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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반짝반짝 Jul 14. 2024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

상담을 하면 나의 어린 시절 미해결 과제를 파악하기 위해 ‘내가 엄마/아빠에게 가장 듣고 싶었던 말’이나 ‘엄마/아빠에게 가장 원했던 것‘에 초점을 맞출 때가 많다. 하지만 나는 정말 할 말이 없었다. 엄마 아빠가 내게 사랑의 표현을 안 해준 것도 아니고, 원하는 것은 진정한 사랑이었다는 것도 명확했다. 내가 더 이상 무슨 말을 더 해야 할까?


질문을 조금 바꿔야 한다. 당시 내게 가장 필요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나는 이제야 그 답을 깨달았다. 그것은 내가 원했던 것도,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게는 당시 어린아이에게는 너무 위험한 상태였던 엄마와의 격리가 필요했다. 아빠는 본인에게 칼을 들고 달려들 정도로 감정 기복이 심하고 정서가 불안정했던 엄마에게서 나를 분리시켜 놓았어야 했다. 그래야 내가 수도 없이 죽을 고비를 넘기며 죽는 것보다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일이 없었을 것이다.


아이에게서 엄마를 떼어놓는다는 것은 쉬운 결정이 아니다. 우리 아빠로서는 상상하기도 힘들고 엄두도 내지 못할 일이었다. 만일 그렇게 했다면 엄마에게 사랑받는 것을 죽도록 간절히 원했던 어린 나에게는 정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청천벽력과도 같은 가혹한 결정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정말로 필요했던 것은 바로 그 선택이었다.


나는 어렸기 때문에, 아빠도 그런 결정을 내릴 만큼의 확신은 없었기 때문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또 어떻게 했어야 하는지 알지 못한 채 가혹한 현실에 무력감과 환멸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것이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을 살아가는 모습이다.


내가 정말로 정말로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내 마음이 아닌 영혼 깊은 곳에서 진실로 원했던 것은 무엇인가? 내 영혼은 나에게 가장 좋은 결정이 내려지길 바랬을 것이다. 내가 너무나 받아들이기 고통스러워 울고 불고 하더라도 사려 깊은 정확한 판단과 올바른 조치가 이루어지기를 바랬을 것이다. 내가 울고 불고 한다고 흔들릴 결정이라면 나는 그 결정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맞다는 신뢰를 갖지 못했을 것이다. 나에게는 믿음이 필요했다.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비록 내가 그를 원망하는 일이 있더라도 나를 보호하기 위한 올바른 판단을 내려줄 것이라는 믿음이 필요했다. 나는 엄마의 위험한 행동이 두려웠던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이 그토록 두려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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