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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칼렛 Oct 21. 2021

낮의 반은 꿈을 꾸고

20.나는 알코올 중독자의 아내였다

 남편은 종종 메일을 보내왔다.


                                                                                                                                                                                           

내 꼴이 꼭 이 짝이네.

어제부터 술 안 먹을라고 작정했더니 그것도 안되고...

오늘은 어제 밤새서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멀뚱 거리고 있네,

여기저기 뒤져보다 병원서 썼던 거 내 심정.

사랑 혀...


낮의 반은 꿈을 꾸고

반은 꿈을 해석한다.

밤의 반은 눈을 뜨고

반은 눈뜬 이유를 생각한다.


아들에게 말했다.

기쁜 소식과 나쁜 소식

밥 먹기 전에 기쁜 소식을 말했다.

우리가 달에 가게 되었단다.

밥 다 먹고 말했다.

우리가 달에 가면 다시는 못 올 거라고


커튼이 드리워진 영안실

그 앞 윷놀이가 재미있다.

저 누워있는 뭣보다

지금 당장 저 위까지 흩어지는 웃음소리.


다시 아들에게 물었다.

좋은 소식과 슬픈 소식

아이스크림을 먹기 전에 말했다.

아빠는 너를 사랑한단다.

다 먹고 난 후 말했다.

사람이 죽기 전엔 제일 시원한 걸 원한다고


난 네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어.

얼마 지나지 않아도.





나는 남편이 그 여자랑 잘 살아주길 바랬다.

나는 남편의 실비보험을 납입하고 있었다.

성현이에게 아빠를 만나 보험 수령인을 성현이 이름으로 바꿔놓으라고 했다.

성현이 물었다.

-엄마 그 일을 처리하면 달라지는 게 뭐예요?

-만일 아빠가 누군가랑 결혼하면 보험금을 그 여자와 너희 3남매가 나눠야 해.

성현이 말했다.

-그럴 리도 없지만 혹시라도 그런 일이 있다면 아빠랑 살아준 게 있으니 그 돈을 받을 자격이 된다고 생각해요.


나는 남편의 보험료를 넣을 때마다 억울함에 몸부림쳤다.

그래도 떠난 남편의 보험료를 꼬박꼬박 불입한 것은 성현이가 어느새 스무 살이 되어 아빠의 법적 보호자가 됐기 때문이었다.


끝났다고 끝난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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