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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바람꽃 Apr 28. 2024

결혼의 재해석

<요즘 부부를 위한 신디의 관계 수업> 읽는 중


배우자가 싸움을 거는 이유는
당신이 미워서가 아니라
당신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요즘 부부를 위한 신디의 관계 수업 中-



오늘은 책 수다 첫 글을 써 보려고 한다. 책 수다는 책을 다 읽고 쓰는 글이 아닌 읽다가 중간에 꽂히는 곳에 머물러 사색하는 목적의 글이다. 즉흥적인 생각이 튀어나올 것이 조금 염려되지만 쉽게 읽히는 글이기를 바라본다.


이번 달 독서 목록에 결혼에 관한 책을 한 권 넣었다. 부부관계에 대해 좀처럼 마음에 든 책을 못 만났기 때문이다. 과거 '가트맨식 부부감정코칭'에 대해 접한 적은 있었으나 내가 아직 준비가 덜 되었던 이유인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공감이 어려웠던 기억도 있다. 또한 개인적으로 심리학 서적을 볼 때 이론과 실천의 발란스가 잘 맞는 책을 선호하는데 지금 읽고 있는 책 <요즘 부부를 위한 신디의 관계 수업>이 딱 그렇다. 그중 오늘 읽은 구절은 현실 또는 이상의 양극으로 치닫는 결혼신화의 재구성을 도울 수 있을 것 같다.


먼저 책 속에 결혼신화에 관한 좋은 연구 결과가 있어서 가져와봤다. 이를 기초로 내 생각을 정리해보려고 한다.


1. 결혼하면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

2. 결혼생활은 모름지기 행복해야 한다.

3. 부부는 항상 함께해야 한다.

4. 부부는 서로에게 완벽하게 솔직해야 한다.

5. 다툼은 서로 미워한다는 것이므로 다투지 않는다.

6. 부부는 동일한 시각으로 모든 문제에 접근해야 하며 가능한 한 같은 가치관을 가져야 한다.

7. 결혼을 한 이상 이기적으로 굴면 안 되고 개인적인 욕구를 포기해야 한다.

8.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 제대로 밝혀내는 것이 중요하다.

9. 속궁합이 좋으면 부부 금슬이 좋을 수밖에 없다.

10. 부부란 모른 지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게 되므로 배우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일부러 확인해 볼 필요는 없다.

11. 결혼생활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은 중요하지 않다.

12. 결혼 후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

13. 안정적인 결혼은 변화가 없고 문제도 없다.

14. 남편과 아내 역할에 대한 보편적인 기준이 있다.

15. 부부관계가 소원할 때 아이를 가지면 좋다.

16. 부부 사이가 아무리 최악이어도 아이를 위해서는 함께 지내는 편이 좋다.

17. 원만하지 않은 결혼생활은 연인이나 새로운 배우자로 치유될 수 있다.

18. 별거와 이혼은 결혼생활의 실패를 의미한다.


-요즘 부부를 위한 신디의 관계 수업 中-


첫째, '결혼하면 상황이 지금보다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생각의 경우는 어떤가? 유사한 케이스를 적지 않게 봐 왔다. 그중 혼기가 차서 집안의 압박을 못 견뎌 중매결혼을 하는 경우도 봤고 성인이 된 후에도 부모님의 통제에 못이겨 결혼을 선택하는 경우도 봤다. 또 다른 경우, 혼자가 외롭고 삶이 버거워 의지할 곳이 필요해서인 경우도 있다. 나는 어땠던가 생각해 봤다. 국경을 넘는 사랑은 결혼에 있어서 극복해야 할 문제가 많았기에 일단 무언가로부터 도피하고자 했던 마음은 없었으리라. 있었다면 간절하게 독립을 원했다는 것 정도일까?


2,3,4,5 그리고 여덟 번째, '결혼생활은 모름지기 행복해야 한다.'를 비롯해 '부부는 항상 함께해야 한다', '완벽하게 서로에게 솔직해야 한다', '부부싸움은 서로를 미워하기 때문이다.'라는 생각은 나의 부부관계 이념과 대체로 상충하며 다행히 내가 결혼했던 시기에도 그런 환상은 없었던 것 같다. 늘 '각자 또 따로'를 선호했기 때문에 아무리 뜨거운 관계였을 때에도 혼자만의 세계는 필수였다. 물론 그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실제로 아이를 갖고나서부터는 나 역시 가족모임을 중시했으니 말이다. 자연히 아이가 둥지를 떠나면 다시 '각자 또 따로'의 모드가 될 듯하다.


또한 부부가 '완벽하게' 서로에게 솔직하라고 요구하는 건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내 마음을 완벽하게 모르는데 자칫 오해로 번지기 쉽다. 게다가 우리는 생각보다 우리 마음을 잘 모른다. 마음이 변할 수도 있고 생각은 달라질 수도 있다(13번). 그러니 기꺼이 변화를 허용하되 '내가 언제?'라는 식의 오리발만 내밀지 말자. 이것이 우리가 원하는 '솔직함'일 것이다.


