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경성-뮌헨의 1919년, 새로운 백년을 꿈꾸는 2019년
제1차 세계대전이 종전한 이듬해 프랑스 파리에서는 파리강화회의를 통해 베르사유 조약(1919)이 체결됩니다. ‘1919년 6월 28일 베르사유 거울의 방에서의 평화 조약의 체결’이라는 긴 이름의 조약이었죠. 유래 없이 전면전을 겪은 사람들은 더 이상의 비극을 막고 평화라는 것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천에 옮기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국제연맹 창설을 약속하는 조약(1919)도 맺어지고 이후 부전조약(不戰條約)이라는 이름의 다양한 국제적 약속이 마련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 결과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입니다.
2019년, 베트남 하노이에서 북한과 미국이 만났습니다. 혹자는 비통함에 ‘결렬’을 말하고 어떤 이는 빈정거림을 담아 ‘판이 깨졌다’고 말하지만, 북한과 미국이 여느 때보다 진지하게 만난 것, 그 자체가 ‘빅딜’이 아니었을까요? <역사교육>의 기획인 ‘평화와 통일을 생각하는 역사교육’ 은 이러한 태도로 평화와 통일을 위한 역사교육을 모색하는 논의들을 다룹니다. 2019년 봄을 맞는 <역사교육>에서도 작년부터 이어온 기획의 연장선에서 남혜정 선생님이 기조 발제의 성격에 해당하는 글을, 우현주 선생님이 현장에서 실천한 수업안을 써주셨습니다. 선생님들의 일독을 권합니다.
같은 맥락에서 ‘역사이야기’의 정창현 소장님의 글도 읽어보시면 좋겠네요. 정 소장님은 이 글에서 남북의 이해를 본질적으로 높이고 평화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수업 중심에서 현장 체험으로 통일 교육의 저변을 넓히기를 제안합니다. 아울러 정창현 소장님의 연재글인 ‘남북 평화시대의 통일교육’은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막을 내린다는 아쉬운 소식도 전합니다. 정소장님의 글과 같이 ‘역사이야기’에서 1년 간 연재해 오신 권혁은 선생님의 ‘5.16 군정기를 다시보다’도 이번 호를 마지막으로 그 막을 내립니다. 권 선생님의 글에는 박정희의 ‘번의파동’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담겨있습니다. 세계사 수업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우리 교사들에게 죽비와 같은 역할을 하는 홍용진 선생님의 연재글인 ‘교과서에 없는 서양사’도 애독 바랍니다.
일제강점기를 다룬 수업을 하다보면 3.1운동의 출발지로 경성(서울)을 강조하게 됩니다. 민족대표 33인의 태화관 이야기나 탑골공원에서의 만세시위의 모습은 우리가 3.1 운동하면 떠올리는 장면으로 남아있으니까요. 이러한 인식은 마치 서울에서 일어난 만세시위(탑골공원 시위)를 3.1운동의 기점인 것처럼 강조하게 됩니다. 그러나『오늘과 마주한 3.1운동』(책과함께, 2018)의 저자이자 ‘3.1운동 및 대한민국임시정부수립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에 참가하고 있는 김정인 교수에 따르면 1919년 3월 1일에는 경성(서울)을 제외하고도 6개 지역에서도 만세시위를 벌였다고 합니다. 평양, 의주. 원산 등 서북지역에서는 집중적으로 만세시위가 일어났다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특히 평안북도 선천에서는 12시에 만세시위를 벌였는데, 경성 탑골공원 시위가 14시에 일어난 것을 감안하면, 3.1 운동의 첫 시위의 장소는 선천으로 기억되어야 옳겠네요.
이를 우리가 가진 3.1운동에 대한 협소한 인식을 드러내 주는 예라고 보면 비약일까요? 백주년을 맞이하는 오늘에도 우리들은 3.1운동을 민족 저항운동의 서사에만 가둔 채 인식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3.1 운동은 민주주의-인권-평화의 가치를 두루 담을 수 있는 큰 실천이었습니다. 정작 우리는 3.1 운동에 대해 잘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닐런지요. 프랑스 혁명하면 ‘자유, 평등, 박애’라는 키워드를 암송하는 우리 모습을 보면 더욱 그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러한 측면에 역사교육의 실천과 고민에 부족함은 없었을까요? 아마 자신 있게 대답하기 어려울 듯합니다. 3.1 운동 100주년인 올해 역사교사로서 곱씹어볼 일입니다.
이렇듯 역사교육은 끊임없이 고민하고 나아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수업이야기를 들여다봐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번 호부터 역사 수업에 관한 보다 구체적인 이야기를 담은 ‘수업기획기사’를 고민해서 독자 분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이번 주제는 ‘역사과 수업 혁신의 성찰’으로 평가 혁신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일련의 흐름에 대해 되짚어보고자 했습니다. 이에 관한 현장교사들(윤종배-조혜민-이상규 선생님)의 대담과 전역모 회원 분들의 설문 결과를 정리한 분석 기사를 읽어 봐주시기 바랍니다(편집부 에디터 선생님들의 방학을 갈아 넣었습…) 평가계획서 작성을 앞둔 역사 선생님들에게 의미 있게 읽히고 실질적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여느 때처럼 알찬 수업사례글도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김민정 선생님이 베트남 전쟁을 주제로 시민사회 등과 결합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시고 나아가 시민법정수업으로 이끈 수업실천기는 많은 선생님들에게 용기와 큰 영감을 주시리라 생각합니다.
