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만남과 이별

by 바람꽃 우동준

2011년 5월 5일


오늘은 어린이날. 푸르른 세상. 어린이들 만세. 덕분에 쉽니다.

어린이날이자 각개훈련이 끝난 다음 날이다.

어린이날이여 영원하라.


이로써 4주 차 각개전투로 훈련소 모든 영외 훈련은 끝이 났다. 이십 년 남짓한 인생 중 가장 큰 보람을 느낀다. 그 무엇보다도 두려움에 사로잡히지 않았던 내가 대견하다. 훈련을 마치고 새벽에 취침하여 오늘 10시에 기상했다. 정말 오랜만에 10시에 눈을 뜨니 괜히 어색하다.


전날 야간행군을 마치고 막사에 복귀했을 때만 해도 이제 끝났다는 생각에 온 몸에 긴장이 다 풀리며 갑자기 열이 한참 나더니 지금은 닭백숙을 먹어서 그런가 많이 좋아졌다.


나 말고도 행군 후 몸을 떨던 동기들도 한숨 자고 나니 괜찮아 보인다. 다만 선오가 어제 행군하다 발을 심하게 접질려 먼저 복귀했는데, 아직도 발이 많이 부어있다. 자꾸 전투화가 잘 안 들어간다고 징징댄다. 선오 말곤 다행히 큰 사고 없이 야간행군도 잘 마무리되었다.


오늘은 그간 계속 있었던 훈련으로 인해 더러워진 개인 장구류 정비가 계획되어 있다.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거라 생각했으나 어떻게 닦아야 할 건 그렇게나 많은지. 고작 3일 비운 막사인데도 청소할 곳도 많고, 겨우 하루 잔 텐트인데도 흙먼지는 떨어질 생각을 안 하고, 어떻게 화장실은 아무도 안 쓴 게 분명한데 막혀있고, 내 전투복도 손빨래해야 하고, 양말도 손빨래해야 하고, 속옷도 손빨래해야 하고.


일은 분명 많긴 했지만 확실히 힘든 훈련이 다 끝났다는 생각에 동기들끼리 손빨래 같이 하면서 웃고, 변기 뚫으면서 장난도 치고 한결 가벼워진 분위기다. 분대장들도 우리가 웃고 장난치는 걸 봐도 조금씩 넘겨주는 것 같다.

며칠 전만 해도 누가 이빨 보이냐고 엎드리라던 분대장인데.


오후엔 총기 손질도 있었다. 내일은 총검술 훈련이 계획되어 있다고 한다. 그리고 이번이 훈련소에서의 마지막 총기 수입이란다. 처음 총기 수입하라고 했을 땐 다들 하기 싫어 대충대충 하더니 마지막 총기 수입이란 말에 부직포도 찾고 기름도 찾고 다들 광까지 낼 기세다.


총기 손질이 끝나고 잠깐의 자유시간. 그간 밀렸던 국방일보를 익성이가 가지고 왔다. 익성이는 우리 분대의 국방일보 담당이다. 다들 달려들어 제일 끝 연예 면부터 살핀다.


시스타가 유닛으로 활동한다고?

소녀시대다.

아이유다!!!!!


연예면의 아이돌 사진을 서로 갖겠다고 난리다.





------5월 8일 일요일



오늘은 어버이날이다. 그러면서 훈련소에서 맞는 마지막 주말. 그동안 주말에는 항상 오전에도 성당, 오후에도 성당만 갔었다. 어릴 때부터 쭉 성당을 다녔던 터라 군대라는 곳에서 유일하게 익숙한 곳이자 편안한 곳은 성당 밖에 없었다.


일주일이 아무리 힘들어도 주말이 온다, 주말이 온다, 주말이 온다고 외우며 버티곤 했었는데 이젠 그 주말도 어느새 마지막이 되었다. 어젯밤. 토요일이면 늘 하는 종교 조사를 했다.


“내일이 너희들이 훈련소에서 하는 마지막 종교행사다. 늘 그래 왔듯이 불참은 없고, 오전과 오후 나누어서 해당 종교에 거수할 수 있도록 한다.”


