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역사교사모임(이하 전역모)을 알게 된 것은 꽤 되었다. 학부생 시절 지도교수님으로부터 수업의 혁신과 역사교육의 방향을 고민하는 단체가 있다는 소개로 처음 접하고, 이후에도 전역모 활동에 참여하고자 하는 열망에 휩싸여 있었다. 내가 역사교사가 된다면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수업 활동지도 만들어보고, 역사교육은 어떠해야 할지에 대해 심도 있는 이야기도 나눠보고자 다짐했었다. 그러나 임용의 길은 쉽지 않았고, 기간제로서 일을 시작하게 된 후에도 업무에 치이고 학급 경영에 치이면서 전역모 활동은 꿈도 못 꿨었다. 하지만 계속 눈팅(?)만 하다가는 영영 기회가 안 올 것 같아서, 자주연수 일정이 안내되자마자 서둘러 신청해 참가하게 되었다.
첫째 날 : 가슴을 울렸던 밀양의 첫인상
KTX를 타고 내린 밀양역은 한적한 시골동네 같았다. 하지만 연수의 첫 장소이자 집결지였던 밀양 독립운동기념관은 수많은 독립운동가들을 길러낸 밀양답게 여러 익숙한 분들을 소개하고 있었다. 직업은 못 속인다고, 전시를 보는 와중에도 “이건 수업자료로 써야해!”라며 연신 카메라를 켜시는 선생님들의 모습은 자연스러운 풍경이었다.
간단한 개관을 마치고 이동한 봉하마을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사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안타까운 소식을 접한 때는 내가 중학생이어서일까, 그가 우리 모두에게 주는 상징적인 의미는 알고 있음에도 나 스스로에게 마음 깊이 다가오는 경험이라고 느끼지는 못했었다. 그러나 묘역을 한번 주욱 돌아보고 그의 행적을 되짚어보며 그를 기억하는 여러 시민들의 마음을 직접 접하고 나니,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노무현이라는 사람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어쩌면 강금원기념 봉하연수원 그 장소에 담긴 정신에서 영향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저녁에는 밀양송전탑 투쟁 이야기를 듣는 토크쇼가 이어졌다. 개인적으로는 교지편집위원회로서 취재차 참여한 메이데이 집회에서 밀양 송전탑 사건과 희망버스 이야기를 처음 접했었다. 학부 1학년때 선배들을 따라 뭣도 모르고 참여한 터라 안타까운 일이겠거니 하고 넘겼었는데, 이번 겨울자주연수 코스에 할매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을 수 있다는 소식에 더욱 기대감이 높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송전탑을 둘러싼 밀양 할매들의 고군분투가 담긴 영상들을 보고, 그 속에서 힘겹게 싸움을 이어나가온 할매들의 담담하면서도 울분에 차 있는 목소리를 듣다 보니 눈시울이 붉어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단순한 님비 현상으로서 치부되는 사건이 아니라 공권력에 의해 억눌려온 소수자의 힘겨운 투쟁으로서 기억하고 수업 속에 녹여내는 것이 우리 교사들이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싶다.
둘째 날 : 흥미로운 경남의 이모저모
만 마리의 물고기가 변해서 돌이 되었다는 만어사가 둘째 날 첫 코스였다. 영화 <봉오동전투>에서 류준열이 열심히 도망다니던 곳으로 사람들에게 많이 기억되는 것 같던데, 이렇게 방문해보니 새로웠다. 바위들을 두드리니 정말 맑은 쇳소리가 나는 것도 재미있었다. 만어사로 체험학습을 오게 된다면 역사적 배경 탐구와 함께 지질학적 연구를 해보는 교과간 융합교육으로 발전시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들었다ㅋㅋ
다음으로 향했던 작원관지는 ‘잔도 하나 보러 이렇게 걸어야 하나?’ 싶은 마음이 처음에 살짝 들긴 했었다:) 하지만 ‘조선판 300의 현장’이라는 타이틀로 설명을 맛깔나게 해주셔서 그 의미를 더욱 느낄 수 있었다. 또한 숙박소이자 검문소로서 역할했던 작원관의 옛 기능을 듣자 조금이지만 남아있던 잔도의 모습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었다.
