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스토브 리그'
프로야구 구단 드림즈는 오랜 기간 꼴찌가 당연하게 여겨지는 만년 하위권 팀이다. 프로야구 창립부터 함께해온 역사적인 구단이며 열광적인 팬들을 보유하고 있지만, 모기업은 이렇다 할 투자도 관심도 없고, 구단 사람들은 패배의식과 매너리즘에 빠져 그냥 하루하루를 흘려보낼 뿐이다.
이곳에 신임 단장으로 부임한 백승수. 씨름단, 하키팀, 핸드볼팀 등의 단장을 맡아 연달아 우승을 시켰지만, 우승 후에는 그때마다 어려운 모기업 사정 등으로 팀이 해체된 특이한 경력의 소유자다. 그리고 드디어 국내 스포츠 중에서도 최대의 규모와 인기를 자랑하는 프로야구 단장으로 발을 딛게 됐다.
백승수는 드림즈의 골수팬이자 프로야구 사상 최연소 운영팀장 이세영과 함께 내부의 불합리 요소들을 하나씩 깨나간다. 융통성 없고 사무적이며 결과지향적인 백승수의 일 처리에 내부반발도 일어나지만 때로는 그들을 강경하게 압박하고 때로는 프리젠테이션을 통해 설득하기도하며 문제를 해결해 나간다.
그렇게 드림즈의 선수단, 프런트는 마인드부터 조금씩 강팀을 향해 변화하며 새 시즌을 준비한다. 그러나 무슨 일인지 모기업 재송그룹, 특히 회장의 조카로서 사실상 구단주 역할을 하는 권경민 상무는 백승수의 과감한 시도와 구단의 변화에 사사건건 불편함을 표하며 발목을 잡는데…….
2020년 공중파 최고의 화제작 중 하나였던 드라마 ‘스토브리그’의 줄거리다. 최근 드라마 시장의 주도권이 공중파에서 종편, 케이블TV, 넷플릭스 등 OTT 분야까지 새로운 채널로 옮겨가고 있는 추세 속에 스토브리그는 당시 공중파 드라마 중 가장 눈에 띄는 족적을 남겼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통적으로 드라마로 성공하기 힘들다는 스포츠를 소재로 하고, 그마저도 선수와 경기가 아닌 이면의 프런트들의 세계를 다루며 그 흔한 멜로 라인도 두지 않았다.
그런 전통적인 공중파 드라마의 속성과 편견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는 작품임에도 평균 12.5%, 최고 20%에 육박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화제성과 완성도 면에서도 많은 호평을 얻었다. 2019년말 시작해 총 16부작으로 연초에 막을 내렸음에도 남궁민은 이 드라마를 통해 2020년 SBS 연기대상에서 대상을 차지하게 된다.
작가도 인정한 부분이지만, 이 드라마는 사실 스포츠 드라마라기보다는 오피스 드라마에 가깝다. 스포츠 관련 회사에 다니는 직장인들의 이야기인 셈. 이런 스포츠와 오피스의 절묘한 결합에서이 드라마만의 특별한 속성이 형성된다.
대부분의 스포츠, 특히 구기종목은 전쟁에서 전투하는 모습을 게임의 룰로 변형해 만들어져 있다. 그중에서도 야구는 그런 생과사의 모티브가 유독 많이 투영된 스포츠다. 병살, 보살, 이중살, 삼중살 등 용어부터 대부분 ‘殺’이라는 단어와 연계해 등장한다. 모든 베이스에서 죽거나 살거나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생과 사가 갈리는 전투의 긴장감을 엔터테인먼트화한 사업이 바로 스포츠이며, 프로야구는 특히 그 정점에 있는 분야다.
오피스 드라마는 흔히 두 가지 형태의 이야기로 진행된다. 하나는 주인공을 비롯한 등장인물들이 미션을 해결하며 성장해가는 이야기, 또 하나는 서로 다른 성격의 구성원들이 하나로 뭉쳐 외부적 위협에 대항하며 그들의 생존권, 또는 일터의 가치를 지켜가는 이야기다. 첫 번째의 대표적인 경우가 ‘미생’, 두 번째의 예로는 ‘송곳’, ‘김과장’ 등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스토브리그는 시즌이 열리기 전 전력을 보강하고 팀을 정비하며 정규 시즌을 준비하는 시기를 의미한다.
우리에게 프로야구의 시간은 곧 선수들이 경기를 치르는 본 시즌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면의 프런트들은 오히려 스토브리그에서 더욱 분주해진다. 트레이드를 통해 전력을 보강하고, 새로운 외국인 선수를 뽑고, 코칭스태프 체계도 정비한다. 선수들과 연봉 협상도 하고 전지훈련도 해야 한다.
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 단장 백승수와 운영팀장 이세영, 그리고 조금씩 변화하는 드림즈의 프런트 직원들은 열심히 새 시즌을 준비하며 이번에야말로 꼴찌에서 벗어나 다른 결과가 만들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선수들도 험난한 연봉협상과 예상치 못한 빅트레이드, 스캔들을 겪으며 각자 자신만의 각성의 계기를 갖게 된다. 그러나 모기업에게는 계륵과도 같은 존재였던 드림즈는 끝내 모기업이 중공업으로 사업을 전환하는 과정에서 해체 수순을 밟게 된다.
게임의 룰 안에서 강자로 살아남기 위한 방안을 준비하던 이들은 그렇게 게임이 아닌 현실에서 그들 자신의 생존을 위협 받는 상황에 처한다.
드림즈는 살아남기 위해 재송그룹이 아닌 새로운 모기업을 찾아 나선다. 재송으로부터 팀 해체까지 일주일의 말미를 확보하고, 포털 사이트 중심의 IT 기업인 PF에 드림즈를 인수할 것을 제안한다.
한때 프로야구 구단 인수를 검토하다 여러 가지 현실적 조건으로 접은 적이 있는 PF에게 만년 꼴찌 구단을 매입하라고 설득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백승수는 끝내 일을 성사시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이 드라마의 핵심이 드러난다. 백승수가 PF 대표를 설득한 키워드는 꿈과 가치. 함께 창업한 친구들이 떠난 후 이뤄낸 현재의 성장, 그것은 혹시 원래 PF가 지향했던 가치를 잊어버린 공허한 성장은 아닌지 묻는다.
왜 PF가 드림즈의 새로운 주인이 되어야 하는지 이야기하는 그 과정은 드림즈는, 백승수는, 그리고 권경민은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 되묻는 과정이기도 하다.
백승수는 최강자가 되고도 생존을 보장하지 못했던 과거의 경험 속에서 무조건 강자가 돼야 한다는 강박을 갖게 됐다. 권경민은 오너인 작은 아버지의 허수아비로 살면서 자신과 무능한 아버지의 신세를 떠올리게 하는 드림즈를 보며 히스테리 수준의 적대감을 드러낸다.
드라마 내내 주인공도, 악역도 이처럼 강자만이 살아남고 강자만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틈틈이 등장하던 정의와 불의에 대한 고민과 의지를 다룬 장면들은 사실 강함과 생존은 그 자체로 중요한 것이 아니라 더 큰 가치를 위해 필요한 것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마지막 드림즈의 부활과 새로운 출발은 단순히 ‘생존을 위한 생존’, ‘성장을 위한 성장’이 아니라 결국 그들 스스로 그들의 존재 가치와 의미를 알고 실현할 때 이뤄질 수 있는 것임을 증명한다.
* 이미지 출처: 드라마 '스토브리그' 공식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