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에 대한 서사,
이렇게 바꿀 수 있네요

책이야기-서평:『알제리 전쟁』(노서경)

1. 오해 : 알제리 독립전쟁(?) - 전쟁(?) - 혁명(?)

이 책을 펼쳤을 때 저자의 선택에 적잖이 당황했다. 세티프의 학살이 기원이 되고 FLN의 봉기로 본격화되는 알제리의 처절한 독립전쟁에서 ‘독립’을 빼고 부르는 것이 가능한가에 대한 고민 때문이었다. 물론 저자도 머리말에서 이 문제에 대한 고민을 밝힌 바 있다.


…… 군사력으로 보아 비교가 되지 않는 프랑스와 알제리 사이의 전쟁이었으며 또 그 때문에 서구 제국주의에서 벗어나려는 반식민주의 투쟁의 표상이 되었다. 한편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 세계적인 강대국이던 프랑스의 입장에서도 이제 ‘제국’없이 공화국을 견실하게 할 수 있다고 마음먹게 된 계기가 이 전쟁이었다. 많이 망설였지만 책제목을 ‘알제리전쟁’으로 하는 편이 그 함의를 살리는 길이라 생각했다. 물론 이런 생각도 은근히 프랑스적이라 비판받을 수 있다.……1)

1)노서경, 『알제리 전쟁』, 11p.



하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은근히’ 프랑스적인 것이 아니라 ‘대놓고’ 프랑스적인 것이 아닌가.


당황스러운 점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이 책은 전쟁의 배경-경과-결과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서 제공하지 않는다. 일반적으로 내가 전쟁을 다루는 책에 대해 갖는 기대를 저버린 책이었다. 전쟁에 대한 별도의 설명 없이, 프랑스 지식인과 식민지 알제리의 민중 지식인들이 ‘그 전쟁을 어떻게 보았는가? 그리고 무엇을 했는가?’에 대해 묘사한다. 특히 포커스는 알제리 전쟁에 대한 프랑스 지식인의 인식이다.


…… 민족해방의 요구가 빗발쳐 식민주의의 붕괴가 임박했다 해도 만일 지배국이 이를 직시하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겠는가. 누가 그러한 사실을 깨닫게 해줄 수 있는가. 그것은 철학자들의 몫이었다. ……2)


두 번째 당혹감은 다시 첫 번째 당혹감과 맞닿는다. 일반적인 전쟁사 서술은 아니더라도 식민지 민중을 중심에 놓은 서술3)이었어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면 식민지 경험을 한 국가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느끼는 감정인가. 알제리 독립전쟁을 ‘혁명’이라고 표현한 프란츠 파농조차 “알제리는 사실상 독립 국가이다. 알제리 사람들은 스스로를 이미 주권자라고 생각한다. 이제 프랑스가 그것을 아는 일만이 남아있다.”4)고 했다는데, 나는 여전히 ‘대놓고’ 프랑스적인 것, 엘리트주의적인 것이 마음에 걸렸다.


2)같은책, 110p.

3)물론 결론적으로 이 책은 알제리 민중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다. 적어도 책을 읽기 시작했던 나에게는 저자의 문제의식이 다분히 지식인에 포커싱 되어 있는 것으로 읽혔다는 의미이다.

4)프란츠 파농, 『알제리 혁명 5년』, 21p.




2. 열쇠 : ‘생각하는 사람’


복잡한 마음으로 책을 읽어가기 시작했다. 1부는 프랑스 가톨릭부터 출판전선, 변호사, 아프리카 출신 프랑스 지식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특히 독립을 반대하는(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최종적인 그의 의지는 확인할 길이 없지만) 알제리 출신의 까뮈와, 프랑스인이지만 알제리를 옹호하는 장 폴 사르트르의 입장을 이해하는데 무척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과연 어디까지 이해할 수 있나?’를 시험하는 장으로 느껴졌다. 달리 표현하면 ‘내가 당시에 살았더라면 어떤 입장에 섰을까?’에 대한 해답을 내놓기 무척 어려웠다.

2부는 식민지의 독립을 열망하는 알제리의 민중 지식인을 그린다. 독립운동을 이끌어간 사람들부터 역시 독립을 알리려는 알제리 언론, 식민지 정치범과 대학생에 이르기까지의 군상들을 묘사한다. 이 묘사들은 알제리의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힘을 쏟은 민중의 힘을 그대로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이쯤 읽고 나니 초반 내가 생각하고 있던 지식인의 범주가 협소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부에서 그린 민중 지식인들은 무학이 많았으며 실제 그들은 철저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독립전쟁에서 커다란 역할을 해냈다.

결국 이 책에서의 지식인이란 교육과 학력에 의해 획득되는 특정 지위가 아닌, 현실을 타개하기 위해 노력한 모든 ‘사람’들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프랑스의 지식인5)과 알제리의 민중 지식인이 알제리의 상황에 대해 ‘생각’하지 않았더라면 알제리의 독립은 달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역사란 현재와는 다른 세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한 ‘생각하는 사람들의 항쟁’이라는 의미다. 책의 부제에 대한 이해와 나의 오해가 동시에 해결되는 순간이었다.


5)물론 알제리에 대한 프랑스(국가)의 태도는 이 지식인들의 논의와는 상반되는 측면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3. 한 걸음 더


문득 내가 지난해 고민해 왔던 몇 가지 문제들에 대한 열쇠를 찾은 생각도 들었다. 나는 세계사 수업에서 현대사를 가장 고심해 준비하고 그러다보니 세계대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편이다. 전쟁사의 마지막에 항상 강조하는 것은 ‘평화’인데 생각보다 아이들은 전쟁의 승패에 더 관심을 가졌다. 뿐만 아니라 전쟁사는 주체가 ‘국가’이기 일쑤였다. 희생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다분히 감정에 호소하는 수준에 그쳤다. 의도는 나름 훌륭(?)했으나 결과가 만족스럽지는 못했다. 이런 상황을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을까?


일단 전쟁을 설명할 때 주로 사용하는 설명방식(배경-경과-결과 등)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알제리 전쟁』의 서술방식은 그 대안을 구체적 보여주는 좋은 사례로 생각된다. 사건에 연관된 여러 사람들의 생각을 살피는 것은, 역사의 주체가 사람임을 알게 하고 여러 주체를 이해하는 기회를 제공하여 이를 바탕으로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세계시민으로서의 역량을 기르는데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또 자연스럽게 국가 서사에서 벗어나 일반 민중의 관점에서 이야기를 풀어갈 수도 있을 것 같다. 결국 현재 교과서의 설명방식과 서사를 바꾸어야 가능한 것이다.


물론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 책을 읽고 알게 되는 것과는 별개로, 수업을 정교하게 계획하지 않으면 자칫 단순하고 동등한 비교로 전범국과 식민모국의 입장을 두둔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할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별도의 고민이 필요한 지점이다.


단숨에 읽기에 부담스러운 분량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알제리 전쟁에 대한 내용적인 이해와 더불어 수업의 소재, 교과서 혹은 수업의 서사를 구성하는데 있어 영감을 주는 책인 것은 분명하다.



>>남혜정(서울 경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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