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이야기 – 만나書 ③ : 조귀동 작가(<세습 중산층 사회> 저자)
>>편집부 정리(담당에디터:정겨울)
※지은이 소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만 11년 차 회사원이 되었다. 그동안 한국 경제의 구조와 그 변화 과정에 대한 글이 써왔다. 현재 서강대학교 경제학과 박사과정에서 기업 활동이 노동시장과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과 인적자본 투자의 양상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2020 한국의 논점』(공저)이 있다.
크게 두 가지입니다.
먼저 불평등이야말로 사회 갈등의 기초라는 생각 때문입니다. 사회 갈등의 근원을 따라가다보면 결국 ‘먹고 사는’ 문제를 만나게 되곤 합니다. 이른바 계급이나 계층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겠고요. 그런데 지금까지 한국에서는 이 불평등 문제가 사회적 갈등을 어떻게 만들어내는지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저 양극화, 빈곤 등 일종의 현상의 문제로만 다뤄질 뿐이었죠. 불평등 확대가 어떻게 각 계층 집단의 대응을 유발하는지, 그리고 각 계층 집단 간의 갈등을 만들어내는지는 심도 있게 다뤄지지 않았습니다.
고도성장기에는 늘어난 파이를 적당히 배분할 수 있기에 이 문제가 크게 부각이 되지 않았습니다. 불평등한 상황이지만, 다수는 자신의 파이를 늘릴 수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고도성장이 끝나고, 본격적인 저성장국면에 접어들면서 한정된 파이를 누가 더 많이 가지고 갈 것이냐를 둘러싼 갈등은 불가피해졌습니다.
두 번째는 이른바 ‘청년 문제’의 상당 부분이 경제적 요인, 특히 불평등에 기인하고 있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아가 청년 문제야말로 불평등으로 만들어진 한국 사회의 균열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줄 수 있는 주제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도 90년대생을 다루는 담론들은 경제적 문제나 불평등 문제에 대해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고, 그들을 하나의 집단처럼 간주하더군요. 청년 담론이라고 나왔던 이야기들이 설득력이 떨어지는 이유라고 보았습니다.
청년들은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단계에 있기 때문에, 그 직전까지 이뤄진 인적자본 투자(즉 양육 및 교육)의 불평등과 함께 입직 단계의 결정과 그 결과(즉 노동시장 지위)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을 동시에 경험하게 됩니다. 양육과 교육 과정에서 경험하는 불평등을 분석하면 단순히 부모의 소득이 많고 적음뿐만 아니라 부모의 학력, 직업, 사회적 네트워크, 문화적 소양 등 다차원적인 격차의 영향을 받고 있다는 게 잘 나타나더군요. 새로운 계급 사회라고 할 만한 이 변화가 급격히 일어나 1990년대생에서 완성됐던 것도 특징이고요. 그리고 입직 단계에서 나타나는 불평등은 결국 연애, 결혼, 자산축적 등 이후 삶의 궤적을 결정하게 됩니다.
청년들이 어렵다고 하지만, 실제 청년들 가운데 부모가 전문직이거나 대기업 화이트칼라인 경우 이전 세대보다 더 어렵다고 볼 수 있는지 의심이 들었습니다. 이른바 ‘건물주’ 가족이 아니더라도 말입니다. 하지만 저임금과 빈곤에 시달리는 청년이 많이 있고, 또 아예 노동 능력이 부족해 일자리를 얻을 수 없는 이들도 상당하죠. 이러한 균열이 왜 발생했고, 어떤 방식으로 유지·확대되며, 청년들의 세계관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여기서 중산층은 소득이 중간인 사람, 즉 중간소득집단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 전문직이나 대기업화이트칼라 등이 주축인 상위 중간계급(upper middle class)를 의미합니다. 상위 10~15%가 될 것인데, 학력-직업-경제적 지위가 밀접하게 연결된 집단이죠. 50년대생 부모-80년대생 자녀와 달리 60년대생 부모-90년대생 자녀의 경우 학력과 노동시장에서 지위를 대물림하는 현상이 심해지고, 계층이동 가능성이 크게 낮아졌다는 의미로 ‘세습’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쉽게 말해서 서울에 아파트 1~2채 정도가 있고 대기업 화이트칼라로 재직하는 계층이 대물림 되면서, 계층 이동성을 크게 악화되었다는 게 의미입니다. 책에서 언급했지만, 가령 서울 을지로입구역 식당가에 점심 식사를 하러 나온 20대 근로자들이 SK텔레콤이나 KEB하나은행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다면 그들의 부모도 대졸 화이트칼라일 가능성이 높고, 반면 사원증이 없는 중소기업에 다니거나 아니면 명동 인근에서 서비스·판매직에 종사한다면 그들의 부모도 비슷한 일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세습 중산층 사회의 단면이라 생각합니다.
