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리적인 소비습관을 가지기 위한 방법 소개하였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내게 생일 선물로 줄테니 ‘10만 원 현금’과 ‘10만 원짜리 구두상품권’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하면 어떤 것을 택하겠습니까?
이변이 없는 한 아마 두말 않고 현금을 택하겠죠. 왜 그럴까요?
현금은 아무 것으로나 교환할 수 있지만 구두상품권은 해당 상품권 브랜드의 구두로만 교환이 가능하기 때문이죠. 조금 더 영민한 사람이라면 구두상품권을 구두 수선점에 가져가서 현금으로 교환하려면 액면가 10만 원을 다 현금으로 받기 어렵다는 것도 이미 알고 있을 것입니다.
상품권을 현금화하는 것만으로도 10~15% 가량의 적지 않은 수수료를 떼입니다. 이 수수료만큼의 차이가 바로 아무 것으로나 교환할 수 있는 ‘무한 교환 가능성’이 갖는 가치입니다. 금리 3%도 흔치 않은 시대에 정말 엄청난 가치 아닌가요?
화폐 그 자체는 아무런 가치가 없습니다. 세종대왕이 그려진 만 원짜리 지폐를 한 장 꺼내보세요. 그것은 단지 종이에 불과합니다. 배가 고프다고 해서 이 종이를 씹어 먹을 수도 없습니다. 하지만 자본주의에 적응된 우리는 만 원짜리 지폐 한 장이 만 원짜리 식사보다 더 가치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만 원짜리 지폐로 음식뿐만 아니라 그 액면 가격에 해당하는 다른 상품을 구입할 수 있기 때문이지요. 화폐의 이런 특성을 ‘무한한 교환 가능성’이라고 부릅니다.
- 강신주, 상처받지 않을 권리 中
같은 값이면 그 어떤 물건을 가지고 있는 것보다 늘 ‘무한한 교환 가능성’을 지닌 돈, 현찰로 가지고 있는 것이 훨씬 낫단 얘기가 됩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쓰기 위해 벌고 모은 돈이라지만, 쓰여지기 전 내가 쥐고 있을 때 가장 막강한 힘을 갖게 됩니다. 돈을 쥐고 어디에 쓸 지를 생각하는 순간이 가장 풍요로운 순간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신중하게 고민해서 돈을 사용하더라도 내가 가진 돈의 ‘무한 교환 가능성’의 힘은 어떤 재화나 서비스로 거래되는 순간 곧바로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서 수만 가지 다른 구매가능성이 사라지는 경험이 바로 '소비'의 경험이죠.
그래서 '소비'는 그 즉시 일정 정도의 '박탈감'을 발생시킵니다. 그 '박탈감' 때문에 우리는 마냥 마음껏 신나게 소비하지 못합니다.
'내가 어떻게 번 돈인데...'
'우리 엄마가 얼마나 고생해서 번 돈을 나 쓰라고 주신 건데...'
이 '피 같은 돈'을 필요한 물건이나 서비스로 교환하는 과정에서, 그 거래 결과가 아깝지 않거나 오히려 이득을 본 것 같은 느낌이 들어야만 기본적인 '박탈감'에 대한 보상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다들 본능적으로 '가성비'를 따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돈을 쓰고 나서 '괜히 샀다'고 후회를 하게 된다면 돈도 없어졌는데 그 대가로 가치도 얻지 못하게 되어 '영혼의 스크래치'를 입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소비는 신중해져야 합니다. 소비를 하고 나서 뼈아픈 후회를 하게 된다면 다시 소비를 결정한 시점으로 되돌아가서 자신의 선택의 문제점이 무엇이었는지 천천히 복기해보는 '자기 반성'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뼈아픈 손실의 재발'을 막을 수 있을테니까요.
긴급성은 현대 경제의 특징이자, 현대 사회 전체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장기적 비전을 갖지 않으면 현대인의 삶은 지옥으로 변할 것이다.
- 자크 아탈리, 자크 아탈리의 긍정 경제학 中
문제는 이 놈의 돈을 쥐고 있기가 참 힘든 세상이라는 겁니다. 벌기도 어렵거니와 돈을 쥐기가 무섭게 돈 쓸 일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돈의 ‘무한 교환 가능성’의 힘을 잘 알고 있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웬만하면 돈을 쓰려 하기보다 열심히 모으려 하는 ‘구두쇠’가 되어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현실에서는 이와는 정반대 현상이 넘쳐 흐르고 있습니다. 돈이 아깝기는커녕 가진 돈을 즉시 물건으로 교환하지 못해 안달난 듯 쇼핑하게 됩니다. 돈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돈으로 무언갈 사거나 누리는 것이 진정한 '보상'으로 느껴지는 세상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사에게 심하게 깨진 어느 날, 친구에게 배신당한 어느 날, 애인과 헤어진 어느 날... 자존감에 심각한 손상을 입게 된 어느 날 내 안에는 즉각적인 보상 심리가 본능적으로 용솟음친단 얘깁니다. 손상을 즉시 복구하고자 하는 이러한 과정은 지극히 정상적이고 건강한 거죠. 다만 너무 자주 ‘돈’으로 보상이 이루어질 때 문제가 발생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생리작용에서 어느 기관이 손상, 파괴되면 다른 기관이 그 작용을 보완하는 것처럼 정신 생활에 있어서도 억압된 욕구는 어떠한 형태로든 보상받으려는 경향이 있다. 정신 분석학의 일파인 아들러(A. Adler)는 이 작용을 인간의 기본적인 정신기제라 주장하고, 자아 의식을 높임으로써 자기의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작용을 보상 (compensation)작용이라고 부르고 있다. 일반적으로 자기의 욕구에 의한 행동 목표가 어떤 장애에 의하여 저지된 경우에, 다른 대용 행동으로써 보충하려는 행동이다. 동일화, 합리화, 승화의 행동 등도 이에 포함된다.
