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반짝반짝 May 03. 2024

오늘 오전엔 여러 일로 인해 결심했던 사직서를 제출하고 오후에는 첼로 레슨을 다녀왔다. 집에 돌아오니 집 앞 골목에 알뜰장터가 서 있어서 구경을 하다가 도서관으로 향했다가 내 마음에 딱 드는 책 제목을 보고 대출을 해 왔다.


나는 영혼을 치유하는 의사가 되고 싶다. 그것이 나의 꿈이다.


상담학과 대학원에 지원서를 넣으면서 나는 이런 말을 했다.


“저는 사람들을 치료하는 일을 하였지만 아무리 성심껏 환자의 아픈 몸을 치유해 주어도 마음과 영혼이 병들어 있는 한 그 사람은 똑 같은 모습으로 또 다른 아픈 부위를 이끌고 제게 와서 똑같은 하소연을 하는 일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솔직히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많이 경험했을 것이다. 그런데 몸이 그렇다면 마음은 과연 다를까?


나는 5년간의 상담기간 동안 최선을 다해 병든 마음을 눈물로 회복하기에 힘썼고 엄청난 전문가였던 상담사는 내게 “이제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고 희망차게 살아가기만 하면 될 것 같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때 나의 상태는 어떠했을까?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때를 꼽으라면 죽을 고비를 넘기던 때도, 몸이 아파 아무것도 할 수 없었을 때도, 내 마음이 병들어 아파 죽을 것 같았을 때도 아닌 바로 그때를 꼽을 것이다.


평생 동안 내가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리가 없다고 생각하며 단 한 번도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던 내가 감히 하나님께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끔찍한 비명을 지르며 어떻게 내게 이런 저주를 내릴 수가 있었냐고 무조건 나를 죽여내라고 지금 당장, 아니 시간을 돌려서 내가 수정되자마자 그때로 돌아가 이 모든 기억이 없을 때 나를 죽이라고, 어떻게 내게 이럴 수가 있냐고 악을 쓰며 발버둥을 치던 때가 바로 그때였다. 나는 그때 나의 영혼의 상태와 우리 엄마의 영혼의 상태, 우리 가족의 영혼의 비참한 상태를 깨닫게 되었다. 내가 지옥 한복판에서 태어나 내내 지옥에서 살았다는 것을 그제야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을 보고 황홀경에 빠져 행복감 속에 살아왔는데 내가 미처 보지 못했던 내가 죽어도 빠져나올 수 없는 저주 속에 처음부터 끝까지 갇혀버린 운명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의 배신감은 어마어마했다. 나보고 희망차게 살아가기만 하면 된다니.. 내 모든 가족들이 제정신이 아닌 채로 비참한 상태로 살아가고 있는데 내가 그들과 아무 상관없이 희망차게 살아갈 수가 있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내가 제정신이 아닌 이상 어떻게 그럴 수가 있을까…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행복해하던 시절의 내 모습을 죽도록 고통스럽게 바라보며 그때가 그리워 미칠 지경이었다. 이때의 내 모습은 대체 어디로 가 버린 것일까? 내가 어떻게 해야 이때의 이 모습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단 말인가? 이런 일들을 겪고도 내가 다시 회복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마음을 치유하면 내가 그렇게 예뻤던 모습으로 회복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달려왔는데 마음이 치유되면 치유될수록 비참하고 낙담해 버려 어떻게 희망을 가져야 할지 모르겠는 내 영혼의 상태가 느껴졌다. 내가 무엇을 바라고 인생을 살아야 한단 말인가? 세상 모든 것을 주어도 내게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고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깊디깊은 영혼의 슬픔과 아픔을 대체 무엇으로 달래야 한단 말인가? 내가 하루, 아니 한 시간이라도 무엇을 위해 더 살아가야 하는지 아무것도 알 수가 없었다.