크게 두 가지 원인이 있겠습니다. 먼저 한국 경제의 질적 발전입니다. 60년대생 부모 세대에서부터 학력-노동시장 지위-경제력-사회적 네트워크 등의 긴밀한 결합이 나타난 것인데, 이는 대기업의 등장과 궤를 같이 합니다. 이들이 노동시장에 진입했을 때 현대적 대기업에서 필요한 인력이 대규모로 필요해졌고, 결국 대학 교육의 양적 팽창도 이뤄집니다. ‘학번 없는’ 60년대생과 ‘학번 없는’ 60년대생의 차이도 벌어지게 됐고요.
두 번째는 한국 사회 불평등의 심화입니다. 첫 직장이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번듯한 일자리’에 속하느냐 마느냐가 노동 생애 전체를 결정하고, 일자리의 질적 격차가 심화되는 과정에서 결국 부모가 자녀들에 대한 투자를 늘리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번듯한 일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에서 이기는 건 중상위층 가정일 수밖에 없겠지요.
청년들이 맞이한 세상이 근본적으로 불평등하다면, 그 세상에서 규칙의 공정이나 윗세대의 양보를 주장하는 게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고 봅니다. 규칙의 공정함이 의미를 가지려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어야 하는데, 불평등으로 능력의 격차가 발생하는 현실에서 설득력을 가질 수 없겠죠. 윗세대의 양보도 결국 세습 중산층의 자녀에게나 의미가 있는 것일 테고요.
그런 의미에서 오히려 오늘날 90년대생들이 복합적인 불평등 속에 살아간다는 것을 다들 인정하고, 그 현실을 좀 더 공평하게 바꾸는 방향으로 정책과 제도적 보완책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수혜를 보는 집단이 지금보다 더 큰 의무, 즉 세금 등의 형태로 비용을 분담해야 합니다.
문제는 그들의 부도덕하게 살아서가 아니라, 열심히 살았고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가계 단위의 미시적 성공이 전체 사회에서 실패를 이끌어낸 것이죠. 원래 계층간 불평등의 문제는 가진 자가 부도덕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근면성과 창의성을 발휘해 얻은 부가 많기 때문 아닌가요. 세습 중산층이 나타날 수 있었던 배경 가운데 하나는 2000년대 초중반 한국 대기업의 질적, 양적 성장인데 그 성공이 격차 확대라는 결과로 나타난 것이고요. 하지만 그 성공이 한국 사회 전체의 발전에 힘입은 것이고, 현재 그 공동체의 균열이 커지기 때문에 공동체 유지를 위한 기여를 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욕망의 다양성’이라는 것은 결국 경제적으로 어느 정도 평등한 상황에서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의 교육열, 어떻게 든 번듯한 일자리를 자녀가 갖게 만들겠다는 것은 결국 불평등 확대의 결과로 보입니다. 대졸자 노동시장 진입 결과를 보면 가장 가운데 급여가 월 200만~210만 정도입니다. 초임으로 월 300만원 이상을 받는 번듯한 일자리를 얻는 이는 전체 20대의 11~12%에 불과하고요. 이러한 불평등을 먼저 개선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의 불평등이 빚어낸 문제를 고치는 데는, 결국 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회의 평등을 제고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그에 적합한 교육 투자 확대와 일선의 노력이 요구될 것입니다. 90년보다 00년생들의 불평등은 훨씬 더 심할 것입니다. 사회로부터 ‘체계적으로’ 주변부로 밀려나고 목소리를 얻지 못하는 청소년과 청년들이 앞으로 필요한 능력을 배양시키고, 노동시장에서 제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교사 여러분들이 관심을 갖고 도와주셨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