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타짜'
가구공장에서 일하며 남루한 삶을 사는 고니는 대학보다 가난을 벗어나게 해줄 돈이 우선인 열혈 청년이다. 어느 날 고니는 가구공장 한켠에서 벌어진 화투판에 끼어들게 되고 삼 년 동안 모아두었던 돈 전부를 날리고 만다.
그것이 전부 도박판 타짜들의 짜고 친 판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안 고니는 복수를 위해 나서고, 우연히 전설의 타짜 평경장을 만난다. 그리고 잃었던 돈의 다섯 배를 따면 화투를 그만두겠단 약속을 하고, 그와 함께 본격적인 타짜의 길을 걷게 된다.
고니는 이후 평경장과 지방을 돌던 중 도박판의 꽃, 설계자 정마담을 소개 받고 둘은 서로에게서 범상치 않은 승부욕과 욕망의 기운을 느낀다. 고니는 정마담이 미리 설계해 둔 판에서 큰 돈을 따게 되고, 결국 커져 가는 욕망을 이기지 못한 채 평경장과의 약속을 어기고 만다.
평경장과 헤어지고 정마담과 화려한 도박 인생을 시작한 고니는 기차에 오르는 평경장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다. 이후 고니는 요란스러운 입담으로 판을 흔드는 고광렬을 만나고, 경찰의 단속을 피하던 중 그와 함께 정마담을 떠나게 된다.
이후 자신을 이 세계에 발 들이게 한 장본인 박무석과 그를 조종하는 인물 곽철용을 찾아 드디어 보기 좋게 한 판 복수에 성공한 고니. 하지만 곽철용의 수하가 고니에게 복수하기 위해 또 다른 전설의 타짜이자 잔혹하기로 소문난 아귀를 섭외하면서 또 다시 죽음의 한 판을 벌이게 된다.
2006년 개봉한 한국 도박 영화, 아니 한국 장르 영화 전체를 대표하는 명작 '타짜'의 줄거리다. 이 영화는 최동훈 감독의 성공작이자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에도 불구하고 당시 684만 명의 관객을 모은 역대급 흥행작이다.
조승우, 김혜수, 백윤식, 유해진 등 명배우들의 캐릭터성에 기반한 열연이 화제를 모은 것은 물론, 김윤석은 영화 속 분량상으로는 적은 비중에도 불구하고 한국 영화계에 전무후무한 악역 ‘아귀’를 연기하며 이 영화를 통해 정상급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전작 ‘범죄의 재구성’에서 실제 사기꾼들의 징크스와 은어들을 활용한 살아 있는 각본과 연출로 주목 받았던 최동훈 감독은 ‘타짜’를 통해 그야말로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으며, 이후 연이어 천만 영화를 만들어내는 등 승승장구한다.
많은 이들은 개봉 후 20년이 지난 현재까지 타짜의 명대사를 일상적으로 사용한다. ‘나 이대 나온 여자야.’, ‘쫄리면 뒤지시던가.’, ‘묻고 더블로 가’ 등 적재적소에서 터지는 재치 있는 대사들은 순식간에 유행어가 되고, 전국민이 아는 명대사가 됐다. 아마도 한국 영화에서 가장 많은 유행어와 명대사를 배출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배우들의 열연과 수많은 명대사뿐만 아니라 잔혹한 도박의 세계를 긴장감 있으면서도 아름답게 표현한 영상미와 음악, 빈틈없이 단단한 스토리까지 이 영화의 미덕을 꼽자면 끝도 없다.
그 중에서도 도박이라는 소재를 이처럼 리얼하면서도 동시에 판타지적이고, 긴장감 있으면서도 유쾌하게 담아낼 수 있을까 싶은 이 영화만의 개성이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흔히 도박 영화라고 하면 홍콩영화 르네상스기의 의리를 기반으로 한 장엄한 스타일이나 헐리우드 식의 느와르적, 혹은 다소 유머러스하고 재치 넘치는 작품들이 일반적으로 여겨져왔다. 타짜는 이들의 강점들을 적절히 버무리면서도 절묘한 균형감각을 뽐낸다.
캐릭터와 대사는 재치있고 유머러스하며, 배신과 배신이 난무하는 설정과 그 안의 미묘한 감정선, 목숨을 건 도박이라는 설정은 도박이 가진 잔혹한 매력을 세련되게 보여준다. 그런 두 가지 스타일이 완성도 높은 스토리와 연출력에 버무려지면서 여태껏 다른 도박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타짜만의 개성 있는 무게감과 매력을 만들어냈다.
도박은 본질적으로 생과 사를 다룬 게임의 세계다. 레이스에 이어 ‘죽었다’는 표현으로 흔히 대체되는 포기의 용어, 승자가 독식하고 패자는 모두를 잃는 시스템은 그 자체로 생과 사에 대한 비유에 가깝다.
이 영화는 그런 도박판의 본질을 흥미롭게 풀어 놓는다. 타짜의 대표적인 캐릭터로 각인된 아귀는 그 중에서도 가장 상징적인 인물의 아닐까 싶다.
‘복수? 넌 아직도 그런 돈도 미치근 한 것을 믿냐?’라는 대사는 그의 캐릭터를 한 마디로 표현한다. 돈이나 승리감이 목적이 아니라 상대방을 파괴하고, 목숨을 건 유희를 즐기는 그의 캐릭터는 도박이 가진 잔혹함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며, 유쾌하고 스릴 있던 영화의 스토리가 후반부 들어 무게감이 짙어지며 마지막 카타르시스까지 이어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런 긴장감과 카타르시스는 마지막 승자가 된 주 고니의 표정과 반응, 상황에서 도박의 허무함을 극대화하며 묘한 여운을 남긴다.
평경장에 대한 복수와 동료인 고광렬을 지키겠다는 목적으로 위험한 아귀의 판에 끼어든 고니. 그는 결국 꿈꾸는 찾으려는 아귀의 심리를 역이용해 승자가 된다.
하지만 평경장을 죽인 이가 아귀가 아님을 알게 되고, 고광렬은 이 판에서 한쪽 손을 잃게 된다. 돈과 고니에 대한 욕구와 집착으로 판에 끼어든 정마담 앞에서 고니는 거액의 판돈을 불태우고, 그 자리를 빠져나온 후에는 곽철용의 수하와 기차에서 만나 목숨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고니는 가까스로 목숨을 구하지만, 기차에 매달린 그의 찢어진 가방에서 돈다발이 공중으로 쏟아져 나오는 장면은 누아르 장르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허무감을 느끼게 한다.
비유적인 의미를 넘어 실제 생과 사가 걸린 도박판에서 승자가 된 후에 밀려오는 허무감은 이 영화가 단순한 도박 영화가 아니라, 폭력미학으로 점철된 수많은 영화들에도 밀리지 않는 진정한 느와르임을 보여준다.
* 이미지 출처: 네이버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