세 번째 코스 표충비는 이번 자주연수에 대한 기대감을 한껏 높였던 답사지 중 하나였다. (경남 쌤들의 홍보가 잘 먹혀들어갔다는 증거 1인입니다^^) 국가의 환난 때마다 땀이 흐르는 비석이 있다니, 이런 초자연적 현상을 접하고 나니 호기심을 감출 수 없었다. 물론 표충비가 땀을 흘렸다는 날의 목록을 보고 나니 어딘가 끼워맞춘 것 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지만, 사명대사 유정의 영검으로서 밀양 사람들에게 신성시되어온 역사적 유물이라는 가치는 충분하다고 느꼈다.
표충사를 지나 산길을 헤쳐 갔던 신영복 묘소는 매우 인상적이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으로 접했던 신영복 선생님이었는데, 묘지석 둘레로 여러 조약돌들이 방명록처럼 놓여 있는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여러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던 선생님의 생전 인기를 자랑하듯 둘러싸고 있는 돌들의 무게가, 지금 우리는 사람으로서 사람과 어우러져 잘 살아가고 있는지 묻는 듯해 무겁게 다가왔다.
셋째 날 : 구국의 움직임은 한 곳에서
셋째 날 코스들은 주로 밀양의 시내 한복판에 모여있었다. 발제를 맡으신 쌤들의 말마따나, 너 나 할 것 없이 독립운동에 다같이 뛰어들었던 밀양 특유의 의열투쟁이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특히 의열기념관으로 향하던 천변가에는 태극기와 벽화로 꾸며진 해천항일운동 테마거리가 조성되어 있어 분위기를 더해주었다. 한편으로는 버스가 지나다니는 시내 한복판에서 약 50명이 모여 이동하면서 발제를 듣고 있으니, 주변 시민들이 호기심 어린 시선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의열기념관, 해천항일운동 테마거리, 의열기념관 전시 中
의열기념관은 김원봉 생가터에 지어졌으며 ‘의열’을 주제로 한 전국 최초의 기념관이라고 한다. 그 명성에 걸맞게 김원봉과 의열단 외에도 수십 건의 의열투쟁 활동을 중심으로 전시가 구성되어 있었다. 사실 학교에서 독립운동사를 가르치다 보면 너무 많은 인물과 활동에 묻혀 정작 그들의 신념과 의지는 주목받지 못하는 느낌이 아쉬웠었는데, 기념관에서는 인물 개개인의 정신을 잘 드러내는 문구가 강조되어 있어 인상 깊었다.
기념관을 나와서는 얼마 걷지 않아 밀양의 랜드마크라고 불리는 영남루로 향했다. 남천강이 내려다보이는 절경 속에서 듣는 발제는, 마치 내가 시사대회에 참여한 양반이 된 듯한 분위기를 선사했다. 무엇보다도 영남루 안에 걸린 여러 편액의 역사, 밀양 아리랑의 기원이 되었다는 아랑낭자 이야기 등의 발제들이 이어져서 역덕들의 흥미를 자극했다. 게다가 영남루에서 만날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밀양 친일파들의 이야기가 화룡점정이었다. 앞서 오전에는 의열투쟁의 본거지로서 밀양을 느끼고 있었는데, 박춘금과 박시춘 등 사회적·문화적으로 널리(?) 활동했던 친일파들의 행적을 눈으로 보고 나니, 일제강점기 혼란했던 민족의 분열상이 이곳에서조차 나타났다는 생각이 들어 복잡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오후에는 황상규와 박차정의 묘소를 방문하여 이들의 활동을 되짚어보는 시간을 가졌다. 대부분의 선생님이 그러했듯 나 또한 황상규라는 이름을 처음 들었던 것이 사실이다. 발제를 듣고 나니 국내외 여러 독립운동기지를 조직하고 이끄는 데 앞장섰던 분이었음에도 알지 못했던 것이 마음에 남았다. 다음으로 향한 박차정 묘소 또한 그 상태를 보아하니 이들에 대한 관심도 아직은 미비한 것 같아 아쉬웠다. 게다가 주로 김원봉의 처로 기억될 뿐 그녀의 열정적인 독립운동가로서의 삶과 여성 해방을 위한 노력들은 주목받지 못하는 현실에서, 앞으로 우리가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고 느꼈다.
