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와 무지개

안개처럼 만나서 안개처럼 헤어진 그녀

by 바람

2022년 청룡영화상 시상식 영상을 시청하던 중이었다. 축하 무대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의 엔딩곡 '안개'의 첫 소절이 흐르자, 관중석에 앉아있던 탕웨이 배우가 왈칵 눈물을 쏟는 장면이 카메라에 포착됐다. 바로 옆에서 그런 그녀를 따뜻한 시선으로 위로하는 박해일 배우도 인상적이었다. 갑자기 영화 속 ‘서래’로 돌아가 눈물 흘리는 탕웨이를 보다가 내 눈가에도 물기가 어렸다. 박찬욱 감독은 가수 정훈희가 부른 이 노래에 영감을 받아 영화를 제작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나도 안개 같은 멜로디와 음색에 젖어, 안개 속에 사라진 그녀를 떠올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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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는 오래 알았어도 속내를 드러내는 일이 없었다. 우리는 같은 단체에서 2010년 동료로 처음 만났다. 3년을 함께 일했지만,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그녀에게 친한 관계는, 함께 사는 친구나 대학 선후배 관계의 지인들 중심이었고, 나 또한 마을공동체를 했기에 각자의 구심점이 있었다. 따로 시간을 내거나 다른 구성원보다 특별히 친교를 쌓지 않았다. 그러던 중 2013년 그녀가 해남으로 귀농했다. 몇 년 뒤 나도 2015년 강원도로 귀촌을 시도했지만, 실패하고 6개월 만에 상경했다. 마침 그녀도 2016년에 서울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기 우리는 농촌 공동체의 단맛과 쓴맛을 짧고 굵게 또는 알만큼 경험하고 서울에서 다시 만났다. 나는 말이 말을 만드는 농촌 환경이 싫고, 공동체의 리더와 대판 붙은 사건을 계기로 “이곳에서 행복하지 않다“며 뛰쳐나왔다. 나는 리더에 대한 부당하고 억울한 마음 때문에 만나는 친구들마다 성토했는데, 그녀는 자기 이야기를 일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 그래서 해남에서 서울로 돌아오게 된 사연을 정확히 아는 이가 없었다. 주변 사람들은 물어봐도 그녀가 대답하지 않는다고 했고, 나는 묻지 않았다. 공동명의로 시골 가옥을 매매했다는 소식이 전해질 때만 해도 해남에 정착할 계획인가 싶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몰랐다. 함께 귀농했던 구성원들과 삐거덕거릴 즈음 농활 왔던 청년과 눈이 맞아 올라온 것 같다고 대충 추측만 할 뿐이었다.


서울에서 새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 비슷한 과제를 가지고 우리는 서로 의지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활동했던 단체로 다시 돌아갔고, 나는 편의점 알바부터 시작해서 이곳저곳 전전하며 직장도 여러 번 바꾸고, 직업도 바꾸려고 시도했다. 한쪽은 비교적 안정궤도를 빨리 찾으며 회복했고, 30대 중반인 나는 가는 곳마다 머리만 굵어진 사회초년생이 되어 치이고 헤맸다. 그 짓을 40대 초반까지 했다. 자발성으로 움직이는 단체 활동과 시스템과 관행으로 돌아가는 일반 사회는, 일하는 마음도 조직에 기대할 수 있는 것도 다르다는 걸 늦게 깨달아 고생이 심했다.


내가 뚜렷한 직장 없이 매달 월세와 생활비 감당하기도 벅차서 빌빌거릴 때, 빈털터리였기 아무도 만나지 않으려던 시기였다. 그녀는 나를 밖으로 불러낸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단체 행사나 프로그램, 영화제에 가거나, 예전 동료였던 H랑 셋이서 공원에 놀러 가기도 했다. 그녀와 애인이 사는 집에 초대받아, 밥도 얻어먹고, 그들이 가꾸는 작은 텃밭에서 완두콩도 얻어 오고, 그들의 둥지 거실 한복판을 차지하고 자고 오기도 했다. 돈은 없어도 시간은 많으니, 당일 전화해서 나오라고 해도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응할 수 있었다.


