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 有) 스포는 이 글이 아니라, 작금의 경제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내 형편에 말도 안 되는 부동산을 샀다. 대출은 쉬웠고, 지어지지도 않은 그 집의 가격은 말도 안 되게 오르고 있다. 우리부부는 그 집에서 적어도 몇년 동안은 오손도손 가족들과 안락하게 살고 싶은 마음을 '꿈꾸며' 그 집을 샀다. 하지만, 알고 있다. 우린 어쩌면 그 집에 살지 못할 거란 걸. 부동산은 '폭탄돌리기 게임'이다. 그리고 남편과 <빅 쇼트>를 봤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
결론부터 말하자면, <빅 쇼트>는 정말, 엄청,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기 전, 검색하여 평을 봤는데 '어렵다'는 이야기가 다수였다. 어렵긴 어렵다. 부동산과 주식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면, 모를 경제 용어가 많다. 각색 이라곤 1도 없는, 페이크 다큐도 아닌 그냥 '다큐'다. 감독과 코믹 영화 전문 감독에, 작가는 영화 '머니볼' 작가. 그들이 왜 '노잼' 형식을 택했는지는 영화를 보다보면 바로 이해할 수 있다. (영화를 다 보고나면 이 영화가 다큐가 아니라 신랄한 '블랙 코미디'였다는 걸 깨닫겠지만.)
영화는 "미국 월가의 소수 기득권은, 어려운 경제용어를 사용하고 만드는 이유가, 그들의 기득권을 더욱 견고히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의 돈이 어떻게 되는지 '관심이 없게' 하기 위해서" 말한다. 난 이 점에서 무섭고 소름이 돋았다. 섹스도, 도박도, 먀약도 안나오는 영화 <빅 쇼트>가 청소년 관람불가가 된 이유는 이것이 아니었을까. 재테크를 처음으로 시작하는 과정에서 모두 만나는 사람들이 있다. 은행 직원, 펀드매니저, 보험 설계사, 각종 재테크 전문가라고 칭하는 사람들. 그 사람들의 공통점은, 견고한 제도와 다수의 신용 평가들을 증거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익을 설명한다. 사실 우리는 그들이 말한 절반도 이해하지 못한채, 그들이 가져온 종이에 '최저 수익율 00%보장 '라는 글자만 보고 사인하는 경우가 대부분일 것이다. 영화 <빅 쇼트>의 악역은 처음부터 끝까지 철저히 '그들'이다.
나의 재테크는 21살 초반이었다. 첫 직장을 갖고 채권을 꾸준히 구매하고 투자해 번 돈이 적금의 이익 많았다. 그 뒤로 주식, 펀드, 채권 등등 다양한 상품을 구매하고 매도하는데에 관심을 두고 있다. 그때마다 든 의문은, "누가 이 상품을, 왜, 만들까" 였다. 내게 기회가 오기 까지, 몇 번의 뻥튀기가 있었으며, 몇 번의 자금 유동이 있었냐는 거다. 궁금하긴 했지만 공부하면 공부할 수록,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한정적이었다. 그런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사람은 한정적이었고, 20대 초반의 그냥 직장인인 나는 알 깜냥도 알 권리도 없었다. 그럴때마다 그냥, 더이상 아는 것을 포기했다. 그들은 나보다 더 똑똑하니 무언가 대책이 있겠지-하며.
전문가들은 2018년에 우리나라에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가 재현될 것이라 말한다. 작년, 정부와 금융사들은 경제를 살려보겠다고(라고 쓰지만 당장, 자신들의 이익을 증대하기위해서 라고 읽는다.) LTV/DTI 규제를 완화해 이 땅의 수많은 '개미'에게 집을 탐할수 있도록 만들었고, 수요가 많아지자 집값은 말도안되게 폭등하는 기염을 토했다. 부동산 상승 영향으로 지난해 대구광역시에서만 거둬들인 세수가 2조라니. 과히 정부의 전략은 적중하였다.
신길 재개발 11구역만 봐도 정부의 부동산 정책과 시공사, 금융 삼박자가 '잘 모르는 개미'들을 얼마나 등처먹었는지는 알 수 있다. 무이자 대출이랍시고 이주비를 선지급 해놓고, 차후에 7.8%의 고정금리를 한꺼번에 청구해 적게는 7천만원, 많게는 1억 4천 정도의 추가분납금을 내지 않으면 입주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어 분쟁일고 있다. 시공사가 '무이자'라고 해서, 대출을 받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자신의 '혜택'인 줄 알고 덜컥 받았다가 지금 거액의 빚으로 돌아왔다는 얘기다. 사기가 아니냐고? 우리나라 법상, 아니란다. '잘 모르고 구매'한 조합원 탓이란다.
견고한 제도를 '사기'라 말하는 사람은 바보가 된다. 앨런 그린스펀이 모기지론과 미국 부동산이 현존하는 가장 안전한 상품이라고 말했는데, 마이클 버리라는 쩌리 신경외과 의사가 아니라고 하다니!! 너 바보아냐??? 골드만삭스와 무디스보다 니가 똑똑해??? 하는 장면으로 영화의 긴장감은 꾸려진다. 세계에서 가장 똑똑하다고 모인 월가에, 미국 금융시장에서도 단 4팀만이, 미국의 부동산 붕괴 시장에 베팅한 것만 봐도 미국 사회는 이들을 철저히 괴짜로 봤음을 알 수 있다. 그 괴짜가 맞았을 땐, 왜 진작 알려주지 않았냐고 비난한다. 정치나 경제나 어딜 가든 그놈이 그놈이다.
진실은 시와 같다.
대부분의 사람은 시를 혐오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의구심이 들었다. 내가 만약 저 사실을 알았더라면, 나 또한 저들처럼 신용부도스와프에 베팅할 수 있었을까. 아니면 '나보다 항상 똑똑한 그들'을 믿고 저들을 바보취급했을까. 나의 선택에 대한 의구심 말이다.
모두가 내심 세상이 끝나길 기다리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 <1Q84>
주변 사람들은 부동산 가격이 미쳤다며, 빨리 부동산 버블이 붕괴되어야한다고. 그래야 자신들이 집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또다른 어떤 이는, 이미 산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기는 커녕 올라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자신들의 이익 싸움이고 정치 싸움이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다. 뭔가를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다" 마크 트웨인의 경고가 영화 초반에 나오는 이유는 이때문이 아닐까. 돈을 벌고 싶다면, 혹은 지키고 싶다면, 이 영화를 꼭 보길 강추한다. 그나저나, 슈퍼초울트라개미인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까. 어흑.
★만약 (재테크는 하고 싶고 경제 전문 지식이 없는데) 영화를 재미있게 보고싶다면, EBS 자본주의 <제3부 금융지능은 있는가>를 보고 가길 추천한다. EBS 자본주의 시리즈 전부 본다면? 더할 나위 없을 것이다.
https://www.youtube.com/watch?v=Iu-w6STAz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