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괜찮습니다.

꿈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by 한봄일춘


“윤찬아! 넌 꿈이 뭐야?”


아들 녀석은 스마트폰 게임하던 걸 멈추고 물끄러미 나를 올려다봤다. 왜 그런 걸 물어보지 하는 시큰둥한 표정이다. 아들의 표정을 뒤로한 채, 다시 물었다.


“나중에 커서 뭐가 되고 싶냐고?”

“되고 싶은 거 없는데!”


아들은 대수롭지 않은 질문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하고는 하던 게임을 이어갔다. 특별한 무언가를 기대하며 질문한 거는 아니었지만 아들 녀석의 대답이 못내 아쉬웠다.

"되고 싶은 거 없는데!"




“넌 꿈이 뭐니?” 어릴 적 호구조사처럼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녔던 단골 질문이었다. 기억컨대, 이 질문에 확실하게 답하지 못하는 친구는 ‘한심한 녀석’ 취급을 받곤 했다. 그래서일까 나는 ‘꿈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 아닌 강박에 시달렸다.


꿈을 가져야 한다는 당위성에 매몰되어 정작 내가 원하는 것을 깊이 있게 고민하지 못했다. 그때그때마다 임기응변식으로 직업명을 얘기하곤 했다. 축구선수, 정신과 의사, 작가, 연극배우, 선교사, 대학교수, 큐레이터...


꿈의 사전적 의미는 실현하고 싶은 희망이나 이상이다. 엄밀히 말해 꿈은 직업을 묻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하고 싶은 일을 직업으로 삼으라’는 교육을 받고 자란 탓일까? ‘꿈 = 직업’이라는 공식이 내 머릿속에 자리 잡혀있다.


이러한 생각은 비단 나만 그런 거 같지는 않다. 대입설명회나 상담 장면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대답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어떤 일에 종사하고 있느냐에 따라 내 정체성이 결정되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당연한 결과일지도 모른다. 다만 ‘꿈이 없다’고 응답하는 학생의 비율이 적지 않음에 안타까운 마음이다.


초‧중‧고 학교생활기록부에는 ‘진로희망사항’이라는 항목이 존재하지만 정작 학생들은 꿈이 없다고 한다. 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서울시내 중학생 10명 중 4명은 장래희망이 없다고 한다. 내 아들 녀석도 그중 한 명이다.


그나마 고등학교 사정은 이보다 낫다.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 운영으로 인해 학생 개개인의 ‘진로희망사항’에 직업명이 채워진다. 이 일련의 과정 덕분에(?) 학생들은 자신의 진로희망을 생각하게 된다. 주입식 교육에서 벗어나 학생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교육과정이 반영된 결과일 것이다.




학생부종합전형은 진로설계라는 측면에서의 순기능과 함께 진로희망 변경에 대한 두려움을 양산하는 역기능도 갖고 있다. “진로희망이 바뀌었는데, 괜찮을까요?” 입학설명회에서 자주 등장하는 질문이다. 이 질문은 진로희망이 변경되면 대입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에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할 거라는 생각이 반영된 결과물이다.


이 질문에 대해 내 대답은 명확하다. “네, 괜찮습니다!” 꿈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 나도 그랬고, 사무실 동료들도 그랬다.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어떤 계기로 진로희망이 변경되었는지에 대해 자신만의 이유가 있으면 된다. 진로변경 이후의 노력 정도가 평가에서 주요하게 다루어진다. 진로 탐색 과정에서의 자기 주도적 성찰 태도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실 진로희망을 설정하고 관련 학과를 연계하여 학교생활을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학교생활을 통해 보고, 듣고, 체험하고, 느낀 것에 따라 새로운 관심분야가 생기고 진로 목표도 변할 수 있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 작가, 연극배우, 선교사 등 진로희망을 가졌었다. 글쓰기, 연극부 활동, 종교 활동이 고등학교 3학년 때 해외 문화선교사라는 꿈으로 이어졌다. 이 꿈을 실현하기 위해 나는 어문계열을 우선순위에 두었고, 최종적으로 중어중문학과에 진학했다.


대학 학과에 포커스를 맞춰 자신의 꿈을 키울 수도 있고, 나처럼 계열을 고려하여 꿈을 키울 수도 있다. 관심 있는 분야에 대한 다양한 학습과 탐색을 통해 모집 계열에 포커스를 맞춰도 무방하다.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계획을 세우고 도전하는 게 우선이다. 대학에서 이런 노력이 선행된 학생을 뽑지 않을 이유가 없다.


관심 분야 탐색 과정 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