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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석 Nov 13. 2024

현실과 꿈, 경계에 선 웰메이드 복고 추리극

드라마 '라이프 온 마스'





태주는 불의를 저지른 동료 경찰을 고발하고, 감보다는 과학수사를 중시하며 오로지 자신의 일에만 집중하는 원칙주의 형사다. 


어느 날 전 애인이자 검사인 서현의 부탁으로 한 연쇄살인 사건을 수사하게 되고, 증거를 찾지 못해 난항을 겪던 수사에서 결정적 단서를 확보한다. 그러나 재판 직전 증거물이 오염된 사실을 알고 이를 밝히며 연쇄살인 용의자 김민석을 풀어주게 되고, 풀려난 김민석은 서현을 납치한다. 


이 소식을 들은 태주는 서현을 찾기 위해 김민석을 찾다가 의문의 사고로 정신을 잃게 되고, 생각지 못한 낯선 곳에서 눈을 뜨게 된다. 그곳은 1988년의 인성시. 



놀랍게도 그는 서울에서 인성시로 새로 발령 나 첫 출근을 하던 길이었다. 자신의 삶에서 떨어져 나와 과거의 시공간에 와 있는 상황을 받아들일 수 없는 태주. 게다가 동료 형사들은 납득할 수 없는 구시대적 수사방식으로 사사건건 태주와 갈등을 겪는다. 


태주는 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을 환상으로 인식하고, 이를 증명하듯 때때로 환청처럼 어서 무의식에서 깨어나라는 담당 의사의 목소리를 듣는다. 그는 죽음을 불사하고라도 이곳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쓰는 중에도 주어진 상황 속에서 현대의 과학수사 기법으로 사건을 해결한다. 


그리고 그 과정 속에 동료들과 가족 같은 사이가 되며 서서히 적응해가고, 어릴 적 자신이 잠시 살았던 인성시에서 현실 속 김민석과 연관된 아버지의 숨겨진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리고 아버지 관련 사건을 해결한 후 이번에는 자신의 존재와 생사가 걸린 중대의 기로에 놓이게 되는데…….




나는 OCN 드라마들을 좋아한다. 지금은 넷플릭스 등 OTT의 유행으로 장르물 드라마를 자주 볼 수 있지만, 몇 년 전만 하더라도 드라마는 대부분 멜로 일색이었고, 장르물은 희귀했다. 그나마 OCN 오리지널 시리즈가 우리나라 드라마계에서 장르물을 끊임없이 발표하는 채널이었다. 드라마 명가 tvN과 JTBC도 아주 괜찮은 장르물을 종종 선보이지만, 아무래도 주종목은 멜로일 수밖에 없는 현실.


2018년 OCN에서 방영된 ‘라이프 온 마스’ 한국판은 그런 OCN 드라마 중에서도 특히 내가 애정하는 작품이다.


2006년 영국에서 방영된 동명의 드라마를 리메이크한 이 작품은 현재의 유능한 형사가 과거로 시간 이동해 사건을 해결하는 타임슬립 추리극으로, 처음으로 이 작품을 접하는 국내 시청자들은 물론, 설득이 쉽지 않은 기존 오리지널의 팬들에게도 꽤 호평 받은 작품이다.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그리 멀지 않은 과거의 모습을 배경으로 하며 추억의 복고적 매력을 갖추고, 과거 기술의 한계에도 주인공의 과학적 지식을 동원해 사건을 해결하는 모습은 CSI 시리즈 이후 세련된 과학 수사물에 익숙해진 시청자들에게 특별한 재미를 준다. 


태주를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상을 연결하는 촘촘한 장치와 이를 통해 구현되는 스토리는 추리물 특유의 긴장감과 궁금증, 미스터리로 드라마의 완성도를 높인다. 


똑똑하고 냉철하지만 자신을 둘러싼 충격적인 진실들을 마주하며 현실과 환상 사이에서 혼동을 겪는 주인공의 감정을 세밀하게 연기해낸 주인공 정경호의 연기는 아주 훌륭하다. 


