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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우리'가 '우리'가 될 수 있다면

by 바람꽃 우동준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91023.22025008610


‘청년이 살고 싶은 청년 중심 도시 부산 만들기’ ‘청년 이슈에 대한 사회 공감대 형성’ ‘청년 정책 추진 동력 확보’ ‘청년 사회활동 참여 기회 확대’. 지난 9월 말에 개최된 2019 부산청년주간의 기획 의도다.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4개 릴레이 포럼과 4개 기획 세션이 진행되었고 많은 청년의 이야기가 펼쳐졌다. 시민 이야기를 담는 행정 플랫폼은 작년보다 따뜻했고 시민공원에 꾸며진 하드웨어와 행사 규모도 분명 페스티벌에 걸맞은 형태였지만 깔끔해진 외형과 달리 안에서 들린 언어는 많은 면에서 무뎠고 투박했다.



부산청년주간에 참여하며 청년이 어떻게 설명되는지 집중했다. 가장 많이 들린 단어는 ‘우리 청년들’이다. 무대에 오른 청년의 필요와 요구를 들은 기성세대는 어렵게 꺼낸 첫 대답으로 ‘우리 청년들’의 이야기를 잘 들었다고 답했다. 나는 상대의 동의를 구하지 않은 채 ‘우리’라는 단어로 서로를 묶어내는 과정이 불편했다.



그렇게 초대된 ‘우리’란 공동체에서 청년은 여전히 주체로 해석되지 않기 때문이다. 종종 ‘우리 어린이’와 ‘우리 어르신’과 같이 ‘우리’란 수식어가 붙는 집단은 공동체의 주체가 아닌 공동체의 관심과 보호를 받을 대상에 위치했다. 그 보호와 관심의 마음이 아무리 선하다 하더라도 청년주간이 목표했던 본질이 ‘청년이 중심인 부산’을 설계하는 것에, ‘청년의 사회 참여를 확대’하는 것에 있기에 가장 먼저 챙겨야 했던 건 청년을 어떤 언어로 지칭할지에 대한 앞선 고민이었다. 사소한 것일수록 변화가 힘들고, 일상적인 언어에서 우리가 머무는 자리가 드러난다.



2019 부산청년주간을 꿰뚫는 메인 슬로건은 ‘청년 부심’이었다. 청년과 결합한 ‘부심’. ‘만들어지고 쓰인 지 7년이 된, 새롭게 만들어졌다 하기엔 민망한 신조어이다. ‘부심’은 자부심에서 변형된 단어인데, ‘자기 자신 또는 자기와 관련된 것에 대하여 스스로 그 가치나 능력을 믿고 당당히 여기는 마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스스로 자(自)가 탈락하며 차부심, 술부심과 같이 내가 자신감을 느끼는 대상에 결합해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단어로 재창조되는데 차와 술처럼 ‘청년 부심’의 청년 또한 부심의 대상이 된 것에 묘한 이질감을 느낀다.



청년이 느끼는 건 나다움이지 청년다움은 아닐 것이고, 청년 부심이 내포하고 있는 건 ‘청년의 시기’에 대한 긍정과 청년들이 정책에 만족하고 있다는 ‘부산시의 기대’일 것이다. 처음엔 모든 것이 개인의 문제인 줄 알았다. 취업의 기간이 길어지는 것도, 일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더 나은 집을 꿈꾸기 힘든 것도, 누군가를 만나 긴 호흡으로 나누며 삶을 계획하기 버거운 것도 모두 개인의 능력과 노력의 부족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개인의 영역을 넘어선 외부 요인이 있다는 것을 알기 시작했다. 자산 증식의 수단이 된 부동산, 달콤했던 경제성장의 시기가 끝나며 좁아진 취업문과 기회. 청년이란 동질집단 내에서도 정말 많은 것이 달랐지만 한국 사회의 특정한 세대가 특정한 어려움에 마주했음을 우리는 함께 소리쳐왔다.



이런 흐름 뒤 청년 시민을 향한 행정의 노력이 깊어지는 것과 점차 열려가는 거버넌스 구조에 환영의 마음을 보낸다. 하지만 여전히 ‘청년’이란 단어에 감정이 덧대어지는 것을 경계한다. 7일 동안 외쳐진 ‘청년부심’이 청년 각자가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며 느낀 자부심에 근거하는지, 혹은 부산의 청년들이 이렇게 건실히 활동한다는 걸 확인한 ‘우리 어른들’의 자부심을 담고 있는 건 아닌지 조심스레 묻고 싶다. ‘청년’이란 단어를 우리만 쓰겠다는 고집 혹은 아무나 쓸 수 없는 고결한 단어로 만들고 싶단 뜻은 아니다. 다만 청년이 빛나는 시기라는 가치, 청년은 무한한 가능성을 품은 존재라는 기대보다 실제로 그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는 이들의 담담한 이야기가 먼저 담기길 희망하고 그들이 얘기하는 문제와 나름의 해법이 진지하게 다뤄지길 바라는 것이다. 우리가 우리가 되는 일의 시작은 구성원을 그저 바라보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이 모든 과정을 거쳐 내년에 이어질 청년주간엔 진정으로 우리가 우리일 수 있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청년활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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