나는 당연히 성당을 가야지 생각하고 있었는데 분대 애들이 같이 교회를 가자고 한다.


“동준아 우리 마지막인데 다 같이 교회 가자-”

“난 신자라서 성당 가야 되는데?”

“아~ 거 참 사람 빡빡하게 구네. 성당이나 교회나 십자가 똑같이 생겼더니만. 같이 가자”

“아 안되는데...”


그렇게 나는 오전은 성당으로 가고 오후에만 교회로 가기로 타협? 아닌 타협을 하고 오후에는 교회로 간다고 손을 들었다.


오전 종교행사. 괜히 성당을 오니 뭉클하다.

'이곳도 이제 마지막이구나.'


신부님께서 늘 미사 마지막에 말씀하시던 게 있었다. ppt로 입소 부대와 퇴소 부대 명단이 올라오고 항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부대의 이름을 불러 주셨다. 처음 성당을 왔을 때 입소 부대로 불릴 땐 얼마나 막막하던지. 시간이 흘러 퇴소 부대에 29-3이 떠있고 신부님께서 부르셨다.


“29 연대 3 교육대대-”


성당에 왔던 3 교육대대 인원들은 모두 자기 관등성명을 목이 터져라 외쳤다.

“모두들 고생 많으셨습니다. 그리고 모두 건강하게 마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간단한 말로도 감동을 줄 수가 있구나. 신부님의 말씀이 끝난 후 우린 모두 환호성을 외쳤는데 목이 매인다. 그때 나도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언젠간 나도 군대에 와있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이 되어야겠다. 신부님처럼 꼭.’



----그리고 그 날 오후



오후엔 약속했던 대로 분대원 전원이 교회로 갔다. 형석이랑 선오는 원래 다 이렇게 하는 거라며 수건과 구두약을 가져오더니 수건에 글씨를 적기 시작했다.


-우리는 끝났다. 각. 개. 전. 투.-

-우린 갈게. 너는 각개.-

-나는 담배. 너는 땀빼-


늘 성당만 갔던 내겐 너무 놀라운 모습이었다.


“선오야- 이거 뭐 하는 건데?”

“형. 기대해.”


선오가 시익 웃으며 기대하라고만 말하고 수건을 바지춤 뒤로 구겨 넣었다. 그렇게 들어간 연무대 교회. 연무대교회 안으로 들어오니 밖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넓었고 사람도 성당보다 훨씬 많은 듯했다. 겨우 자리를 찾아 앉으니, 조금씩 다른 부대에서도 인원들이 들어와 자리를 잡고 앉기 시작했다.


안내해주시는 목사님이 나오셔서 인사를 하셨고 그걸 시작으로 갑자기 여기저기서 애들이 일어나더니 소리를 질렀다.


“우리는 끝났다 각!! 개!! 전!! 투!!!”

이게 끝이 나니 또 다른 곳에서 애들이 일어나 외쳤다.


“우리도 끝났다 각!! 개!! 전!! 투!!!”


이번에는 다들 준비해 왔던 물품들을 꺼내 흔들기 시작했다. 우리 애들은 수건을 꺼내 흔드는데 저기 끝에 다른 부대 애들은 박스를 꺼내 흔든다. 대체 저 박스는 어떻게 챙겨 왔는지 모르겠다. 마치 사직구장에 온 것 같다.

그렇게 여기저기서 괴성이 오고 가는데 목사님은 너무도 감격한 얼굴로 우리를 바라보며 웃고 계셨다.


이후 예배가 시작되고 찬송가는 나에게도 익숙한 실로암이 흘러나왔다. 내가 아는 노래라 따라 부르려고 했는데 갑자기 목사님이 우리를 일으켜 세우신다.


왜.. 일어서지..??


그러고 이윽고 익숙한 반주가 흘러나오는데.. 그 비트에 따라 모든 장병이 외쳤다.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왼발!!! ”



https://youtu.be/NRAKho-OMHM


이 폭발적인 에너지는 뭘까.


“어두운 밤에~ 캄캄한 밤에~ 새벽을 찾아 떠난다~~”

이후 갑자기 박자를 맞춰

“훈련은 전투다 각! 개! 전! 투!”



