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핵무장?
미국의 전술핵? 모두 필요없다!

역사이야기 – 정욱식의 피스메이커②

>>정욱식(평화네트워크 대표)



들어가며

한반도 비핵화 전망은 어두워진 반면에 북한의 핵무장은 가시화되면서 한국도 핵무장에 나서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보수 진영 일각에서만 나오는 목소리는 아니다. 각종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의 핵무장에 찬성하는 비율이 과반수를 넘나드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독자적인 핵무장이 어렵다면 미국의 전술핵무기라도 재배치하거나 나토(NATO)식 핵 공유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어떤 방식으로든 우리도 핵무기를 갖자는 주장은 감정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다. 동북아 6개국 가운데 미국, 중국, 러시아가 핵 강대국이고 북한도 기술적으로는 핵보유국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일본도 상당량의 플루토늄을 보유하고 있는 잠재적인 핵 강대국이다. ‘왜 우리만 안 되느냐?’는 반문은 그래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독자적인 핵무장 추진은 칼의 손잡이를 손에 쥐는 것이 아니라 칼날을 손에 쥐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나토식 핵 공유는 ‘문 뒤의 총’을 문 앞에 갖다놓는 것이다. 이는 핵전쟁을 억제하기보다는 유발할 위험성을 높이게 된다. 그 이유를 하나씩 따져보자.

2. 한국은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까?

한국의 핵무장 능력이 새롭게 조명 받은 시기는 2015년 4월이었다. 찰스 퍼거슨 미국과학자협회(FAS) 회장이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비공개 간담회에서 발표한 내용이 국내 언론에 대대적으로 소개된 것이다. 이 자리에서 퍼거슨은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5년 내 수십 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가 주목한 원전은 월성에 있는 4개의 가압중수로이다. 천연 우라늄을 사용하는 중수로의 사용 후 연료에는 저농축 우라늄을 사용하는 경수로에서 나온 사용 후 연료봉보다 플루토늄이 더 많이 들어있다. 이를 근거로 퍼거슨은 한국이 이들 4개 중수로에서 다량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앞서 미국의 핵전문가인 토머스 코크란과 매튜 매카시는 한국이 4개의 가압중수로에서 매년 416개의 핵폭탄 분량에 해당하는 플루토늄 2천500㎏을 생산할 수 있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이러한 미국 전문가들의 분석은 국내 핵무장론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었다. 대표적인 인물이 서울대 원자력공학과의 서균렬 교수이다. “2년 내에 최대 100개까지 생산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한국의 원전에 쌓인 사용 후 핵연료는 1만톤에 육박”하고 “이 중 플루토늄이 수십톤으로 핵폭탄 한 발 제작에 플루토늄 5㎏ 정도가 필요하니 핵폭탄 대량생산에 들어갈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 “우리의 레이저 우라늄 농축기술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경지에 이르고 있어 플루토늄이 없이도 단기간에 핵무장이 가능”하고, “우리는 강력화약 TNT 고폭 실험을 통하여 핵폭발에 관한 공학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핵실험 없이 슈퍼컴퓨터만으로도 핵탄두 설계가 가능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 것이다. 서균렬의 결론을 이렇게 이어진다. “국가가 결심하고 정치인들이 방패만 되어준다면 핵개발은 연탄 찍기처럼 간단할 수도 있다.”

