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기름 한 방울의 풍요

춥고 배고픈 시절이 가르쳐준 것

by 바람

“나도 그렇게 생각 안 하려고 하는데…"


고급 외제차 끌고 온 투숙객들은 공간을 조용히 깨끗하게 사용하는데, 숙박비 분담해서 여럿이 방문한 젊은이들은 타월 스페어분이나 비치된 캡슐커피 같은 소모품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소모하고 간다고, 쓰레기 하며, 펜션의 물품들이 자리가 뒤죽박죽 어질러놓고 갔던 자리를 보면서 저절로 비교하게 된다고 춘천에서 독채 펜션을 운영하는 지인이 했던 말이다. 물품 파손되거나 휴지, 수저 같은 도구가 분실되거나 컴플레인 수렴하는 일을 빈번하게 겪으면서 본인도 그렇게 생각하고 싶지 않는데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손님과 그렇지 않은 손님을 자연스럽게 구분하게 되더라고. 오만 손님들을 상대하는 서비스업의 고충을 모르는 바는 아니나, 들으면서 마음이 살짝 불편해졌다. 숙박업 사장님의 심정을 이해하면서도 경제적 여유 없는 이들에 대한 지인의 말에 왜 찜찜했을까.


벌써 10년도 지난 일이다. 직장 뿐 아니라 직업도 여러 번 바꾸며 롤러코스터를 여러 번 탔지만, 30대 중반 즈음 나는 환경활동가의 정체성을 내려놓고 귀촌을 시도한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하면서 완전 객기, ‘미친 짓’이었는데, 그 당시에는 환경운동가의 종착지는 자급자족하는 삶이라는 묘한 분위기가 있었다. 단체 나오면 자기 분야로 ‘어쩌다 공무원’ 임기제 공무원을 하거나, 큰 조직이나 정당에 가거나, 사업체를 만들거나, 추구하는 가치를 유지하거나 일 경험 기반으로 먹고살 수 있는 진로가 다양하지 않았다. 나는 자급자족으로 향하는 환경활동의 묘한 분위기에 홀려 귀촌을 선택했었다. 돌아보면 그 때는 순진했고 지금 보면 어리석었던 나는, 퇴직금 하나 달랑 들고 강원도 홍천으로 이미 귀촌귀농했던 친구들, 지역에서 대안학교 교사를 했던 선후배 지인들 틈에 끼어 토종 유기농 작물 재배를 하면서 정착을 가늠하고 있었다. 그러나 먹는 종류는 자급하고 소비할 일도 별로 없어 생활비는 농촌이 도시 보다 덜 들지만, 주거 에너지, 이동수단 등 비용은 높고, 고정 수입을 마련할 구멍이 도대체 나오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도시에서는 친구들 하고 같이 살아도 저녁에만 얼굴을 보는데, 시골은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종일 붙어 있으면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타인의 삶에 개입하는 일이 많았다. 일부러 산으로 들로 더 돌아다니고, 저녁에는 지쳐서 일찍 잠이 들었다. 산에서 고사리 뜯고, 솔순 따고, 밭에서 풀 메고 퇴비 만들기도 다 괜찮았는데, 자연환경도 참 아름다웠는데, 마음은 지옥도 이런 지옥이 없었다. 이렇게는 못살겠다고 선후배고 뭐고, 친구고 나발이고 대판 붙고나서 오랜 인연들과 작별을 고했다. 6개월만에 마침 돈도 떨어졌고 살 길을 찾아 나는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20대부터 뇌수술 후유증을 앓던 엄마를 돌보다가 겨우 독립할 수 있게 되었는데, 간섭과 의존을 반복하는 엄마하고 같이 사는 건 죽기 보다 싫었다. 전세 얻을 돈도 없고, 하는 수 없이 미아리고개 근처에 보증금2000/월12만원 옥탑방 월세를 구했다. 옛날 양옥집인데, 1층은 지하가 아닌데도 해가 들지 않아 컴컴했다.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얀 야윈 할아버지 한 분이 사셨다. 2층은 주인집, 3층은 원래 하나의 공간이었던 것 같은데 분할해서 3개 원룸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3층이라기보다는 옥탑에 가까웠다. 가벽을 치면 통통 소리가 나는 방음이 전혀 안 되는 옥탑 원룸에 가난한 청춘들이 옹기종기 세들어 있었다. 4년이 채 안 된 기간 돈암동 옥탑의 오른쪽 끝방이 나의 보금자리였다. 다행이 내 방은 가운데 방에 비해 창이 크고 햇볕이 잘 들어왔다. 경사진 언덕에 집이 위치해서, 옥탑방에서 내려다보는 전망도 꽤 괜찮았다. 단점도 있었다. 여름에는 찬물을 수시로 끼얹을 만큼 쪄서 죽을 것 같고, 겨울에는 말만해도 입에서 하얀 김이 나왔다. 겨울에는 전기장판을 깔고 난방텐트 안에서 밥 먹고, 책 보면서 동면하는 동물처럼 지냈다. 이글루에서 생활하는 느낌이랄까. 옥탑 마당에는 빨래건조대가 있었는데, 옆집 두 청년들과 경쟁하듯 빨래를 널어 재꼈다. 남자애들은 밖에다가 사각팬티도 척척 널었지만 내 속옷은 험한 세상에 노출될 수 없어 방 안에서 말렸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날엔 널어놓은 빨래가 날아갈까봐 집게를 꼭 집고, 강한 비바람을 맞는 날엔 빨래를 다시 해야 했다. 이런 환경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았다. 강원도 산골 경치 좋고 한적한 곳에서 종일 몇몇 사람들과 북닥거리며 사는 것보다, 자기만의 공간이 있는 게 내게 자유와 얼마나 큰 숨통이었는지 알게 됐으니까. 쥐와 뱀보다도 사람이 싫을 수도 있다는 걸 겪어 봤으니까.