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는 진짜 너무 깜짝 놀라서 얼타고 있는데

그 코러스? 가 끝나고 곧바로 모두 하나가 되어 자신들의 미래를 축복하며 외쳤다.


“GOP!! GOP!! GOP!! GOP!! GOP!! GOP!! GOP!! GOP!! GOP!! GOP!! ”





- 서러움 폭발


어버이날이다. 사회에서 아무리 날고뛰었다 해도 군복을 입으면 다들 순한 양이 되는 것처럼, 군복을 입고 있으니 마음만큼은 다들 한국 최고의 효자가 된다.


그건 노린 걸까. 어버이날을 맞아 군인공제회에서 특별 할인 전단지를 보내왔다. 전단지 이름은 -어버이날 선물 특가 할인!! 부모님 사랑합니다- 분대장이 하나씩 나누어 주더니 강제가 아니고 선택이라며 선물할 사람들은 밑에 신청서를 잘라 내라고 했다.


‘A는 일반 카네이션이고 B는 특별 카네이션이고 C는 블루베리? 오! 이거 괜찮은데? D는 홍삼이라...‘


가격은 최고 비싼 D가 45000원이었다. 훈련소에서 내가 받은 첫 월급. 어차피 훈련소에선 PX도 못 가고 자대 갈 때쯤 이면 아마 월급이 또 들어올 테니까 그렇게 나는 최고 비싼 D를 선택해 분대장에게 신청서를 냈다.



-------------5월 9일


우리 바로 전 기수부터 바뀌어 이젠 훈련소에서도 면회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들으니 몇십 년 만에 부활된 정책이라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4주 차 훈련이 끝나며 면회객에 대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준비라고 해서 특별한 거 없이 발맞춰 걷는 연습이랑 경례 연습, 도열 연습을 했다.


그리고 5주 차 오후는 대부분 막사 주변 풀을 뽑는 것으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오늘은 각자 집에 전화를 해 확실하게 오는 인원과 차량 종류, 차량 번호를 꼭 알아야 한단다. 개인별로 주어진 시간은 3분. 막사 내 전화기는 총 10대. 그중 우리 소대가 배당받은 전화기는 3대였다.


내가 그렇게 전화 한 번 해보려고 팔꿈치 다 까져 가면서 얻은 상점인데, 이젠 상점이 없이도 전화를 할 수 있다니 너무 허망하다. 전화기 옆에는 분대장이 시계를 들고 앉아 우리를 감시했다.


한 사람씩 전화가 끝나고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두근두근-


수화기를 들어 귀에 갖다 댔다. 겨우 한 달인데도 귀에 닿는 수화기가 너무 어색하고 차갑기만 하다. 그동안 너무나 바라왔던 가족과의 전화. 떨린다. 왼손으론 수화기를 들고 떨리는 오른손은 다이얼을 향해 조금씩 다가가 버튼을 꾹 눌렀다.


-긴급통화-

그리곤 1541.


콜렉트콜에선 신호가 가는 동안 최신 가요가 흘러나왔다. 그런데 난 처음 듣는 노래다. 잠시 뒤 딸깍 – 소리와 함께 수화기에서 너무나 익숙한 절대 잊을 수 없을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엄마."




엄마는 목소리가 왜 그렇게 갈라졌냐, 편지는 다 괜찮다고 써도 알고 보면 힘든 거 아니냐, 아픈데 없다고 해도 설사는 안 하냐 등등 괜찮다는 내 말을 죄다 안 믿는다.


어머니의 목소리를 들으니 너무 반가웠고 사실 나는 이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집이 부산이라 논산까지 오려면

쉽지 않다. 나도 가족이 많이 보고 싶었지만 겨우 5~6시간 보는데 부산에서 논산까지 오시라고는 차마

말할 수가 없었다.


어머니도 그런 내 맘을 알았는지 아마 가게 되면 이모 차로 가게 될 거라고 괜한 집 걱정은 하지 말라고 하셨다.

어느새 3분이 지났고 (분대장은 정말 칼 같이 잘랐다) 나는 그렇게 짧은 전화를 끝으로 다시 꿈에서 현실로 되돌아왔다.


