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를 위한 역사교육에서
죽음을 이야기하다.

책이야기-서평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노용석)>

>> 김진아(부산 엄궁중)



3.PNG

1. 연수 후기 같은 서평의 시작

역사교사가 되고 나서 지금까지(고작 3년차에 들어갑니다만..) 마음 속에 미뤄둔 숙제처럼, 고민처럼 안고 있는 문제가 바로 ‘역사를 왜 가르쳐야 하는걸까?’이다. 역사교사가 역사교육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좀 우스워 보일지 모르겠으나 교직 생활 중 최대 고민이었다. 아마도 나는 흔히 말하는 녹색책, 남색책에 나오는 그런 교육 목적이 아닌 내 가슴에도, 아이들의 마음속에도 와닿는 그런 이유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래서 신규 때부터 참 많은 연수를 들었다. 그러던 중 올해 초(2019년 초) 부산역사교사모임에서 야심차게 준비한 ‘평화를 위한 역사교육’ 연수 프로그램을 만났고, 이에 참여하면서 애증의 고민을 해결해줄 방법을 또 한번 연수 속에서 찾기 시작했다.

이번에는 왠지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만 같은 희망에 부풀어서 학년 초 그 바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저녁부터 시작되는 첫 연수에 들뜬 마음으로 참석했다. 연수의 주제는 민간인 학살. 첫날부터 강도 높게 실시된 연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길. 머릿속에 떠오른 하나의 문장. “평화를 배우는 데 왜 민간인 학살(죽음)을 이야기 하는거야?”

이때부터였다. 평화를 배우는데 왜 죽음을 배워야 하는지 의문이 들었고, 본래 목적이었던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조차 찾을 수 있을지 답답해지기 시작했던 것이.



2. 책과의 첫 만남_ 평화를 배우기 위해 죽음을 이야기한다고?

한국전쟁 전후로 자행된 민간인 학살 사건에 대해 논문(역사학습을 통한 한국전쟁전 후 민간인 학살 사건의 재개념화_안현주)과 영상자료로 먼저 접했고, 이후 실제 현장이었던 ‘경산 코발트 광산’에 가서 유해 발굴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경산 코발트 광산 답사를 이끌어주신 노용석 교수님의 책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과 민주주의》로 한번 더 민간인 학살과 과거청산에 관련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책을 읽은 뒤 진행된 연수에 참석하여 쓴 메모에 의하면 이때까지도 나는 ‘죽음과 평화’를 연결시키지 못하고 있었다. “평화를 위한 역사교육을 위해 민간인 학살과 과거청산의 내용(과정)을 아이들에게 역사화하여 가르쳐야 하는가, 가르친다면 왜 가르쳐야 하나.” 연수는 끝이 났고 고민은 계속 남아있었다.

그런데 의외로 해답은 다른 곳에서 들려왔다. 노용석 교수님의 연수 이틀 뒤 부산역사교사모임의 핵심!! 소모임인 ‘미로탐험대’에서 떠난 워크숍에서 나눈 대화들은 내게 큰 힌트를 주었다. 연수가 끝난지 얼마되지 않은 터라 계속 연수의 내용이 머릿 속에 남아있었던 나는 워크숍의 밤이 무르익자 미로탐험대의 대장이자 지역소식의 필자인 ‘이융쌤’에게 그동안 쌓아왔던 의문을 토해냈다. 다음은 이때 나눈 대화를 재구성한 것이다.


나: 선생님! 나는 모르겠어요. 평화를 배우는데, 왜 죽음을 배우는지 도무지 모르겠어요. 애들한테 평화를 가르치는데 왜 하필 이런 죽음에 대해 이야기 하는거에요?

이융쌤: (웃음) 글쎄요, 쌤 우리 한번 생각해봅시다. 여기서 죽은 사람들이 누구죠? 평범한 사람들이죠? 우리나라의 민간인 학살 사건들도, 라틴아메리카의 민간인 학살 사건들도 모두 학살의 대상이 우리처럼 평범한 사람이에요. 평범하게 학교와 직장을 다니고, 가족과 식사를 하고, 뛰어놀던 그런 사람들. 그런데 이 사람들의 ‘평화’를 깨부순 건 누구죠? 사건의 이름은 다 다르지만 모두 ‘국가’입니다. 심지어 타국도 아니고 본인들의 국가였죠.

충격적인 대화(?) 이후 나는 돌아와서 다시 책을 읽었다.


3. 책과의 두 번째 만남_ 평범한 평화를 깨뜨린 특별한 평화

책을 그렇게 두 번 읽게 되었지만, 그동안 라틴아메리카의 역사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도 공부해보지도 않았던 터라 책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정확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 나름 두 가지 갈래로 이해하고 공부했다.

