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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Oct 18. 2021

반주로 시작한 한잔이  한병되고 두병되고

18. 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였다

우리 집에는 밑반찬이 필요 없다. 성현이는 깻잎이나 장조림 정도의 밑반찬을 먹지만 수현이도 용하도 밑반찬을 먹지 않는다. 찌개든 국이든  볶음이든 주메뉴가 있어야 한다.

남편의 식성을 닮은 이다.


오늘 모처럼 아들에게 김치찌개를 해주었다. 용하가 좋아하는 김치찌개는 외갓집 김치에 앞다리살을 달달 볶은 후 찬물을 부어 끓은 후 두부를 야들야들 익혀서 꼭 파 한뿌리를 넣어야 한다.

용하는 턱을 추켜올리며 하하 거리며 맛이 미쳤다며 먹었다.

용하는 혀가 데일정도로 뜨거워야 한다. 밥이든 찌개든.


퇴근길에 정태춘 박은옥의 전주 콘서트 영상을 들으며 퇴근했다. 그들은  남편이 너무나 좋아하는 가수였다. 아니 그들의 노래를. 남편이 살아있다면 우린 두 손을 잡고 콘서트에 갔을 것이다. 남편은 유독 내 손을 잡고 다니는 걸 좋아했다. 이렇게 갑자기 추운 날에는 내 손을 남편의 코트 주머니에 넣어서 꼭 잡았다.  잘 때도 꼭 손을 잡고 잤다. 그래서 가끔 꿈에서 깨어났을때 오른손이  따뜻할때가 있다.


가끔 남편이 좋아하는 걸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면 남편생각에  슬프다. 업무적으로 원산지 표시 지도 점검을 나간 날 떡심이 있는 등심을 볼 때 남편 생각이 났다. 지금은 내가 사줄 수 있는데.

정태춘의 노래를 들으며 남편생각이 났다. 살아있다면 콘서트에 같이 갔을 텐데.


내가 밥을 하는 동안 남편은 꼭 소주 한 병을 사 왔다. 반주라며.

그렇게 시작된 반주는 한 병을 다 마시고 술에 취할 때까지 마셨다.

처음에 식탁에서 한잔의 술을 허락받기 위해 남편은 갖은 애교를 다 떨었다.  한잔 두 잔 술에 기분이 좋아진 남편은 한 병만 더 마시겠다며 당당한 요구를 했고 나중엔 취해서 인사불성이 되곤 했다.

남편이 폭력을 쓰거나 살림을 부수거나 하는 짓은 하지 않았다. 대신 남편 방에서 밤늦도록 lp판이 돌아갔다.

정태춘 양희은 윤형주 등의 포크송 가수들과

아바, 핑크 플로이드, 존 바에즈 멜라니 사프카 등의 팝송 수들과

대부, 미션, 아웃 어브 아프리카에 나오는 영화음악들이었다.

남편은 밤새 음악을 틀어놓고 겨우 잠든 나를 깨우러 왔다. 그래서 같이 음악을 듣고 영화를 봐주길 바랬다.


나는 너무나 피곤했다. 그리고 술냄새가 싫었다. 

그렇게 전화기가 뜨거워지도록 사랑의 밀어를 나누던 우리는 조금씩 조금씩 멀어졌다. 

모두 술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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