“이번 줄 나가고 뒷 줄 통화 준비-”


통화가 끝나고 생활관으로 들어오니 분위기가 무겁고 착잡하다. 통화하기 전엔 다들 흥분해 날뛰었는데 전화를 하고 나니 오히려 다들 축 쳐져있다. 나도 어머니의 목소리를 듣고 나니 괜히 슬퍼지고 힘이 빠진다. 3분은 너무 짧았다.





- 훈련병에서 이병으로



5월 10일, 석가탄신일이다. 휴일이다. 이번 우리 기수는 운이 많은 거라고 한다. 분대장은 어린이날과 석가탄신일로 훈련소 기간의 이틀이나 쉰다는 건 거의 기적이라고 했다. 그것도 5주 차에. 5주 차가 아니었다면 쉬는 게 아니라 영내 정신교육이나 다른 실내교육을 했을 거라고 했다.


휴일이라 오늘도 7시 기상을 했다. 여유로운 아침. 성인의 탄생일은 역시 거룩했다. 그리고 내일이면 드디어 면회 날. 괜히 떨린다. 그러면서 궁금해진다.


‘가족을 다시 보면 어떤 기분일까?’

‘가족들이 나를 볼 때 나는 많이 변해 있을까?’


5주라는 시간이 흘렀다. 생각해보면 사회에서 5주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다. 특히 군대에 오기 전 5주는 내게 너무나 짧았던 시간이다. 정말 금방 지나갔던 시간.


그런데 왜일까? 여기서의 5주가 정말 꽉 찬 경험들의 연속이라 그리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을까. 민망한 생각이지만 사회에서 그저 흘러 보낸 5주가 아닌 쉼 없이 꽉 차있는 이곳에서의 5주는 내게 변화와 도약, 성숙의 시간이 되었다.


스스로에 대해 흔들리지 않는 관념들을 새겼고, 곧 될 내 모습을 나를 확고히 정의하고 있다. 조금씩이지만 분명 히 변하고 있다.



-----5월 11일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오늘 면회다.


면회와 함께 수료식도 진행된다. 오늘이 지나면 나도 드디어 훈련병이 아닌 이병이 된다. 어젯밤 특별히 분대장들이 샤워도 시켜주었다.


떨린다.

10시부터 교육대대에서 입소 대대로 이동했다.


그동안 관물대 안에 잘 넣어 놓았던 내 군복을 꺼내 입고는 우리가 처음 들어왔던. 그 쇠창살이 꽂혀 있던 철문을 향해 걸어갔다.


5주 전. 처음 입어보는 판초우의를 뒤집어쓰고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저 육교를 지나 이 교육대대를 들어왔었는데, 이젠 너무나 가벼운 마음으로 다시 입소 대대로 향하는 육교를 건너고 있다.


그렇게 다시 입소대대의 철문을 통과한 우리. 동기들 모두 상글벙글하다. 그렇게 우린 바로 강당으로 향했다. 강당으로 들어가 수료식 예행연습과 면회 간 지켜야 할 사항에 대해 교육받았다. 원래 계획은 입소 날 연병장에서 부모님께 어설픈 거수경례를 하고 돌아섰던 그 자리에서, 멋있게 군복을 입고 각이 나오는 경례를 하며 인사를 드리는 거였는데 또 비가 온다.


‘대체 왜 저 육교만 건너면 비가 오니'


어쩔 수 없이 대강당에서 수료식과 면회를 하게 되었다. 연습이 진행되는 동안 빨리 도착하신 부모님들은 강당 바깥에서 사진도 찍으시고 사랑하는 아들 얼굴을 보시려고 여기서 기웃 저기서 기웃 바쁘시다.