- [네이버 지식백과] 보상 [補償, compensation] (체육학대사전, 2000. 2. 25., 민중서관)
우리 몸은 항상성 유지를 위한 꼭 필요한 행동에 대해 일차적으로 보상을 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습니다. 생존을 유지하는 것과 관련된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행동들, 예를 들어 음식섭취, 섹스, 스킨쉽 등을 할 때 뇌의 측위 신경핵 부위에서 도파민의 분비를 통해 쾌감을 느끼게 되는데 이것을 ‘보상회로’라고 합니다.
이와 같은 본능적인 과정 외에도 교육, 훈련 등을 통해서 쾌감을 얻게 하는 행동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그게 2차적으로 보상회로를 자극하는 방법입니다. 행동주의 학파의 연구자 스키너는 의도적으로 어떤 행동을 교육시키기 위해서 보상을 주는 행동과 연관을 지으면 그 행동이 학습된다는 '행동의 강화'를 발견했습니다. 보상과 처벌을 적절히 활용하면 어떤 목적하는 특정 행동을 조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걸 잘 연구해서 상업적으로 이용한 것이 바로 게임 산업이고, 많은 광고나 마케팅 또한 그렇습니다.
소비를 통한 보상 행동의 습관적 강화.
이것이 바로 생각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고 재빠르게 진행되는 지금 시대 소비의 메커니즘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나 즉각적 보상과 만족에만 매달리고 참지 못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삶의 설계에 심각한 위기 요소로 작동하게 됩니다. 작은 소비를 많이 하면 보상도 많아지니 삶에서 행복감도 높아지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계속 더 많은 자극과 만족을 원하도록 하는 중독 증상에 오히려 일상적인 삶은 우울해지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보상 못지않게 미래의 원대한 '보상'을 기대하며 현재를 참을 줄 아는 것은 이러한 중독 증상을 막아주고, 주어진 삶을 살아가는 비전과 목적이 되어주는 큰 동기부여 요소가 됩니다.
충동 소비 대신, 충동 저축을 통한 보상설계를 해 보는 건 어떨까요?
즉각적 보상이 아니라 참고 인내하며 지연된 보상을 설계하기 위해 다시 스키너의 '행동의 강화'를 활용하는 것이 바로 ‘저축’입니다. 참고 인내하면 더 큰 결실이 온다는 기대를 품고 이를 실행하는 과정을 '저축하는 습관'이라 부릅니다.
돈을 꾸준히 모아서 크게 쓰는 습관이 오히려 삶의 질과 만족도를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많습니다. 막연하게 아껴쓰고 절약하는 것이 미덕이라는 것만으로는 내 본능이 동기부여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박탈감만 더욱 커질 우려가 있습니다.
‘나는 3년 후에 유럽 여행을 가기 위해 오늘 커피를 줄이는 거야.’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 정신분석가 코헛은 인간의 만족, 행복감에 중요한 영향은 단순한 쾌락의 획득 만이 아니라 존재감, 가치감을 얻는 '자기됨( selfhood)'을 얻는 것이라 보았습니다. 물질 문명의 발달로 일차적 생존 욕구가 충족되고 나면 자신이 어떤 가치를 가졌으며 어떤 인정을 받는가가 훨씬 중요한 삶의 화두로 등장합니다. 이게 충족되지 못하면 삶이 괴로워진다는 겁니다.
현재의 생존과 만족 못지않게 저축으로 우리의 미래 가능성을 높여 나가는 것은 돈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그리고 어떤 금융 상품으로 어떻게 잘 모으냐는 재테크 기술보다 미래 어떤 목적에 얼마 정도를 쓸 것인가를 구체화시키면서 성취 가능성을 높이는 저축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이러한 만족도를 높이는 데 훨씬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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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ten by 박미정
문헌정보학을 전공했으나 사서가 될 생각은 못하고 문화기획, 벤처회사 홍보팀 등 평균 1년에 1직장을 거치며 파란만장한 직장생활을 경험했다. 불안정한 직군에서 열정을 담보로 땀흘린 결과 신용불량과 개인파산까지 겪고 시름하다 금융회사 FP로 취직, 제법 높은 실적을 올리며 모든 빚을 한번에 해결했다. 그러나 2007년 글로벌 금융위기에 자신이 팔았던 투자성 금융상품들의 롤러코스터를 경험하며 고객들이 손해보는 것을 속수무책 지켜보며 현재의 금융경제 시스템에 회의를 느꼈다. 그렇게 돈 때문에 울고 웃어본 경험을 바탕으로 돈 관리의 기본으로 돌아가자는 취지 하에 <M밸런스노트>를 개발해 적정소비생활을 통한 심신의 안정을 전파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