2019년에 한반도 비핵화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자, 중앙일보는 작심하고 한국의 독자적 핵무장을 주창하고 나섰다. 배명복 대기자는 ‘핵 균형을 통한 한반도 평화’라는 제하의 칼럼에서 “마음만 먹으면 한국이 짧게는 6~8개월 내 핵무장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남정호 논설위원도 ‘플랜 B, 한국의 핵무장은?’이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핵무장은 다른 안보 방안보다 훨씬 싸게 먹힌다.”며, “핵무기 개발도 1조원이면 너끈하다”고 주장했다. 이 두 사람의 주장을 합치면 ‘한국이 마음만 먹으면 6~8개월 내에 1조원을 들여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유력 매체와 국내외 일부 전문가들의 이러한 주장은 국민들에게 한국의 핵무장에 대한 환상을 키워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몇 가지 중요한 문제점들이 내포되어 있다. 우선 사용후 연료에서 플루토늄을 대량으로 추출하려면 대규모 재처리 시설이 필요하다. 한국이 재처리와 관련한 연구개발 기술을 일정 정도 축적했지만, 아직 상용화해본 경험은 없다. 또한 북한 영변의 재처리 공장과 일본 도카이무라 재처리 공장의 연간 플루토늄 생산량이 20kg 정도라는 점에서 한국이 연간 수백kg의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는 재처리 공장을 짓기 위해서는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될 수밖에 없다.

일례로 일본의 로카쇼무라 재처리 시설 사례를 살펴보자. 이 시설은 당초 1993년에 착공돼 1997년에 완공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연기를 거듭한 끝에 완공 시점은 2021년으로 미뤄졌다. 이때 가서 가동될지도 불확실한 상황이다. 돈도 엄청 소요되고 있다. 1993년부터 2011년까지 무려 275억 달러, 한화로는 30조원이 넘는 비용이 쓰였다. 또한 2012년부터 완공 때까지도 10조원 안팎이 족히 들어갈 것이다. 일본은 소규모의 재처리 시설을 짓고 가동해본 경험이 있는 나라이다. 그런데 이러한 경험이 없는 한국이 일본보다 빠른 시일 내에 작은 돈을 들여 대규모의 재처리 시설을 짓는 것이 가능할까? 또한 플루토늄을 확보해 핵무기를 만들려면 핵탄두 연구·개발 및 제조 시설이 필수적이다. 이들 시설을 만드는 데에도 상당한 돈과 시간이 필요하다. ‘6~8개월 내에 1조원을 들여 핵무기를 만들 수 있다’는 주장은 소설 속에서나 가능한 것이다.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경로인 우라늄 농축은 어떨까? 서균렬은 레이저 농축 방식으로 빠른 시일 내에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상용화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일부 국가에서 레이저 농축으로 핵연료 생산을 시도하고 있지만, 여전히 대세는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우라늄 농축이다. 핵심적인 이유는 레이저 농축 기술이 우라늄의 농축 속도를 높일 수는 있지만, 많은 양을 생산하기 어렵다는 점에 있다. 한마디로 원심분리기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우라늄 농축 방식의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농도 90% 이상의 고농축 우라늄을 만들려면 상당량의 우라늄이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는 순간, 국제사회에서 가장 먼저 취할 조치가 바로 우라늄 금수조치이다.

한국이 핵실험 없이도 핵무기 제조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검증되지 않은 것이다. 슈퍼컴퓨터를 이용한 모의 핵실험은 실제 핵실험을 통해 다량의 데이터를 확보한 이후에나 가능하다. 세계 최대의 핵실험 데이터를 보유한 미국조차도 핵무기의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실제 핵실험의 문을 닫아서는 안 된다며, 포괄핵실험금지조약(CTBT) 비준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다. 핵실험 경험도 일체 없고 관련 데이터도 전무한 한국이 과연 ‘실험 없는 핵무기’를 만들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더구나 현대식 핵무기는 탄도미사일에 장착할 수 있는 소형화가 필수적이고, 소형화는 실험을 통한 데이터 축적이 전제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무기로서의 신뢰성을 확보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도 커다란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미국이 한국의 사용후 연료의 형질 변경, 즉 재처리 시설 보유에 동의해줄 가능성도 극히 낮지만, 설사 미국이 동의해주더라도 문제가 따른다. 재처리 공장은 으뜸가는 위험 시설이다. 재처리 대상인 사용후 연료와 재처리 결과물인 플루토늄 및 잔여 고준위 폐기물에는 엄청난 양의 방사능 물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사고 발생이나 피격시 대재앙이 일어날 수 있다. 해당 지역 주민들과 환경 단체들의 격렬한 반발을 야기해 입지 선정부터 상당한 진통이 따를 것임을 예고해주는 대목이다. 또한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뢰성 높은 핵무기를 만들기 위해서는 핵실험이 필요하다. 과연 좁은 영토에 5천만 명이 모여 사는 대한민국에서 지하 핵실험장을 건설하고 실제로 핵실험을 할 수 있을까?

