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이곳. 오늘은 어째 별일 없나 싶더니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저녁 투약 시간. 약은 병실 침대에 앉아 먹는 데 일부 환자가 먹지 않는 경우가 있어 간호사가 약봉지를 찢어 준 뒤 삼키는 걸 확인한다. 할아버지는 누워 있었다. 잠이 든 줄 알았던 간호사가 약 드시라고 깨우는 순간 할아버지가 갑자기 발로 간호사의 배를 차 버렸다. 느닷없이 당한 간호사는 황당할 뿐이고, 난데없는 소란에 보호사들이 달려왔다. 제지하려는 힘과 뻗대는 힘이 부딪힌다. 완력으로 보호사들을 당해낼 순 없는 일이다. 오래지 않아 손발을 제압당한 할아버지는 독방으로 끌려갔다. 침대에 앉아 약 먹을 차례를 기다리던 우리는 눈만 껌뻑거릴 뿐. 10시 소등과 11시 취침에서 조금 자유로운-그래 봐야 취침등 아래 12시까지 책 읽는 정도지만-나는 11시 반쯤 흐느적거리는 할아버지를 질질 끌고 와 침대에 눕히는 걸 볼 수 있었다. 코끼리 주사-강력한 진정제 주사를 말한다-를 놓은 모양이다.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에서의 맥머피가 생각났다. 어둑한 병실에 박쥐가 가득 거꾸로 달려 있는 섬뜩한 느낌에 아뜩한 공포스러움, 분노도 조금. 알코올로 들어왔지만 입원 후 치매가 더 문제가 돼 버린 할아버지는 매일은 아니지만 뜬금없이 짐을 싼다. 박스에 옷가지와 물건들을 모두 싸서 수건으로 묶은 뒤 로비에 내놓는다. 그리고는 차를 불러 달라고 보호사를 닦달한다. 그러면 그 저녁에는 꼭 무슨 일이 일어났다. 약을 던져 버리거나 약 먹을 물컵을 던지기도 했지만 누굴 차거나 하지는 않았다. 오늘은 낮에 아들과 며느리, 손주들이 왔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알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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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증 난다. 귀찮다. 옆에서 후룩거리며 커피 마시는 소리가 거슬리고 건너편에선 -제 딴엔 소리를 낮춰- 찬송가 부르는 것도 그렇다. 하루 이틀이 아니지만, 그렇기에 이제 와서 그만두라고 할 수도 없다. 성가시다. 아무 힘도 없고 만사가 귀찮다. 오늘 퇴원하기로 했는 데 저물도록 연락이 없다. 하루 종일 자유를 생각했고, 공기는 상큼했으며 하늘은 넓었다. 창문 너머 보이는 길에 갈 수 있을 땐 있는 줄도 몰랐던, 나무에 매달려 팔랑이는 노란 리본에 뭐가 씌어 있는지 정말 궁금했다. 몇 번 다녀서 익히 보던 올레길 리본은 분명 아니었다.(나중에 보니 절에서 매단 ‘불교의 순례길’ 표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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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긴 병원이지만 출입이 자유롭지 않으니 일반 병원은 아니다. 군대 같지만 계급과 상명하복이 없으니 그렇지도 않다. 감옥 같지만 담배를 주고 면회가 자유로우니 교도소는 아니다. 어쨌든 자유가 제한된다는 것은 같다. 병실이 통제되고 흡연의 장소와 시간도 정해져 있고 다닐 수 있는 공간도 한정되며 자고 일어 나는 시간도 일정하다. 이곳에서 나는 ‘인간의 의식이 자신의 사회적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환경)가 그 의식을 결정’ 짓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바깥에서는 멀쩡했을 사람이 간호사에게 이유 없이 아양을 뜬다. 더 웃기는 일은 담배 얻어 피려고 보호사의 정보원이 되는 사람도 있다는 거다. 간호사나 보호사가 권력이라면 그들에게 잘 보이려 하고 거기에 빌붙어 이득을 탐하는 인간이 여기도 사회인만큼 없을 순 없다. 주당들이라면 담배를 대개 한 갑 이상 핀다. 피지 않는 사람은 드물다. 밖에서야 어쨌든 여기서는 맘대로 안된다. 아껴 피든, 줄이든 정량 이상은 안된다. 배급량에 적응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문제는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방법이 비인간적이다. 비인간적으로 행동하는 그 사람을 탓해야 할지, 인간의 약하고 사악한 고리를 굳이 드러내게끔 강제하는 구조를 탓해야 하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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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 병실의 한 놈. 겉보기엔 멀쩡한 데 2% 부족의 멘털이다. 덩치가 커서 감히 맞짱 뜰 생각도 못 한다. 나보다 나이도 많다. 마주 지나칠 땐 눈을 맞추지 않으려 애쓴다. 그가 담배 피우러 가는 듯하면 흡연실 근처에도 안 간다. 그와 있었던 일은 누구에게 터놓기도 고약한 ‘사건’이다. 그는 하루에 두어 번 내 침대 옆으로 그림자처럼 다가와 “제목이 뭐나?”며 표지를 본답시고 읽고 있는 책을 멋대로 뒤집는다. 책을 다시 돌려놓으며 “그렇게 재미있냐”. 이죽거리고 간다. 그간 조금이나마 말이 통하던 넘이 퇴원해버려 기분이 내려앉은 어느 날은. 갑자기 욱하고 가슴이 치밀었다. 보호사에게 가위-금지품목이므로-를 가져와, 아니 볼펜-허용되므로-을 수건으로 손에 꽉 묶어 그놈 아가리에 쑤셔 박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가만히 눈을 감고 숨을 고른다. 이런 식으로 미쳐 가는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