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를 시작하는 구구절절 이야기

우린 아직 망하지 않았다_0

by 제인

2025년 12월 초의 어느 밤, 나는 생각했다.

올해 완전 망했구나.

챌린지 플랫폼인 '미션캠프'의 파산 공지를 읽고 나서였다. 내 글은? 내 책은? 내가 한 달간 쏟아부었던 그 많은 시간과 노력들은?


의미 없이 흘러가는 마흔을 어떻게든 붙잡고 싶어 그 플랫폼에서 '한 달 에세이 쓰기 프로그램'을 결재한 것이 작년 가을이었다. 매일 아침 주제어를 받아 1000자 내외의 에세이를 쓰고, 24일 이상 성공할 경우 소책자로 만들어준다니... 10월에 쓴 이야기를 12월 초에 책으로 받는다면 제법 괜찮은 크리스마스 선물이 될 것 같았다. 마냥 힘들었던 2025년의 마무리라도 의미 있게 포장되지 않을까?


데드라인이 없으면 죽어라 미루기만 하는 나에게는 이런 구속이 필요했다.

10월이 되자 갑자기 일이 늘고, 추석 연휴까지 겹치며 눈코 뜰 새 없었지만 매일 글을 생산하고, 마감하는 일이 연말의 최고 과제처럼 느껴져 틈틈이 서너 시간씩 쓰고, 다듬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30일간 25편의 짧은 에세이를 썼고, 오롯한 나만의 책자가 도착할 날을 기다리며 11월의 스트레스도 버텨낼 수 있었다.




그러나 한 달 후, 배송되어야 할 책이 오지 않았다. 주소가 잘못되었나? 잠든 아이 곁에 누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홈페이지에 들어간 나는, 눈앞의 상황이 몰래카메라처럼 느껴져 몇 번이고 글을 다시 읽어야만 했다. 회사의 부도 소식과 함께 편집장과 대표의 사과 영상이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타이밍도... 타이밍도... 어쩜 이럴 수가 있나.


10만 원 안 되는 돈이 아까워서만은 아니었다. 한 달간 쏟아부은 나의 정성과 시간도... 그러려니 할 수 있었다. 성취감이 있었으니까. 문제는 2025년이 끝까지 나를 엿먹인다는 기분...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이른바 물성을 지닌 어떤 것을 끝내 이루지 못했다는 실패의 기분이었다.


2025년엔

경미하지만 자동차 관련 사고가 5번 있었다.

면역력 약화로 한 달 걸러 2주씩 항생제를 먹었다.

2년간 공들인 프로젝트를 결국 놓아주었다.

단칼에 쳐내지 못하고 맡은 무급 직책 업무로 공황장애가 재발했다.

거기에 플랫폼의 소액사기 피해자가 되었다.


좋은 일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내가 가고자 하는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이 너무 힘들었다. 발에 커다란 족쇄 하나를 단 것처럼 몸도, 의지도, 상황도 따라주지 않는 순간이 반복되었다. 비단 25년 한 해가 아니라 마흔이 된 후 몇 년간 그래왔다. 이상하리만큼 삶에 추진력이 붙지 않았고 조금만 무리해도 몸과 마음에 이상신호가 왔다. 넋 놓고 있다가는 26년도 망하겠다는 강한 예감이 들었다.



그러다 문득, 게으름으로 미루기만 하던 브런치 작가 신청이 떠올랐다. 누군가에게 보여줄 생각으로 쓴 글은 아니지만 자기 검열만 하며 쌈짓돈처럼 꿍쳐놓을 대단한 이야기도 아니었다. 연말에 에세이 중 몇 개를 올리고 프로필을 작성한 다음 2026년 1월 1일 작가신청을 했다. 감사하게도 다음날 승인이 되어 '브런치 작가'라는 이름 하나를 달게 되었다. 어찌 보면, 이 망함이 전화위복이 되어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게 해 준 것이다.

더구나 미션캠프에서 늦게나마 인쇄를 위한 디자인 파일과 발주 방법을 이메일로 보내주었기에, 비용은 조금 더 들었지만 결국 물성을 가진 인쇄물 하나도 손에 쥘 수 있었다. 인생은 여전히 한 치 앞을 모르겠구나.


이러저러하여, 브런치에 올리는 첫 연재는 작년 10월에 썼던 글 중 몇 편을 조금씩 수정하고 다듬은 내용이다. 매일 남이 정한 주제에 맞춰 쓴 것이라 각 편마다 연결성이 없고, 1,000자 내외를 맞추다 보니 급히 결론을 맺어버리기도 했다. 흥미롭거나 재미있는 이야기도 아닌 것 같다. 하지만 그냥 한다. 나는 이제 그냥 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이것은 망한 것 같지만 아직 망하지 않은 40대의 이야기다. 삶이 별로여도, 무채색이어도 어쨌든 이어지는 순간순간을 기억하려는 몸짓이다. 언젠가 이 글을 읽으며 아 참 그때가 좋았다고, 혼자 키득거릴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