물론 한국이 국가적 차원에서 결단을 내리고 총력을 기울이면 핵무기를 만드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런데 더 심각한 난관이 도사리고 있다. 한국이 갈수록 촘촘해지고 있는 국제 비확산체제를 뚫고 핵보유 문턱을 넘어서려다간 그 문턱이 걸려 넘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은 핵확산금지조약(NPT) 회원국이자 IAEA의 상시 감시를 받고 있다. 몰래 핵무기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려면 북한처럼 NPT와 IAEA를 탈퇴하고 사찰단을 추방해야 한다. 한국이 이렇게 하면 어떻게 될까?

우선 유엔 안보리 회부가 불가피해진다. ‘NPT를 탈퇴할 경우 안보리 차원에서 다룬다.’는 국제적 공감대가 이미 형성되어 있기 때문이다. 유엔 안보리의 한국에 대한 제재는 한국의 핵무기 수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일단 우라늄 금수 조치가 바로 내려질 것이다. 이에 따라 비축해놓은 핵연료가 떨어지면 ‘원전 제로’를 강요받을 처지에 몰릴 수밖에 없고, 이는 곧 전력 대란과 의료 대란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고집을 꺾지 않으면, 국제사회의 경제제재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국제사회의 수출 통제 품목은 핵과 미사일, 그리고 생화학무기 등으로 전용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공산품을 포괄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무역의존도는 85%에 이른다. 국제 금융시장과 신용평가사의 움직임에도 대단히 민감하다. 수출입 급락과 신용 폭락 및 금융시장 대혼란이 일어나면서 우리 경제를 초토화시키게 될 것이다.

혹자들은 그래도 “경제보다는 안보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 국민들이 북한처럼 허리띠를 졸라매고 핵무기를 손에 넣으면 안보에라도 도움이 되는 것일까? 그렇지 못하다. 우선 한미동맹이 위기에 처할 것이다.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은 미국 핵우산에 대한 불신의 다른 표현이다. 한미동맹은 한국의 독자적인 핵무장 포기와 미국 핵우산 제공의 사이의 교환이다. 이에 따라 한국이 핵무장을 추진하면 주한미군의 철수 및 한미동맹의 파기까지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물론 주한미군 철수 및 한미동맹 파기는 미국의 손쉬운 선택지가 아니다. 반면 미국을 믿지 못하니까 핵무기를 갖겠다는 한국을 방치할 경우 미국의 세계 전략은 치명타를 입게 된다. 그래서 미국은 한국의 핵무장 추진시 초장에 기를 꺾어놓으려고 할 것이다. 그래도 한국이 핵무장을 고집하면 한미동맹에 일대 파란은 불가피해진다. 과연 독자적인 핵무장이 한미동맹과 맞바꿀 정도의 안보적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드는 까닭이다.


