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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테오 Aug 23. 2023

울산여지도 蔚山輿地圖  9

송정, 호국 혼이 물길을 연 넉넉한 땅

8월이다. 염천 하늘이 펄펄 끓는다. 해마다 8월이 오면 대한의 심장이 뜨거워진다. 나라를 잃은 망국의 날과 외세의 힘으로 해방의 두팔을 높이 치켜세운 날이 모두 염천 더위에 녹아 있다. 8월의 울산에 꼭 밟아봐야 할 땅이 있다. 오늘 울산여지도가 한발짝씩 마주하는 땅 송정이다. 송정은 항일정신의 오래고 깊은 뿌리가 파고든 땅이다. 마을 서남쪽에 큰 노송이 우거진 숲을 두고 정자를 차렸기에 ‘송정(松亭)’이라고 불렀다고 전한다. 뒤로는 무룡의 지세가 동해을 가렸고 앞으로는 동천강이 북에서 남으로 가로지른다. 동천 주변은 사람살기에 좋은 땅으로 청동기시대 이래 주거지가 여럿 발굴됐다. 북쪽은 창평동, 동쪽은 무룡동, 남쪽은 화봉동, 서쪽은 시례동 및 중구 장현동과 접한다. 북쪽 경계로 무룡 자락에서 솟아나는 물길이 우렁차 이곳에 인공 저수지를 파서 지금의 호수공원을 만들었다. 


 송정은 출발이 율포현이었고, 신라 경덕왕 16년에 동진현으로 이름을 바꿨다. 이후 940년 고려 태조 23년에 흥려부에 통합됐다 조선조에 농소, 조선조 말에 송정방으로 몇 번의 이름을 갈아탔다. 신라 때부터 사람이 산 땅이기에 안온한 땅은 정평이 났고 그 배경은 역시 뒤를 버티고 우뚝한 무룡이 있기 때문이다. 무룡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무리용산(無里龍山)이라는 이름으로 등장한다. 고지도 기록에 보면 울산의 진산으로 울산읍치의 북서쪽 방향으로 어련천 동쪽 선을 따라 경주 봉서산을 지나 5개의 봉우리로 그려져 있다. ‘무리(無里)’는 ‘물(水)’을 의미하는데, 무리룡산은 물룡산으로 이는 주룡산(主龍山)에 물을 빌던 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또 무룡산은 기우제의 옛말인 무제(舞雩祭)에서 비롯됐다는 설도 있고 무릉도원의 무릉이 변한 이름이라는 설도 있다. 하지만 그보다는 울산의 진산으로 하늘에서 보면 다섯 마리 용이 동해를 타고 올라와 춤을 추는 길지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해 보인다. 


 그런 땅의 기세 때문인지 송정에서는 대한광복군 총사령이 태어났다. 바로 박상진 의사다. 박 의사 탄생 이전에도 울산은 1000년을 이어온 항일정신이 밑바닥에 흐르는 도시다. 울산 사람들은 잘 모르고 있지만 울산은 임진왜란 당시 의병이 분연히 일어난 곳이고 수많은 외세 저항운동이나 의병활동, 독립운동의 산실이다. 한 세기 전 대한이 만세의 물결로 물들었을 때 울산 사람들은 일제 저항 운동에 앞장섰다. 


 오늘 울산여지도가 살펴보는 송정은 박상진 의사를 품은 땅이다. 울산의 끝자락 북구 송정동은 신라 때부터 조용한 농촌 마을이었다. 하지만 격정의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충절의 고장으로 탈바꿈했다. 바로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 의사 때문이다. 송정의 옛 마을 지당마을에 박 의사의 생가가 있다. 밀양 박씨의 집성촌이다. 밀양 박씨 일가가 울산 송정에 온 것은 현종 5년인 1664년으로 전해진다. 300년 넘게 집성촌을 이뤄 왔기 때문에 송정  박씨라 불리어질 정도다. 박상진 의사 생가터와 조금 떨어진 곳에 박 의사의 고조부 휘 성창공의 구택이 있었고, 지금은 양정재라는 정각만 남아 있다.


 최근 대구에서 울산 출신 박상진 의사 기념전시회가 열렸다. 대구근대역사관 기획전시로 마련된 이 행사는 ‘대구에서 만나자-1910년대 광복을 꿈꾼 청년들’이라는 이름이다. 1910년대 대구를 중심으로 일제의 무단통치에 맞서 무장투쟁을 벌였던 비밀결사 조직 광복회(光復會)를 재조명하기 위한 전시다. 광복회 총사령으로 추대된 고헌 박상진은 울산사람이다. 그가 일제의 벼슬을 버리고 1912년 대구 본정거리 앞에 상덕태상회를 연 것은 일제 탄압에 맞서는 장소성으로 울산보다 대구가 유리하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박 의사의 머릿속에는 만주의 독립운동 지원 자금을 마련하고 독립운동 연락 거점을 만든다는 것 외에 어떤 생각도 없던 시절이었다. 광복회 결성으로 국내 독립단체의 결속과 통합을 꾀한 앞선 정신은 광복회가 지향한 공화주의 정강에서도 확인된다. 광복회는 1910년대 국내 독립운동 단체로는 유일하게 전국적 조직을 갖추고 대 일제 투쟁을 전개했다. 부사령 김좌진 장군을 만주로 파견해 무장단체로 키워낸 이도 박상진 총사령이었다.


 울산의 8월이 특별한 이유는 박상진 의사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지난 몇 년간의 노력으로 많이 나아졌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은 알아도 그의 대장인 광복군 총사령 박상진을 알지 못했다. 정부가 호국 인물로 부각하고 지역에서 서훈 상향 운동을 벌이면서 박 의사의 위상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우리가 박 의사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그의 당당함 때문이다. 박 의사는 의병장이던 스승의 죽음 이후 만주를 떠돈 뒤 민족의 반역자들을 처단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경술국치 이후 일제 처단의 기회를 엿보던 장군은 조선국권회복단과 대한광복회를 결성하고 민족반역자와 부역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처단을 통보했다. 이같은 기개는 일제의 폭압이 자행되는 암울했던 시기에 우리 민족에게 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게 하려는 의도였고 비열한 일제 앞잡이와 지도부에게 경종을 울리려는 외침이었다.


마지막 팁 하나. 최근 들어 전국적으로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발굴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 움직임에 울산은 완전히 반대로 가고 있다. 독립운동가들의 산실인 입암마을의 경우 대규모 택지개발을 앞두고 있다. 이 마을은 파리 장서 사건에 참여했던 가산(可山) 이우락(李宇洛) 선생과 일제강점기 군자금 모금에 앞장섰던 문암(文巖) 손후익(孫厚翼) 선생, 항일운동을 벌였던 학암(學巖) 이관술(李觀述) 선생을 배출한 곳이다. 한 마을에서 세 명의 걸출한 독립운동가를 배출했지만 이를 알려주는 표지판이나 표식은 어디에도 없다. 문제는 이 일대가 이제는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는 점이다. 입암마을은 울산에서도 대표적인 독립운동가 마을이지만 기억할 콘텐츠는 소리 없이 파묻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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