분대장들은 여기저기서 부모님들을 통제한다고 바쁘다. ‘그래 이놈들아 어디 한 번 우리한테 하듯이 통제해봐라. 우리의 엄마 아빠는 쉽지 않을 테다.' 강당 주변이 소란스러워지자 중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잠시 후면 부모님과 지인들이 강당 안으로 들어오실 게 되고 바로 수료식이 시작될 거다. 이 중대장이 한마디만 하자면, 너희는 군인이다. 5주간의 시간을 무의미하게 만들지 마라. 수료식은 길어야 15분이다. 그 15분간 군인답게 단단한 모습을 보여드려라. 자랑스럽게 성장한 모습을, 달라진 모습을 보여드려라. 어린아이처럼 반갑다고 손 흔들거나, 군기가 흐트러지는 모습을 보여 소대장들과 분대장들, 그리고 너희들의 노력을 우습게 만들지 말길 바란다.”




------ 11시



수료식이 시작되었다. 중대장님의 말씀을 따라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무릎도 아프고 어깨도 아프고 목도 아팠지만 어디선가 보고 있을 가족을 향해 더 단단히 서 있었다.


이렇게 보니 너무 옛날같다



수료식이 끝나며 훈련병들의 어머니들이 나와 왼쪽 가슴에 이병 계급장을 달아주는 행사가 진행되었다. 각 훈련병들의 부모님들이 아들을 찾아 나오셨고 저 멀리서 엄마가 걸어왔다.


‘엄마다’


엄마가 내 왼쪽 포켓 위에 이병 계급장을 붙여주곤 안아주었다.


“수고 많았어 아들-”


엄마랑 안으며 뒤를 보니 동생과 이모 그리고 승희가 있다. 친구가 왔다. 온단 말이 없던 터라 더 반가웠다. 건강해 보인다.



---- 12시



수료식이 끝나고 강당 여기저기에 흩어져 앉아 자유로운 시간을 가졌다. 이모랑 엄마가 도시락을 하나씩 꺼내는데 뭘 이렇게나 많이 싸오셨는지. 치즈케이크에 커피에 김밥에 소고기에 치킨에 피자에 어마어마하다. 그중에

제일은 역시 커피였다.


수많은 요리들을 보니 아침부터 이걸 하느라 얼마나 바빴을까 괜히 뭉클해진다.



%BB%E7%BA%BB_-_110511121005.jpg?type=w2 내가 이렇게까지 인상이 더러웠던가..




그리고 또 고마운 내 친구 승희. 아침 5시부터 준비해 올라왔단다.


“승희야- 고맙다-”

“어-”

"그래"


먹을 수 있는 대로 다 먹고 급하게 화장실을 갔다. 화장실 앞에선 분대장이 혹시 누가 담배를 피우진 않나 우리들을 감시하고 있었다. 동생의 MP3를 받아 화장실서 이어폰을 귀에 꼽았다.


노래 목록을 내려가 내가 즐겨 듣던 노래를 틀었다. 그래 맞아. 난 화장실에 앉아 노래를 들으며 용변을 볼 수 있는 사람이었어. 그래 난 그럴 수 있는 사람이었어.




---- 17시


이제 면회를 마무리해야 되는 시간. 우리는 동기들끼리 모여 각자의 부모님들에게 인사를 드리러 다녔다. 여기서 안녕하십니까 저기서 안녕하십니까 바빴다.


그래. 어떻게 보면 우린 서로가 서로의 5주 그 증거가 아닌가. 그런 우리들을 보고 모든 부모님들이 기쁘게 웃어 주셨다. 그리곤 각자의 카메라를 집어 들곤 강당 앞으로 뛰어나가 사진을 찍었다. 지금을 기억하기 위해 -


%BB%E7%BA%BB_-_SAM_1565.JPG?type=w2



%BB%E7%BA%BB_-_SAM_1566.JPG?type=w2



%BB%E7%BA%BB_-_SAM_1570.JPG?type=w2



%BB%E7%BA%BB_-_SAM_1571.JPG?type=w2



SAM_1574.JPG?type=w2



SAM_1573.JPG?type=w2




- 안녕


면회가 끝났다. 오전에 내리던 비는 어느새 그쳤고 하늘은 전보다 훨씬 깨끗해졌다. 막사로 돌아가는 길.

혹시나 내린 비 때문에 고속도로가 미끄럽지는 않을까, 아침부터 와서 다들 많이 피곤하겠지, 언제 또 볼 수 있으려나, 내 머리 속에서 맴도는 이런저런 생각들.