3. ‘문 뒤의 총’이 문 앞에 오면

“문 뒤의 총”은 2차 세계대전 말엽에 원자폭탄을 손에 쥔 미국의 국무장관 제임스 번스가 쓴 표현이다. 그는 핵무기를 이렇게 부르면서 “소련을 다루기 쉬워졌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미국은 소련의 대일 선전포고가 예정되었던 1945년 8월 15일에 앞서 “문 뒤의 총”을 문 앞에 갖다 놓기로 했다. 8월 6일과 9일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폭탄을 투하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교전국이었던 일본은 물론이고 연합군의 일원이자 경쟁국으로 떠오른 소련을 상대로 한 무력시위의 성격이 짙은 것이었다. 그러자 미국이 다루기 쉬워질 것으로 믿었던 소련도 결심했다. 스탈린이 소련 과학자들에게 핵무기를 최대한 빨리 만들라고 지시한 것이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 전망이 불투명해지면서 국내외 일각에서도 “문 뒤의 총”을 문 앞에 갖다 두어야 한다는 주장이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한국이 핵무장 카드를 지렛대로 삼아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이끌어내자는 주장이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다. 이들은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가 이뤄지면 “북한의 일방적 핵보유로 인한 전략적 불균형이 상당 부분 해소”되고, “남북 간 ‘공포의 균형’이 성립됨으로써 ‘이성적 판단에 의한 전면전쟁’의 위험성이 소멸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태평양 건너의 전략핵보다는 현장의 전술핵이 더욱 강한 사용 의지를 대변하기 때문에 더 큰 억제력을 발휘한다.”고 주장한다.

전술핵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때는 2017년 5월대선 때부터였다. 자유한국당의 홍준표 후보는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대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그는 대선 패배 이후에도 ‘전술핵 전도사’를 자처하고 나섰다. 홍준표가 대표로 있던 자유한국당은 2017년 추석 연휴에 전국 방방곳곳에 “5천만 핵인질, 전술핵 재배치 꼭 필요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었다. 또한 홍준표는 미국을 방문해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를 강력히 요구했고, 자유한국당은 1천만 국민 서명운동에 돌입하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미국이 한국에 배치할 수 있는 전술핵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렇다면 앞으로는 어떨까? 이는 한미 양국 정부의 정책과 양국의 여론, 미국의 한국 내 배치 가능한 전술핵의 보유 여부, 북핵 상황, 중국과 러시아의 입장 등이 맞물린 고차방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북핵 문제 해결에 진전이 없거나 상황이 악화되면, 국내 보수 진영에선 전술핵 재배치 주장을 강하게 들고 나올 것이다. 이에 반해 문재인 정부는 전술핵 재배치를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줄곧 밝혀왔다. 이에 따라 2022년 5월 한국 대선에선 이 문제가 핵심 쟁점으로 부상할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도 한국에 전술핵 재배치를 공개적으로 거론한 적은 없다. 다만 그 가능성을 전적으로 배제한 것은 아니다. 2018년 핵태세 검토(NPR) 보고서에선 “필요할 경우, 미국은 동북아 지역에도 비전략 핵무기와 그 운반 수단을 배치할 능력을 갖고 있다”고 밝힌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목할 점은 미국이 조만간 신형 전술핵인 ‘B61-12’을 갖게 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미국이 “스마트 핵무기”로 부르는 B61-12는 주로 적대국의 핵무기 보유고와 같은 주요 군사 시설, 특히 지하 요새를 타격하기 위한 목적을 띠고 있다. 이를 위해 정밀유도 장치를 달아 정확도는 크게 높이는 대신에 폭발력은 크게 낮추는 방향으로 개발되고 있다. 이 무기는 미국의 현존 전략폭격기인 B-2A와 현재 개발 중인 B-21, 그리고 이중 능력 전투기(dual-capable aircraft)인 F-15E와 F-35 등에 장착될 수 있다. 미국은 B61-12를 2025년까지 400-500개를 생산한다는 계획이다. 이렇게 될 경우 미국은 전술핵을 한국에 배치할 여력을 갖게 된다.

