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어.
머리카락.
나는 머리카락이 빨리 자라는 편이다.
머리숱도 많아 제때 자르지 않으면 깔끔해 보이지가 않는다.
머리카락을 자르고 나면
머리가 한결 가벼워지는 기분이다.
헤어.
우리는 보통 극적인 감정의 변화가 있거나, 큰 결단을 내릴 때 헤어를 다듬곤 한다.
어느 때인고 하니
보통
헤어짐을 결심할 때, 우리는 헤어를 자른다.
1. 헤어지다.
어제가 된 현실이자, 곧 과거가 될 오늘과 이별을 고하는 것이다.
우리는 미용사의 가위질에 의해
헤어와 헤어진다.
나의 일부였던 헤어가 잘리며
나의 헤어짐을 실감한다.
마음으로 놓지 못하던 나의 일부를
미용사가 가위로 싹둑싹둑 잘라주는 것을 보며
우린 미용사의 행위로 인해
두려운 결단을 대신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난 좋은 것이라고 본다.
헤어짐은 다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을 뜻하며
머리카락 만큼 다시 이어질 수 없음을, 다시 나의 일부가 될 수 없음을
쉽고 깔끔하게 상징하는 것도 없을 테니까.
그렇지만 난
다른 것을 이야기하고 싶다.
2. 헤어나다.
헤어지는 것 보다 어려운 것은 헤어나는 것이다.
헤어지다에서 우린
능동적인 헤어짐을 이야기했다면,
헤어나다에서 우린
수동적이며 극복해야만 하고,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는 헤어짐을 이야기할까 한다.
헤어짐을 결심한 사람에겐
그것은 아림으로 남는다.
과거에 대한 아련함과
공허한 내일에 대한 아림.
헤어남을 행해야 하는 사람에겐
그것은 잘림으로 남는다.
나의 과거와 나의 오늘이
철저하게 잘려 양분되는 것으로.
지난날과 오늘날이 잘리는 기분은
하나의 인과관계에서 나의 원인을 잘라내는 것과 동일하다.
원인이 사라지고 결과만 존재하게 되는 것.
내가 왜 여기에 있고, 내가 왜 여기까지 오게 되었는지.
그 시작과 원인을 애써 잊어야 하는 것.
헤어나는 것은
나의 꿈이자 미래이다.
난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고,
그 상태 그대로 머물러있다.
헤어나지 못해 미안한 것은,
나의 오늘이 된 사람과의 관계.
난 과거에 있고,
그는 오늘에 있다.
헤어나지 못하는 것이. 자꾸 미안해지니. 더 과거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게 되며.
난 더더욱. 헤어나지 못하게 된다.
한없이 미안하게 되는 건,
결국 나의 몫이다.
3. 다시 헤어.
어쨌든 헤어는 다시 자란다.
헤어짐을 했던, 헤어남만이 남았던,
우리의 헤어는 다시 자란다.
헤어컷을 하러 가야겠다.
헤어짐이든
헤어남이든
영화에서 감독이 컷을 외치는 것처럼.
미용사의 컷과 함께
깔끔하게 잘렸으면.
깔끔하게 끝났으면.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