너무나 보고 싶던 가족을 보고, 친구도 보고, 치즈케이크와 커피를 마실 수 있어서 그리고 노래를 들을 수 있어 행복했다. 얼굴을 보니 왠지 마음이 놓인다. 다시 내 자리를 찾은 느낌이다.


누군가가 나를 기다려 주고 있다는 건 분명 감사해야 하는 일이다. 막사로 돌아가는 길도 오전에 면회 올 때처럼 분위기가 좋다. 사실 오늘 우리 소대원들 중에선 면회에 부모님이 오지 못한 동기도 있다. 동기가 너무 외롭진 않았을까 신경이 쓰였는데 오히려 면회장 이곳저곳을 다니며 엄청 많은 음식을 먹었다고 했다. 그리고 갑자기 기름기 가득한 음식을 먹어서일까. 막사로 돌아가자마자 우리들은 모두 화장실에서 나오질 못했다.





--------- 5월 12 일



오늘이 마지막이다. 훈련소의 마지막 날. 강당에 모여 우리가 가게 될 곳을 들었다. 내가 내일 훈련소를 퇴소하고 가게 될 곳은 공병학교란다. 우리 분대 애들 중에서는 명호가 나랑 같이 공병학교로 간단다. 나와 명호는 공병학교가 있는 상무대로 가고, 대부분의 애들은 자운대로 간다.


자운대는 대전에 있고 상무대는 광주에 있어 우리가 더 빨리 출발한다고 한다. 나는 –상무대 36소대 6호차-로 분류되었다. 따로 분류가 되어 앉아 있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그동안 29 연대 9중대 4소대로 불리다 새로운 번호로 분류되니 지금까지의 내가 다시 사라지는 느낌이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애들도 그동안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타 중대 애들이다. 다른 이름, 다른 사람들 속에서 앉아 있으니 입대 첫 날로 돌아온 기분이다.


30분 정도의 분류가 끝나고 다시 소대로 복귀하니 너무 익숙한 얼굴들에 마음이 다시 놓인다. 잠깐의 떨어짐과 새롭게 부여받은 번호가 날 두렵게 했다. 14명의 분대 동기들. 생각보다도 더 많이 가까웠고 내가 많이 의지했던 사람들이다.


이제 몇 시간밖에 안 남았다. 소대로 돌아와 입소대대부터 같이 왔던 동희 형에게 갔다.


“형- 형은 어디로 간데??”

“나는 자운대. 너는 동준아?”

“나는 상무대라네 형. 형 그럼 우리도 오늘이 마지막이네.”

“그러네. 아쉽다. 넌 분명 자대 가서도 잘 할 거야. 형이 보니까.”

“형 정말 못 잊을 거야.”


군대에 와서 만난 형. 너무 따뜻한 형이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군대에서 처음 얘길 나눈 사람이 바로 동희 형이라서 그나마 군대에 대한 내 편견이 많이 깨진 것 같기도 하다.


나보다 나이도 많았고 그래서 좋은 말도 많이 해주었고. 늘 지나다니며 만날 때면 아무 말 없이 웃으며 서로 손을 잡곤 했었는데. 아쉽게도 형과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그렇게 한 사람씩 얘기하는데 형석이는 17사단이란다. 형석이만 후반기 없이 바로 자대로 간단다.


“아 왜 니들은 후반기 가는데 난 안가? 후반기 꿀이라매!"





--- 밤


마지막 밤이라 편하고 훈훈한 마무리를 기대했지만 분대장은 다음 기수를 위해 화장실을 비롯한 막사 청소를 시켰다. 우린 전 막사를 왁스 칠했다. 그것도 밤 9시부터.


더 소름이 돋는 건 오늘은 불침번 없이 밤에 돌아가며 왁스칠을 한다는 것이다. 너무 잔인하다.




----- 22시 7분

몰래 가지고 있던 라이트펜을 꺼내 썼던 일기.


20130613_222840.jpg?type=w2

2011.5.12.