그렇다면 미국이 전술핵이 들어오면, 한국의 안보는 더욱 튼튼해질 수 있을까? 폭발력을 300톤(히로시마에 투하된 핵폭탄의 50분 1)까지 낮출 수 있는 B61-12가 실제로 만들어지면, 이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핵무기’가 될 것이다. 하지만 이 소형 핵무기가 품고 있는 위험성은 가장 거대하다. 비핵 전쟁과 핵전쟁의 경계를 더욱 흐리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이건 공격하는 쪽이나 공격 받는 쪽 모두에 해당된다. 공격자 입장에서는 “스마트 핵폭탄”이 대량살상을 야기하지 않고도 지하 시설 파괴와 같은 군사적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고 여길 수 있다. 그만큼 핵무기 사용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 반면 피격자 입장에서는 미국이 핵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여길 수 있다. 그만큼 피격자의 핵보복의 문턱이 낮아질 수 있다.

한반도는 세계 최대의 군사력 밀집 지역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국의 전술핵까지 들어오면 위기관리가 대단히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가령 미국의 전술핵이 배치된 상황에서 미군 전투기가 이륙하면 북한은 이를 자신에 대한 핵 공격 신호로 간주하고 핵 보복 태세에 돌입하게 될 것이다. 핵전쟁을 억제하겠다고 ‘문 뒤의 총’을 문 앞에 갖다 놓으면 오히려 핵전쟁의 위험이 커지게 되는 셈이다.

유념할 점은 또 있다. 전술핵 옵션은 한미동맹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향후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 가운데 하나는 북한이 한미동맹에 대한 군사적 열세를 만회하고자 전술핵 개발·배치에 나서는 것이다. 북한이 2019년에 집중적으로 선보인, ‘신종 단거리 발사체 4종 세트’ 일부에 소형 핵폭탄을 장착하는 것이 이에 해당된다. 극심한 경제난에 처한 북한으로서는 이것이 가성비가 뛰어난 방식이라고 여길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특히 이러한 시나리오는 미국의 중거리 미사일이나 전술핵 재배치가 가시화될 때 나타날 수 있다. 냉전 시대에 미국이 공산권과의 재래식 군사력 열세를 만회하기 위해 전술핵을 전진 배치한 사례나 파키스탄이 인도의 월등한 군사력에 대응하기 위해 전술핵을 개발·배치한 사례에서 이러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전술핵이 한미동맹에게 대북 억제를 위한 현명한 선택이 아니듯이 북한 역시 전술핵에 손을 대서는 안 된다. 상기한 위험성으로부터 북한 역시, 아니 북한이 훨씬 더 불안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한미 양국 역시 과도한 수준의 한반도 군사력 증강을 자제함으로써 북한에 전술핵 개발의 빌미를 주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지금은 하루속이 북핵 동결부터 이뤄내야 한다. 북한의 추가적인 핵물질 생산을 차단하면 북한의 추가적인 핵무기 생산, 특히 전술핵 보유라는 악몽은 막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4. 핵은 ‘만능의 무기’가 아니라네

지구상에 북핵을 과대평가하는 집단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하나는 핵무기를 “만능의 보검”이라고 자랑해온 북한 정권이고, 또 하나는 북핵을 “게임 체인저”로 규정하는 국내외 일부 보수 세력이다. 핵이 북한에게 “만능의 보검”이 될 수 없다는 점은 자명해졌다. 김정은 정권은 2013년 “경제건설과 핵무력건설 병진노선”을 채택하면서 핵보유를 통해 재래식 군비 부담을 줄이고 이를 경제발전과 인민생활의 향상에 쓸 수 있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국가 핵무력 완성”을 향한 질주가 역사상 가장 강력한 경제 제재를 유발하면서 북한 경제는 하락세로 접어들었다. 미국과 “힘의 균형”을 이뤄 담판을 지을 수 있을 것으로 믿었지만, 이 역시도 아직까진 희망사항에 머물러 있다.