앞서 이야기와 ‘책이야기’도 미묘한 연결고리가 있긴 하네요. 새로 편집부 에디터로 합류하신 정겨울 선생님은 페미니즘적 접근으로 가부장제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며느라기』를 읽고 서평을 남겨주셨습니다. 이 밖에도 최근 역사 선생님들에게 선풍적인 반응을 받은 바 있는 이동기 교수의 신간 『현대사 몽타주』에 대한 박용준 선생님의 서평, ‘과거사위’ 조사관으로 활동한 기록을 담은 변상철 활동가의『인권을 먹다』를 읽고 쓴 박현 선생님의 서평도 담겨 있습니다.
『소명으로서의 정치』라는 정치학에 길이 남을 명저를 남긴 막스 베버는 1919년 독일 바이에른 뮌헨에서 쓸쓸히 죽음을 맞습니다. 바이마르공화국 출범 이후 열린 최초의 총선에서 낙선해 크게 낙심한 가운데 맞은 죽음이었습니다. 낙선보다도 그를 힘들게 한 것은 현실 속 민주정치의 혼란이었습니다. 그는 아마도 이때부터 민주주의의 위기와 파시즘의 등장을 예견했을지 모릅니다.
낙선 직후 낙심한 1919년 1월, 막스 베버는 뮌헨 대학에서 청년들의 요청에 못 이겨 특강을 합니다. 그 특강의 내용을 정리하여 출간한 책이 바로『소명으로서의 정치』입니다. 특강 내내 정치에 대한 부정적 이야기와 파국 가능성을 말하던 베버는 강의를 이렇게 갈음합니다. “현실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보여 줄 수 있는 자만이 정치가가 될 수 있다”고 말입니다. 회의(懷疑)의 끝에서 그가 말하고자 한 것은 ‘가능성’과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이번 호에서도 역사교육을 끌어 안고 묵묵히 자리를 지키는 ‘막스 베버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습니다. 유려한 인터뷰로 우리를 즐겁게 해주시는 ‘장콩샘’은 새내기 교사였던 김유진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한민혁 ‘화백’ 선생님의 만화에서는 성찰어린 교사의 따듯한 이야기와 만나실 수 있습니다. 작년 겨울 광주에서 있었던 자주연수 답사기를 써주신 편집부 에디터 이재호 선생님의 감성도 느껴보시고요. 자주연수 기간 내에 있었던 역사교육연구소 교육과정 토론회 행사에 대한 후기를 써주시면서 역사교육과 관련한 새로운 제안을 해주신 양두영 선생님의 글도 놓치지 마시길 바랍니다.
이밖에도 전국역사교사모임의 활발한 활동과 신년을 위한 기지개를 엿보실 수도 있습니다. 언제나 활발함이 느껴지는 지역모임 소식도 엿보시고 특히 전국운영위원회에 제출된 평가 및 계획서를 한번 살펴봐주시기 바랍니다. 여느 때처럼 올해 전국운위도 귀한 겨울방학의 8시간을 헌납하고 깊고 진한 토의를 거쳤다고 합니다. 아참! 전역모 팟캐스트 <역사유랑단>, 방송 잘 듣고 계시죠? 팟캐스트가 만들어지고 런칭되기까지의 비화를 박혜정 선생님께서 글로 남겨주셨습니다(박혜정 선생님은 팟캐스트를 만드는 작가 중 한 분이기도 합니다^^). 이렇듯 ‘그럼에도 불구하고’를 말하며 새로운 활동을 모색하는 사람들의 에너지를 간접적으로나마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백년의 희망은 이러한 선생님들과 아이들의 실천에서 비롯될 것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늦은 인사와 더불어 사족을 보탭니다. 2019학년도 봄호, 그러니까 124호부터 편집부의 일을 돕게 된 문순창(경기 운산고)라고 합니다. 그동안 편집부장을 맡으셨던 선생님들의 역량과 감수하신 작업의 무게를 알기에 스스로 너무 버거울 것 같아 걱정이 큽니다. 하지만 저 딴에 각오로 떠올려 본 심수관 도공의 이야기를 나누며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일본의 유명한 도예가인 심수관(1926~) 선생의 집안은 대대로 도공 집안이었다고 합니다. 임진왜란 때 일본에 끌려온 후 심수관 선생이 14대째 이어받고 있었던 것이죠. 큰 전통의 무게감에 억눌리던 심 선생은 아버지를 찾아가 도공을 하지 않겠다며 눈물로 하소연 합니다. ‘저는 무엇 때문에 도공이 되어야 하나’고 묻는 그에게 아버지는 이름 높은 도예가는 되지 않아도 좋다며 이렇게 말합니다.
“무리하지 않아도 좋다. 그저 쇠로 된 고리면 충분하다.
튼튼한 고리로 차례차례 대를 이어가면 된다.
몇 대쯤 지나면 금으로 된 고리처럼 빛나는 사람이 태어날 것이다“
저 역시 그저 쇠로 된 고리의 하나로 <역사교육>의 전통을 이어가고자 합니다.
언제나 현장에서 아이들과 희망을 가꾸어 가시는 역사 선생님들의 지도와 편달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19.03.03
개학을 앞둔 날
편집부 에디터 선생님들을 대표하여
편집부장 문순창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