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쥬라기 월드: 새로운 시작’
공룡들이 인간 세상으로 올라오면서 인간과 공룡의 위태로운 공존이 이어지는 지구. 공룡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은 시들해지고, 동물원에서 탈출한 공룡이 교통정체를 일으키는 등 도시에서는 일부 공룡들만이 일종의 골칫덩이처럼 소수 남아 있다.
대부분의 공룡들은 현재 지구의 온도와 환경, 질병에 적응하지 못하고 주로 원시환경과 유사한 적도 부근에 모여 살고 있으며, 이곳은 인간의 접근이 엄격하게 금지된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한 제약회사에서는 심장질환 치료를 위한 신약 개발에 쓰일 거대한 공룡들의 DNA를 채취하는 계획을 세우고, 특수요원 출신으로 각종 위험한 미션을 수행해온 조라를 고용한다.
조라는 제약회사 직원인 마틴, 공룡을 향한 애정이 가득한 헨리 박사, 그리고 던컨을 비롯한 자신들의 옛 동료들과 함께 금지된 구역으로 위험한 모험을 떠난다.
한편, 평범한 아버지 루빈 델가도는 자신의 두 딸 테레사와 이사벨라, 그리고 테라사의 남자친구 제이비와 함께 미국에서 케이프타운으로 대서양을 횡단하는 요트 여행을 떠난다. 하지만 거대한 수중 공룡을 만나 배가 뒤집히고 간신히 구조요청을 하는데, 이 구조요청을 들은 던컨에 의해 겨우 구조된다.
마침내 조라 일행은 첫번째 타깃이자 루빈 일행을 좌초시킨 수중공룡 모사 사우르스를 만나 첫번째 DNA 샘플을 확보하는데 성공하지만, 모사 사우르스와 스피노 사우르스의 공격으로 큰 위기에 처한다.
지난 7월초 개봉한 쥬라기공원의 시퀄 시리즈 ‘쥬라기 월드:새로운 시작’의 줄거리다. 이 작품은 2022년 개봉한 ‘쥬라기 월드:도미니언’의 후속작이자 그로부터 5년 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쥬라기 월드는 1993년 전 세계적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끈 스티븐 스필버그의 첫 작품을 시작으로 3편의 오리지널 시리즈와 이번 작품까지 4편의 시퀄 시리즈, 총 7개 작품을 선보인 성공적인 프랜차이즈다. 많은 팬들이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한 오리지널 시리즈를 중심으로 보지만,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는 시퀄도 꾸준히 개봉할 때마다 적잖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번 작품은 특히 한국에서 인기 있는 헐리우드 배우 중 한 명인 스칼렛 요한슨을 전면에 내세우며 전방위적인 홍보를 펼쳐 화제를 모았다.
7월 중순인 현재까지 스코어는 170여만명. 전작 도미니언의 283만명 관객에 비해 아직 100만명 정도가 모자란데, 아직 개봉한지 얼마 되지 않았고, 잠시 박스오피스 3위로 내려 앉았다가 지난 주말 더 늦게 개봉한 ‘슈퍼맨’을 제치고 다시 1위로 올라선 점을 고려하면 전작의 관객 수는 충분히 뛰어넘을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쥬라기 공원’ 프랜차이즈의 명성과 국내에서 ‘유퀴즈’까지 출연한 스칼렛 요한슨의 영향력을 감안하면 다소 부족해 보이는 성적이긴 하다. 특히 네이버 관객 평점이 6.6 정도로 크게 높지는 않은 상황이어서 더 아쉬움이 남는다.
이미 ‘쥬라기 공원’이라는 프랜차이즈의 아우라는 한물 갔다고도 평가 받지만, 영화 자체로도 실제 보면 이런 관객의 평가가 박하다고만은 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공룡을 마주치고, 무찌르거나 도망치는 프랜차이즈의 대표적인 장면들은 충분히 긴박하고 재미있다. 이미 CG를 비롯한 특수효과는 오래 전에 그 수준을 논할 의미가 없을 정도로 올라섰다.
하지만 SF의 핵심인 세계관, 그리고 등장인물들이 놓인 각자의 상황에 대한 설정이 보는 사람에 따라 몰입을 방해할 정도로 허술하거나 핍진성이 떨어지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영화를 보면서 초반부터 걸렸던 부분이 있다.
