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악의 평범성 : 영화 '마녀'에 담긴 피의 비린내

by 바람꽃 우동준

마녀라 불리기 전, 그녀는 누구였을까.

마녀라 불리기 전에도 그녀는 마녀였을까.


정말 그녀의 말대로


우리가 마녀라 불렀던 순간부터

그녀는 마녀가 되었던 걸까.



b89d75c0da3ed3b3ce650f446480f07b21cbebd3.jpg





1. 악마의 피도 붉을까


선의의 피해자가 악의의 가해자로 변하는 순간이 진정 영화의 클라이막스였다. 화려한 액션은 과거에 당했던 학대에 대한 리벤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여린 배우의 귀여운 미소에서 다른 의도가 읽힐 때 공포는 배가 되었다. 영화가 마치고 머릿속에 든 의문은 하나다.


'정말 그녀는 마녀였을까'


주인공의 액션은 잔인했지만 무자비하지 않았다. 결과는 학살이었지만 형태는 전투였다. 어떤 약자도 생명을 잃지 않았고 '살려달라'는 요청이 없는 죽임은 깔끔했다. 그렇기에 피가 난자하는 액션신을 보면서도 우린 도덕적 부채감을 느끼지 않았다.


마녀의 능력을 각성시켰던 건 푸른색의 액체였다. 그녀에게 주입된 건 인공의 푸른색이지만 그녀의 몸에서 흐르는 건 인간의 붉은 그것이었다. 마녀는 아무도 해치지 않았다. 자신의 목표를 위해 누군갈 이용하지도 않았다.


그런데도 그녀는 마녀가 되었다.

어떤가.


그녀의 선택과 삶을 모두 지켜본

당신에게도 그녀는 아직 마녀인가.


당신은 여전히 그녀와 친구일 수 있는가.


f6665feaeac00be7fa527ec2605d751a5cad66ab.jpg






2. Witch Hunter : 언제나 사냥꾼이 먼저일 테니



0df665f2a653fec5fcae97af436e2209a867d7ae.jpg



악마는 언제나 만들어진다. 칭기즈칸이 중동의 술탄을 넘어 유럽에 당도했을 때, 베네딕트회 수도승인 매슈 패리스는 "엄청난 무리를 이룬 끔찍한 악마의 종족들"이 온다고 기록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가축의 몸에서 흘러나오는 피를 마시면서 진미"라고 여기기 때문이었다. 넓은 들판에서 밀을 재배하고 포도주를 담갔던 이들에게 몽골 초원의 황량함과 말의 피를 주요한 에너지원으로 살아왔던 유목민의 삶을 이해할 재간은 없었다. 피를 마시는 이들이란 공포는 곧 악이 되었고, 살아남기 위해 택했던 인간의 지혜는 저주의 사슬이 되었다.


물론 몽골 기마병의 점령을 잔인했다. 한 사람도 살려두지 않았다. 칼과 창을 든 남성의 군인들을 말이다. 잔인했지만 형태는 전투였다. 유럽의 고아와 노인과 여인은 머지않아 몽골제국의 시민이 되었다. 이 시기에 정작 주목할만한 학살은 다른 곳에서 벌어졌다.


중세 유럽의 성직자들은 몽골 군대의 침입을 설명해낼 능력이 없었다. 분명 신의 저주였지만 전지전능한 신이 우릴 버릴 리 없었다. 무결의 신이 아닌 다른 곳에서 원인을 찾던 성직자들은 유대인을 찾았다. 몽골인들이 모세 시대 이후로 동쪽으로 사라진 히브리족이라 말했다. 전지전능한 신의 말을 듣지 않아 그들은 말의 피를 마시는 짐승이 되었고, 유럽 내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자기 옛 형제들의 침략을 지원해 유럽을 지배하려는 음모를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몽골 군대의 먼지바람이 유럽 대륙을 휩쓸기 전, 이웃에 의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거리로 끌려 나왔다. 어제까지 이웃이었던 자가 오늘은 나의 집을 태우고 나의 가족을 죽였다. 살려달라는 말에도 정의는 실현되었다. 칼과 창을 들지 않은 남성과 아이와 노인과 여성이 '유대인'이란 이유로 죽었다. 형태는 질서의 회복, 정의의 실현이었지만 이는 분명 잔인한 학살이었다.