어느 날은 그녀가 아리랑시네센터에서 다다름영화제 단체 부스 운영하니 영화보러 나오라고 했다. 그 당시 내 주거지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였고 티켓도 무료였기에 좋다고 했다. 상영관에 들어왔는데도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 어디냐고 하니, 좀 늦는단다. 단편 영화가 2-3편 끝나갈 무렵 도착했다는 메시지가 왔다. 영화 관람 후 근처 카페에 앉아서 차를 마시면서, 사는 이야기를 나눴다. 5시 가까웠을 때, 그녀가 서둘러 시계를 보았다. 6시까지 강남역으로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우리가 느지막이 만난 시간도 있고 같이 저녁이라도 하는 줄 알았다. 다음 약속이 있을 줄 몰랐다. 미리 알려줬으면 좋았을 텐데 하면서, 그녀에게 무슨 약속이냐고 물었다. 내 질문에 당황한 듯 그녀는 이렇게 답했다.


”그건 내 사생활이야.“


그녀의 대답에 나는 어이가 없어서 대꾸도 안 나왔다. 그녀의 일정에 맞추려면 자리를 일어서야 했기에 지체할 겨를 없었다. 그러나 카페를 나와 집으로 걸어가면서 배신감 같은 감정이 들었다. ‘사생활? 그럼 나를 만난 건 공식적인 활동인가? 자신은 영화 관람하지 않을 거면서 영화제에 왜 오라고 한 거지? 왜 자기 일정을 먼저 알려주지 않는 거지?’


이런 일은 더 있었다. 그녀와 나 그리고 H. 우리는 같은 단체에서 활동 시기가 겹쳤고 나이도 비슷했다. H는 결혼해서 아이도 낳고, 일하면서 지내느라 외출이 쉽지 않았다. 그 사이 나는 성북구 옥탑방에서 2층 원룸, 다시 3층 원룸에서 서대문구 원룸으로 이사를 바지런히 다녔다. 집주인이 아들에게 내어준다고 방 빼달라고 하기도 했고, 건물주가 바뀌면서 나오기도 했고, 성북구 마지막 원룸은 집주인이 빌트인 세탁기 교체 비용을 세입자와 분담하려고 해서 홧김(?)에 이사를 결정했다. 계약기간이 몇 달 남았는데, 이전부터 관리비 이슈로 집주인 아저씨와 정이 떨어졌기에, 손해를 보더라도 감행했다. 그렇게 서대문구 원룸으로 이동하고 나서 집들이 겸, 세 명이 가능한 시간대를 맞춰보려 했지만 쉽지 않았다. 나는 그녀를 쉽게 볼 수 있었지만 H는 오랜만이었다. 바쁜 두 사람의 일정이 도저히 맞지 않자 따로 얼굴 보자 했다. 그리고 H가 우리집에 반찬거리 싸들고 놀러 와서 간만의 진한 회포를 풀었다. 그녀가 이후에 다시 만남을 주도하려 했을 때, 나는 H랑 찐하게 놀았으니, 셋이 시간 맞추려 애쓰지 말고 너희 둘이 놀라고 했다. 그리고 몇 달이 흘렀다.


퇴근 시간 무렵 저녁에 뭐하냐고 그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별일 없다 했더니, 합정동 근처에서 저녁 먹자고 했다. 그럴까 하면서 7시 약속 장소에서 만나기로 했다. 가는 동안 먼저 도착한 그녀는, 언제쯤 도착할 것 같냐고 물었다. 나는 10분쯤 걸리겠다고, 서로 알았다 하면서 전화를 끊으려고 한 순간이었다.


