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구불만녀, 묶여있는 현실 속에서 돌파구를 생각하다.
무얼 하고 싶냐고 물었다. 2월은 '피바람'이 부는 달이다. 한국에 있는 대부분의 회사가 대략 이 시기에 연봉협상을 하기 때문. 애석하게도 내가 원하는 연봉협상은 실패했다. 대신 할 말이라도 해야겠다 싶어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주워담지 않고 모두 뱉어냈다. 그랬더니 '무얼 하고 싶냐'라는 질문이 임원에게서 부메랑처럼 돌아왔다.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 순간, 그저, 막연히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나는 불만만 많았지, 생각은 없었다. 그저 그런 직장인이었다. 광화문에, 강남역에, 널려있는 흔하디 흔한 1인. 그게 바로 나였다. 이런 직장인은 비단 나뿐만이 아니겠지-하는 위안을 삼으며 맥주 한 캔 따고 캬! 하고 흘려버리는 그냥 직장인. 내년에도 개같이 일해서 개같은 연봉협상을 해야한다. 그 사실 참담해서 어디론가 도망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가을에 결혼을 하기로 했다. 돈을 벌어야 한다. 그날도 역시 나는, 불만은 많았고 생각은 없었다.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그 글을 보기 전까지는. "아이슬란드 원정대 모집"
취준생 시절, 방송국에 면접준비를 할 때 이미 다니고 있는 선배를 물어물어 겨우 찾아 유선상으로 이것 저것 물어보던 대학동아리 선배. 그 선배가 올린 글이었다. 어찌보면 일면식 한 적 없는 어색한 사이지만, 어쨌든 나는 글을 보자마자 나도 모르게 화진선배에게 연락했고, 24시간이 채 안되어 비행기 티켓을 바로 끊었다. 그리고 매일매일은 아이슬란드에 가있는 나를 상상했다. 나는 보고 싶은 게 생겼다.
실제로 만난 화진선배는 생각보다 초조했다. 내가 아이슬란드에 가지 않을까봐 초조했다. 꽤 많이 거절당한 눈치였다. 모두 직장인이었기 때문이리라. 아이슬란드 여행은 조금 특별했다. 세계에서 가장 물가가 비싼 나라, 예측 불가능한 자연재해, 왠지 모를 두려움을 극복할 멘탈, 다양한 엑티비티를 즐길 강인한 체력, 무엇보다도 아이슬란드를 충분히 즐길 '시간'이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당시 나도 직장인이었고 선배도 직장인이었기에, 우리는 직장인이 즐길 수 있는ㅡ짧고 굵게, 고효율적으로 시간을 운영하는ㅡ 최적화된 일정을 계획했다.
공대를 나온 화진선배의 계산에 따르면, 4명이 시간과 비용절감에 최적의 정예멤버라고 했다. 4명! 나의 뇌 속에는 알고리즘에 '4명을 채우라'는 명령어가 입력되었다. 그리고 주변에 있는 '언니들'에게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소구포인트는 "월터의 현실은 상상이 된다"와 "인터스텔라"를 좋아하는 사람, 그리고 아이슬란드만의 독특한 점이었다. 물망에 가장 빨리 오른 사람은 정미언니였다. 정미언니는 나와 동아리 동기로, 나와 마찬가지로 화진선배와는 선후배관계가 되겠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회사와 일상에 지쳐있는 번아웃되어있는 상태였다. 언니에게 떡밥을 던졌고, 언니는 찌를 물었다. 본업이 마케터인데, 물린 찌를 놓칠소냐! 언니에게 당장 오로라와 빙하를 보여주었고, 언니는 3일 뒤에 비행기표를 결제하게 되었다.
한 명을 더 모아야했다. 인천 엄홍길이라고 불리던 친구, 북유럽 디자인을 동경하던 친구 등등 여러 친구들에게 떡밥을 뿌려봤지만 쉬이 무는 사람이 없었다. 그러다 문영언니를 만났다. 문영언니는 나의 대학 베스트 프렌드 근영언니의 친언니다. 문영언니의 약국 개국 컨설팅 문제로 만났다가 친해져 수다도 떨고 밥도 먹는 사이가 되어 그날도 역시 그런 일을 하려고 만났었다. 그러다 아이슬란드 여행 이야기를 했더니 언니가 호기심을 보였다. 이게 웬 떡이냐! 그날 문영언니에게 모든 내공을 쏟아 마케팅을 하였고, 문영언니는 그날 밤 결제를 하였다. 그렇게 4명이 모였다. 한 달만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