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프리츠커상 수상자, 건축가 야마모토 리켄이 말하는 탈주택
본격적인 이 책에 대한 무지하고 단순한 나의 생각을 써 내려가기 전에 이 책에 대한 결론부터 말하고자 한다.
야마모토 리켄과 나카 도시하루의 '탈 주택'은 이미도 유명한 도서이지만, 감동적이고 건축에 대한 사람에 대한 진심 어린 건축가의 본질을 느낄 수 있는 책이다. 비록 긍정적이고 환상가득한 책은 아니다. 건축에 대한 이 사회에 대한 한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면서 나름 그 한계 속에서 저자의 시선으로 , 경험이 담긴 책이다. 나는 비록 도서관에서 빌려 앉은자리에서 다 읽었지만 이 책은 꼭 구매해서 방 책장 아주 잘 보이는 곳에 세워두고 싶은 책이다. 그만큼 이미 읽어본 사람들이 많겠지만 또 읽고 읽길 추천한다.
"단순히 프라이버시와 보안을 지키는 데만 매달리는 일본의 공영주택과 민간주택이 얼마나 이상한지 쉽게 알 수 있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1 가구 1 주택이라는 표준화된 주택을 늘리기만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는 않을 텐데도 거기에만 매달린다. 아니, 이제는 그마저도 포기하고 민간의 주택 회사나 시행사에 모든 것을 떠넘겨 버렸다. 주택정책을 국가적인 경제성장을 지탱하기 위한 경제정책(경제 정책이라는 것도 지금 당장 효과를 올릴 수 있는 근시안적 정책이지만) 역할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까지 돈벌이에만 매달려야 할까. 국가행정은 주택정책에 관해, 주민의 생활에 관해 조금은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하지 않을까"
나로서도 어릴 적 같은 지역에서 이사를 5번씩이나 다니면서 다양한 주거 유형 속에서 자라왔다. 이 관점에서 주거 커뮤니티가 시간이 흐를수록 주민의 생활에는 전혀 관심 없이 오로지 자본과 이기심에 살아간다는 것에 동의한다.
주택난부터 고도화될 때까지 그 과도기적인 시기를 전부 살지는 못했지만 나름 복도식부터 신도시까지 경험해 본 기억이 어렴풋이 있다.
시대 탓인지 주거유형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복도형에서 거주할 때만 해도 옆옆집 이웃 할머니 할아버지 도시락 배달도 해드리고 자주 놀러 가서 여름을 보냈던 기억들이 있다. 야마모토 리켄이 언급하는 '시키이'같은 공간이 계획상 존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주민들이 만들어낸 암묵적 시키이 같은 공간도 있었다. 그 공간은 주로 엘리베이터 홀이나 로비 같은 공간이 주로 그 공간이었다. 그런 공간은 야마모토의 판교 하우징의 시키이와 닮아있다. 하지만 자라면서 거주했던 흔히 말해 지금 주택공사가 표준형으로 '대량' 공급하는 그러한 아파트는 생활하는 공간이 넓어졌지만 이웃과의 소통은 일절 없다. 한 층에 세대수가 2,3,4 지금은 5인 아파트에 살고 있지만 그 수가 늘어날수록 이웃과 얼굴을 부대낀 횟수는 점차 줄어들고 지금은 없다고 볼 수 있다.
또 생각나는 건 나름 변화하는 주거 유형에 끼워 맞춰(?) 내 생활을 했던 거 같다. 복도형에선 홀에서, 타워형에선 가까운 계단실에서 동생과 나름의 피크닉을 주말마다 보냈다. 좁은 창으로 들어오는 빛에 돗자리를 깔고 거기서 주로 아지트처럼 놀았다. 어릴 적 함께 놀 동생이 있어서 가능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래서 어릴 적 사는 곳이 중요한 거 같다. 난 나름 내가 사는 곳을 구석구석(?) 사용하고자 했던 거 같다. 생각보다 아파트 계단실에서 보낸 추억들이 많고 현관과 연결된 화장실에서도 그러하다. 그렇게 보면 유년시절 달라지는 아파트 유형을 경험하며 크는 게 좋았을지 아님 마당 넓은 주택에서 자라는 게 조금 달라졌을지 궁금해져 온다.