어차피 부부싸움은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싸움'이라기보다는 '조율'에 가깝다. 완전히 다른 두 세계가 만났으니 서로 탐색하고 맞춰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부부 사이에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의 잘못인지 제대로 밝혀내기 위해 쓸데없는 힘겨루기를 할 경우가 다반사인데(8번) 이런 경우 다툼의 패턴을 인식하고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낼 필요가 있다. 역설적이게도 이때 우리가 정서적인 면을 충분히 활용하면 도움이 된다. 다짜고짜 '그래도 사랑해'의 논리가 아닌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다면 말이다.


6, 7, 11 그리고 열두 번째, 가능한 유사한 가치관을 가져준다면야 감사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우리는 늘 '다름'의 매력에 끌린다. 그런 이유로 우리가 결혼 후 상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것 역시 어불성설인 거다. (7번, 12번) 과거 달라서 좋았던 남편을 어떻게 다르다고 미워하겠는가. 자칫 바뀌었다가는 무르라고 할 수도 있으니 주의하자. 혹 친구의 경우라면 다른 생각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도 좋지만 함께 사는 이와는 유독 어렵다. 만약 적용이 가능하다면 남편을 평생 친구로 삼아도 좋으리라. 다만 나는 여전히 가치관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와 다투기도 하는지라 이 문제는 자신하지 않겠다. 20년 결혼생활을 해 보니 일상의 소소마저 불협화음을 일으킬 때가 있더라.


한편 결혼생활에 있어서 긍정적인 피드백은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이 부분은 개인의 성장배경과 기질이 많이 작용하는 것 같다. 칭찬 듣는 것조차 익숙하지 않은 사람은 칭찬을 하는데도 인색하다. 그들의 인품과는 관계없다. 다만 칭찬은 마법 같은 면이 있기 때문에 효과가 놀랍다는 점, 만약 내킨다면 친찬의 기술에 대해서 연구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정 어려우면 잘못한 것을 지적하지 않는 것부터 시작해도 좋을 것이다.


9, 열일곱 번째, 나와 내 배우자는 다행히 새로운 파트너에는 관심이 없는 편이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다. 속궁합이 좋으면 부부 금슬이 좋다는 말도 근거 없는 속설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부부사이가 안 좋은 경우 속궁합을 이유로 들기도 하지만 반대의 경우 속궁합이 모두 좋은 건 아니라니 말이다.


이제 슬슬 책 수다를 마치려고 한다. 마지막 화두는 별거와 이혼이다. 예민한 문제이고 내가 경험해 보지 못한 영역이기에 나는 말을 아끼려고 한다. 내게도 주변에 남편과의 문제로 이혼을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 그냥 있는 정도가 아니라 많고 나 역시 종종 이혼을 생각한다. 내 경우 누가 더 좋아져서가 아니라 내가 더 소중해져서인 것 같다. 물론 이혼하기엔 내 남편이 아깝다는 생각이 우세해서 가끔 으름장만 놓을 뿐이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건, 이혼은 신중해야 할 문제이지만 결코 결혼생활의 실패도 인생의 패배도 아니라는 점이다. 마찬가지로 아이에게도 위태로운 부모보다는 각자이더라도 행복한 엄마 아빠가 더 좋다. 시대가 바뀌었음은 분명하다. 나는 우리가 더 이상 구시대 유물 속에 갇혀있지 않길 바란다.


我欣赏你。
나는 당신을 기쁘게 감상합니다.  


10번, '부부란 모름지기 시간이 지나면 자연스럽게 상대방의 마음을 꿰뚫게 되므로 배우자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일부러 확인해 볼 필요는 없다." 18가지 결혼 신화 중에서 가장 마음에 와닿은 문구이다. 아무리 부부라해도 늘 상대의 마음을 궁금해하며 물어봐줘야한다. 결혼 전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부부가 서로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었다. 세월이 흘러 마치 '내가 너고 니가 나인 것처럼' 서로를 잘 알고 익숙해지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다.


중국어에 欣赏(신샹)이라는 단어가 있다. 기뻐할 '흔'과 상을 주다의 '상'이라는 한자를 쓰는데 중국어로는 '아름다운 것을 기쁨으로 감상하다'라는 뜻이다. 그리고 이 단어는 종종 사람을 대상으로 동사로 쓰이기도 하는데 '欣赏你'라고 하면 '나는 너의 아름다움을 기쁨으로 감상한다'라는 뜻으로 내가 정말 좋아하는 표현이다. 나는 친구든 남편이든 상대에 대한 호기심을 놓지 않으려한다. 실제로 인간의 한계는 설정할 수 없다. 사랑은 신선함에서 출발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새로움을 계속 발견할 수만 있다면 쉽게 질리지 않으리라. 남편의 꼴베기 싫은 뒷통수와 아내의 지겨운 잔소리도 재해석이 가능할 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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