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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나무 Mar 06. 2024

발리에서 OO을 해보았습니다.

여행을 떠나는 마음

지금껏 어떤 마음으로 여행을 떠나왔을까? 추운 겨울을 피해 온천에 가고 싶다거나 끝없이 푸르른 지중해 바다가 보고 싶어 졌다거나 다이빙 자격증을 딸거라든가와 같이 뚜렷한 의도를 가지고 출발한 적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시시하거나 예기치 못한 이유가 시작이었다. 휴가철이니까 어디든 가야지 싶어, 일상과 한 발자국 떨어질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좋겠다는 갑작스러운 마음에 응답하여, 그저 시간과 예산이 맞아떨어져서 그것도 아니면 여행 가자는 친구의 부름에 응해서. 흐릿한 목적과 막연한 기대로 떠난 길이었지만 그 길 위에서 나는 많이 웃었다. 백지로 출발한 마음은 따듯한 사람들의 인사에 한 번, 맛있는 음식에 한 번, 자꾸만 바라보고 싶은 풍경에 한 번. 그렇게 색이 칠해져 알록달록해졌다.


목적지가 정해지고 나면 꼭 가봐야 할 곳이라든가, 꼭 먹어봐야 할 음식 리스트를 살펴보는 것으로 준비운동을 하곤 한다. 정작 그곳에 가면 사람들의 북적임에 질려 랜드마크도, 유명한 음식도 관심 밖이 되면서도. 그럼에도 먼저 다녀온 사람들의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는 것은 더운 날 시원한 수박 한 입 베어 문 것처럼 기분이 좋아지는 일이다. 때론 글과 글 사이에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마음을 발견하기도 한다.


발리행을 준비하는 틈과 틈 사이에 자라난 마음은 이러했다. 그곳에서 건강하게 지내다 돌아오고 싶다고,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고. 여행을 떠나면서 이런 기대를 걸어 본 적이 있었던가? 어쩌면 갭이어(gap year), 그러니까 백수로 보내는 한 해에 힘이 되어 줄 어떤 자세가 필요했을는지도. 뚜렷한 목적 없이 시작한 쉼이었기에 불안정한 지금과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리고, 얼음처럼 녹아내리는 날이 많았다. 여행이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겠지만 흔들리는 마음에 향기가 피어오르기를, 녹아버렸지만 어디론가 흘러가기를 바라며 무언가를, 무엇이든 해보자 싶었다. 빈 마음에는 무엇이든 착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초심자의 마음에는 여러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스즈키 선사의 말을 믿으며.


그리하여 발리에 도착하자마자 꾸따 바다로 나가 서핑을 배웠다. 사누르에서는 깊은 바다를 탐험하며 처음으로 몰라몰라(mola-mola, 개복치)를 만났고, 우붓에서는 흥미가 없던 요가도 열심히 해보았다. 이전의 나라면 절대 택하지 않았을 어마무시한 높이의 산을 오르고, 여행자 카페에 가입해 저녁 같이 먹을 사람을 구하는 누군가의 조심스러운 글에 댓글도 달아보았다. 꼭 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지만, 작은 시도일 뿐이었지만 어느새 물을 머금고 피어오르는 물수건처럼 나는 촉촉한 마음이 되었다.


인도네시아 발리로 향하는 비행기 티켓을 산 것은 그간 쌓아 둔 마일리지를 쓰기에 아깝지 않은 곳이라 생각해서였다. 내가 가진 마일리지로 갈 수 있는 제일 먼 곳이자 제일 비싼 티켓. 인천공항에서 발리 덴파사르 공항까지 향하는 직항은 100만 원 내외로, 항상 최저가부터 찾아보는 내가 쉽사리 결제할 수 있는 금액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까지 쌓아온 결실로 이 정도 사치는 괜찮지 않을까 싶었다. 한달살이를 하고 싶었던 것도, 노마드였던 것도, 비치클럽이 기대되었던 것도, 서핑캠프에 참여하고자 하는 의지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마일리지가 때마침 그곳까지 나를 데려다줄 수 있었던 것뿐이다.


시작은 그저 숫자가 결정해 준 여행이었지만 소소한 재미를 하나씩 수집하다 보니 한 달 정도 예상하고 떠난 여행은 조금씩 늘어져 비자를 연장하고, 단기 여행자 신분으로 머무를 수 있는 최대 60일을 꽉 채워 비자 만료일 아침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발리를 시작으로 마나도, 코모도, 롬복 그리고 다시 발리로 이어진 여행. 두 달 동안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고, 해변길을 따라 걷고, 맛있고 건강한 음식으로 배를 채우고, 드문드문 운동을 하면서 나는 건강해졌다. 오늘은 서핑을, 내일은 요가를. 그렇게 작은 시도를 하나씩 하면서 '아, 의외로 재미있잖아!' 하며 엄청난 발견을 한 듯 히죽히죽 웃어보기도 하고, '이런 건 나와 어울리지 않는군'하며 스스로에게 한 발자국 가까워지는 시간을 보냈다.


물론 늘 건강하고, 늘 새로웠던 것은 아니다. 어떤 날은 막연한 불안감에 마음이 갈라져 잔잔한 음악이 고파지기도 했고, 집에서 가족들과 함께 먹던 따듯한 음식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그럴 땐 파도에 마음이 씻겨 돌아오기를 바라며 바다를 향해 걸었고, 그리움의 허기를 조금이나마 달랠 수 있는 한식당을 찾았다. 그러고 나면 다시 일어나 오늘과 내일을 향해 걸을 수 있었고, 자꾸만 꺼내보고 싶은 반짝거리는 조각을 모을 수 있었다.





✏️ 발리를 여행하면서 경험한 이야기를 하나씩 풀어낼 예정입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 생생한 발리 여행 후기가 궁금하다면 블로그와 인스타를 방문해 주세요!

blog_ 발리에서 마나도까지 여행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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