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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닐라 Aug 27. 2022

밴드에 머물다

안부 묻지 못한 모든 동창들에게 행복이 늘 함께 하기를..

20여 년 전 '아이러브 스쿨'이 유행할 때 전혀 관심 없었다.

과거는 과거 속에 봉인해두어야 아름다운 것이라 생각했다.

또한 첫 아이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때였으니 내 일상은 '현재'만으로도 충분히 분주하고 새롭고 버거웠다.



그 후 아이러브 스쿨은 문을 닫았으나 페이스북이며 카카오톡 등 새로운 sns는  거대한 서치라이트가 되어 

뜻하지 않은 과거의 인연을 나에게 찾아내 보여 주곤 했다.

문득 궁금한 사람들도 몇 있곤 했지만 그동안 외국생활을 하다 보니 연락을 해 만나는 일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어디선가 잘들 살고 있겠지' 

'막상 만나면 반가움보다는 어색함과 실망이 더 할 거야. 만나서 과거 뒤적이기나 하는 게 뭔 도움이야' 

이런 시니컬한 내 성격도 한 몫했고

어느 유행가 가사에도 나오듯이 같은 시, 공간을 나누었어도 '추억은 다르게 적힌다' 하지 않는가.

그들이 나를 반길지는 모르는 일이라는 걱정이  브레이크를 걸었었다.




요 며칠 대학 졸업 후 한 번도 연락된 적이 없는 한 친구가 퍽 궁금하여 찾을 방법을 궁리하다 

밴드를 생각해냈고 우리 과 졸업생 모임을 찾아 문을 열고 들어갔다.

입학 연도를 세분해 놓은 것도 아니고 <ㅇㅇ대학 ㅇㅇ학과>인 밴드명을 보자니, 

졸업한 지 20여 년이 훌쩍 넘은 내가 아는 사람이 있기나 할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러나 우려와는 달리 훑어본 멤버들의 이름은 익숙한 이름이 많았다.

대부분은 기껏해야 내 학번 위아래 3~5년 터울의 사람들로 마치 4050 모임 같아 보였다.

내가 찾고 싶던 친구도 다행히, 그리고 친절하게도 자신의 핸드폰 번호까지 공개해 놓으며 가입해 있었다.

반가웠다. 

그러나 멤버들의 수는 그저 100여 명을 조금 웃도는 데다, 다들 적극적인 활동을 하는 것은 아닌지 

밴드는 북적이지 않았고 10여 년 밴드의 역사에 비해 올라온 글이 아주 많지는 않았다.  

그 10년 세월을 스캔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간단하고 조금 허탈하게도 내 검지 손가락 하나였다.

검지 손가락 하나로  10여 년 간의  계절 인사를 들었고, 누군가 투척해놓은 예전 굴욕사진들도 뜻하지 않게  마주했다.





그리고 지나간 많은 부고를 읽었다. 

그들은 어머니를 잃었고, 아버지를 보냈고, 급기야 길고 길어졌다는 인생을 50여 년도 못살고 서둘러 벌써 가버린 동기며 선배도 있었다. 

철 모르고 흥만 많던 시절, 객기 부리며 뭉쳐 다니고 지금은 열없기 그지없는 주제들로 시끄럽게 떠들어댔던 아직 선연한 기억이 많은 사람들의 죽음이라니.

근래 몇 년 동안 아버지의 죽음을 비롯하여 안타깝고 갑작스러운 지인들의  죽음을  보고 들어왔음에도

인생에서 가장 쌩쌩하고 빛나는 20대 초반을 함께 보내며 그 푸르름을 박제하여 기억하고 있는 이들의 죽음이라 그런지  다른 강도의 충격을 주었다.

젠가 게임의 나무 조각들처럼 차곡차곡 쌓아져 있던 내 인연의 무더기 중 저 밑바닥에서 몇 조각이 나도 모르게 솎아져 버린 느낌이었다.



거울로 내 얼굴을 볼 때  늙었다고 투덜대면서도 나는 진지하게 나의 나이 듦을 실감하지 않았었다.

'나만 늙나, 늙는 게 꼭 슬픈 거야?'

' 죽는 거 난 하나도 안 무서워' 하며 센 척, 쿨한 척이나 했지 

이렇게 변화해 가는 모습을 정말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는지 근엄하게 스스로에게 물어본 적은 없었다. 

청춘으로 박제해 놓은 옛사람들처럼 나는 나 자신을 핀 꼽아 고정시켜놓은 옛 사진으로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닌지.

친구를 찾으러 들어 간 밴드에서 나를 찾아보게 되었다.




사실 밴드에 가입할 땐  그 친구를 찾으면 바로 탈퇴하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인사도 못하고 허탈하게 보내버린 선배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고, 

안부도 챙겨 묻지 못했던 그 시절에 친구가 남긴 댓글이 아직 당당히 자리하고 있는 

이 온라인 공간에 그들과 함께 멤버로 남아 있고 싶다.



얼마 전 더운 여름 지나면 얼굴 한 번 보자 하며 전화를 끊은, 지방에 사는 친구가 있다.

오늘은 또 미루지 말고 부지런히 기차표 검색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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