마지막 날, 밤이다. 10시 7분이 넘어간다. 청소가 끝나는 대로 잔단다. 내일 나는 상무대로 간다. 이제 여기도 마지막이다. 우리 분대장 명호, 삼촌 닮은 불당 힙합보이 정호, 야쓰(야외쓰레기)멤버인 형우, 제민, 우리 진혁이..

말없이 조용했던 빛고을 광주인 범규, 인천 윤시윤 형석이, 고려대 순둥이 강산이, 웃는 게 서글서글한 동훈이 형,

제천 사는 귀염둥이 길이 선오, 오지랖 평건이, 모기 닮고 선한 얼굴의 우리 국방일보 익성이, 착실하고 참 착했던 독실한 기독교인 원조.


그래. 다들 마지막이다.




- 건강해야 해 모두들.



나는 새벽 2시부터 3시 담당이었다. 타일 하나 닦고 졸고, 타일 하나 닦으면서 졸고. 다른 건 이제 익숙해졌지만 아무리 해도 이 불침번만은 쉽지가 않다. 모든 짐을 다 정리했다. 5주 전 입소대에서 교육 대대로 넘어왔을 때처럼 다시 내 더블백엔 내 짐이 한가득이다.


그리고 가진 분대장과의 마지막 시간. 우리 소대를 책임졌던 4명의 훈육 분대장들이 다 내려왔다. 분대장들이 돌아가며 한 명씩 소감을 얘기했다.


-병장 분대장

“잘 해주어서 고맙다. 뭐 나는 이제 말년이라 잘 내려오질 않았지만 가끔씩 본 걸로는 니들 자대 가서도 다 잘 할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난 5일 남았다. 니들은 퇴소지. 난 말년 나가. 그리고 나 90년 생이다.”


그랬구나. 말년을 나가는구나. 우리 망할 병장님이 친구였구나.



-상병 분대장

“나는 오후에 경계근무가 있어서 아마 너희들 퇴소할 땐 못 볼 것 같아. 다들 너무 수고했고 잘 해주었고 또 진혁아 너 자대 가서 잘해 인마.”


몸집은 작았지만 제일 무섭고 매서웠던 분대장. 마지막에 편하게 얘기해보니 완전 순둥이였다.



-일병에서 얼마 전 상병으로 진급한 분대장

“ 힘들었다."


우리 옆에서 제일 많이 고생했던 분대장. 처음에는 일병이었는데 이제 상병으로 진급도 했다. 상병 달 때 후임을 받아 많이 힘들었다는 그 한마디, 우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 일병 분대장

“많은 시간을 함께 하지 못해 아쉽습니다. 모두 수고 많으셨습니다.”


3주 차 주말에 전입을 온 신참 분대장. 열의는 다분하나 아직은 실수 투성이. 우리 앞에서 티는 안내지만 분명 선임들에게 많이 혼났을 것이다. 하지만 정말 순둥이 분대장. 얼굴에 순둥이라고 적혀있다.



그렇게 우린 5주간 우리를 무섭게 다그쳤던, 그리고 5주간 늘 옆에 항상 있어주었던, 가깝지만 멀었던 분대장들과도 친구가 되었다. 알고 보니 다 90년생이다. 나도 90인데. 다른 자리에서 만났다면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었을까?


계급을 떼고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니 다들 농담도 잘 하고 결국 다들 우리랑 똑같은 또래 남자애들이었다. 그리고 다시 받은 신분증과 나라사랑카드. 사회에서 받았던 내 신분증과 군번줄도 지급받았다. 내 이름, 내 혈액형. 내 군번이 적혀있는 회색 목걸이. 신분증과 군번줄을 동시에 받으니 기분이 묘했다.


군번줄을 연결하고 목에 거니 차갑다. 유쾌한 기분은 아니다. 목줄 같은 기분이다.




--- 12시. 대 연병장.


퇴소다. 3 교육대 연병장 앞에 대기 중이다. 이후 자운대와 상무대 그리고 각자의 목적지에 따라 다시 분류가 시작되었다.


“상무대는 좌측으로 자운대는 우측으로 기타는 제자리에 위치할 수 있도록 한다-”

...

“얘들아- 고마웠다!!!”

