밸런타인데이 백일장
여보~
얼마 전에 서현이가 그러더라.
"엄마는 결혼을 참 잘한 거 같아."
"아니지~ 아빠가 결혼을 잘한 거지!"
"아니야! 엄마가 잘했어."
"그럼 서현이도 아빠 같은 신랑 만나면 되겠네?"
"......"
(이 침묵은 무엇...?)
그리고 우리 영화 '1승'을 보다가 서현이가 물었던 거 기억나?
"엄마~ 왜 저 사람들은 이혼했는데도 사이가 좋아?"
"음... 아마 이혼해서 그럴 거야."
내 말에 우리 둘은 결혼한 사람만이 알 수 있는 표정으로 웃었고, 서현이는 갸우뚱하더니 또 말했지.
"엄마, 아빠는 이혼 안 했잖아."
그 말은, 사춘기 아이 눈에도 우리가 꽤 괜찮은 부부라는 뜻 아닐까?
사실 이렇게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나와는 다르게 여보가 부모님으로부터 건강하게 독립이 된 성인이라는 거야.
여보는 한 마디로 표현하면 참 바른 어른이야. 회사와 집 밖에 모르는 사람이라 나는 산후 우울증도 잘 모르고 육아를 했던 거 같아. 뚝딱뚝딱 잘 만들고, 잘 고치고. 워낙에 꼼꼼한 성격이라 가내 수공업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을 거 같은 느낌도 들더라고.
데이트하며 즐긴 커피를 어느새 직접 생두를 볶는 홈 로스팅으로 발전시키고, 장비빨보다 기본 과정을 중시하는 모습은 정말 우리 아이들이 꼭 닮았으면 하는 부분이야. 그리고 가만 보면 커피뿐만 아니라 모든 삶의 태도가 그래. 스스로 찾아보고, 알아가고, 완벽하게 해내고.
가끔은 그런 여보를 보면서 '얼마나 피곤할까?' 싶기도 해. 그런데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그만해, 피곤하잖아~"라고 말리는 게 아니라, 그냥 옆에서 묵묵히 지켜보는 거더라고. 그렇게 나도 변하고, 서로 맞춰 가면서 지금까지 잘 살아온 거 같아.
앞으로도 우리 적당히 맞춰가면서 잘 살아보자고!
내가 이렇게 밸런타인데이 백일장으로 여보에게 편지를 쓰고 있지만, 여보는 늘 기억해야 해!
날 만나기 위해 눈물짓던 그때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