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반짝 Nov 20. 2024

스스로 선택하는 삶

오늘 열 살짜리 여자아이가 소화불량으로 울렁거림을 호소하면서 진료를 왔다. 폐렴으로 입원했다 퇴원한 이후 체해서 3일간 잠도 못 잤다고 한다. 아이는 울면서 속이 울렁거려서 힘들고, 토하고 싶어도 토가 안 나오고 토를 하려고 하면 토하는 것이 힘들까 봐 무섭고, 울렁거려서 눕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침 맞는 것은 거부하여 내가 손발과 등의 혈자리 부위를 눌러주고 배를 마사지해 주었는데, 그렇게 하는 동안에도 아프고 힘들다고 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오늘 밤 속이 계속 안 좋을까 봐 걱정이 되어서 울었고, 어젯밤 자신이 힘들다고 할 때 엄마가 같이 깨어있어주지 않고 잠들어서 화가 났다고 했고, 이렇게 해도 무섭고 가만히 있으면 계속 아플까 봐 무서워서 울었다. 나는 아이를 달래주고 하기 싫다는 것은 안 하겠다고 약속했는데 아이 어머니는 항상 아이가 이러는 것을 겪어봤으므로 내가 그냥 강제로 손을 따 주었으면 했다. 계속 울던 아이가 내가 다른 환자를 못 보고 있는 것을 깨닫고 이래도 되냐고 물어서 안 되는데 네가 울고 있으니 어쩔 수 없지 않냐고 했더니 화장실에 가겠다고 해서 다른 환자 볼 동안 어떻게 할지 생각해 보라고 했더니 결국 엄마의 권유대로 손을 따겠다고 결정했다. 손을 따러 베드에 가서 또 한참 동안 겁을 먹어 울고 불고 실랑이가 벌어졌다.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아이가 망설이다 머뭇거리는 사이 손을 꼭 붙들고 얼른 따라고 신호를 보냈지만 나는 아이가 스스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용기를 내어 손을 따기를 허락할 때까지 기다렸다. 울고 불던 아이가 막상 손을 따고 나니 그다지 아프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만 징징거리고 울고는 나머지 손가락도 잘 내밀어 주었다. 치료가 끝나고 나서 간호조무사 선생님이 내게 어차피 그리 아프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을 테니 기회가 왔을 때 손을 붙잡고 땄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아이 어머니도 자신은 이 아이를 받아주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강하게 키우려고 한다고 얘기했다. 나는 엄마가 되어 본 적이 없고 그분들은 육아 경험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어린 아이이든, 치매 노인이든 간에 내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 아니라면 타인의 요청에 따라 환자 본인의 의사에 반하는 의료행위는 하지 않는다. 특히 어린아이의 경우 꼭 필요한 것이 아닌 이상 최대한 마음의 상처를 주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나는 아이 엄마의 힘든 육아를 도와주는 사람이 아닌 환자를 보는 의사이기 때문에 보호자를 위해 환자를 진료하지 않는다. 아이는 속이 울렁거려 힘든 것보다는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하기가 힘들어 우는 것인데 아무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어 서러운 감정 때문에 치료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아이의 감정을 무시하고 손을 딴다고 해서 치료가 성공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다. 그렇게 하면 이번 한 번은 체증 치료에 성공할지는 모르나 아이는 세상에는 믿을 사람이 없다는 불신과 내가 존중받지 못할 거라는 불안 때문에 앞으로 살아가면서 아플 때마다 의사를 믿고 몸을 맡기기를 더욱 두려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안과 두려움을 이기지 못해 힘들어하는 아이에게는 스스로 불안과 두려움을 극복할 충분한 힘과 용기가 있다는 사실과 비록 삶이 힘들더라도 내가 스스로 선택한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이 진정한 삶임을 경험하게 하는 것이 올바른 치료방향이라 생각한다.

작가의 이전글 어찌하시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