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아직 망하지 않았다_1

끝인가 시작인가.

by 제인


하루빨리 늙고 싶다는 나의 꿈에 아이러니하게도 중년은 없었다. 그저 쭉 살던 대로 살면 명랑하고 우아한 할머니로 변신할 줄 알았지….


신체는 예전 같지 않고 마음만 젊음에 남아있으니 이게 뭔가 싶다. 영포티고 나발이고, 그냥 망한 것 같다. 박완서 선생님이 ‘나목’으로 데뷔한 나이가 무려 마흔이라 센세이숀했다지. 그땐 계엄령 따위 뭐 대수인가 싶었던 1970년이고, 지금의 마흔은 지긋지긋하다고 흘려보내기에 너무 젊은 나이가 되어버렸다. 세상은 아직 한창 달릴 시기라고, 끊임없이 도전하고, 성과를 내고, 돈을 벌라고 종용하는데 나만 혼자 러닝머신 위에서 멈춰버린 기분.

그래서일까.

가끔 물러터진 아보카도에 대해 생각한다.


‘Not yet, Not yet’ 하다가 ‘Too late’가 되어버린 것이 아닐까. ‘어 지금, 지금이야!’ 했는데 딱 어우러지게 엄마의 역할이 겹쳐서, 낳고, 키우고, 울고 웃다가 7~8년이 허겁지겁 흘러 이미 상해버린 게 아닐까. 포기는 이르고 시작은 늦었고… 덕분에 변명하기도 쉬운 나이가 되었다는, 그런 생각을 한다.



위태롭던 몸과 마음이 PTSD로 무너진 지 어느덧 3년이 지났다. 주위의 도움으로 많이 회복했음에도 에너지 레벨이 예전 같지 않다. 프리랜서로 15년을 버틴 소중한 직업마저 새 바람에 밀려 위태로워지고 있다. 나이 들수록 도전의 비용은 커지고, 실패할 때마다 망설임도 길어진다. 그런데도, 아직 뭔가 남은 것 같다. 다시 또 일어서야 할 것만 같다.

우선, 올 겨울엔 수영을 배울 것이다. 중노년 여성들의 천국. 그 안에서 뻔뻔하게 헐벗은 몸을 맞대고 샤워할 수 있는 배짱이 드디어 생겨서다. 명랑한 할머니에게 반려 스포츠는 필수니까, 쓸쓸함에 지지 않을 체력부터 키워야겠다.


망한 사십 대, 상한 아보카도 대신 남은 사십 대, 냉동 아보카도를 떠올린다. 얼려두자, 건강이라도. 언제든 해동되어 쓰임 받는 인간이 되고 싶다. 유치하지만 오늘이 내 마흔의 시작이라고, 조심스레 믿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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