하지만 그때 선생님들이 감탄사를 연발하며 카메라를 꺼내게 했던 것은, 박차정의 묘소로 가던 길에 놓인 팻말들이었다. 아이들의 작품으로 보이는 이 깜찍한 팻말들을 보니, 우리 역사 교사들이 밀양에서 보고 느낀 것들을 앞으로 어떻게 수업에 녹여내야 할지 생각해야 할 과제를 얻어가게 된 것 같았다.
든든한 역사교육의 공동체를 느끼다
자주연수에 자주 참여하신 분들은 이쯤에서 눈치채셨을 것 같다. 앞서 이야기한 후기에는 가장 큰 일정이 빠져있다는 것을. 바로 참가자 소개와 역사교사의 밤이다:) 지인을 통해 들은 바에 의하면 제일 비현실적인 일정이 참가자 소개에 할당된 시간이라더니(답사집에 의하면 70분으로 잡혀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두시간은 금방 넘겼다. 교육청 연수 가면 대부분 어느 학교 누구라고만 소개하던데, 각자 5분을 훌쩍 넘기시며 화려한 입담을 자랑하시는 여러 선생님들 덕분에 계속 웃을 수 있었다. 모두에게 진심어린 격려의 박수를 받으신 백옥진 회장님과 함께한 역사교사의 밤도 즐거운 시간이었음은 당연하다.
첫째 날 일정부터 되짚어보며 계속 언급하고 싶었음에도 지금 이 단락에서 몰아 소개하는 이유는, 그만큼 내가 이 일정을 기대했었고 그만큼 행복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앞서 있었던 여러 자주연수와 전역모 행사들에 대한 여러 선생님들의 후기를 SNS와 지인들을 통해 많이 접했었다. 그때마다 참가하신 선생님들의 즐거운 모습과 끈끈한 동료애(?)같은 분위기가 느껴져서 정말 부러웠고, 나아가 나도 언젠가 꼭 저 자리에 함께하리라 다짐하기도 했었다. 그래서 결국 경남자주연수에 참여하게 되었고, 여러 선생님들과 함께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친목을 다지며 역사교사로서 같은 고민을 나누었던 이 시간들이 너무나 소중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후기를 통해 저를 따뜻하게 맞아주신 선생님들께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경남 답사를 준비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정말 많은 부분들을 고민하고 노력하신 흔적들이 보였다. 단순하게는 숙소와 식사부터 시작해서 중간에 카페 발제라든지, 답사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로 코스를 준비하신 점이라든지… 한 명의 참가자로서 덕분에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고 가는 것 같아 감사했다.
지금까지 이리저리 업무에 치이고 학급경영에 치이던 나에게 역사 수업이란, 이 힘든 학교 속에서 유일한 탈출구였다. 그래서 이 행복한 시간을 어떻게 하면 아이들에게도 더욱 의미있는 시간으로 만들 수 있을지 고민했었고, 이때 전역모 홈페이지 속 선배 교사들의 역사적 고민을 담은 많은 수업자료들이 나에게 큰 도움이 되어주었다. 나아가 여러 선생님들과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에 자주연수에 참여하게 되었고, 실제로 경남에서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고 돌아와 지금은 또 열심히 학교에서 성장하고자 애쓰는 교사로 살아가고 있다. 역사교사 공동체로서 함께했던 소중한 경험을 갖게 해준 이번 경남 답사는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마지막으로, 일제의 7년형 선고에 대항하여 외친 윤세주의 말을 자연스럽게 바꾸어 우리에게 큰 감동을 주었던 한 선생님의 말을 인용하면서 마무리하고자 한다.
“우리의 경남 밀양 답사는 불행히도 끝나가고 있지만, 아직 올해 여름 그리고 앞으로 오지 않은 많은 시간 속에서 새로운 답사를 준비하고 계신 전국역사교사모임 선생님들이 도처에 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