난 역사를 넘어 이어지는 마녀사냥의 서사를 본다.

중세시대의 마녀는 유대인이었다.


370px-Witch_Burning.jpg




1950년대 한국에서 마녀는 제주도민이었다.


52d9e84805b03adeebfdc160b77a2e0f.jpg




1980년대 한국에서 마녀는 데모하는 대학생들이었다.



00907033_0001.jpg


신의 뜻을 거스른 자, 자유국가의 전복을 꾀하는 자, 불온사상을 접한 빨갱이를 잡는 수많은 사냥꾼들이 생겨났다.



228be5bea5664be92192a88b24b10eea6f99ae2b.jpg


이쯤 되면 내가 가지고 있던 궁극의 의문을 던진다.




사냥감이 먼저인가, 사냥꾼이 먼저인가




사냥감은 처음부터 사냥감이었을까.

아니면

사냥꾼이 지목한 순간부터 사냥감이 되었을까.


늘 놓쳐왔던 게 있다. 우린 사냥감에 대한 확인은 엄격했지만 사냥꾼에 대한 확인은 엄정하지 못했다. 그랬기에 마녀사냥의 역사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피의 비린내가 진동하는 역사는 여전히 이어지는 것이다.




3. 악의 평범성 : 너무나 진한 피의 비린내


작은 애니메이션이 있다. 라트비아의 Signe Baumane 감독이 만든 'The Witch and the Cow'라는 작품이다. 젖소의 젖을 짜기 위해 고군분투하던 마녀가 젖소의 똥을 뒤집어쓰고 깨끗이 몸을 씻는다. 하지만 젖소는 자신의 젖을 내주지 않는다. 여의치 않자 마녀는 젖소의 목을 도끼로 내리쳐버린다. 그런데 젖소의 잘린 목에선 피가 아닌 수만의 젖소가 쏟아져 나온다. 이 젖소들이 마녀를 둘러싸고 마녀는 늑대로 변해 구슬피 울며 애니메이션은 끝난다.



6ce27db39d2a111a0a891ea14148dd824a567bb1.jpg


중세 유럽에선 전염병이 돌면 마녀를 찾았다. 젖소의 젖이 나오지 않으면 마녀를 찾아 죄를 물었다. 재물이었던 젖소와 마녀는 이렇게 연결되었다. 젖소를 키우던 주인공의 부모는 어린아이가 통제하지 못한 공격성으로 자신의 젖소를 죽였음에도 사랑으로 끌어안았다. 젖소 가격이 떨어져 수입이 변변치 못해도 외부인인 마녀가 아닌 자신의 젖소를 내보내려 한다. 그 누구보다 집안의 젖소를 아끼고 직접 트럭을 몰며 먹이를 챙기는 마녀의 모습이 이 영화가 말하고 싶은 진짜 메시지가 아녔을까.



'절대 현혹되지 마라'



외지인에 대한 내용을 다룬 다른 영화가 있다. 동일한 카피로 모든 등장인물의 포스터를 꾸몄던 나홍진 감독의 '곡성'이다.


1586786_full.jpg


곡성의 인물 중 무명(배우 천우희)과 마녀의 구자윤 (배우 김다미) 이 겹친다. 곡성을 보며 많은 사람들이 누가 과연 선이고 악인가에 집중했다. 동네의 미친 여자로 시작했던 무명은 말한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고.


우린 곡성을 보며 곡성의 주민과 일치감을 느꼈다. 대척점에 존재하는 일본인에 대한 감정적 배타심이 생겼다. 일본인은 악이었다. 일본인의 주술을 쫓는다는 걸출한 무당이 왔다. 그는 선이었다. 미친 여자였던 무명이 갑자기 일어서 말한다. 절대 현혹되지 마라고.