시골에서의 삶이 인간관계의 지옥이었다면, 가난한 도시생활자로 돌아온 일상은 짠내가 물씬 풍기는 결핍의 천국이었다. 방은 얻었지만, 뭐하고 살아야 할지 몰랐고, 당장 생활비도 간당간당 했으니까. 아쉬운 대로 알바를 검색하면서, 집 앞에 편의점에서 주말 근무를 했고, 주중에는 일자리를 알아봤다. 주말 알바 수입이 한달에 50만원이 채 안 됐다. 40여만원으로 월세, 공과금, 핸드폰비, 교통비, 식비 등을 감당해야 했다. 내 사정을 전혀 모르는 엄마가 가끔 뭔가 필요하다고 하면, 어쩌다가 내가 이렇게 됐을까 처지를 한탄하기도 했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자유로운 천국에서 앞으로 무슨 일을 해야 할지 몰라 방황했지만, 궁핍한 생활에 적응해갔다. 아끼고 절약하고, 그때의 나의 밥상은 자린고비 저리 가라 했다. 100장짜리 김 묶음을 사다가 끼니 때마다 구워서, 간장하고 밥하고 먹는 게 전부였으니까. 정말 김치도, 참기름 살 돈도 없었다. 사무실에서 돌아다녔던 커피믹스 하나를 어디서 발견하면 보물을 찾은 기분이었다. 친구가 고향에서 부모님이 보내준 김치를 받아서 밥하고 먹으면 식욕이 돋고, 그렇게 고맙고 여유로울 수가 없었다. 김치 하나의 여유로움으로 마트에서 참기름을 확 질러버렸다. 고소함과 짭짤함과 시큼함이 고루 어루어진 풍성한 밥상을 마주하니, 밥알을 씹을수록 달고 참기름 한 방울의 풍요가 내 작은 방을 가득 채우는 것 같았다. 계란 한 알, 참치 한 캔이 귀했던 그 시기, 주말에 편의점에서 폐기하려고 놔둔 삼각김밥과 어묵, 우유도 알찬 식량이 되었다.


옥탑방 창문으로 내다 본 풍경

가끔씩 친구들이 놀자고 나오라고 하면 거절했다. 우리집에서 라면 먹자고 불렀다. 라면도 내겐 인심이니, 너네는 과일이나 아이스크림 좀 사오라고. 한두번은 밖에서 얻어먹는 것도 괜찮았는데, 계속 그러자니 미안했다. 돈이 없을 때는 친구를 만나는 게 꺼려질 수밖에 없다. 아무리 이해심 좋은 사람이라도 밥값을 못내면 차값은 내길 바라니까. 그런데 차값도 낼 수 없는 지경을 겪으면서, 어떤 형편에 대해 ‘일반적인 상호예의 기준’을 적용하기 어렵다는 생각을 했었다. 일반적인 예의에 대해 기대하기 보다, 상황에 따른 예의를 기대하는 게 더 적절한 게 아닐까. 내가 나에게 경제적인 기대나 목표를 두고 살았던 적은 없었지만, 그때 이후로 가졌던 작은 바람이 있다. 상대방이 주머니 사정 걱정하지 않고, 내게 마음 편히 밥을 얻어먹을 수 있는 경제적 여유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또 시간을 나눌 만큼 내 마음이 넉넉하고 평화로우면 더욱 좋겠다고. 같이 식당에 가서도 각자가 먹은 메뉴에 대해 각자의 카드를 내미는 이 시대에, 내 바람이 구시대적 문화처럼 보이지만, 부담이나 걱정 없이 밥을 먹는 것이 주는 힘을 알기에 그런 소망을 가져본다.


‘곳간에서 인심 난다’는 속담도 있지만, 이게 전부일까. 펜션을 운영하는 지인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당탕탕 내 젊은 날을 떠올리며 들었던 질문이다. 경제적 풍요와 성숙한 인격은 정말 인과관계일까. 경제적 여유에 의해 좌우되는 인격과 품위라면 정말 예의있고 고상하다고 할 수 있을까. 우리 삶에서 돈은 있을 때도 있고 없을 때도 있을텐데... 결핍이 정말 물질에 대한 집착, 야박함, 때로는 무례함으로 이어진다고 할 수 있을까. 혹시 인격과 품위는, 돈이 있으나 없으나 우리가 선택한 자세와 태도의 결과가 아닐까. 결핍과 풍요는 정말 상반된 모습으로만 우리에게 나타나는 걸까.


오늘은 마트에서 30%할인 딱지가 붙은 도토리묵을 사다가, 각종 채소와 양념, 참기름을 두 스푼이나 넣고 무쳤다. 김하고, 김치하고, 참기름을 듬뿍 버무린 도토리묵무침으로 상을 차렸다. 호강한다고 살포시 미소를 머금으면서. 고소한 풍요로움이 내 밥상 한가득 흘러 넘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