”아 참, 여기 H도 와 있다!“


H와 함께 만나는 것은 좋았다. 그래서 내게 왜 말하지 않았냐고 물으면, H와 같이 만나기 싫은 뜻으로 오해할까 봐 아무 대꾸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가 내게 사전에 정보를 고지하지 않은 것이 불쾌했다. 이상했다. 처음에 저녁 먹자고 할 때, H와 이미 약속한 다음이었을 텐데. ‘H와 만나기로 했는데 가능하면 너도 나올래?’라고 묻지 않고, 모르는 척 왜 그냥 나오라고 했을까. 물론 그날 우리는 합정동 요리주점에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고 헤어졌다. 그러나 그녀가 내가 선택하는데 도움되는 정보를 의도적으로 제공하지 않았다는 느낌적인 느낌은 사라지지 않았다. 그녀는 H와 단둘이 있는 게 불편하거나 집중을 분산하기 위해, 누군가 필요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전에 너희 둘이 놀라고 말을 했기에, 굳이 내게 H와 선약을 언급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이 생각을 뒤집어 보면 그녀에게 내가 ‘편한 사람’이라는 뜻일 거다.


‘편한 사람’은 만만한 사람이었던가. 그녀와 대화할 때마다 묘한 느낌이 얼룩처럼 남았다. 딱 짚어서 말하기도 쪼잔하고 애매한. 내 생일이 며칠 지난 토요일이었다.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목요일에 네 생일이었는데 놓쳤다고 밖으로 나오라고 했다. ”그래? 홍대 근처에서 볼까?“ ”어허~! 일산에서 보자“ 우리는 각자 자기 집 근처를 말했다. 결국 약속 장소는 홍대 인근이었지만, “어허~!” 아랫사람을 가르치는 듯한 추임새를 그녀는 평소에도 종종 사용했다. 처음에는 장난스럽게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불편했다. 어른의 눈치를 살피며 하는 아이의 행동을 제지하기 위해, “에헴~!” 헛기침 소리로 멈추게 하는 모양새 같았다. 카톡을 할 때도 그녀는 나의 물음에 ‘그래, 응, 어’라고 하지 않고 “오냐”라고 답했다. 나는 그녀에게 “너는 친구한테 맨날 ‘오냐’가 뭐냐” 한마디하고 지나갔지만, 그녀는 나를 ‘어린 사람’이나 ‘아랫사람’으로 대하는 것 같았다. 그게 아니면 그녀 스스로 ‘어른’이나 ‘윗사람’으로 여기는 거나.




2023년 5월 그녀와 H 그리고 나 셋이서 2박 3일 제주여행을 떠나기로 했다. 두 사람은 휴가를 냈고, 나는 실업급여 받으면서 구직하던 시기였다. 제주도 사는 지인이 출타한 기간 집을 내어줬다. 며칠 사이에 비바람이 불어닥치다가 해가 뜨겁게 내리쬐고 제주의 변덕스런 날씨를 체감했다. 그리고 체감한 것은 날씨만이 아니었다.


첫날 숙소에 짐을 풀고 쉬었다가, 근처 구경을 하면서 비건 음식점으로 향하고 있었다. 한참 길을 헤매다가 식당으로 보이는 건물이 보였다. 연식이 얼마 안 되는 건물의 1층이 식당이었고, 그 앞에 작은 텃밭이 있었다. 테이블도 몇 개 없고, 제철 로컬푸드를 사용하면서 손수 제조하는 음식이 주를 이뤘다. H와 나는 “이렇게 한적한 곳에 손님이 있을까?”부터 시작해서, “하루 매출이 많지도 않을 것 같다”며, “장사를 유지하려면 자기 건물이어야 가능하겠지?”하면서 식당 사장님 사업을 가늠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제주 로망은 있어도 선뜻 시도할 수 없는 경제, 주거, 수입의 불안정성에 대해. H와 내가 하는 얘기를 듣던 그녀는 우리 쪽을 바라봤다. 눈썹을 산처럼 세우고 야릇한 입모양을 지었다.


“왜? 소유하고 싶어?”