내가 살아보았자 나를 끝없는 수렁으로 더 깊이 빠지게만 할 내 가족, 이들을 버리고 싶어도 버리고 살아갈 자신이 없고, 책임을 지려고 해도 책임을 지고 살아갈 자신이 없고, 그러기도 싫었다. 내 한 몸 인생을 살아가는 것도 자신이 없는데 그들은 죽거나 말거나 아무 신경이 써지지도 않았다. 기도를 할 수도 없었다. 어떻게 해도 내 마음이 편해지지가 않을 테니 방법이 없어 오직 죽기만을 구했다. 하나님, 제가 얼마나 죽도록 최선을 다했는지를 아시잖아요… 이 결과가 이거라도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저 더 이상은 못 하겠어요. 도저히 버틸 수가 없어 미쳐버릴 것 같아요. 제발 그냥 저를 이제 그만 쉬게만 해달라는 것인데 그게 그렇게 힘드신가요….. 정말 안 되는 건가요……제발 제발요……


몇 날 며칠을 괴로워하다 나는 드디어 내 인생에서 가장 인정받아 마땅한 순종을 했다. 하나님의 뜻이라면….. 정말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살라면 살겠다……. 내 인생의 가장 어려운 결정이었다. 그 기도와 함께 내 영혼 가장 깊은 곳에 있던 서러움과 서글픔의 눈물이 길게 터져 나왔다. 아….. 내가 100살까지 살아야 한다니…. 나는 금방 죽을 줄로 알았는데…. 내가 이렇게 오래 살 줄 꿈에도 몰랐는데 어떻게 해야 하지?


어떻게 보면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사실은 내게는 희망이었고, 나와 꼭 닮았다던 죽은 고모가 하늘나라에 갔던 27살은 내게 무의식적으로 자리 잡은 무서운 목표였었다. 솔직히 말해 그 이후의 삶을 한 번도 생각해 본 적도 없고 계획해 본 적도 없었다. 내 삶은 그저 아픈 몸과 마음을 겨우 이끌고 최대한 가는 데까지만 가 보자고 생각하는 인생이었다. 그나마 조만간 끝날 짧은 생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견딜만하다고 생각했는데 갑자기 계획이 전면 수정되어 100살까지 이 끔찍하고 지겨운 삶을 견뎌내야 한다고 생각하니 완전히 속임수에 놀아난 느낌이었고 마른하늘에 날벼락을 맞은 느낌이었다. 삶보다 죽음에 더 가까웠기에 희망을 가지고 가벼운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었던 내 마음에 갑자기 엄청난 형벌과도 같은 시간과 책임이 주어져 너무너무 살기가 싫었다. 내가 어떻게 그 시간들을 견뎌왔는데.. 오늘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해 최선을 다할 수 있었던 것인데 갑자기 여태껏 죽도록 버텨온 시간의 몇 배는 더 견뎌야 한다니 눈앞이 깜깜했다. 그렇다고 여태까지 그렇게 최선을 다해 살아왔는데 내가 남은 시간이 길다고 대충 세월아 네월아 하면서 살아갈 리는 없고 또다시 미친 듯이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것이 뻔하지 않은가? 나는 진짜 열심히 살아가는 게 너무 토가 나올 정도로 지겨워서 미쳐버릴 지경인데?? 이걸 또 해야 한다고?? 나는 20년 실미도 군대생활을 끝내고 제대했더니 갑자기 특수부대로 80년 근무를 명령받은 사람의 기분처럼 정말 미치고 환장하여 팔짝 뛸 지경이었다.


그렇게 미치고 팔짝 뛰면서 나의 진정한 삶은 다시 시작되었고, 출산의 고통과도 같은 영혼의 치열한 사투를 지나왔었고, 내 영혼은 어린 시절의 행복했던 그 모습을 다시 회복하였다.


영혼의 회복은 사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죽음을 이기는 사랑, 그 사랑으로 사랑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그 길 밖에는 없다.


나는 왜 꿈과 사랑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죽음과 고통에 대한 얘기를 길게 늘어놓는 걸까? 사랑은 죽음을 이기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이름은 총 3개인데 첫 번째 이름은 상희였다.

“항상 기뻐하라”는 뜻이다.

나는 항상 기쁘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수 있기에…

그리고 영혼을 살리는 의사가 되는 것은, 죽음에 매여있는 영혼을 사랑에 매인 영혼으로 살려내는 가장 기쁜 일이 될 것이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

작가의 이전글 지침 ㅠ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