이번 모험의 이유는 심장질환 치료제를 만들기 위한 공룡 샘플을 구해오는 것. 특히 육해공 각각 가장 큰 몸집을 지닌 공룡들을 타깃으로 하는데, 그 이유는 그들의 심장이 매우 크고 강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심장질환은 다양하고, 그 원인 또한 단순히 심장기능만 아니라 혈관과의 연관성 등 꽤 복잡하다. 그래도 강한 심장의 DNA가 필요해서라는 이유를 위해 매우 복잡한 과학적 설정을 설계할 필요까지는 없다고 본다. 하지만 단지 강한 심장이 필요해서라는 이유라면, 가장 심장이 크고 강한 특정 공룡 몇 종이 아니라 굳이 육해공 3종의 공룡 샘플이 필요한 개연성은 전혀 설명되지 않는다.
루빈 가족의 항해도 상당히 납득이 어려운 부분이다. 이미 세계관에서 적도 부근에 공룡들이 우글대는 것으로 설정되어 있는데 초등학생에 불과한 어린 딸을 데리고 대서양 횡단을 계획하고, 조난당한 후에도 자신들은 수많은 배들 중 운이 나쁜 하나일 뿐이라고 주장하는 아버지의 존재는 아무리 봐도 이해하기 어렵다.
사실 이러한 설정은 말 그대로 장면, 즉 ‘그림’과 갈등 구조에 기반한 ‘사건’을 만들기 위한 무리수에 가까워 보인다. 즉, 육해공 다양한 상황에서 마주치는 위협적인 공룡과의 사투, 전문적 능력이 없는 일반인 가족들이 사건을 겪으며 더욱 극대화되는 긴장감, 일행들의 입장과 가치관에 따른 갈등, 힘없는 일반인들을 구하기 위한 주인공 일행의 희생과 투쟁에 기반한 영웅적 서사 등 재난, 오락 영화의 핵심 성공 구조를 뒷받침하는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우리는 1993년 처음 영화 ‘쥬라기 공원’이 발표됐을 때의 충격을 똑똑히 기억한다. 워낙 원작 소설부터 탄탄한 서사와 설정을 갖고 있었던 데다가 당시로서는 혁명적이기까지 한 특수효과가 결합한 그 작품은 관객들에게 엄청난 희열과 충격을 안겼다.
이러한 오리지널 시리즈의 힘은 이후로도 프랜차이즈의 지속성을 가져오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반대로 후속 작품들에게는 넘기 어려운 난관이 됐다. 더 정교한 세계관과 놀라운 사건을 만들기는 어렵고, 이미 정점에 이른 특수효과에서 차별화된 충격을 전달하기는 더욱 어렵다.
결국 이 영화는 이러한 어려움 속에 자극의 차별화에 집착할 수밖에 없었고, 보다 다양한, 이전 작품들에 비해 새로운, 충분히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 볼거리를 만든다는 목적만을 위해 달리면서 설정들의 치밀함과 완성도는 떨어지게 됐다.
그냥 공룡이 아닌 인간의 실험으로 만들어진 돌연변이 괴물이 등장하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다. 사실 이 비인간적인 실험이 갖는 도덕적 의미는 이 영화에서 중요하지 않다. 더 크고 더 무서워 보이는 공룡, 그로 인해 나타날 기대감이 본질적인 목적에 가까울 것이다.
이렇듯 장면에만 집중하며 정작 세밀하지 못한 설정들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예를 들어 익룡 케찰코아틀루스의 알 샘플을 채취할 때는 절벽 꼭대기에서 보조하던 던컨과 마틴이 정체불명의 계단을 발견한다. 하지만 이 발견은 더 이상 어떤 사건으로 발전하지 못하는데, 만약 이 계단이 케찰코아틀루스의 둥지로 직행할 수 있는 통로로 설정됐다면 힘겹게 절벽을 기어내려간 헨리를 당황하게 하는 유머 코드로도 적용될 수 있었을 것이다.
장면에 힘을 줄 만큼, 장면과 배경을 활용해 설정을 더 풍부하게 만들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을 텐데도 그런 디테일을 놓친 점들은 상당히 안타깝다.
영화 자체는 오락영화로서 크게 부족하지 않다. 액션은 과도하지 않으면서 충분한 긴장감을 주고, 공룡들도 여전히 위협적이다. 프랜차이즈 팬들을 위한 전작들에 대한 오마주도 곳곳에서 의외의 즐거움을 준다.
하지만 몰입에 걸림돌이 되는 다소 안일하고 무리한 설정들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더 기억에 남는 점은 두고두고 이 영화의 결정적인 단점으로 회자될만 하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