국내외 보수세력 일부가 북핵을 “게임 체인저”로 규정하는 것도 과도한 것이다. 이들은 “이제 북핵의 노예로 사느냐, 죽느냐는 양자택일만 남았다”는 극단적인 언어를 동원해 강력한 대응을 주문한다. 심지어 북한이 미국 본토에 대한 핵 공격 위협을 가하면서 미국의 개입을 저지하고는 적화통일을 추구할 것이라는 주장까지 내놓는다. “미국이 서울을 구하기 위해 LA나 샌프란시스코의 희생을 감수하겠느냐”며 대한민국의 종말이 시시각각 다가오는 것처럼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두려움이 현실화될 가능성은 없다. 과도한 피해망상은 우리 자신을 피폐하게 만들 수 있기 때문에 보다 냉정하고 정확하게 상황을 볼 필요가 있다.

우선 핵무기와 관련된 역사적인 사례들을 살펴보면, 핵은 결코 ‘만능의 무기’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 최초의, 그리고 최강의 핵보유국인 미국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핵무기의 위력을 믿고 1949년에 주한미군 대부분을 철수시켰지만, 북한의 전면 남침을 막지 못했다. 미국 주도의 유엔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한 직후에 북진통일을 감행한 데에도 핵무기의 위력에 대한 과신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북진 통일 추진시 중국의 참전으로 확전이 될 것이라는 경고가 있었지만, 당시 비핵국가였던 중국이 세계 최강의 핵보유국인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택하지 못할 것이라며 북진을 강행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를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미국이 굴욕적인 패배를 경험한 베트남 전쟁의 사례는 더욱 극적이다. “베트남이 공산화되면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것”이라는 과대망상에 휩싸인 미국은 북베트남과의 전쟁을 선택했다. 북베트남의 강력한 저항에 고전하던 미국은 핵위협을 극도로 높이면서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전쟁을 종결시키려고 했다. 그러나 북베트남의 지도부는 미국의 핵위협에 더더욱 결사 항전의 의지로 맞섰고, 미국은 불명예를 안고 퇴각했다.

21세기 들어서도 미국의 고전은 계속되었다. 아프가니스탄,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 등을 상대로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것이다. 미국뿐만이 아니다. 소련은 1960년대 들어 중소분쟁이 격화되면서 중국을 상대로 핵위협을 가했지만, 오히려 1969년 3월에 우수리강에서 중국군의 기습 공격을 당해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소련은 1979년에는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지만, 전쟁의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고선 1980년대 말에 철수했다. 그리고 아프간 침공은 소련 몰락의 하나의 원인으로 지목될 정도로 그 후유증이 컸다. 프랑스는 1960년에 핵실험에 성공해 핵보유국 되었지만, 식민지로 두고 있었던 아프리카 여러 나라들의 독립전쟁에서 패배했다. 이처럼 핵 강대국들에게 핵무기가 결코 만능의 무기가 아니었다면, 이들 나라보다 훨씬 약한 북한에게도 결코 예외일 수는 없다.

북한이 핵을 앞세워 한반도를 공산화할 수 없는 현실적인 이유들은 또 있다. 국내 일각에선 미국의 핵우산을 비롯한 안보 공약을 의심하지만, 이는 미국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하는 걱정이다. 미국은 자신을 절멸시킬 수 있는 소련(현재는 러시아)을 상대로도 동맹국들을 향해 핵우산을 넓게 펼쳐왔다. 그런데 미국이 한줌밖에 안 되는 북한의 핵위협이 두려워 한국을 향해 핵우산을 펼치길 주저할까? 오히려 북한이 핵위협을 앞세워 남침을 시도할 경우 미국은 더욱 강력한 보복 의지를 과시하지 않을까? 미국의 핵우산 정책은 비단 한미동맹 차원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동맹의 핵심은 신뢰이다. 그래서 만약 미국이 북한의 핵위협에 굴복한다면 그 파장은 미국 동맹국들 전체로 퍼질 수밖에 없다. 세계 전략의 핵심인 동맹의 기초를 허무는 선택을 미국이 할 리가 만무하다는 것이다.