첫째, 과거청산은 무엇인가.

과거청산은 아주 광범위하게 쓰이는 단어이다. 현재도 뉴스나 여러 기사에서 회자가 되고 있고, 과거청산을 해야된다고 주장하는 사건들은 아주 다양하다. 그런데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임에도 이 단어의 의미에 대해 알지 못했다. 이 책에서는 과거청산을 ‘과거 특정 국가 정치체제 또는 전쟁하에서 저질러진 잔혹행위 및 인권유린들을 새로운 체제 하에서 어떻게 청산해야하는가의 문제’라고 풀어놓고 있다. 그리고 과거청산의 주요 로드맵을 4가지 요소로 정리해놓고 있는데 이 부분이 유익했다.

* 과거청산의 주요 로드맵

진상규명 – 가해자 처벌 – 피해자 배·보상 – 화해와 역사화


특히 피해자 배·보상과 관련하여 원상회복, 금전배상, 사회복귀, 만족, 재발 방지의 보증 등을 그 방식으로 들고 있는데, 첫 번째 방식인 원상회복이 보통 실질적으로 불가능하여(피해자의 사망 등으로 인함) 상징적 원상회복을 위해 각종 의례를 배치하고 이에 따라 기념·위령사업이 실시됨을 이해할 수 있었다. 책에서 이 부분을 특히 흥미롭게 본 이유는 평소 여러 기념식이나 위령식을 거행하는 모습을 보면서, “사람들이 다 죽고 나서 저런 보여주기식 행사를 하면 무슨 소용이냐”라는 생각을 내가 가져서였다. 조금 생각이 짧았음을 반성하게 되었다.

둘째, 라틴아메리카에서의 과거청산 사례와 일련의 과정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가. 책에서는 아르헨티나, 칠레, 과테말라, 파라과이, 엘살바도르 등 다양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의 과거청산 사례를 실어놓고 있었고, 청산의 대상이 된 ‘과거의 역사’들은 ‘민간인 학살의 역사’였다. 특히 라틴 아메리카 역사상 단일 지역에서 발생한 가장 큰 규모의 학살로 기록된 엘살바도르의 ‘엘모소떼 학살’(이틀간 어린이, 여성을 포함한 마을주민 400여 명을 살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렇다면 라틴아메리카 국가들은 민간인 학살로 얼룩진 과거를 청산하였을까? 각국에서 여러 노력이 있었으나 저자의 말처럼 ‘정의구현을 위한 과거청산을 위해 현재의 평화를 위협할 수 없다는 논리’로 인해 청산은 완결되지 못했고, 다수의 국가에서 과거의 가해자들은 현재의 개혁가가 되어 또다시 평범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고 있었다. 라틴아메리카의 과거청산이 개혁과 민주주의의 발전을 이루기 위해 ‘수단화’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너무 많은 사람들의 평범한 평화가 깨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생각하는 그들만의 특별한 평화가 당연하게 그 자리를 메운 점이 뭐랄까. 소름이 끼쳤다. 그동안 어떻게 이런 지점을 생각하지 못했는지 의구심마저 들게 되었고, 그들의 사례에서 우리나라의 모습을 투영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4. 내가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

다시 한번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그동안 내가 역사를 공부하면서 너무 당연해서 잊고 있었던 평화의 의미였다. 평화란 거창한 것이 아닌 ‘평범한 사람들의 평범한 일상’들 그 자체였던 것이다. 학살의 대상이 된 사람들 모두 아무 일이 없었다면 평소처럼 평범한 일상을 보냈을 것이다. 그것이 그들의 ‘평화’였다. 이 너무도 당연한 평화를 지키지 못하면 단순히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누군가(한 개인)의 인생이 망가질 수 있고, 그게 우리일 수도 있고 더 나아가 부득이하게 가해자가 될 수도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야만의 상황을 가져오는 근원이 ‘국가’일 수 있음을 우리나라와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민간인 학살 사례에서 알 수 있었다. 평화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평화’가 무엇인지 먼저 깨달아야하고, 그 깨달음을 위해서 우리는 죽음(민간인 학살)을 이야기했던 것이 아닐까.

이제 나는 역사를 가르치는 이유가 생겼다. ‘평화하는 사람’이 많아지길 바라기 때문에 역사를 가르치게 되었다. 이 글을 읽는 전국의 역사 선생님들이 평화를 고민하며, 이 책을 일독해보시길 권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문제는 ‘세대’가 아니라 ‘세습 중산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