내지인과 외부인으로 선과 악을 구분하지 않고 사냥감과 사냥꾼으로 구분해 영화를 새로이 바라보자. 그럼 보일 것이다. 사냥꾼은 경찰 종구(곽도원)이고 사냥감은 미지의 일본 외지인이다. 사냥감이 일본 외지인이라 말하는 또 다른 사냥꾼 일광 (황정민)이 있고 눈에 보이는 사냥감에 절대 현혹되지 마라고 하는 무명(천우희)이 있다.


결국 살인은 일어난다. 사냥이 성공했다. 하지만 극은 비극으로 끝난다. 평범했던 마을의 평범한 가정이 붕괴된 것이 비극이 아니다. 진정한 비극은 평범한 이가 보인 악이다. 사냥감이라고 확신한 순간 행해질 수 있는 평범한 이의 악행 말이다.





4. 오른손을 믿지 않는다 : 나와 다수를 믿지 않는다


인도는 왼손으론 용변을 오른손으론 음식을 먹는다지. 왼손은 악하고 오른손은 선하다는 오래된 인류의 인식과 궤를 같이 한다. 이로 인해 많은 왼손잡이의 불행은 예정되었다. 여기엔 오른손잡이가 집단적 다수였던 배경도 있을 것이다. 난 선한 손과 악한 손을 믿지 않는다. 악한 이가 행하는 손이 악할 뿐이다.



1.jpg



영화 마녀는 시리즈로 이어진다. 내년쯤 Part.2 가 개봉한단다. 지금도 우리 사회엔 평범한 이들의 악행이 다수의 지지로 조직되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오른손의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성관계 몰래카메라를 거래하며 누군가를 부를 누군가를 욕망을 해소한다. 오른손의 마우스 클릭 한 번으로 우리 사회 내부에 들어온 외지인에 대한 근거 없는 글과 공포가 전달된다. 중세시대 동쪽에서 달려간 몽골인이 말의 피를 마실 수밖에 없었던 환경이라는 걸 현대의 우리는 이해한다. 하지만 현대의 우리는 동일한 시대 서쪽에서 날아온 이들이 알라에게 기도하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무지가 공포가 된다.


중세시대에도 약자에 대한 폭행과 폭력을 행사하는 유대인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사실이 유대인의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결국 유럽을 집어삼키고 말 거라는 음모를 정당화시키지 못한다. 대한민국의 성범죄율은 높다. 그중 외국인 남성보다 한국인 남성의 비율이 월등히 높다. 하지만 무슬림에 대한 공포는 한국 남성에 대한 공포와는 결이 다르다. 집에서 리벤지 포르노라 불리는 몰래카메라 영상을 다운받는 이들이 포털사이트에선 무슬림의 성범죄가 심각하다 논하고, 지금을 시작으로 순식간에 몰려와 대한민국을 이슬람화 시킨다고 말한다.


누군간 사냥꾼을 자처하고 있고 누군가 사냥감이 되어가고 있다. 검사가 조직 내 성폭력을 고발해도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의 이름이 붙어 사건이 명명되는 곳이다. 인권 감수성의 선봉을 자처했던 대선후보의 성폭행을 고발해도 꽃뱀이라 하는 곳이다. 온갖 곳에서 마녀가 생산되고 정의로운 마녀 사냥꾼이 활개 친다.


나 또한 거부감이 있다. 서쪽의 공간은 내 삶과 접점이 전혀 없는 세상이다. 그 세상에도 분명 악한 이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나와 다수를 믿지 않는다. 그저 누가 정의로운 사냥꾼을 자처하는지 살필 뿐이다.


그 어디보다 정의를 가장한 학살과 다수에 의한 주홍글자가 난무했던 곳이다. 마녀 Part.2 가 개봉할 때까지 현혹되지 않는 것이 목표다. 다수가 없는 정의가 소수에 있을 것이란 막연한 기대도 경계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누가 마녀로 불리고 있는지, 어느 집단이 유대인이라 불리고 있는지 살필 것이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할 것이다.




22ca09f3dcffe70446f1153509991614583d5d59.jpg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