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면을 통해 알아가는 유니테 다비타시옹
본격적인 유니테 다비타시옹에 관한 경험글을 작성 전에 유니테 다비타시옹에 대한 나의 기억과 인상을 적어본다. 사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첫 만남은 2년 전쯤이었다. 그땐 건축 기행으로 학부 2학년 마치고 왔었고 내외부를 전부 경험했었다.
하지만 이번엔 내부를 경험해보지 못해 외관만 경험했다는 점. 피흐미니 유니테 다비타시옹 사진은 외관만 있다는 점을 이해하고 글을 읽길 바란다. 그리고 무엇보다 2년 전, 11월 그리고 르꼬르뷔지에와 김종성 사진 전시까지 맞물려서 유니테를 여러 번 접했다. 거기서 깨달은 점은 글 마지막 부분에 작성하겠다.
유니테 다비타시옹(Unite dHabitation)_Le Corbusier
이번에 방문한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프랑스 피흐미니 브휴노 공원 언덕에 위치한 건물이다. 코르뷔에게 처음 맡겨진 고층 집합주거인 유니테는 코르뷔가 60세 전후에 설계한 건물이다. 코르뷔는 설계 당시 다복합적인 문화시설과 주거가 결합된 집합주거를 상상했다.
당시 코르뷔가 제안한 휴먼스케일인 모듈러를 적용한 건물로 본 건물을 설계 후 사람이 손을 들어 올렸을 때 높이인 226cm로 기존 모듈러를 수정한 모듈러 2를 제안했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최초 건물은 피흐미니가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주택난을 겪은 사람들을 위해 1952년 마르세유에 처음으로 지어진 이후 여러 도시들에 들어섰다. 당시 방문한 피흐미니 건물은 학교와 주거 기능만 가지고 있고 현재는 학교 기능은 사용되지 않고 있었다. 건물을 하나의 도시로 만들겠다는 코르뷔의 생각들은 현재는 기능하지 않은 듯하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첫인상은 당연하게 현대 주상복합과 아파트의 건물과 그 형태와 분위기는 유사했다. 코르뷔의 5원칙 중 하나인 필로티가 강렬한 기둥들로 이루어진 저층부는 건물을 가볍게 띄우는 역할을 한다.
본 건물은 코르뷔의 초기 저서인 '오늘의 장식예술'과 '건축을 향하여'에서 배를 '기능에 의해 정제된 가장 아름다운 기계적 형태'로 찬양했다. 선박은 공간 배치, 주거 기능, 순환 동선, 구조, 기계 장비 등 고도로 합리화된 '기계식 주거'의 이상적 모델로 보고 이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모티브가 되었다.
내가 방문한 코르뷔의 건물들은 대부분 언덕 위를 올라 홀로 서 있는 건물을 마주한다. 마치 언덕 위의 커다란 배와 같은 느낌을 준다. 땅에 육중하게 뿌리를 내린 기둥들 또한 거대한 배와 같은 인상을 준다. 배의 순수한 기능과 형태에 영감을 받아 설계한 건물들을 경험하다 보면 그 개념들을 떠오를 수 있는 재밌는 디테일 요소들이 여러 곳 존재한다.
그 시대에 재즈가 흘러나오는 크루즈와 같은 모습을 자아낸다. 복층 단위세대의 내부 주거 유닛들을 예측할 수 없는 입면을 가지고 있다. 주거공간을 하나로 연결해 주는 계단실 공간과 공용공간은 입면에서도 예측가능하다.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1층 로비는 롱샹성당을 떠올리는 다양한 크기의 창들이 눈에 들어온다. 내부에선 다양한 풍경들과 빛들을 로비로 끌어들인다. 유니테뿐만 아닌 라뚜레트에서도 볼 수 있는 발코니형태는 건물 외부에 붙인듯한 인상을 주며 외부로 돌출되어 있다. 지상층을 연결해 주는 필로티 기둥은 지루할 틈이 없이 형태를 바꿔가며 나열하고 있다.
슬라브의 띠뿐만 아닌 난간을 이루는 띠, 복층을 따라 연결되는 입면 선들은 내부를 상상하지 못하는 입면을 자아낸다. 피흐미니의 난간은 철로 끼워져 있었다. 재료를 건물마다 다르게 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마르세유의 건물은 석재로 구멍이 정교하게 뚫린 난간에 빛이 리듬감 있게 들어오는 걸 확인할 수 있다.
Unite dHabitation of Berlin
피흐미니의 유니테 다비타시옹과 연결하여 베를린 유니테 다비타시옹으로 넘어온다. 피흐미니에 비해 입면에 색채감이 더 화려하고 지상층의 세탁실과 작업실 등 다양한 문화시설들이 추가로 건설된 듯하다. 피흐미니와 다르게 난간은 석재로 이루어져 있었다. 입면의 수직 루버들은 내부의 리테일 층을 나타낸다. 공용부에 리듬감 있는 빛이 어떻게 들어올지 궁금하다.
모든 유니테 다비타시옹의 외관은 코르뷔의 모듈러와 그 외 것들이 조각되어 있다. 조각들은 코르뷔의 생각에 들어온 것만 같다. 회화에서 주로 영향을 받은 코르뷔는 자유로운 하늘과 생명과 자연을 뜻하는 나무 등 회화 속에 자주 등장하는 기호들을 건물 입면에서 표현해 왔다.
