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중간 관리자입니다

언어폭력_“밀월관계가 끝났냐”

by 스칼렛

그날은 회의 중이었다. 이사장님은 느닷없이 이렇게 말했다. 이사장님이 육지에 있는 김교수님을 회의중에 부르라고 했다. 예산도 책정되지 않았고 평소대로 내부인력으로 처리하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느닷없이 직원들도 있는 상황에서

“최미경이 김교수랑 밀월관계가 끝났나?”

처음에는 귀를 의심했다. 이게 무슨 뜻일까,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그 말은 단지 한 사람에 대한 ‘사적인 관계 추측’이 아니었다. 그건 내 존재 자체를 음지화하고, 내가 만든 모든 신뢰의 토대를 성적인 루머로 끌어내리려는 말이었다.
그 짧은 문장에는 성희롱, 모욕, 가스라이팅이 복합적으로 얽혀 있었다.

그리고 그런 농담을 해도 누구 하나 감히 제지하지 못하고, 끽소리도 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더 문제였다. 조금 불편한 표정을 짓는 사람이 있을 뿐, 그것이 명백히 잘못된 말이라는 인식조차 없어 보였다.
내가 그 자리에서 이사장에게 문제를 제기하면, 분위기는 오히려 나를 불손한 사람처럼 느끼는 사람들이었다.

나는 참았다. 울지 않았고, 소리치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동안 그와 냉전 상태에 들어갔다.

며칠 뒤, 우리는 다시 얼굴을 마주했다. 화해의 시간이 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이번엔 마음을 정했다는 듯 말했다.

"앞으로 저에게 그렇게 말하시면 저도 똑같이 미러링 하겠습니다."

그가 당황하며 물었다. "그게 뭐냐?"

나는 조용히 말했다.

“저한테 ‘최미경이 김교수랑 밀월관계가 끝났냐’고 하시면요, 저도 ‘이사장님, 양○○님이랑 밀월관계 끝나셨어요?’라고 하겠습니다.”

그 순간, 그의 얼굴은 붉어졌고, 표정이 굳어졌다. 그는 목소리를 높이며 말했다.

"그럼 양○○이 너를 고소하지, 가만두겠냐?"

나는 조용히, 그리고 아주 또렷하게 말했다.

“그럼 이사장님은요? 저는 물론 고소 같은 건 못하겠죠. 하지만 누가 누구를 고소하고 말고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방금 말씀처럼, 들어보니 무척 기분 나쁜 말이죠? 그런데 저는 왜 그런 말을 들어야 했습니까? 정상적인 반응은, ‘내가 그런 말 한 게 그렇게 불쾌할 줄 몰랐네. 다음부턴 조심하겠네’ 그게 맞는 것 아닙니까?”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저 화가 난 채 말없이 자리를 떠났다.

그날 이후, 그는 의도적으로 나를 피했고, 나와 상의했던 논의들을 나를 건너띄고 팀장과 의논했다. 그건 마치 보이지 않는 징벌 같았다.

하지만 나는 겁내지 않는다. 그리고 나의 반격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날 내가 한 말은, 단 한 번도 내 감정을 손상시키지 않았다.


� 심리학으로 읽는 이 장면

미러링(Mirroring)은 상대방의 언행을 그대로 되돌려주는 방식으로, 대화를 통해 자기 인식의 거울을 제공하는 심리적 기법이다.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공감적 기술로 활용되지만, 권력 관계에서는 상대가 평소 인식하지 못했던 ‘자신의 폭력성’을 마주하게 만드는 강력한 도구가 된다.

이사장님은 내가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주자 처음으로 자신의 말이 얼마나 성적이고 공격적인지를 깨달았고, 그 불쾌함을 ‘고소’ 운운으로 바꿔 되갚으려 했다. 이는 권력형 가스라이팅과 2차 가해(Secondary Victimization)의 전형적인 반응이었다.

하지만 나는 울지도, 분노하지도 않았다. 그 대신 나는 말로 경계를 그었고, 그 경계는 지금까지도 나를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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