여기에 과학수사와는 거리가 멀지만 열정과 오랜 경험으로 전체 수사를 이끄는 팀의 리더 박성웅, 다른 형사들과 달리 프로파일링에 대한 이해로 수사에 공헌하는 정순경 역의 고아성, 몸으로 발로 사건을 해결하는 열혈형사 오대환 등 캐릭터의 매력과 이러한 캐릭터에 딱 맞는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도 이 드라마의 매력이다. 



이 드라마의 핵심은 상반된 요소들의 대립과 조화에 있다. 


현실과 환상, 과학 수사와 발품 수사, 개인적이고 냉철한 캐릭터와 인간적이고 따뜻한 캐릭터 등 상황과 연출, 캐릭터까지 서로 대립되는 요소들이 끊임없이 충돌한다. 


현실과 환상의 충돌은 진실을 알 수 없는 모호함으로 주인공뿐만 아니라 시청자들까지 혼돈에 빠트리며 미스터리 추리물의 재미를 충족시키고, 구시대적 수사 와중에 결정적인 단서를 찾아내는 태주의 과학수사는 수사물 특유의 쾌감을 극대화한다. 


상반된 성격의 캐릭터들이 충돌하면서도 각자 가진 능력의 조화를 이루고 협업하며 사건을 해결하고, 점차 서로를 동료로 이해하고 받아들이며 가족이 되어가는 과정은 빡빡한 긴장감으로 가득한 추리물에 인간적 따스함과 코믹적 요소를 더한다. 




열린 결말, 당신의 선택은


하지만 누가 뭐래도 이 드라마의 가장 큰 미덕은 여러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구조를 이어가지만 이야기를 하나의 큰 흐름으로 무리 없이 이끌어가는데, 특히나 각각의 에피소드, 그리고 현실과 환상, 혹은 현재와 과거가 유연하면서도 흥미롭게 연결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의 사건인 김민석의 흔적이 계속해서 과거의 사건에 등장하고, 아버지의 진실을 비롯한 여러 장치가 왜 그가 과거로 돌아와야 했는지 설득력을 부여한다. 


기존 우리나라 드라마는 개별 에피소드의 연결 보다는 주인공 중심의 서사를 긴 호흡으로 풀어 가는데 익숙했다. 하지만 최근 장르물 중심의 드라마에서 자주 발견되는 에피소드 중심 서사와 긴 중심 스토리의 조화는 눈높이가 높아진 시청자들을 자극하며 케이블 채널 드라마가 약진하는 비결이 되고 있다. 


그리고 라이프 온 마스는 이러한 탄탄한 구조를 이용해 모호함과 열린 결말이라는 이 드라마만의 결정적인 매력을 완성해낸다. 



후반부에서 주인공 태주는 아버지와 김민석의 진실을 확인하고 관련 사건을 해결하며 결국 현실로 돌아오는데 성공한다. 현실에서도 과거에서의 경험을 토대로 김민석의 진실과 배후를 찾아 사건을 해결한다. 


하지만 태주는 행복하지가 않다. 과거에서 팀원들이 사지에 몰려 있는 상황에서 그만 현실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결국 방황하던 태주는 건물 옥상에서 몸을 던져 과거, 혹은 환상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동료들을 구해내 한결 행복한 기분으로 다시 인성에서의 생활을 시작한다. 



눈에 보이는 결말만 놓고 보면 태주의 자살이지만, 혹자는 과거가 진실이고 현재가 환상인 것이라고 해석한다. 또 현실로 돌아온 상황은 꿈속의 꿈일 뿐이며, 아직 그가 1988년의 환상을 살고 있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드라마 곳곳에는 이러한 각각의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복선들도 다양하게 깔려있다. 결국 어떤 결말을 선택할지는 시청자, 자신의 몫이다. 



* 이미지 출처: OCN '라이프 온 마스' 공식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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