“야 잘 지내!!”

“연락하고!!!!”

“전화번호!! 내 것 전화번호!!”

“건강해라 -!!!!!!”


우리는 더블백을 들쳐 메고 한 번씩 안은 다음 각자의 목적지에 따라 걸어갔다.


다시 시작이다. 막상 끝이 되니 또 다른 기분의 헤어짐이라 어리둥절하다. 내가 군대에서 이런 기분을 느끼게 될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데. 이렇게 아쉬울지 몰랐고 이렇게 뭉클할지도 몰랐다.


정말 좋은 애들을 만났고, 정말 좋은 경험을 했다. 바닥에 더블백을 내려놓고 막사를 바라보니 지금까지의 기억이 스쳐 지나간다. 병영식당 앞에서 식사 입장을 외친 것도, 줄 서서 화생방 사진 액자를 보며 식사 순서를 기다리는 것도, 밥 빨리 먹고 나와 담장 너머에 있는 넓은 논밭을 보며 집에 가고 싶어 했던 것도, 신나게 먼저 화장실 가려고 뛰어갔던 것도, 10분이란 소리에 허겁지겁 씻고 나와 3분대에 모이는 것도, 9시면 그렇게 기다렸던 편지도 이제 끝이다.


내 평생 다시는 경험할 수 없을 소중한 순간들이자 추억들이다.


“거리가 제일 먼 상무대 인원들부터 먼저 탑승한다. 각자 정해진 차로 이동할 수 있도록-”


버스에서 파란 옷을 입은 사람들이 내리더니 소대장님으로부터 파일 같은 걸 받곤 우리를 통솔 하기 시작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제 지시에 따릅니다. 각자 정해져 있는 버스로 신속히 탑승할 수 있도록 합니다.”


괜히 분대장들을 한 번 쳐다보았다. 분대장들은 이제 저 뒤에서 그냥 우리를 바라보기만 할 뿐이다.


깨끗하게 포맷된 느낌. 버스에 힘차게 올라 창가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자리가 좁다. 운전병이 오더니 더블백은 자기가 안아야 한단다. 버스는 빈자리 없이 빽빽이 다 찼다.


부르릉---


6주 만에 타는 버스. 엔진의 떨림이 너무 어색하다. 버스는 출발하고 창밖을 보니 분대장과 소대장들이 일렬로 도열해 우리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나도 기쁘고 울컥한 마음에 힘차게 손을 흔들었다. 위병소에서 나가기를 기다리는 버스.


창밖으로 위병소 근무 중인 상병 분대장이 보인다. 그는 나를 보더니 밝게 웃었다. 나도 밝게 웃었다. 그렇게 위병소를 통과하고 국도로 나온 버스. 창밖 풍경은 모든 게 신기했다. 지나다니는 차들도, 도로의 간판들도, 다 아름다웠다.


이제 이병 우동준이다. 입소 장정도 아니고 훈련병도 아니고 이병이 되었다. 다신 돌아갈 수 없는 훈련소를 기억하며 마음속으로 다짐했다.


지금처럼 잘 할 것이고 늘 행복할 것이다.







- 훈련소 이야기 정리


입대에서부터 논산훈련소 얘기가 끝났습니다. 원래 이 작업은 제대 후 네이버 블로그에 적었던 이야기인데요. 저의 이십 대가 마무리되기 전, 과거의 꿈을 마무리하려 새로 브런치에 정리 중입니다.


저는 군대에서 매 순간 노트를 들고 다니며 순간순간의 사건들과 나의 감정들을 기록해왔어요. 제대 후 나의 이야기를 글로 써 군대가 두려운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위로와 도움이 되기 바라는 마음으로 시작한 작업이었습니다.


훈련소의 이야기는 훈련을 받으며 쉬는 시간마다 노트에 적었던 메모들과 매일 밤 적었던 육군 일기를 바탕으로 재구성했습니다. 공병학교의 이야기와 자대의 이야기는 조금 더 일기에 기반해 옮겨보도록 하겠습니다.


다시 시작한 작업이 이번엔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여러분도 많은 응원 부탁드려요.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