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개탄을 산 여자는 어떻게 되었을까
바람 피우고 있는 걸 알고 있으니 그 여자를 정리해달라는 내 말을 듣고 남편은 그럼 당분간 따로 살아보자며 짐을 싸서 집을 나갔다. 본인 옷가지와 컴퓨터 등 거의 이사짐을 싸다 나른 그 사람은 울고 있는 나에게 너가 조금만 버티고 참아주면 우린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남기고 집을 나갔다.
그 때까지도 나는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안 그래도 걱정 많으신 부모님에게 걱정거리를 더해드리고 싶지 않았다. 결혼과 동시에 끊겨버린 커리어로 무엇을 새로 시작할 용기도 없었다. 남편이 바람을 피우고 집을 나갔다는 걸 아무에게도 이야기도 하지 않았다. 그저 혼자 끙끙 앓으며 며칠을 보냈다.
이렇게 살 수는 없다는 순간 내가 결정한 건 우습게도 죽어야겠다는 거였다.
내 모든 선택들은 망했고 이번 생은 이대로 살 수 없을 것 같으니 죽어야겠다.
끙끙 앓고 있는 이 순간을 끝내야겠다.
4살 아이를 태우고 강원도로 가면서 가는 길에 번개탄을 샀다. 아이는 방에 두고 차에서 번개탄을 태운 뒤에 집을 나가 상간녀와 살고 있는 그 사람에게 문자를 보낼 생각이었다.
강원도에 가서 아이와는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신나게 놀았다. 썰매도 타고 눈싸움도 하면서 강원도의 겨울을 만끽했다. 아빠 보고 싶다며 종종 눈물을 보이던 아이도 그날만큼은 아빠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밤에 아이를 재워두고 방을 몰래 빠져 나와 차로 가면서 생각했다.
내가 죽으면 그 사람이 자기가 뭘 잘못한건지 알게될까?
내가 죽으면 아이는 아빠를 원망하면서 자라게 될까?
차에 앉아서도 한참을 울었던 것 같다. 삶이 잘못된 선택의 연속이라 뭐가 어디부터 어떻게 잘못된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 내가 이 엉켜버린 실타래를 풀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런데 그때 전화가 왔다. 아이 어린이집에서 재롱잔치를 예정대로 진행 할 예정이니 아이를 보내라는 동네 엄마의 전화였다. 당시는 코로나 유행 완전 초창기로 기껏해야 3호 정도 확진자가 등장했을 때였다.
처음 나타난 바이러스에 단체 행사들은 대부분 취소되고 있었는데 어린이집 행사를 예정대로 진행한다고?
아무튼 아이의 귀여운 모습을 볼 수 있겠구나 싶어 마음이 또 다른 길로 열리는 것 같았다.
그대로 방에 들어가 자고 새벽같이 아이들 태우고 나와 다시 어린이집으로 향했다.
주로 엄마아빠들이 함께 많이 온 재롱잔치 현장에 혼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이게 나의 앞으로의 모습이겠구나 나쁘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혼자 할 수 있지 않을까? 방법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아이랑 나랑 둘이서 가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그리고는 일자리를 찾아 취업하고 이혼을 처리하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 지금의 삶이 계속되고 있다.
지금의 삶은 그 시절의 마음으로써는 상상할 수도 없던 행복이라 만약 그때 내가 전화를 받지 않았다면, 번개탄을 피워서 이 자리에 없었다면, 혹은 번개탄을 피우는 바람에 그 사람이 돌아와서 다시 그전처럼 살게 되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게 된다.
다시 살아서 다행이다.
그때 그 어두운 밤을 이겨내서, 정말 다행이다.
죽음을 생각할 만큼 깊은 절망 속에 있었지만, 결국 나는 살아남았다.
그리고 살아낸 덕분에 알게 되었다. 인생은 한 번 무너졌다고 끝나는 게 아니고,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지금의 나는 혼자여서 외롭지 않고, 누군가 없어서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그 모든 고통을 지나온 내가 자랑스럽고, 나와 함께 이 길을 걷고 있는 아이가 감사하다.
그러니 이제는 확신한다.
이혼해도 괜찮다고.
혼자서도 괜찮다고.
그리고 무엇보다, 살아 있는 지금이 참 다행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