모두가 살아온 주거는 다르듯이 내 나이또래는 다 이렇게 컸을지도 모른다. 지금 아이들은 그놈의 휴대폰 때문인지 나때처럼 모래에서 비비고 노는 거 같진 않다. 나면서부터 가지고 태어난 기질도 무시 못하지만 자라면서 환경에 의해 받는 영향 또한 절대 무시 못한 다고 본다. 요즘은 이러한 생각들 때문에 공간이 끼치는 심리의 영향 환경이 사람에게 끼치는 영향과 그 분위기에 관심을 갖고 자주 생각해 본다. 물리적인 공간이 어때야만 좋은 공간이다라고 말하는 사람은 많아도 지극히 주관적으로 이런 공간이 사람의 특성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장기적으로 생각하는 것도 필요하다. 사회가 발전하려면 표준화가 아닌 다양성을 고려하고 열린 시각으로 바라봐야 한다. 많은 건축이 표준화되었고 지금은 그 형식이 무너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 많고 앞으로도 그럴 거 같다.
사실 커뮤니티 커뮤니티하는 건 학부 저학년 때부터 강조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반영하고자 많이들 공간을 만들어낸다. 그럼에도 진정 '커뮤니티'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 안에 담긴 사회학적 의미 건축적 의미는 또 어떤 차이가 있는지 제대로 알고 사용하는 사람이 있을까 싶다. 학부를 다 보낸 지금의 나도 커뮤니티의 의미를 명확하게 답변할 수는 없다. 할 수 있다 해도 그게 정답이진 않을 것이다. 많은 건축가 사회학자들은 커뮤니티를 고민해 온다. 그 커뮤니티라는 건 사실 자신이 경험했던 그것으로부터 다수 나온다고 생각한다. 사실 지금 무슨 말을 하고자 하는지 잘 모르겠다. 하지만 블로그는 그런 맛으로 무지하게 그냥 써 내려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언젠가 이렇게 떠오르는 생각들을 써 내려가다 보면 이것들이 언젠간 조합되어 하나의 것을 만들어 낼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난 주거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 이유는 딱딱한 표준형 주택에 지루해하기 때문이다. 탈 주택을 읽고 그 생각은 조금 변해가고 있다. 사실 건축을 하는 근본적인 이유가 사람을 위한 건축이고 그 사람이 평생을 먹고 자고 하는 곳이 주거인데 다시 한번 그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 이유는 표준형 주택 때문이 아닌 진정 건축가로서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 야마모토의 공동체를 설계하는 건축의 사례들이 그 이유다. 그 덕에 어릴 적 살아온 주거와 그 속에서의 커뮤니티를 생각해 본 거 같다. 이런 주거가 한국에 많이 자리하면 좋겠다. 표준형, 자본으로만 굴러가는 그런 주거가 아닌 진정 사람의 본질을 울리는 그런 주거 말이다. 나름 글을 써 내려가면서 생각이 정리된 건지 더 복잡해진 건지는 모르겠다.
"현대의 주택은 단순히 소비하는 장소일 뿐이다. 소비하는 장소란 자녀를 낳고 양육하는 장소이며 가족이라는 사적 집단만을 위한 장소라는 뜻이다. 주택이란 그런 사적 집단을 유지하고 관리하는 장소인 것이다. 몇 번이나 강조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그런 집단이 아무리 모여도 커뮤니티는 탄생하지 못하며, 실제로 탄성 하지 않았다. 그리고 이런 사실만을 내세워 미래의 공간에서도 커뮤니티는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많은 사회학자의 미래 예측은 그야말로 착각이다."
이 책을 읽다 보니 고등학교 때 일본고모 집에서 한 달 생활을 했던 기억이 난다. 넓은 다다미방에 이불을 깔고 자고 온천에서 물장난을 하며 자전거를 타고 근처 마트에 갔던 기억까지 참 좋은 경험이었던 거 같고 우리 셋을 케어해 주신 고모께 또 감사하기도 하다. 다다미방과 주택의 옥탑방을 좋아했던 기억이 있는데 한옥에서 느끼는 따뜻함을 느끼진 못했다. 일본 고모의 집은 오사카 끝자락 시골에 모여있는 일본전통식 주택들 중 하나였다. 마트를 가려면 자전거나 차를 타고 가야 했고 근처엔 오로지 이웃 주민들과 자연뿐이었다. 그런 집에서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요리사인 고모의 집밥을 먹을 수 있던 게 한 달이라는 짧은 경험이지만 큰 경험이었다. 짱구 집에서 볼 수 있는 고타쓰까지 참 지금 생각해 보면 낭만적이었던 거 같다.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는 '제3의 물결'에서 "생산 소비자"라는 개념을 제시했는데, 인터넷이 주체가 되는 정보 기술의 발전과 침투력은 취미나 특기를 가볍게 공유하면서 기술을 향상하거나 다품종소량생산을 가능하게 했다.
건축이 인간의 활동을 어느 정도 제약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숙명이지만 어떤 제약인가에 대해서는 끊임없이 의식하고 개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