그녀는 H와 내가 하는 말을 속물들의 대화처럼 바라보았다. 마치 자신은 소유하고 싶은 것이 전혀 없는 사람처럼. ‘소유’라는 단어가 이상하게 귀에 꽂혔다. 월세 세입자 경험이 있어 본 사람이라면 이해하는 대화이지, ‘갖고 싶냐’로 되묻는 게 이상했다. 장난스럽게도 아니고 비릿하게. 그러나 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야, 그녀가 왜 그런 반응을 했는지 알게 됐다. 그 당시 나는 이사하면서 3평 남짓의 원룸을 대출을 왕창 끼고 이자나 월세 비슷하다면서 매매했었다. 내가 집주인이 되면, 빌트인 세탁기 구입비를 분담하자는 황당한 요구 때문에 마음고생하지 않을 거니까. H도 언니네와 살림을 합쳐 대식구로 살다가, 분가하면서 오래된 아파트를 대출해서 매매했었다. 백수인 나와 가정이 있는 H가 어떻든 간에 ‘자가’라는 사실에, 그녀는 자신과 대비하고 있던 것 같다.


음식을 주문하고 기다리면서 나는 퇴사하고 마음을 추스르고 있다며 근황을 나누었다. 이전 직장에서 겪었던 일로 명상과 마음공부를 하게 됐고, 뇌과학과 분석심리학 강의도 들으면서 차츰 안정을 얻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에크하르크 톨레나 바이런 케이티 같은 사람들의 글에서 많은 위로를 받았다고. 그랬더니 그녀가 눈빛과 말투에 날을 세웠다. 명상이나 뉴에이지가 자본주의와 결합하여, 오프라 윈프리 같은 사람들이 자기계발 시장에서 판을 친다며 정색했다. 그녀는 자본주의를 ‘배격’하는 것처럼 말했지만, 자본주의를 어떻다고 규정하고 이에 ‘배타적이어야 한다고 집착’하는 것처럼 보였다. 한편 내가 얻은 위로나 배움을 깎아내리는 것 같았다. 숙소로 돌아와 나는 잠을 설쳤다. 중간에 깨면 어둠 속에서 눈만 깜빡였다. 그때마다 식당에서 서늘하고 비릿한 표정의 그녀가 아른거렸다.


전날까지 우중충하고 비가 내리더니 이튿날 아침은 하늘이 파랗고 깨끗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갈 채비를 했다. H는 누워서 뒹굴고 있고, 그녀는 핫케잌을 만든다면서 주방에서 반죽을 섞고 있었다. 해변 산책하고 오겠다고 했더니, “아침으로 핫케잌 구울 건데 안 먹을 거야?” 그녀가 물었다. 핫케잌 다 만들면 먹고 나가길 바라는 눈치였다. 나는 아침 식사를 챙기는 편도 아니고, 제주에서 지금이 아니면 즐길 수 없는 것을 하고 싶었다. “아침에 사람도 없고 선선해서 지금 산책하고 싶다. 핫케잌 너네 다 먹어도 되고, 남으면 돌아와서 먹을게.” 내 말이 끝나자 잠시 싸늘한 정적이 흘렀다. 그녀의 머리 위로 조용한 분노가 새처럼 맴돌다 날아간 것 같았다. 나는 그 침묵을 무시하고 “갔다 올게”하면서 나와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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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째 날은 유채꽃밭, 올레길 코스, 오일 민속장이었다. 올레길에서 본 ‘해녀의 집’에서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음식을 주문하고 H가 화장실에 간 사이, 문어 한 접시가 먼저 나왔다. 나는 H 나오면 같이 먹으려고 기다렸는데, 그녀는 시장했는지 몇 점을 집어 먹고 있었다. H가 와서 자리에 앉자, 그녀는 젓가락을 재빨리 내려놓고 오물거리던 입모양을 멈추었다. 그러더니 눈을 감고 두 손을 모은 뒤, 카톨릭에서 하는 성호를 그었다. H가 그녀를 쳐다보며 “원래 기도했어?” 물었다. 그녀는 머뭇거리면서 “어..어”라고 대답했다. 테이블을 두고 그 둘의 맞은편에 내가 앉아있었기에, 나는 그 모습을 처음부터 쭉 보고 있었다. 이상했다. 그녀는 나와 둘이 있을 때는 안 그러더니, H가 오니 음식을 먹다 말고 식기도를 했다. 잊어버려서? 타이밍을 놓쳐서? 아니면 ‘누구와’ 있느냐에 따라 다른 걸까?


