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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나 Aug 27. 2021

대중음악 속 소리꾼

안예은, 그의 음악에 대한 생각

요즘에는 안예은이라는 싱어송라이터가 좋다. 처음 그를 알게 된 건 친구의 추천이었는데, 그때만 해도 안예은의 음색은 솔직히 내 취향이 아니었다. 무게감 있는 노래를 부르는데 얇은 목소리를 내는 것이 아쉬웠으나, 그의 목소리는 바꿀 수 있는 것이 아닌지라 그저 내 취향에 맞지 않는다 생각할 뿐이었다. 그러나 그가 쓴 가사는 조금씩 내 마음에 들어왔고, 조금씩 나도 모르게 그에게 스며들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날, 우연히 그의 <능소화>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그의 노래를 소화할 수 있는 사람은 안예은 그 자신뿐이라고.


얼마만인가, 음악에 한이 등장한 것이


   그는 다양한 장르의 곡을 작곡한다. 댄스부터 발라드까지. 하지만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댄스 음악', 혹은 '발라드 음악'과는 다른 매력을 선보인다. 어쩌면 그 장르는 모두 '안예은'으로 통칭될지도 모르겠다. 그의 노래에는 '한'이 담겨 있고, 그 '한'을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음악인 우리 음악, 즉 국악풍의 요소가 섞여 있기 때문이다. 위에서 설명한 <능소화>를 들어보자.

https://www.youtube.com/watch?v=hbeSbiaHKbw

안예은이 '호러' 장르로 쓴 첫 번째 곡이다. 여름을 맞아 납량특집으로 쓴 첫 번째 곡인 <능소화>는 그의 의도대로 으스스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러나 비단 그뿐만은 아니다. 가사를 살펴보면 '원통하오', '서럽구나' 등의 말이 반복된다. '혈루(피눈물)에 잠겨 죽으리', '지옥에서 다시 만나리' 등 무시무시한 언어 속에는 화자의 한이 서려 있다. 이는 그의 창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난다. 다시 들은 그의 음색에는 힘이 있었고, 이전보다 한층 더 두꺼워졌다. 목소리에서부터 한이 서려 있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중얼거리듯 고요하게 부르는 부분에서는 억눌린 '한'을, 진성으로 터져나오듯 울부짖는 고음에서는 서려 있는 한을 마음껏 분출한다. 이렇게 가사 속의 한은 그의 목소리로도 뱉어져 나온다. 그래서일까. 무섭지만 억울한 사연이 든 우리나라의 설화 한 편을 본 듯하다.


노래 속에 서사를 담다


   그의 노래를 듣는 사람들은 판소리가 연상된다고 많이 표현한다. 창법도 마찬가지지만, 그의 가사 속 서사에서 판소리를 연상시키는 사람이 많다. 보통 감정에 호소하는 노랫말을 쓴 다른 노래와 달리, 그는 판소리처럼 노래에 서사를 부여한다. 구전 설화부터 때론 인간이 느끼는 다양한 감정까지, 그 범위는 다양하다. 어떤 것에 서사를 부여하는 걸 좋아한다는 안예은은 흥미로운 설화를 보면 기록해 두었다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한다고 한다. 그 결과 서사가 담긴 수많은 곡이 탄생했다. 앞서 살펴본 <능소화>도 마찬가지다. 승은을 입은 '소화'라는 궁녀가 임금이 자신을 찾기를 기다리다 죽어 능소화로 피어났다는 설화를 바탕으로 작사했다. 설화의 주인공이 자신을 영영 찾지 않고 궁 한구석에 방치한 임금을 원망하는 내용의 가사이다. 그의 신곡 <창귀>도 마찬가지다. 직설적인 제목이 드러내듯 호환(患)을 당한 사람이 죽어서 되는 '창귀' 설화를 이용해 만든 음악이다. 난무하는 불협화음과 넓은 폭으로 이동하는 음역은 공포심을 자아내고, 빠른 속도로 노래되는 가사는 압박감마저 들게 한다. '스물한 살에 범을 잡겠다고 거드럭대다가 목숨을 잃은' 창귀가 지나가던 나그네를 바침으로써 성불하기 위해 나그네를 꾀다가, 나그네를 홀려 성불할 수 있게 된 창귀의 광기 어린 기쁨도 동시에 표현하고 있다. 그 무엇보다 한국적인 서사로 만든 그의 곡에는 한국의 귀신만이 가질 수 있는 한을 품고 있고, 그의 목소리에서도 그 한은 조금의 남김도 없이 모조리 표현된다.


   앨범 <섬으로> 중 <출항>, <항해>, <난파> 역시 서사를 부여한 노래들이다. 어떤 설화가 담겨 있지는 않지만 출항의 비장한 각오, 흔들리는 항해의 과정, 결국 맞이한 난파라는 서사를 부여한 채 화자의 감정을 그 안에 녹여냈다. 현대적인 사운드에 버무려진 '어기여차' 등의 민속적인 감탄사는 그만의 색을 확고히 한다. '인생을 안다면 신선이라, 어찌 사람이겠소. 배 위에 이 한 몸 올랐으니 어디라도 가보자'는 다짐으로 시작된 그의 <출항>은 혼란이 가득한 <항해>로 이어진다. 비장하고 리드미컬하던 분위기의 <출항>과는 달리 <항해>는 이리저리 흔들리는 밤바다 위에서 혼란이 가득하다. 안예은이 부르는 멜로디 라인은 출렁이는 파도를 연상케 한다. 피아노 반주로만 이루어져 있어 더욱 고요하지만 화자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두렵다. '다시 아침이 온다면 바른 선택을 할 수가 있을까, 북두칠성도 없는 밤에 버려져 무얼 하나'와 같이 후회의 마음도 엿보인다. '앞을 내다봐야 하는 두 눈은 겁에 질려 뒤를 돌아보'다가 결국 <난파>를 맞는다. 폭풍우를 맞은 바다처럼 미끄러지는 글리산도로 시작된 <난파>를 맞은 화자의 후회와 두려움은 극심해진다. 이어지는 피아노 반주는 휘몰아치는 폭풍우를 연상케 하지만 마냥 비극적인 결말로 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경쾌한 재즈 리듬을 사용한다. 안예은의 목소리는 <항해>의 감정을 심화시키고 절박함까지 느끼게 한다. 점점 화려해지는 반주는 상황의 심각성을 고조시키고, 점점 다가오는 끝에서는 비명을 지른다. 이어지는 기나긴 반주는 소용돌이 속 결국 부서지는 배를 연상케 하면서, 기나긴 서사를 끝낸다.


대중음악 속 소리꾼, 안예은


   그의 음악에 대해서는 하고픈 이야기가 정말 많다. <문어의 꿈>, <미스터 미스터리> 등 현대적인 곡도 많지만, 우리 전통이 고스란히 들어간 것이 재미있어 그 위주로 글을 썼다. 송소희, 이날치 밴드 등 국악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는 요즘이지만 대중음악 속에 옛것을 담고, 판소리와 보컬이 혼합된 노래를 부르는 가수는 안예은이 유일무이하다. 다양한 색의 슬픔이 가득한 요즘 음악이지만 한을 담은 음악은 찾기 힘든데, 안예은의 음악에는 한이 가득하다. 우리 민족이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정서인 한. 그 한을 그대로 담아 앞으로 더욱 흥미로운 음악을 많이 만들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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