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인의 혀
나는 2019년 11월에 암 수술을 받았다.
그리고 2024년, 5년 차 생존 판정을 앞두고 있었다.
그런데 작년 검사에서 염증 수치가 조금 남아 암 완치 선언을 받지 못했고,
2025년 5월 20일, 다시 암 검진을 받게 되었다.
50대 가장으로서 ‘암에서 벗어났느냐, 아직 못 벗어났느냐’는
그 자체로 삶의 무게를 가늠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리고 바로 그날,
나는 단 한 마디의 말로 다시 무너졌다.
그날도 ‘늙은 보스’는 정기적으로 혈압약을 타러 제주대학교병원에 갔고,
평소처럼 내가 그를 수행했어야 했지만,
나는 내 암검진이 있어 팀장이 대신 동행했다.
나는 한라병원에서 검사와 진료를 받고,
그는 혈압약을 타고 나왔다.
검진이 끝나고 직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는 자리가 있었다.
거기서 그가 말했다.
“오늘 병원에 갔더니 친구들도 와 있더라고.
서로 이제 살만큼 살았으니까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입시다, 하고 농담하며 헤어졌어.”
그 말까진 좋았다.
그의 말은 다음과 같았다.
“그러니까 너도 말이야, 최 선생.
이제 애도 다 키웠고, 살만큼 살았으니까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살아.”
나는 깜짝 놀랐다.
그는 50년생이고, 나는 68년생이다.
자그마치 20년 가까운 차이가 나는 사람에게,
그 기준을 그대로 들이댄다는 건 어떤 종류의 무례인가.
그래서 나는 말했다.
“**님이야 그럴 나이인지 몰라도
저는 아직 그런 나이가 아닙니다.
제 아이들은 아직 결혼도 안 했고,
제가 꼭 필요한 시기예요.”
그랬더니 또 이렇게 말했다.
“그래도 네가 죽으면 자식들이 좋아할지도 모르지.
용돈도 안 줘도 되고.”
나는 어이가 없었다.
“제 애들이 무슨 죽어서 좋아할 만큼
용돈을 보내는 것도 아니고요.
매달 20만 원 보내는 그 돈이
죽고 안 죽고를 결정짓는 이유가 되나요?”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거 자랑하더니만.”
그 순간,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며 말했다.
“저는 이 말 들은귀를 씻어야겠네요.
커피는 마시지 않겠습니다.
알아서 다녀오시죠.”
그리고 사무실로 조용히 돌아왔다.
그 말을 씻어내고 싶었고,
그 공기를 내 몸에서 떼어내고 싶었다.
밤엔 악몽을 꾸었고,
아침에는 머리가 짖는 거리고 구토 증세가 있었다.
나는 ‘영향받지 말자’고 했지만,
몸은 정직했다.
그의 말은 내 신경계를 흔들고,
내 위장을 뒤틀었고,
나의 회복을 늦췄다.
그는 늘 그런 말을 했다.
며칠 전엔 외부 교수들과 동료 직원들이 함께한 자리였다.
일본에 다녀온 이 땡땡 교수가 “요즘 일본은 지식인들이 행복하지 않다.
너무 눈치를 보고 소극적이어서 살기 어렵다”라고 말하던 중,
그는 대화의 흐름과 전혀 관계없이 말했다.
“그럼 최 선생은 일본 가서 살면 좋겠네.
남 눈치 안 보고, 할 말 다 하잖아.”
이 땡땡 교수는 당황해서 말했다.
“아니,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나는 담담하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저분은 모든 대화에
안 좋은 걸 저에게 대입하는 습관이 있으세요.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일이니까 너무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의 언어적 폭력은 우연도, 예외도 아니었다.
그건 구조였고, 습관이었고, 통제의 방식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10년 넘게 기록해 왔다.
한때는 내가 너무 예민한 게 아닐까, 내 문제일까 자책했지만
최근 상담을 통해 알게 되었다.
이건 내 문제가 아니라, ‘그의 문제’라는 것을.
나는 그의 감정 쓰레기통으로 살아왔다.
그가 쏟아내는 짜증, 불만, 조롱, 권위, 무례…
그걸 다 받아내며 살아왔다.
그게 내 역할인 줄 알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그가 나에게 버린 그 말들은 ‘내 것’이 아니다.
나는 그것을 더 이상 담고 싶지 않다.
그래서 글을 쓴다.
말로 되갚기보다
기록이 나를 보호하게 하고,
문장이 나의 경계가 되도록 하기 위해.
나는 더 이상 조용히 있지 않는다.
나는 더 이상 그의 말에 휘둘리지 않는다.
나는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다.
나는 지금 나 자신을 말로 다시 세우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지금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 있다.
어떻게 그런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었던 사람이,
그토록 허접한 농담을 부끄러움도 없이 반복할 수 있었는지.
그 말들이 타인을 얼마나 상하게 하는지조차 느끼지 못하고,
되려 “그게 왜 상처냐”라고 되묻는 사람이었는지.
그 반복의 주기는 점점 짧아졌고,
말은 더 노골적이 되었고,
나는 더 이상 그걸 농담이라 부르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아무리 이해하려고 해도,
그게 어떻게 가능한지 모르겠다.
그게 지식인으로서,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언행이었는지,
아직도 나는 답을 찾지 못한 채 묻고 있다.
더 답답한 건, 그 언어폭력이 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의 말 한마디에,
옆에 있던 직원들까지 눈치를 보고, 민망해하고, 불편해한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고 나면
직원들은 나에게 와서 이렇게 말한다.
“최 선생님, 그분이 그렇게 말할 때 진짜 민망해서 죽는 줄 알았어요...
그럴 땐 우리도 옆에 있기 너무 불편해요.”
심지어 이 땡땡 교수 같은 외부인조차
나에게 조용히 와서 말했다.
“저분이 그런 식으로 말하실 줄은 몰랐어요. 깜짝 놀랐습니다. 그건 좀 아니었어요.”
그의 말은 나만 아프게 하는 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는 모두를 긴장시키고 상처 입히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그걸 모른다.
자기가 얼마나 민망하고 어색한 공기를 만들어내는지
스스로의 말이 자기에게도 해롭다는 걸 모르고 있다.
나는 그런 무감각함이 더 무섭다.
그건 단순한 성격이 아니라,
공감능력의 결핍이고, 권력자의 오만이다.
그래서 나는 글로 남긴다.
묻기 위해서,
정리하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그런 말 앞에 침묵하지 않기 위해서.
이건 고발이 아니라, 회복이다.
내가 나를 놓치지 않기 위한 기록이고,
내 존재를 스스로 지켜내는 연대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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