버스를 타고 창밖으로 날이 갠 제주 하늘과 바다를 보니 다음날 떠나는 게 아쉬웠다. “하루 더 있다가 갈까?” 백수 좋은 게 뭔가, 내가 더 놀다 가겠다고 했을 때, H가 맞장구치며 “그래, 더 놀다 와, 시간도 있는데 여기까지 와서 이틀 밤만 있기는 아깝잖아” 그러나 그녀의 표정이 갑자기 어두워졌다. 비행기표를 취소하고, 다음날 묵을 성산 근처 숙소를 예약했다. 그녀의 낯빛이 바뀐 이유는 몰랐지만, 나는 일출 볼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더 머물면서 고단하고 묵은 감정을 바다에 덜어내고 싶었다. 여행에서도 내가 하는 말마다 부정하고 툴툴거렸던 그녀의 반응이 가시로 남아, 마저 털어버리고 돌아가고 싶었다.


셋이 함께하는 마지막 날 우리는 함덕 해변을 거닐고, 서우봉에 올랐다. 봉우리에서 내려다보이는 바다색은 오묘했다. 해변은 투명한 에메랄드빛인데, 점점 파래지다가 멀리는 군청색 빛이 돌았다. 햇빛에 하얗게 부딪히는 파도의 리듬에 취해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서우봉 산책과 점심 식사를 끝으로 세 명의 공식 일정은 끝났다. 각자 움직이는 시간이 달라, 두 사람과 인사하고 나는 성산 인근으로 향했다. 버스 안에서 혼자 창밖을 바라보는데 ‘이제부터 진짜 여행’인 것처럼 설렜다.


제주에서 서울로 돌아왔을 때, 나는 그녀와 헤어지기로 마음을 굳혔다. 성산 일출봉에서 떠오르는 해를 바라보면서 다짐했다. 나를 무겁게 끌어내리는 모든 것들과 이별하겠다고. 그녀는 처음부터 안개 속에 있었다. 그녀와 함께 있을 때 나는 속으로 ‘이상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전혀 상반된 그녀의 모습을 마주할 때마다 드는 양가감정을 소화하지 못해, 가슴이 답답하고 무거웠다. 우리 사이는 밝혀서 드러내고 욕하고 싸울 만큼 솔직하거나 진실하지 않았다. 그녀와 나는 어떤 면에서 비슷했다. 그녀는 자신에게 이유를 ‘묻지 않기를 바라를 사람’이었고, 나는 상대방에게 ‘대놓고 묻지 못하는 사람’이었지 않았나 싶다. 이 절묘한 아귀가 맞물려 긴 시간 자욱한 안개 속에서 관계가 지속된 게 아니었을까. 모호와 모순을 부둥켜안은 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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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풍우가 아니라 안개처럼, 우리는 서서히 뿌옇게 헤어졌다. 누구 하나 먼저 용기를 냈다면 어땠을까. 이판사판 끝장을 보자고 달려들었으면 달랐을까. 정말 달라졌을까. 아니다. 지금 나는 행복하고 편안하니까. 안개 걷힌 하늘 위로, 거대한 날개를 펼친 무지개가 떠있으니까. 이제 안개를 뚫고 솟은 무지개를 보는 안목이 생겼으니까.



“아아아아아~그 사람은 어디에 갔을까. 안개 속에 눈을 떠라. 눈물을 감추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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