께서 나만의 한국사 배움 책 만들기를 주제로 강의해주셨다. 처음 연수 일정을 보고 두 분 선생님께서 같은 학교에서 오셨다는 것이 흥미를 주었는데 그것이 이 강의의 핵심이었다. 유안나 선생님께서 먼저 강의를 열어주셨고 뒤이어 우주연 선생님께서 수업해주셨다. 두 분 수업은 관계라는 말로 기억된다. 사실 이틀의 연수 내내 이걸 혼자 할 수 있을까? 누가 나와 함께 해줄까? 학교로 돌아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걱정했다. 그런데 두 분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쩌면 관계가 모든 것의 시작은 아닐까? 생각했다. 연수 내내 피어난 의문들의 실마리가 관계와 연대임을 깨달았다. 먼저, 수업의 고민과 철학을 나눌 수업 친구부터 천천히 찾아봐야지. 나도 누군가 한 사람에게라도 이런 동료 교사가, 수업 친구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한다. 학교에서 서로를 만나 아주 중요한 전환점을 맞으셨다고 감사를 고백하시는 모습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만드신 수업 내용 역시 정말 정교했다.
연수를 마치고도 두근거림이 가시지 않았다. 여혜경 선생님이 강추하신 영화 ‘우리 학교’를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보았고, 추천받은 책 몇 권을 그날 밤 집에 도착하여 무더기로 시켰다. 그래도 잠이 오질 않아 다음 날 하게 될 수업 자료를 한참이나 뜯어보았다. 동동거리며 책을 쌓아놓고 활동지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불안하기도 하고 스스로가 참 못 미덥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연수를 통해 나보다 앞서 이 고민을 하신 수많은 선생님을 만났다. 이제 돌아갈 곳이 있고, 물을 곳이 있고, 나눌 곳이 있으니 두렵지 만은 않다.
지금까지 난 준비한 수업을 여러 번 해본 경험이 없다.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 학년에 한 반씩 수업하다 보니 어떤 수업이 실패했다고 느낄 때마다 더 없이 좌절감에 빠졌다. 다른 반에서 새롭게 해볼 희망도 허용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거기에 더하여 나의 절망이 깊어진 것은 내가 갈 길 잃은 희망에만 몸을 싣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점을 알게 되었다. 노들 야학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니체와 장자를 읽으며 공부하는 작가 고병권은 그의 책 『묵묵』에서 “희망 때문에 하는 일이 절망에 취약하다.” 했는데. 나의 수업이 딱 그랬다. 나는 스스로 역사 수업에 품고 있는 희망이 무엇인지 전혀 구체화하지 못하고 매우 막연하고 모호한 채로 두고 있었다. 그래서 매번 절망에 더 처절하게 당했다. 그러나 이 연수는 나의 희망이 희망으로만 남지 않게. 길과 방향 그리고 에너지를 잔뜩 실어주었다. 이 연수를 계기로 교실에서 우리의 실패와 절망이 희망에 취약해져 언젠가는 배움과 성실함의 동력이 되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