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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Oct 20. 2021

스칼렛의 정원

19. 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였다

남편이 알코올 병동에서 이혼을 요구해왔다. 이야기의 흐름상 그때 이야기를 쓰려했는데 그 이야기를 쓰려했더니 가슴이 두근거리고 마음이 아팠다. 

어쨌든 그 이야긴 나중에 하기로 하자.

남편이 이혼을 요구해왔다. 그렇게 맹렬히.

살면서 주민등록등본 한 통 발급해본 적 없이 행정에 게으름을 피우던 사람이...

그 요구가 어찌나 집요하던지.

정말 인간이 얼마나 뻔뻔스러울 수 있는지.

정을 뗀다는 말이 어떤 건지 절절히 느끼게 해 주었다.


이혼을 당한 기분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너무나 황당하여 처음엔 떼를 쓰는 줄 알았다.


그가 요구해서 이혼을 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아이들과 친정 식구들 그리고 그의 누님 정도였다.

믿기지 않지만 결혼 19년 10개월을 살고 이혼을 당했다.

그중 10년은 알코올 중독자로 산 남편에게 이혼을 당했다.

재산은 은행의 빚뿐이었고

빚도 내가 다 안고 아이들 양육권도 친권도 다 내가 가졌다.

미성년자인 아들 때문에 3개월의 숙려기간을 거쳐 이혼했다.

 이때의 열패감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몰랐다.


이혼할 의사가 없다는 말에. 의사는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의사는 어쩌면 남편이 재도약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고 했다. 그리고 나에게 말했다.

"이제 보호자님 스스로를 돌보세요. 누군가의 보호자로 10년을 산다는 거  결코 평범하지 않아요. 보호자님. 보호자님의 마음을 더 이상 혹사하지 마세요."

나는 지금은 어찌어찌 책임지지만

이혼 후 떠났는데 아이들 아빠라는 이유로 다시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되돌아와서 또다시 내가 그의 부양자가 되는 상황이 될까 봐 두렵다고 했다.

남편은 생전 욕한 마디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평상시에도 욕을 쓰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데 의사 앞에서 쌍욕을 했다.


아. 네가 떠나면서 나에게 주는 선물이로구나.

이런 욕을 하고 다시 돌아오는 일은 없겠지.

그거면 충분하다.

모든 절차를 남편이 진행했고 남편이 원하는 날짜에 나타나기만 하면 되었다.



결혼 20주년에서 3개월 빠진 세월을 살고 이혼을 했다.

남편이 떠나자 아이들. 표정이 밝아졌다.

성현이가 헤르만 헤세의 정원 가꾸기의 즐거움이란 책을 선물했다.

나는 날마다 삽질을 했다.

성현이가 대학교 때 보낸 편지

스칼렛의 정원


남편이 떠나자 어깨에 진 무거운 짐을 벗어 놓은걸 같았다. 그러면서도 가슴은 총 맞은 것처럼 휑했다.

대학원 입학 준비를 했다.  그리고 날마다 정원을 가꿨다. 돌을 줍고 쌓고 꽃을 심었다.


땅은 힘을 갖고 있었다. 이쑤시개로 머리를 쑤셔댈 정도로 극심한 편두통도 호미질을 하다 보면 사라졌다. 정원이라기엔 너무 초라하여 난 밭이라는 표현을 썼다 밭에서는 오이도 가지도 호박도 무성하게 자랐다.


가슴이 휑하면서도 왠지 살 것 같았다. 아이들과 난 김동률의 노래를 들으며 장을 보러 가고 장사익의 노래를 들으며 도서관에 다녔다.


이제 더 이상 우리 집에 119 구급대 차가 올 일도 경찰차가 올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나는 퇴근해서 방을 닦았다. 냉장고를 청소하고 장롱을 닦았다. 그래도 잠이 오지 않을 땐 마당에 나가 풀을 맸다.

남편이 병원에 있을 때는 신경 쓰지 않았는데

이혼하고 남편이 떠나고 난 후에는 문단속에 신경을 썼다.

큰 짐을 벗기도 했지만 왠지 아끼는 그릇에 이가 빠진 기분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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