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전 당신이 부끄러웠습니다
아버지에 대한 단상斷想
“과일이 왔어요!”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를 정도로 맛있는 과일이 왔어요!”
골목 어귀에서 들려오는 목소리. 십중팔구 아버지다. 나는 주산학원으로 가던 걸음을 멈추고 파란 대문 집의 살짝 열린 틈으로 잽싸게 몸을 숨겼다.
초등학교 시절, 우리 동네 대문은 대부분 파란색이었다. 집집마다 대문이 파란색이었던 이유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다만 그날 그 파란 대문 집의 대문이 유독 파랬던 게 기억이 날뿐.
대문 틈에 숨어 숨을 죽이고 그 목소리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예상대로 아버지였다. 아버지는 손수레에 과일을 잔뜩 싣고 골목을 지나가고 계셨다.
마침 지나가던 아주머니 한분이 아버지를 부르셨다. 아버지는 급히 손수레를 골목 어귀에 세우셨다.
“과일 사시게요? 어떤 걸로 드릴까요?”
“복숭아 맛있게 생겼네요.”
“네. 엄청 달아요. 자, 이거 한 번 드셔 보세요.”
아버지의 목소리는 그 파란 대문 집 앞에서 얘기를 하는 것처럼 유난히 크게 들렸다. 난 아버지에게 들킬세라 대문 틈 사이로 엉덩이를 더 들이밀었다.
마침 주산학원 수업시간에 맞춰 친구들이 하나 둘 오기 시작했다. 친구들은 대문 틈 사이에 숨어있는 나를 보고는 물었다.
“야! 거기서 뭐해?”
“최일춘, 뭐하냐고?”
난 대답 대신 조용히 하라고 손짓했다. 하지만 친구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내 이름을 부르면서 연신 뭐하냐고 물었다. 심지어 자기들끼리 숙덕공론을 하기 시작했다. 좁은 골목에서 옥시글옥시글 떠드는 가운데, 한 친구가 “야, 저 밑에 너희 아빠잖아?” 한다.
그 소리에 비좁은 곳에 웅크리고 앉아있어서 인지, 초여름으로 접어드는 날이어서인지, 어떤 이유에서인지 등줄기를 타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내가 친구들과 실랑이를 하는 동안 더 이상 아버지는 보이지 않았다. 손수레에 한가득 실려 있었을 제 빛깔을 뽐내며 먹음직스러운 복숭아도 아버지와 함께 사라졌다. “과일이 왔어요!”라는 목소리도 점점 멀어져 갔다.
그날 아버지의 목소리가 한동안 귓가에서 윙윙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버지의 목소리에 약간의 떨림이 있었던 거 같다. 그리고 신산했던 거 같다. 그랬던 거 같다. 아마도.
그날 나는 평상시보다 늦게 귀가했다. 무언가 잘못한 거 같은데, 딱히 뭘 잘못했는지도 잘 몰랐다. 그냥 늦게 귀가를 해야 할 거 같았다. 집 주위에서 걸근걸근 눈치를 보다가 도둑고양이처럼 조심스럽게 파란 대문을 열고 집에 들어섰다.
아버지는 아직 이셨다. 다행이었다. 엄마는 부엌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계셨다. 풍로에서 끓고 있는 돼지고기 국 냄새가 허기진 내 코를 자극했다. 하지만 본능적으로 그날은 못 먹을 거 같았다. 그냥 그렇게 생각이 들었다.
얼마쯤 지났을까 저녁 준비가 다 되었는지 엄마가 밥 먹으라고 나를 불렀다. 난 그 목소리를 못 들은 척 허기진 배를 움켜잡고 이른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는 잠이 들었다.
잠결에 아버지가 장사를 마치고 돌아오신 거 같았다. 그게 다였다. 그날 아무 일도 없었고 난 그렇게 깊게 잠이 들었다.
그날 아버지는 친구들이 내 이름을 부르는 소리를 들으셨을까? 친구들과 실랑이하는 장면을 보셨을까? 30여 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감히 여쭤보지 못했다. 여전히 용기가 나지 않는다.
당시 난 아버지가 손수레를 끌고 노상을 하시는 게 싫었다. 왜 그랬는지는 잘 모르겠다. 도깨비 쓸개 같은 마음에도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자리했다.
그 날 이후 난 주산학원 가는 길에 아버지를 마주친 기억이 없다.
두 아이의 아빠가 되고 보니, 가끔 궁금하다.
'내가 귀를 쫑긋 세우고 다녔듯이 아버지도 눈을 크게 뜨고 다니셨을까?'
'나와 마주치지 않기 위해 더 주의 깊게 살피면서 다니셨을까?'
남한산성 어느 백숙집에서 아버지와 한 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