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위복

지금의 노력들을 믿어라

by 애티로스

때는 2019 겨울이었다. 코로나라는 단어가 뉴스에서 나오기 시작한 때였다. TV 뉴스에서 나오는 사진에서, 이상한 모양으로 되어 있고, 색깔은 빨간색으로 표현이 되어, 그렇게 기분 좋은 느낌은 아니었다. 뭐 그러다 말겠지 싶었는데, 언젠가부터 학원에 오는 학생들이 모조리 마스크를 쓰고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지 않아서, 맨 입으로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한 학부모에게서 콤플레인 전화를 주었다.


"선생님, 애들 말로는 마스크도 안 쓰고 수업하신다면서요?!"

"네..."

"애들한테 뭐 일 나면 어쩌시려고..."


이런 식의 전화를 받고서야 비로소, 상황의 심각성을 조금 인지하고 바로 마스크를 준비했었더랬다.


그제야 마스크 끼고 수업을 하는데, 마스크가 익숙하지 않던 때라, 말을 계속해야 하는 학원일을 하다 보니, 숨이 막혀 자주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그러고서 수업을 이어 나가고 했다. 또 며칠이 지나, 마스크를 턱까지 내리고 수업하냐며, 잔소리 듣는 전화를 다시 받았었다.


그래서인가... 아이들은 그다음 날부터, 한 두 명씩 출석을 안 하기 시작하더니, 엎친데 덮친 격으로, 1월 중순이 되니, 전국 학원 휴원령이 내려졌다. 더 이상, 단체로 모이는 행위 자체를 금지하는 령이 내려진 것이다. 학원만이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사회 전반적으로 단체 행동이나, 모임 자체가 금지되는 분위기였다.


오후가 되면, 아이들이 씩씩하게 2층으로 올라오는 계단 소리가 들려야 하는 시간에, 아이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아무도 없는 교실에 앉아서, 혹시라도 한 명의 학생이라도 오지나 않을까 해서, 몇 날 며칠을 기다려본다. 2층 교실에, 내 창가 자리에 앉으면, 따스한 오후 햇살이 내리면서, 따따하니 좋은데, 햇살을 맞으면서 온기를 전혀 느낄 수 없다. 학원 원장이 수업을 못하니, 뭐를 할지 몰랐다. 그저 멍하니 앉아 있을 뿐이었다. 다른 말로 하면, 수업을 못 하니, 밥 줄이 끊긴 것이다. 물론, 수업하는 사람이야 말로, 수업 못 하고 아이들을 못 만나는 것이, 가장 안타까워해야 할 일이었지만,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보면, 한 마디로 실직자였다. 앞이 캄캄했다. 어떡하지.... 이 코로나 상황이 몇 달이 걸릴지.... 아님 몇 년이 걸릴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었으니, 답답함은 더 컸다.


집에 있는 아이들, 밥풀이라도 붙이려고 하면, 수업 말고 무엇을 해야 될지? 고민만 하게 되지 해결책은 없었다. 그 당시엔 영상 찾아보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 시기였기 때문에, 포털 사이트 검색해서, '코로나 수업?'을 검색하니, 온라인 수업이라는 키워드가 보였다.


'온라인 수업?'....'영상 수업?'....


줄곧 오프라인 수업만 했던 세대이고, 컴퓨터도 잘 다룰지 모르는, 인문대 학생이었기 때문에, 너무 생소하고 어렵게 느껴졌다. 그래도 어쩌겠나? 뭔지 싶어서, 너튜브에 영상을 찾아봤다. '온라인 수업, 이것만 따라 하세요'라는 썸네일이 보여서, 영상을 틀었지만, 2, 3번 돌려봐도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코로나 상황에서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는 학원들이 이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고 하니, 나도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시도는 해 봐야 했다. 우여곡절 끝에 온라인 수업방식을 조금 이해하기 시작했고, 초고속 배달이 되는 앱으로 기본 도구들을 구매했다. 밤낮없이 시도하고 영상을 찍어보고 해서, 온라인 줌 수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집에 있는 아이들을 실시간으로 줌으로 초대해서 수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되었다. 며칠의 수업 공백은 있었지만, 그렇게 큰 공백은 안 느껴지게 했을 것이다.


코로나 당시, 줌으로 수업하는 것 말고도, 이런저런 시도들을 많이 했었다. 코로나 이전에는 그야말로, 수업말 해도 먹고살았으니깐, 수업만 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주변 지인들 만나서, 밥 먹으러 다니고, 주말에는 가족들 데리고, 놀러 갈 생각이나 하고, 그런 평이한 생활의 연속이었는데, 코로나를 경험하고 나니, 언제 또 이런 비슷한 위기의 상황이 올 지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공부해 두지 않으면 안 되겠구나!라는 위기의식이 생겼다. 그래서, 온라인 수업과 영상 수업 말고도, 나를 성장시키는 시도에 대해서 공부하기 시작했다. 나를 성장시키는 가장 기본적인 것들이, 운동, 독서, 글쓰기였다.


솔직히 말하자면, 독서는 일 년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수준이었다. 사기 사지만, 다섯 장 정도만 읽게 되지, 더 이상 진도는 못 나가는 독서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 당시에 온라인 교육들이 유행했었는데, 그때 마음에 들어온 것이, 학원 마케팅 관련 독서였다. 그런 실직 상태를 경험하게 되니, 학원이라는 것도, 수업만 잘해서는 도태된다는 것을 느껴서, 마케팅에 관심이 생겨서, 마케팅 관련 온라인 독서 모임에 가입해서, 책도 따라서 읽고 독서 기록장도 써서 제출하고 열심히 공부했다. 그때, 학원의 비전, 방향성, 학원의 가치, 왜 이 일을 하는가?라는 고민도 하게 되고, 학원의 교육 철학도 시작하게 되었다.


독서를 하게 되니, 글이 자연스럽게 써지게 되어서, 작가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인 '브런치' 작가에도 도전하게 되어, 두 번의 도전 끝에 성공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 당시엔 평소에 운동을 안 해서, 지금 보다, 15KG나 더 나가는 과체중의 복부비만이 있는 나였는데, 그때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시도하면서, 지금은 마라톤에 정착하게 되면서, 15kg나 감량하게 되는 쾌거를 이루게 되었다. 어저께는, 달리기 하러 나가려고, 러닝복을 챙겨 입는 것을 보고, 와이프가 "자기, 진짜 날씬하다!"라는 소리도 듣게 되었다.


이렇듯, 코로나라는 위기를 맞이하면서, 주저앉기보다, 뭐라도 해 보려고 여러 가지 시도(노력)해 본 것들이, 돌아보면, 지금의 모습까지 오게 한 점(노력)들이 아니었을까?


이런 얘기를 가만히 보니, 스티스 잡스가 살아생전에, 스탠퍼드 대학에서 졸업식 연설에서 했던, "Connecting the dots"가 연결되는 것 같았다. 과거 그 당시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고 했던, 모든 시도들이 지금 돌이켜보면, 성공으로 이루게 했던 그 모든 점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니, 내가 그 위기의 순간에 했던 여러 가지 시도들로 인해서, 지금에 생긴,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고 해결해야 될 일들이 있으면, 도전해 보고 해결해 보려는 삶의 태도는 위기의 순간에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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