또한 북한의 6.25 남침은 소련과 중국의 승인 및 지원이 결정적인 배경이었다. 그런데 한국은 1990년에는 러시아와, 1992년에는 중국과 수교를 맺었다. 중국은 한국의 최대 교역국이고 러시아는 11번째이다. 한국에는 중국인들이 수십만명 체류하고 있고 매년 수백만명이 방문한다. 또한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다. 이러한 상황들을 종합해보면, 중국과 러시아의 선택은 자명해진다. 핵을 앞세운 북한의 남침을 지지·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북한이 아예 이런 생각도 못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한국의 국력이 북한을 압도하고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한국의 경제력은 북한보다 50배 정도 강하고, 국방비도 북한보다 30배 정도 많이 쓰고 있다. 외국의 한 연구기관은 2018년과 2019년에 한국의 군사력을 세계 7위로, 북한은 18위로 평가하기도 했다. 더구나 한국은 미국과 연합전력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각종 정보 자산은 북한의 움직임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있어 6.25 때처럼 북한의 기습 남침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이에 따라 북한이 한반도 공산화 전쟁을 시도했다가는 괴멸당하는 쪽은 한국이 아니라 북한이 되고 말 것이다. 북한이 살아남기 위해 만들었다는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북한 체제는 사라지게 될 것이다.

북한이 적화통일 시도까지는 아니더라도 핵을 공갈·협박의 수단으로 삼아 남한을 길들일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된다. 이른바 “북핵 인질론”이다. 그러나 이 역시 ‘가짜 공포’에 가깝다. 북한이 대북 지원을 해주지 않으면 한국에 핵 협박을 할 것이라는 걱정이 있었지만, 오히려 상황은 거꾸로 전개되었다. 문재인 정부가 주겠다는 5만톤의 쌀도 거부한 것이다. 또한 북한은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단 재개를 희망했지만, 이것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핵 위협을 가한 사례 자체도 없다. 북한이 핵을 보유했다고 해서 하늘이 무너진 것도, “게임 체인저”라고 부를 정도로 엄청난 상황 변화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북한은 그것이 억제용이든, 협상용이든 살아남기 위해 핵무기를 만들었다. 반면 그 핵무기를 사용하는 순간 종말을 피할 수 없다. 미국의 저명한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자인 스테판 월트는 “위협을 과장하는 사람들은 (김정은과 같은) 핵 깡패들은 억제가 불가능하고 방사능 홀로코스트를 일으켜 자살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주장하지만” “그들은 자기 보존이라는 본능에 매우 충실하다”고 일갈한다. 제임스 클래퍼 미국 국가정보국(DNI)조차도 “북한 지도부는 재래식 군사력의 결핍 때문에 (핵무장을 통한) 억제와 방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며, “결정적인 군사적 패배의 순간이 오지 않는 한” 핵무기를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봤다. 그의 후임자인 댄 코츠는 “김정은이 매우 특이한 타입이지만, 미친 것은 아니다”며, “그의 행동은 정권 및 국가의 생존을 위한 합리적 사고에 기반한 것”이라고도 했다.

이들의 지적처럼 핵무기는 근본적으로 억제용이다. 상대방에게 가공할 보복 능력을 과시함으로써 상대방의 공격을 억제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이는 곧 핵무기가 실제로 사용되면 그 가치는 실종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실제로 핵보유국이 다른 나라의 침공을 받은 사례는 없다. 거꾸로 1945년 미국이 일본을 상대로 핵폭탄을 떨어뜨린 이후로 핵무기가 사용된 사례도 없다. 하여 북핵에 대한 과도한 피해망상은 우리를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병들게 만든다. 많은 이들은 유비무환의 정신을 강조한다. 그런데 한국은 엄청난 예산을 쏟아 부어 유비무환을 해왔다. 문재인 정부도 강조한 것처럼 세계 7위의 군사대국이 되었고, 세계 최강의 미국과 동맹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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