내부계단실을 따라 내려오면 외부로 통하는 계단으로 내려오게 된다. 건물과 연결된 계단마저 조형감이 묘하게 드러나면서 선박으로 들어가는 계단을 떠오르게 된다. 건물은 노출 콘크리트로 따뜻하거나 아늑한 인상은 아니다. 브루탈과 탈 모더니즘 등 여러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나타내면서 그 과도기적인 과정에 있는 듯하다.
무엇보다 계단실은 오늘날 아파트와 같이 피난 시에만 사용되는 계단실이 아니어 보인다. 계단실마저 산책의 연속인 듯 빛과 다양한 높이에서 풍경을 받아들이면서 채광으로 밝게 빛나는 계단실이다. 난간과 재료 등 고민이 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몸에 리듬을 타며 계단을 타고 내려오며 동서 측의 풍경들을 바라보며 지루할 틈이 없이 전 층을 내려오게 된다. 오늘날 계단실은 건물에 삽입된 기생충처럼 마치 코어를 하나의 덩어리로 내지는 법에 의해 끼워 맞춰지는 계단실일 뿐 사람이 공간을 경험하는 느낌은 주지 않는다. 우리는 오늘날 아파트의 원초적인 형태를 경험하며 오늘날 아파트의 문제와 다소 기계적이고 효율만을 추구하는 아파트의 형태와 기능을 다시 되돌아보게 된다. 효율을 추구하며 만든 코르뷔의 집합주거마저 완전한 기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사람과의 커뮤니티, 거주자들의 편의를 고려했다. 집합 주거의 원형을 다시 떠오르며 우리의 앞으로의 집합주거에 대해 고민해 봐야 한다.
계단실, 입면, 주거 공간, 복도 다양하게 코르뷔의 건물에서 볼 수 있는 색깔들이 있다. 코르뷔는 건물의 색을 시각적인 조형적 언어로 건물의 입체성을 더하고 리듬감을 더하기 위해 빨강, 노랑, 초록, 파랑 등의 색감들을 건물에 입혀 색채감을 표현했다. 마치 건물을 입체 회화와 같이 그림 속에 들어와 그 공간감을 색채와 함께 경험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림의 매력을 건물로 표현해 내며 회화로는 느낄 수 없는 새로운 예술의 일종인 듯하다. 색채가 주는 인상과 그에 따른 사람들이 느끼는 감정은 다양하다. 공간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색감과 함께 느끼는 공간은 또 다른 느낌을 준다.
베를린의 다비타시옹의 계단실과 공용부 창은 네모로 정갈하다. 피흐미니는 동그라미 형태였다.
측면 또한 정면과 함께 같은 색채감과 입면으로 연결된다. 한 편의 회화를 보는 듯한 건물이며 무거운 콘크리트임에도 불구하고 색채감 때문인지 가벼운 느낌을 준다.
입면의 디테일 또한 묘하게 차이가 있다. 피흐미니의 입면은 복층에도 수평 띠가 있어 더욱이 내부를 알 수 없는 입면이었다. 하지만 베를린의 다비타시옹의 입면은 피 흠이 니의 복층 수평띠가 존재하지 않았다. 이렇게 디테일은 다르지만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오늘날 복합주거의 대량생산의 개념의 출발점이라는 점에서 큰 의미가 가 있다. 차가운 입면과 해가 뜨고 질 때 동서 측의 입면이 색감과 함께 빛나는 입면들 내부 깊숙이 들어오는 빛들로 입면뿐만 아닌 내부 또한 리듬감이 전해진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화와 대량생산으로 기계식 아파트가 아닌 '주거 공장'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지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딱딱하고 커뮤니티가 없는 주거가 앞으로도 대량생산될 시 문제점은 무엇인지 유니테 다비타시옹을 바라보며 고찰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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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 여행을 끝내고 돌아오니 유럽여행의 연장선으로 연희정음에서 '김중업 x 르코르뷔지에 건축사진전', 을 열었다. 유럽 여행 끝나기 무섭게 바로 연희 정음으로 향했다. 김중업의 말년작인 연희동 주택이 복합문화공간으로 탄생한 연희정음에서 사진가 김용관과 마누엘부고(Manuel Bougot) 가구 디자이너 박종선이 참여한 전시이다. 여기서 나는 사진 앞에 서서 내 경험과 사진을 함께 떠오르며 다시 한번 여행을 했다.
나는 사진전을 보면서 큰 의문을 가졌다. 내가 경험해 본 건물들과 사진이 다르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유니테 다비타시옹이 여러 곳에 있었는지 몰랐다. 하지만 사진 앞에 서서 '내가 본 유니테와 창 모양이 다르네', '옥상 또한 형태가 달라', '내가 경험한 건물은 조형적인 캐노피가 없었는데?' 하며 여러 의문을 갖기 시작했다. 한참을 고민하면서 찾아봤다.
결론은 유니테 다비타시옹은 마르세유를 시작으로 낭트, 베를린, 브리에, 피흐미니에 건설되었다. 마르세유의 유니테 다비타시옹이 복합주거의 프로토타입이 되어 대량 생산의 시작이 된 셈이다. 여기서 나는 또 하나 느꼈다. 내가 경험해 본 것들과 생각들, 남이 경험한 것들과 그들의 생각들은 매우 다르다는 점이다.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고 항상 탐구하고 봤던 것을 다시 보는 습관 또한 중요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